결혼하면 절대 딸은 낳지 말자는 남자친구

뉴스를 보다가 저도 모르게 절로 욕이 나와 흠칫 놀랐습니다. 바로 요즘 한창 시끄러운 여중생 납치살해범인 김길태 때문이죠.

 

사형 또는 무기징역이라고 하는데, 실로 무기징역에 그치게 될 경우를 상상하면 아찔합니다. 항상 이런 뉴스를 접할 때면, 남자친구는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결혼하면 딸은 절대 낳지 말자"

 

여동생이나 누나가 없는 남자친구는 유독 이러한 기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입니다. 여자 자매만 있는 저희 집안에서는 이런 뉴스를 접하면 "에휴. 어쩌다가세상이 참 무섭다. 몸 조심해라." 정도라면, 남자친구네 집안에서는 ", 진짜 뭐 저런 @#$Y@%# 같은!" 라는 좀 더 격앙된 분위기라고나 할까요.

 

대학생이 되어 지방에 있다가 서울에 처음 왔을 땐 좀처럼 산을 보기 힘든 주위의 모습에 "귀신 나올 일은 없겠다" 라며 늦은 시간에 조금 거리가 먼 편의점에 가더라도 겁 없이 잘 돌아다니곤 했습니다만, 어느 순간부터 이러한 기사가 눈에 들어 오면서부턴 "세상에 귀신(죽은 사람) 보다 무서운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산 사람이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뜬금없이 왠 귀신 타령이냐고 하시겠지만, 어렸을 적,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 바로 뒤편에 산이 있어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나면(10시쯤 마쳤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항상 집에서 미리 챙겨왔던 물통을 챙겨 약수터에 올라가 약수 물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곤 했습니다. 그야말로 무서울 게 없었죠. 오로지 머릿속에는 '귀신 나오기만 해봐. 그랬다간 내가 이 주먹으로…' 와 같은 철없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 말입니다.

정말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제 주먹 한 방이면 누구든 끔뻑 넘어가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죠.

 

물론, 10시가 훌쩍 넘어 달빛과 약수터 가로수 불빛에 의존해 겨우 걸어 갈 수 있는 어둑한 밤길을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저 멀리서 슬금슬금 다가오고 있으니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를 따라 약수터에 온 꼬마 소녀가 '귀신이야!' 라며 엉엉 우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늦은 시각, 어린 나이에 어딜 가도 그렇게 무서울 게 없던 제가 나이 스물여덟이 되고 나서야 뒤늦게 세상의 무서움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10시가 넘은 비슷한 시각, 산에서도 그렇게 유유히 길을 거닐었던 한때의 제가 이 나이에 서울 도심 한 가운데에서 길을 걷더라도 무척이나 불안해 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경우 입니까?

 

회사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지하철로 1시간 30분 남짓. 회사에서 회식이라도 하게 되는 날엔, 보통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는 시각인 8시보다 한참 늦어져 집에 들어가면 거의 12시가 다 되어 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회식을 해서 집에 늦게 들어가는 경우에는 가족뿐만 아니라 남자친구에게도 항상 이야기를 합니다.


늦은 시각, 회식 때문에 늦는다고 하면 집에서는 "조심해서 와라" 라며 주의를 당부하는 정도 라면 남자친구는 제가 집으로 들어가 제 방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거듭 걱정을 합니다. 불안해서 잠을 못자겠다며 폰을 손에 쥐고 대기하고 있는 거죠.  

딸이지만 장녀로, 어찌 보면 든든한 장남처럼 커 왔던 지라 처음엔 남자친구의 그러한 우려가 너무나도 생소했습니다. '설마 나에게 무슨 큰 일이라도 나겠어?' 라는 안일함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디야? 지금은 어느 역이야? 내렸어? 어느 골목으로 가고 있어?


혹여 막차를 타고 가다가 중간 지하철이 끊기는 상황에 이르러 택시를 타게 되는 날엔 더욱 그러합니다. 

택시 번호랑 택시기사 정보 확인하고 문자로 보내.

 

이런 저런 끔찍한 사건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세상. (어느 정도 잊혀 질만 하면 터지고 그래야 되는데 이건 뭐) 이런 무서운 세상에서 여자들이 살기란 정말 힘들다며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곤 했었습니다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비단 여자들만 힘든 건 아니네요. 밤 12시가 되더라도 제가 집에 들어갈 때 까지 노심초사 하며 계속 안부 전화를 하고 문자를 계속 보내는 남자친구를 보고 있자니 말입니다.

그렇게 늦은 시각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심 길 한복판에서 소매치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던 데다 아주 끔찍한 뉴스를 그야말로 잊을 새도 없이 계속 접하게 되니 말입니다.

 

딸 낳으면 하루도 마음 편치 못할 것 같다는 남자친구의 말이 어색하게 들리지만은 않네요. 왜 자꾸 저도 딸 낳기 무서운 세상이라는 생각이 드는걸까요.

이 순간, 그 범인은 또 어디에서 또 다른 가면을 쓴 채 지내고 있는 걸까요-

딸 낳기 무서운 세상- 그래도 언젠간 바뀔 수 있겠...죠?

+ 덧붙임) 절대! 딸 보다 아들이 낫다- 라는 견해로 쓴 글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찢어 죽이고 싶을 만큼 험악한 성폭행범들이 판치는 이 세상이 무서워 역설적으로 절대 딸은 낳지 말자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남아 선호사상이라는 댓글이 눈에 띄어 추가 기록 해 놓습니다. 제 글의 요지는, 절대! 딸 보다 아들이 낫다는 편파적 견해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