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시작! 당신이 지금 당장 OOO 을 해야 하는 이유

10년 전, 은행에 외화를 출금하러 가니 무척이나 놀랍고 신기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럴만도 한 것이 구글에서 개인에게 왜 외화를 송금해 주는걸까? 이 부분에서 은행원은 궁금했던 것이다. 이제는 구글 애드센스가 자동으로 외화계좌에 찍히지만, 한때는 직접 은행에 방문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제는 유튜브가 대중화 되어 유튜브 수익을 외화로 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고, 구글로 입금되는 외화를 출금하는 것이 그리 생소한 일은 아니다. 

나는 2009년부터 블로그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도 기록 중이다. 

2009년부터 시작한 블로그

문득 후배가 내게 물었다. 블로그를 어떻게 그리 일찍 시작하게 되었냐고.

먼저 시작한 것은 온라인 책 서점(당시에는 온라인 서적몰도 드물었다)에서 책을 사서 감명을 받아 그 책의 감상평을 남기기 위해 온라인 책 서점 내의 작은 게시판에서 리뷰를 작성한 것이 계기였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니, 다른 사람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또 좋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신이났다. 일명, 내돈내산(내 돈 내고 산) 리뷰가 쌓이니 이제는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공짜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책을 공짜로 선물해 준다고 하니 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무척 행복했다. 그러다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에 블로그를 개설했다. 

다시 돌아와, 후배의 질문에 대한 답은 위와 같이 장황한 것이 아니다. 심플하다. 블로그를 하고 싶어서 그 날 바로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했다는 게 맞는 대답이다.

그리고 회사생활을 하며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며 그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고 끄적이는 것을 좋아하는, 그게 바로 나였다. 블로그를 하며 내가 뭘 좋아하고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끄적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오랜 기간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는게 아닌가 싶다. 물론, 방황기가 있긴 했지만. 누적 방문자수를 보니 곧 있으면 천만이겠구나 싶다. 이야! 천만관람객 부럽지 않다.

버섯공주세계정복 블로그 누적방문자수

어떤 이들에겐 시작이 어렵고 어떤 이들에겐 끝맺음이 어렵다. 난 처음 뭔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시작하게 된 그 무엇을 중도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참 어려운 일 같다. 7년 넘게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질 때도 처음으로 그렇게 오래 만난 사람이었고 이대로 헤어지면 나의 파릇파릇한 20대의 행복한 추억마저 모두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아 무척 힘들었다.

나는 시작이 쉽고 끝맺음이 어려운 사람이다. 나와는 반대로 후배는 시작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결혼할 사이도 아닌데 괜히 시작했다가 나중에 헤어지면 서로 피곤하니까."

일단 만나봐야 연애로 끝날 사이인지, 결혼할 사이인지 알 수 있지 않겠냐는 나의 말에 칼 같이 선을 그었다. 자신이 만나고 싶어 하는 기준선을 넘은 사람만 만날 거라며.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고 그 다른 성향으로 표현되는 방식 또한 다르다. 

 

연애, 사랑 이야기를 뜬금없이 왜 하나 싶지만 이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일을 함에 있어서도 준비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 있고 무턱대고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 일단 부딪혀 보자며. 장단점이 있으나, 내가 경험해 보니 그래도 일단 시작은 빠르면 빠를 수록 좋은 것 같다. 정말 모든 것을 다 갖춰야만 시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면 말이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14년차 직장인이다. 10년 넘게 블로그를 운영해 오고 있고 쇼핑몰을 운영중이다.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쓴 저자이기도 하며 컬럼니스트다. 아마추어 수영대회에 나가 메달을 딴 아마추어 수영인이다. 지금은 부동산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간을 할애 중이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나는 늘 시작했다. 바로! 지금!

"언니, 집을 샀어? 언제? 언니 대출받아서 26살에 집 사지 않았어? 대출 갚고 또 산거야?"

"언니, 수영시작한다고 한 게 얼마 전인 것 같은데 대회에서 메달을 땄어?"

'안될거야. 안될텐데.' 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뭔가를 시작하면 항상 결과가 있었기에. 승패를 떠나 성공여부를 떠나 '뭔가'를 시작한다는 것은 그 '결과값'을 가져다 준다. 당신이 두려워 해야 할 것은 안될 것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시작하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언니, 블로그를 아직 하고 있어? 언니한테 블로그 한다는 이야기 들은 게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후배는 10년 전의 그 날처럼, 내게 다시 물었다. 그리고 10년 전의 그 날처럼, 다시 알려 주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 당장 하세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고민하지 말고 지금해!"

표창원과 신창원의 한 끗 차이, 엄한 부모는 좋은 부모일까

신랑과 연애를 할 때부터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아이의 교육에 있어서도 많은 부분이 통하였고 일치했다. 그래서 신랑과 나는 일명 '요즘 부모'라고 하기엔 좀 많이 엄격한 편이다. 눈물, 콧물 쏙 빼놓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맞벌이 부부인지라 두 아이의 어린이집 및 유치원 등하원을 친정 어머니의 도움을 받고 있다. 

"제자리에 둬. 그건 축복이, 행복이 물건이 아니잖아. 어서!"

평소에 그렇게 소리 치거나 엄하게 하지 않는데 친정 엄마에게 불편을 드리면 안된다는 생각이 큰건지, 어찌되었건 어른 앞이니 더 예의 바른 아이였으면 하는 욕심 때문인지 두 아이에게 자꾸 소리쳤다.

"예쁘게 앉아서 밥 먹어야지. 왜 가만히 있질 못하고 자꾸 움직여! 예쁘게 앉아."

밥을 먹다가 물컵에 있던 물을 쏟았는데 평소 집이었다면 '괜찮아. 다음에는 조심하자!' 하고선 물컵부터 빨리 치웠을텐데, 우리집이 아닌 곳에서 그렇게 물을 쏟으니 민폐라는 생각에 아이에게 소리쳤고 아니나 다를까. 둘째는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고, 첫째는 왜 동생을 울리냐며 따라 울었다. 친정 엄마는 더 바빠지셨다. 내가 울린 두 아이를 달래느라.

"난 널 그렇게 키우지 않았는데, 넌 왜 아이들에게 별 것도 아닌 일에 소리를 지르고 혼내니? 아직 어리잖아. 밥 먹다가 물 쏟을 수 도 있지. 치우면 되잖아. 다음부턴 조심하자고 주의를 주면 되지. 왜 애를 울려?"

정곡을 찔린 듯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집에서 물을 쏟았다면 그렇게 소리 지르거나 혼내진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정 엄마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나름 신경을 쓴다고 더욱 엄하게 두 아이를 대한 건데 되려 부작용만 생긴 느낌이다.

신랑과 함께 두 아이를 재우고 '차이나는 클라스-질문 있습니다' 방송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초반부터 보지는 않았지만,  범죄심리학자 표창원이 '표창원과 신창원의 차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는데 무척 흥미로워서 집중해서 보았다.

 

희대의 탈옥수 신창원은 표창원은 한 끗 차이다

 

 

신창원은 1989년 강도살인으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이후 교도소를 탈옥해 도피행각 벌여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재검거 된 후 22년 6개월 형을 받았다. 워낙 온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든 범죄자라 신창원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신창원의 첫 범죄는? 

다름 아닌 수박 서리. 과수원 서리로 인해 소년원을 가게 되었다고 한다. 신창원은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홀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신창원에게 아버지는 매우 엄격했다.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수박 서리로 아버지에 의해 경찰서로 끌려간 후 소년원에 보내졌다. 

신랑과 나는 종종 그런 이야기를 했다. 공부를 못하는 건 용서할 수 있으나, 거짓말을 비롯한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자식에게 엄격한 잣대를 드리밀고 싶다고 말이다. 그게 비록 귀한 내 자식이라 할 지라도 잘못한 행동을 했다면 당연히 처벌을 받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컸다.

'부모가 엄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아이가 버릇이 없고 기준을 세우지 못해 잘못된 길을 갈 수 있다'라는 게 신랑과 나의 생각이었다. 신창원의 아버지 역시,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신창원은 수박 서리 하나로 아버지 손에 끌려 경찰서로 그리고 소년원으로 갔다. 신창원은 그의 가족은 물론, 이웃에게도 손가락질을 받았다. 어느 누구도 좋은 말을 건네주지 않았다. 그가 기댈 곳은 소년원에서 만난 선·후배들만이 유일했을 터.

표창원 또한 어린 시절 환경이 가난하고 불행했으나 어떤 상황에서도 감싸 주는 부모님이 계셨고, '다 잘될 거야' 덕담을 해 주는 이웃이 있었다. 

아이가 기대어 쉴 수 있는, 인정해 주고 사랑해 줄 수 있는 가족이나 이웃이 있었다면, 나쁜 행동을 멈출 수 있지 않았을까. 오로지 소년법 폐지만이 청소년 범죄를 낮출 수 있다고만 생각했던 나의 생각을 확 바꿔준 강연이었다.

소년원에서 징역살이가 끝난 아이는 경찰에 의해 가정으로 돌려 보내지지만 아이들의 일부 부모는 '너 같은 자식은 둔 적 없다.', '없는 자식으로 칠게.'라며 아이를 다시 내몬다고 한다. 

덜덜덜.

아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느낌. 아이가 갈 곳을 잃으면 폭력 조직에서 조직원으로 스카웃. 미래의 폭력 조직원 양성 과정이다. 다른 의미로 미래의 또 다른 범죄자 양성 과정. 

청소년 범죄 기사 댓글을 보다 보면 자식이 잘못 큰 것은 대부분 자라온 환경과 부모가 아이를 '오냐오냐' 키워서 자식이 저 꼴이 난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문득,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한 부모'를 '좋은 부모'라고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방임하고 있다가 자식이 죄를 저지르고 돌아오면 '넌 내 자식 아니다!' 엄포를 놓으며 엄하게 하는 것. 그런 엄한 부모가 좋은 부모인가? 오냐오냐 하는 부모는 차라리 처음부터 자식에게 관심이라도 가지지. 

신랑과 나 또한 표창원의 강연을 보며 '아차' 한 것은 두 아이에게 엄하게 가르치니 아이들이 바르게 클 것이라고 착각한 것이다. 엄하게 가르치는 것이 올바른 가르침은 아니다. 아이에겐 충분한 사랑과 인정을 주며 엄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좋은 방식으로 아이를 가르칠 수 있다.

'부모로서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모유수유 고집,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자연분만으로 첫 아이를 낳아 산부인과에서 1주, 그리고 산후조리원으로 이동하여 2주 정도 내 몸을 돌보고 간호사님, 간호조무사님의 도움으로 아이를 케어하는 법을 배웠다. 포동포동하게 살이 오른 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제 정말 산부인과에서나 산후조리원에서 도움을 주셨던 분들의 손을 떠나 이제 오롯이 나만이 아이를 책임지고 키우게 되겠구나- 나도 이제 엄마다! 라는 감개무량함을 느끼며 산후조리원을 나왔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산후조리원을 나서며 볼 빵빵한 아기 얼굴을 보며 엄마를 닮았느니, 아빠를 닮았느니... 

그리고 그 날 못지 않게 태어난 지 2개월이 지나 축복이를 데리고 소아과에 갔다가 펑펑 울며 나왔던 그 날의 기억 또한 아직 생생하다. 내가 모자라서 그렇다는 둥,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둥...

연애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기까지. 신랑이나 나나 아이를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던터라 아이에 대한 관심 또한 현저히 낮았다. 하지만 배가 점점 불러오고 초음파 영상 속 아이가 조금씩 사람의 형상을 갖춰감에 따라 배가 불러오는 것만큼이나 어마어마한 모성애가 자라나고 있었다.

"난 꼭 모유를 먹일거야. 모유수유 할거야."

신랑에게 난 가슴도 작은 편은 아니니, 모유가 잘 나올거라며 모유수유를 하겠노라 큰 소리를 뻥뻥쳤다. (가슴 크기와 모유량은 무관하다) 어느 누구도 모유수유를 강제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유수유는 엄마가 당연히 지켜야 하는 의무처럼 느껴졌다.

"요즘 다들 그냥 분유 먹이잖아. 안그래? 모유가 더 좋은데 말이야."

분유를 먹이는 엄마들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 본인이 편하고자 모유가 아닌 분유를 먹이는 것 아니냐며 분유를 먹이는 엄마는 이기적이고 나쁜 엄마인 듯한 시선과 말투. 회사 내 싱글인 남자 팀장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모유 수유를 하면 좋은 엄마, 모유 수유를 하지 않으면 나쁜 엄마라 선을 긋고 있었는지 모른다. 

"모유 먹여라. 모유가 좋댄다."

아버님의 손자 사랑. 모유를 먹여야 똑똑하다나?

"엄마들이 별 것도 아닌 일에 유난을 떨어서 말이야. 그리고 요즘 엄마들이 좀 편하냐. 일회용 기저귀도 있고. 옛날이야 면 기저귀를 썼으니 힘들었지."

싱글 남자 팀장님이 요즘 엄마들은 별 것 아닌 일에 유난을 떤다는 말을 하곤 했다. 팀 내 유일한 여자직원이었던지라 팀장님께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유난 떠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별 것 아닌 일에 소스라치게 놀라, 아이보다 엄마가 더 놀래선 병원으로 뛰어가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포털사이트 뉴스기사 속 댓글에 등장하는 '맘충'이라는 표현에 나도 모르게 몸이 움추러 들었다.

난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아! 난 그런 엄마가 되지 않을 거야!

왜 '엄마'라는 좋은 단어를 그렇게 비하하여 표현할까. 정말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몇몇 엄마들이 있겠지만, 굳이 '맘충'이라는 단어를 만들어 비하해야만 했을까.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지 않는 엄마가 되기 위해 신경을 참 많이도 썼다. 그러면서 은근 '나는 그런 엄마가 아니야!' 라고 그들과 선을 긋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산부인과에서 자연분만 이후, 줄곧 잠을 줄여가며 모유수유를 고집했다.

엄마들이 편하려고 가는 곳이 산후조리원 아니냐는 편견에 맞서고 싶었다. 출산 직후부터 밤잠을 줄여가며 일정 시간 간격으로 모유를 먹였다. 

멋진 엄마가 되고 싶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평균에 한참 미달했던 축복이

축복이가 태어난지 두 달이 지나갈 무렵, 소아과를 찾았다.

"어머니. 축복이 모유 먹나요?"
"네!" (자신감 충만)
"분유는 전혀 먹이질 않구요?"
"네!" (걱정 반)
"하루 소변량 확인 안하세요?"

"소변량이요?" (두려움 반)
"하루에 아기가 보는 소변량이 어떻게 되나요?"
"글쎄요. 그냥. 적당히 소변을 보긴 보는데. 하루에 여러번." (당황)
"어머니, 잠은 좀 주무세요? 식사는 제때 하세요?"
"네... 뭐. 적당히."

머리가 새하얘졌다. 무슨 문제지. 소변, 대변 잘 보는데 뭐가 문제지? 방광이 안좋나? 대장이 안좋나?

"이 정도면 기아만도 못한 수준이에요. 기저귀를 들어보고 가늠을 하셔야죠. 탈수 증세까지 올 뻔 했어요. 요즘 분유도 모유 못지 않게 잘 나와요. 어머니가 수면도 부족하고 먹는 양이 적은데 젖양이 충분하겠어요? 모유량이 충분하지 않은데, 모유만 고집할 게 아니라 분유로 충당하거나 그러셨어야죠. 얼마나 배고팠겠어요. 아기가 자주 울거나 보채지 않던가요?"

모유를 고집하며 밤잠을 줄여가며 아이를 잘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게 소아과 선생님의 말씀은 비수가 되어 꽂혔다. 더워서 잘 못자는 줄 알았다. 기저귀가 축축해서 잠을 잘 못자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배가 고파 더 자주 우는 것이었다. 먹이고 먹여도 엄마의 젖량이 충분하지 않아 아기는 배가 고파 운 것이다.

나 스스로 밤잠을 줄여가며 아이를 잘 챙긴다고 생각했던, 모유만 고집했던 엄마의 욕심이 결국 아기도 나도 서로를 더 힘들게 했다는 생각에 한참을 울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옆에서 신랑이 괜찮다고 다독이는데도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내겐 들리지 않았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한 내 행동이 결국, 내 이기심이자 욕심이었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웠다. 

둘째를 낳고 난 이후에는 첫째 때처럼 모유만을 고집하지 않았다. 나의 모유량이 부족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미리 유축기로 젖양을 가늠해 보고 아이를 먹이고 부족하다 싶으면 분유로 충분히 보충했다.

첫째와 비슷한 시기의 둘째 행복이, 상당히 우량하다

같은 시기의 두 아이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너무나도 상반됨을 알 수 있다. 둘째는 누가 봐도 튼튼하고 우량해 보이는 반면, 첫째의 사진을 보면 이제서야 눈에 보인다. 그 시기의 아기치고 얼마나 작고 야위었는지. 소아과 선생님이 다그치실만 했다.

그 땐 초보 엄마라 너무 몰랐고 서툴렀다. 모르고 서툴수는 있으나, 모르고 서툴면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맞다. 첫째 때는 처음이라 서툴러 잘 몰랐지만 둘째 행복이를 낳고 키우면서야 깨달았다.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나 이런 저런 이야기에 휘둘리지 않고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고 내 방식으로 내 아이에게 맞게 키우는 것이 가장 옳다는 것을. 

주차장에서 '뛰지마!' 대신, 아이들에게 해야 할 말! 아이 사고 예방 방법

신축 아파트로 이사오고 나서 좋은 점은 요즘은 차 없는 단지라고 해서 지상에는 주차장이 없어 아이들이 좀 더 안심하고 다닐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다 보니 지상 주차장은 없으나 지상에 차가 서야 하는 여러 이유가 생긴다. 잠깐 비상 주차 하느라, 택배 기사님들이 짐을 싣고 내리느라, 차는 없으나 각종 배달을 위한 오토바이가 드나들기도 하고.

그래서일까. 

단순히 환경을 차단하는 것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만화 따라 우산 펼친채 뛰어내린 6살 아이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기는 하나, 아이 혼자 집에서 놀다가 아파트 13층에서 만화영화를 보다가 우산을 들고 하늘을 나는 장면을 따라 하기 위해 건물 밖으로 뛰어내긴 사고가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전신주에 걸려 목숨을 건졌다. 중국에서는 지난 달에도 유사 사건이 발생된 적이 있다. 내가 모를 뿐, 국내에서도 유사 사건이 있었을런지도 모른다.

나 역시, 어릴 적 만화영화를 보며 주인공을 따라 흉내낸 적이 있다. 그래서일까. 마냥 어떻게 만화 영화를 보고 따라하냐며 웃어 넘길 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5살 첫째 아들 녀석이 요즘 스파이더맨에 푹 빠졌다. 스파이더맨 영화를 보여준 적이 없는데 어디서 스파이더맨을 접한 건지 피융- 피융- 하며 손가락을 스파이더맨을 따라 흉내내며 뛰어다닌다. 

스파이더맨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 스파이더맨 옷을 사줬다. 스파이더맨 코스튬은 아니고, 일반 티셔츠와 반바지인데 가슴 팍에 스파이더맨이 그려져 있다. 아파트에 살고 있다 보니 층간소음 방지매트를 깔고서도 하루에도 여러 번 제발 뛰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게 일이다. 그러던 중 알게 된 중국 어린이 추락 사건. 

2년 전, 키즈카페에서 신나게 놀던 축복이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 역시, 스파이더맨을 흉내낸다며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단순히 '뛰지마!' '아래층에서 아저씨가 이놈하지?' 라는 말 대신, 높은 곳에서 뛰면 다칠 수 있음을 더 강조한다. 

"축복아, 축복이는 스파이더맨을 흉내내는거지, 스파이더맨은 아니잖아. 그렇지? 높은 곳에서는 뛰어내리면 안돼. 어떤 친구가 스파이더맨 따라 하다가 떨어져서 크게 다쳤대. 축복이가 다치면 엄마가 울겠지?"

여러번 설명한다. 

층간소음방지를 위해 바닥에 두꺼운 매트를 깔고 나서도 제일 중요한 건 설명이다. 왜 공동주택에서는 뛰면 안되는지. 윗집에 누가 살고 있고, 아랫집에 누가 살고 있는지. 단독주택이 아닌 공동주택, 말그대로 함께 사는 주택이기에.

마찬가지다. 고층아파트 추락사고 방지를 위한 추락방지방충망을 비롯해 창문, 베란다 잠금 잠치 등 여러 장비가 많이 등장했다. 그런 다양한 아이템을 구매 하기전에 중요한 것이 있다. 아이에게 제대로 된 눈높이 설명을 해 주는 것.

아이의 안전사고 예방에 있어서는 장비빨 내새우지 말자. 아이에게 설명이 먼저다.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고 난 뒤, 장비빨을 내세워도 될 듯.

주차장에서 '뛰지마!' 라는 말 대신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자이자, 보행자. 대부분의 사람이 그러하듯, 운전 면허가 없을 땐 횡단보도에서 내가 빨리 달리면 천천히 오는 (것처럼 보이는) 저 차보다 먼저 보도 끝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면허를 따고 나서야 알았다. 생각보다, 아니 그 이상으로 차는 정말 빠르다. 그리고 그 차를 제어하고 운전하는 것 또한 사람이다. 실수를 할 수 있는 사람.

절대 차를 이기려 들어서는 안된다. 종종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뛰는 아이들을 마주할 때면 가슴을 쓰러내리곤 한다. 나 또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인지라 뒤늦게 아이를 붙잡으며 들리는 '주차장에서는 뛰지말랬지!' 라는 말에 아이에게 주의를 주려다가도 입을 꾹 다문다. 나 또한 아이들에게 '하지마!' '뛰지마!' 라는 말을 많이 했다. 

최근 들어서야 방법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다시 알려준다. 아파트 공동현관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초입부터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강조한다. 오른쪽! 왼쪽!

아이들에게 뛰지 말라고 하니, 본인이 더 더 더 더 빨리 뛰면 된다고 착각한다. 내가 어렸을 적, 차보다 내가 더 빨리 뛸 수 있고 더 빨리 뛰면 된다고 착각했던 것처럼... 오른쪽! 왼쪽! 으로 바꾸니 오른쪽 보랴, 왼쪽 보랴 고개 돌리느라 바쁘다.

주차장에서 무작정 뛰지말라는 말보다 왜 뛰지 말라고 하는지 차가 왜 위험한지 알려주고 좌우를 살피며 차가 오는지 확인하며 가라고 알려준다. 초등학교에서 저학년 때 배웠던 기본 중의 기본. 오른쪽! 왼쪽! 갑자기 약 30여년 전 학교에서 배웠던 과거의 기억이 소생되는 듯 하다. 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오른쪽! 왼쪽! 그렇게 알려주는지 이제야 알겠다.

지금껏 주차장에서 아이들 손을 붙잡고 '뛰지마!'만 열심히 외쳤던 내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하. 하. 하.

이래서 부모가 되고 나서도 끊임없이 배워야 되나 보다.

고민 많은 다섯살, 그 속내를 듣고 나니

"선생님, 축복이 왔어요. 문 열어 주세요!"

가정 어린이집을 다니는 행복이와 유치원을 다니는 축복이. 2살 터울의 남매다.

매일 출근길, 나는 가정 어린이집에 둘째 행복이를 먼저 데려다주고 첫째 축복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가까운 집 근처로 보내고 싶지만 맞벌이인지라 하원이 어려워 친정 근처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간다.

두 살 터울의 남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15분 정도를 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 시간동안 차 안에서 행복이와 축복이는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눈다. 2살 위인 다섯 살의 오빠와 24개월 갓 지난 여동생의 대화, 대화가 되긴 할까-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을까- 싶지만, 의외로 축복이는 행복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준다. 

"행복아. 오빠가 행복이 먼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유치원 갈게."

분명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건 나인데, 어린이집에 도착해선 차에서 내려 동생을 챙긴다. 결국, 둘을 챙기는 건 나다. 

"선생님, 축복이 왔어요. 문 열어 주세요!"

가정 어린이집이라 아파트 공동현관 벨을 눌러야 어린이집 선생님이 문을 열어주시는데 아파트가 떠나가라 큰 소리로 선생님을 찾는다. 제발- 쉿-!

행복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축복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이동하는 길. 또다시 축복이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 보인다. 

"축복아, 왜? 무슨 고민 있어?"
"엄마, 행복이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겠죠? 휴."
"아, 동생 걱정 하는 거야?"

엄마인 내가 걱정해야 할 일 같은데 나름 오빠랍시고 동생을 걱정하는 모양새다. 왜 그리 웃기는지 모르겠다. 아직 너도 엄마, 아빠 눈엔 아기야-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이 기준에서는 또 다른 아이 세상에서의 고민거리가 있겠지. 나 역시, 어렸을 때 그런 고민이 있었겠지. 개구리가 올챙이 적 기억 못 한다고 나 또한 그런 고민을 했음에도 기억을 못 하는 거겠지. 라며 그 시절을 돌아보곤 한다.

"엄마, 아빠는? 아빠가 왜 안오지?"
"아, 아빠가 오늘 회사일이 많아서 조금 늦으신대."
"그래요?... 우리 아빠한테 전화해볼까?"
"아냐. 아빠 금방 오 실 텐데."
"아니야. 전화해보자."

잠들기 전, 아빠가 보이지 않자 또 다시 축복이는 걱정한다. 축복이가 엄마인 나 못지 않게 걱정거리가 많아 보인다. 아빠 걱정하랴, 동생 걱정하랴...

친정으로 하원하는 축복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치원에서는 어땠는지, 외할머니와는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본다. 한 번은 갑자기 울먹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너무 힘들었어. 얼마나 힘들었는데."
"왜? 무슨 일 있었어?"
"밥 ...느라 힘들었어."
"...? 응? 뭐라고 축복아? 다시 말해줄래?"
"밥 먹느라 힘들었어요!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응? 밥 먹는게 왜 힘들지?"
"밥 양이 많았어."

밥 양이 많으면 남기면 된다고 설명하며 그게 그렇게 힘들다고 토로할 일인가 싶어 웃음이 터졌다. 그러다 뒤이어 내뱉은 축복이의 말에 뒷통수를 세게 맞았다.

유치원 다니는 다섯살

"밥을 많이 먹어야 엄마가 걱정 안하잖아요."

눈물이 핑 돌았다.

워킹맘으로서 '엄마는 힘들지만, 너희들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 힘내서 돈을 벌고 있어.' 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때가 있다. 그러면서 망각한다. 마치 우리 부모만 아이들을 걱정하고 위하고 있다고 말이다. 사실은 아이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24개월이건, 48개월이건 그 개월수에 맞게, 그 나이대에 맞게 고민을 안고 있다.

축복이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잠들기 전, 항상 이야기 해 준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내일 또 일찍 일어나서 유치원 가야 되니까 피곤하겠다. 그렇지? 잘자. 좋은 꿈 꾸고."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돌아온 부부 사이의 인사가 자연스레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공통 인사가 되었다. 

수고했어. 오늘도.

아이 자존감 높이는 방법, 자존감 높은 아이 만들기

서울대 경영학과 최우수 졸업생.

엘리트 중의 엘리트.

서울대, 그들은 다른 세계 사람들인가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남편의 이야기다. 나의 결혼소식을 전하면 먼저 결혼한 선배들이 '와, 애들 교육 걱정은 안해도 되겠다.' 라는 말을 건네곤 했다.

아니 왜? 나도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교, 좋은 학과 나왔는데? (물론, 서울대만큼은 아니지만...)

내 눈에도 신랑은 엘리트이긴 하나... 신랑은 아이들의 교육 방법에 있어서는 내 도움을 많이 받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연애할 때부터 결혼 후 지금까지. 늘 뭐든 잘해왔던 신랑인지라 고민이 없을 것 같았는데 신랑은 본인 스스로의 자존감이 무척 낮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은데 그 방법을 자신은 잘 모르겠다며 본인이 자라온 환경에 대해 이야기 해 주었다.

응. 맞아. 난 자존감이 어마 무시하지.

신랑은 확실히 머리가 좋다. 학벌로도 알 수 있지만, 나랑 같은 시간 똑같이 공부를 해도 나보다 더 공부를 잘했을 타입이다. 암기력이 정말 뛰어나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신랑에게 머리크기가 큰 데는 다 이유가 있다며 장난을 치곤 한다) 정말 별 것 아닌 소소한 것에도 신랑은 뛰어난 암기력으로 나를 놀래키곤 한다. 난 수능이 끝남과 동시에 공부한 모든 것들을 지워버렸다. (내 머릿속의 지우개?!)

어렸을 때부터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라는 말을 들으며 큰 신랑은 정작 부모님께는 칭찬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께 칭찬을 받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했다고 한다. 인정 받기 위해 공부를 했다고. 뭔가 공감이 되면서도 짠했다. 타임머신이 있어 그 시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시기로 돌아가 신랑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다.

결과야 어떻든 도전하고 노력할 수 있다면

초등학교 성적표에 '수' 외엔 없다던 신랑은 올 '수'임에도 전체 평균 점수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꾸중을 들었고, 나는 '수'는 물론이거니와 '우'와 '미'가 다양하게 포진하고 있음에도 시험 치느라 고생했다며 아버지께 격려와 함께 용돈 5천원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초등학교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어떤 아이들은 울면서 집으로 돌아갔고 집에 가기 싫다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나는 늘 별 생각 없이 집으로 향했다. (성적과 무관하게) 공부 하느라, 시험 치르느라 고생했다고 격려해주시는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에. 

신기하게도 당시 어머니는 성적이 나쁘나 좋으나 '응. 성적표 나왔구나.' 하시곤 성적에 대해 별 다른 말씀 없이 과일을 깎아 내어주셨고, 아버지는 성적표를 보시곤 한 학기 동안 고생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용돈을 주셨다. 다음 학기에도 열심히 노력해보자며. (대신, 용돈기입장은 꼭 써야만 했다.)

신랑의 '부모님의 칭찬에 고팠다'는 말에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역시, 부모님께 딱히 칭찬이라고 할만큼의 칭찬다운 칭찬을 받은 적은 없는 것 같다. 칭찬은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혹은 친척에게 들었고. 부모님께 받은 것은 결과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노력의 보상, '격려'였다. 신랑은 부모님께 결과에 대한 칭찬을 받기 위해 노력했고, 나는 나의 노력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시는 부모님이 계셨기에 있는 결과야 어떻든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 한 것이다.

비록 부모님이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이혼을 하셨지만, 엇나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내 자존감이 높아서 였던 것 같다. 아마 신랑은 그런 점에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는데 내 도움을 받고 싶다고 이야기 했는지도 모른다.

단칸방에서 엄마와 동생이 함께 살면서 담임 선생님께 상황을 먼저 말씀드려 도움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질의 했다. 동사무소에 가면 쌀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쌀 한포대를 짊어지고 왔다. 힘든 시기에 공짜로 쌀을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냐며. 쌀 한포대를 내려 놓으니 어머니는 어떻게 공짜로 쌀을 얻어왔냐는 칭찬이 아닌, 힘든 상황이지만 엄마도 노력할테니 함께 이 상황을 잘 이겨내보자는 격려였다.

고등학생 때는 '밥순이(급식보조)'를 하면 급식비를 내지 않고도 점심밥을 공짜로 먹을 수 있다고 하여 제일 먼저 손을 들어 신청했다. 밥순이를 하며 점심급식 명단에서 점심급식비를 낸 학생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밥을 퍼주었다. 그리고 급식시간이 끝나갈 때 즈음 제일 마지막에 밥을 먹었다.

급식보조를 처음 시작하던 때엔 친구들의 이름을 물어보고 명단 체크를 하며 밥을 퍼주었는데 고2, 고3이 될 때까지 '밥순이'를 하면서 고등학교 해당 학년 전교생의 얼굴과 이름을 외워버렸다. 그야말로 급식 밥 퍼주면서... 알게 된 사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나를 두고 수군거리진 않을까. 고민하기 보다 먼저 이름을 불러 인사를 하고 밥을 퍼주니 그 친구들도 나에게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밥순이를 하며 또 한 번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 상황을 나에게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면 된다. 결과보다 과정, 나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

뭐든지 잘했던 신랑은 '칭찬'받는 것에 너무 익숙했다. 부모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서. 아마 시부모님은 다른 사람에게서 본인 아들이 칭찬을 많이 들으니 혹 자만해질까봐 겸손하라는 의미로 더 엄하게 하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께 인정 받고 싶고 칭찬받고 싶었던 아이(신랑)가 성인이 된 지금, 자신의 아이들을 두고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이야기 한다.

신랑이 자라온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받은 힌트는 '결과'에 대한 '칭찬'도 중요하지만 '과정'에 대한 '격려'가 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데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신랑의 뛰어난 머리를 닮았으면 좋겠고, 신랑의 넉살을 닮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부부와 함께 성장하며 자존감도 함께 쑥쑥 성장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스마트폰만 보는 아이, 스마트폰 관리 훈육방법

신랑이 회사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폰 게임을 한다. 그러면서 회사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신랑과 이런 저런 소소한 부분이 잘 맞지만 신랑이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아니, 엄밀히는 집중도 아니다. 자동모드로 돌려 놓고 게임 화면을 보지를 않으니) 물어보곤 한다.

"게임을 직접 하는 것도 아니고, 자동으로 돌릴거면 그 게임을 왜 하는거야?"
"캐릭터 수집이지 뭐. 내가 수집하는 걸 좋아하잖아."

신랑을 100% 이해할 순 없지만, 아마도 스마트폰이 나왔을 초기, 'Great Alchemy'라는 게임을 집중해서 한 적이 있는데 4대 원소만 화면에 띄우고 드래그하여(합성하여)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게임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그저 내가 연금술사가 되어 새로운 물질을 찾는 재미를 느끼며 수집했다. 아마, 신랑이 그런 기분으로 하는 게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게임을 그토록 좋아하는 신랑이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폰을 절대 보지 않았다. 나 역시. 그리고 두 아이 손에 스마트폰을 쥐어준 적이 없다. 폰은 항상 잠금이 기본이라 아이들이 사용하려 해도 사진촬영 정도 밖에 되질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아이들과 스마트폰으로 씨름할 일은 없었다. 그래선 안될 시기이기도 했고. (24개월 미만)

행여 외식을 하더라도 두 아이에게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을 쥐어주지 않았다. 그런 부분에서 신랑과 나의 자녀교육관이 잘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외식 할 때 아이 손에 있는 것은 스마트폰?! NO! 푸드코트 진동벨!

부부의 교육관은 일치할 지 모르나, 문제는 시댁 어른들과 우리의 자녀교육관이 달라 힘들었다.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회식이나 야근으로 인해 부득이하게 시댁에 종종 아이를 맡기는데 그럴 때면 시댁어른의 스마트폰은 언제나 두 아이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보고 싶은 영상을 마음껏 보았다.

언제까지?

잠들때까지...

맙.소.사...

어머님은 신이 나서 말씀하셨다.

"축복이가 똑똑해. 나보다 스마트폰을 더 잘 다뤄! 심지어 유튜브 광고 넘기는 것도 알아."

어머님은 무척 자랑스럽게 24개월 손주가 당신보다 스마트폰을 잘 다룬다며 자랑하셨다. 자랑하시는 어머님께 뭐라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워 잠자코 있으니 옆에 있던 신랑이 나서서 어머님과 아버님께 주의를 부탁드렸다. 

"애들이 아직 어려서 그런거 보여주면 안돼요. 더군다나 애들 전용 폰도 아니고 어른 폰을 쥐어주면 연령대에 맞지 않는 영상도 추천영상으로 뜨고 그런담 말이에요."
"뭐, 내가 보여주고 싶어서 애들 보여주냐, 애들이 먼저 폰을 달라고 하니까 그러지. 애들 고집을 내가 어떻게 꺾어."

아직 어리기만 한 두 아이를 돌보시기 오죽 힘드시면 스마트폰을 내어주셨을까. 아직 젊은 우리 부부가 두 아이를 보는 것도 힘이 드는데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할아버지댁에서 집으로 돌아와서도 TV만화를 보고 싶다며 징징거렸고 그럴 때면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신랑이 큰 소리를 치곤 했다.

"축복아, 할아버지한테 스마트폰 보여달라고 하지 말고 TV 보여 달라고 그래. 스마트폰은 화면이 작아서 축복이 눈이 나빠지거든."

스마트폰 보다 차라리 TV를 보는게 눈이 덜 나빠지니, 할아버지께 TV를 보여 달라고 이야기 하라는 아빠. 아빠의 설득이 축복이게 통할까? 반은 통한 듯 하고 반은 통하지 않은 듯 했다. 스마트폰 대신 TV를 봐도 된다고 했으니, TV를 많이 봐도 된다고 이해를 한 듯 하다.

주말 이른 아침, 일어나자 마자 비장의 무기랍시고 클레이(지점토) 세트를 챙겨와 거실에서 주물럭거리며 놀고 있었다. 아직 자고 있는 두 아이. 나는 이미 안다. 잠에서 깨자 마자 TV를 켜 달라고 할 것을. 그걸 알기에 먼저 선수치는 거다.

"엄마, 뭐해?"

잠에서 깬 축복이가 내가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한참 빤히 보더니 내 곁에서 지점토를 만지고 놀았고 뒤이어 잠에서 깬 행복이가 와서 놀았다. 공룡도 만들고 로보트도 만들고. 20분 남짓 놀았을까. 아직 한참 집중해서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먼저 제안했다. 

"자, 우리 이제 TV 볼까? 축복이가 좋아하는 옥토넛 하나 보자."

잔뜩 신이 난 축복이에게 TV 리모컨을 쥐어주었다. 

"축복아, 옥토넛 끝나고 나면 빨간 버튼 눌러줘. 이 빨간 버튼을 누르면 TV가 꺼져."

그 다음 날 아침에도 아이들보다 내가 먼저 일어나 책을 읽고 있었다. 아이들이 한 때 무척 좋아했던 책도 자연스레 내 옆에 놓아두고. 축복이가 잠에서 깨 슬그머니 곁에 오더니 책을 읽어 달라고 했다.

24개월 행복이가 먼저 책을 꺼내 읽는다 (읽을 줄도 모르면서-그런데 방안은 참 어지럽구나-)

그 옆엔 어느새 행복이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여우주연상 뺨치는 연기력으로 정성스레 책을 읽어주고 또 먼저 제안을 했다.

"자, 우리 이제 TV 볼까? 뭐 보고 싶어? 오늘은 동생이 좋아하는 뽀로로 볼까?"

그리고 다시 TV 리모컨을 쥐어주었다. 끝나고 나면 빨간 버튼을 눌러 달라고. 그 시간 동안 난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한다.

그 다음날, 주말이 지나 주중. 출근 준비로 한창 바쁘다. 그리고 두 아이는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가야 한다. 바쁜 아침. 두 아이의 아침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며 TV를 켜주었다. 두 아이가 먼저 TV를 보여 달라고 이야기 하기 전에. 그리고 아이들 방에서 정리되어 있던 장난감 로봇과 공룡 등 장난감 몇 개를 찾아 가지고 나왔다. TV를 보는 듯 하더니 이내 옆에 놓여져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더 이상 이전처럼 TV에 넋을 잃은 사람처럼 집중해서 보지 않았다.

그래, 내가 바라던 바다.

"엄마, 끝났어요! 이제 이거 누르면 되는거죠? 빨간 버튼?"
"엄마, 내가 누를 거에요."

축복이가 빨간 버튼을 누르니, 이제 옆에서 행복이가 본인도 빨간 버튼을 누르겠다고 난리다. 

'안돼!'라고 호통을 치는 것이 아닌, 아이들 보다 내가 먼저 TV를 켰고 먼저 TV보다 재미있는 장난감이나 책을 내밀었다. 단, TV를 끄는 것은 내가 아닌 아이들이 스스로 끄게끔 만들었다. 내가 의도한 바는 '제어'였다. '중독'이 아닌 '제어' 가능한 수준이길 바랬다.

TV를 보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보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다. 왜 TV를 오래 보면 안되는지 설명해 주고 설득하고 싶었다.

할아버지댁에 가도 이제 더 이상 스마트폰을 달라고 먼저 이야기 하지 않는다. 행여 스마트폰을 보더라도 이전처럼 30분 이상 오랜시간을 보지 않고 다른 장난감을 찾아 동생과 함께 논다.

한글 공부 후, 우리 이제 TV 볼까? 하면 되려 반문한다. 왜요?(TV를 왜 봐요?) 라고...

TV를 켤 줄 모르는 5살 축복이와 3살 행복이. (빨간 버튼을 다시 누르면 켜진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만 먼저 켜질 않는다.) TV를 끌 줄 아는 축복이와 행복이. (빨간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꺼지고, 실수로 잘못 눌러 TV가 다시 켜지면 꼭 다시 눌러 TV를 끈다.)

약속을 하고 약속을 지킨다. 엄마도, 아빠도, 우리 아이들도.

8개월 아기 혀 찢어짐, 봉합수술 하지 않은 이유

오래된 사진첩을 정리하다 1년전 쯤 둘째 딸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돌아왔던 때의 사진이 있어 그 때가 생각났다. 워킹맘이라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오면 심장이 덜컹한다. 아이가 다쳤나? 싶어서. 그래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모든 워킹맘의 바람이 아닐까. 무소식이 희소식이니.)

1년 전의 그 날도 어김없이 회사일을 하고 있던 찰라, 갑작스레 연락이 왔다. 행복이가 피가 많이 나서 응급실로 가는 중이라고. 첫째 아들 축복이가 여름철 물놀이를 하다가 이마를 꿰매기 위해 응급실로 갔던 것 외에 둘째는 한 번도 어딜 다치거나 아픈 적이 없어 물어보았다.

첫째 아들 응급실행 관련 글 보기 >> 22개월 아기, 이마 봉합수술 받다

어디, 어떻게, 얼마나 다쳤길래 응급실로 가냐고. 아이가 다치는 모습은 선생님이 직접 보질 못했고 울어서 달려가 보니 혀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고. 아무래도 놀다가 혀를 깨문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당장 달려가도 어린이집과 직장 거리가 1시간 거리라 안될 것 같아, 보다 근거리에 있는 신랑에게 연락을 했다.

신랑 직장이 어린이집과 거리가 가까워 신랑이 부랴부랴 응급실로 달려 갔다. 의사선생님 말씀으로는 혀 봉합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혀는 쉽게 아무는 부위라 왠만한 상처도 잘 아무니 걱정거리는 되지 않지만, 아직 돌 무렵의 어린 아이이고 세균이 들어가면 더 상황이 안좋아질 수 있으니 안전하게 봉합하자는 의견이셨다.

신랑에게 부탁을 하고 회사에 남아 연락을 기다렸다. 

그리고 신랑에게 온 연락. 행복이가 수면마취가 되지 않는다고... 아직 어린 아기라 추가로 마취제를 투여하기 어려워 봉합수술은 하지 않기로 했다고...

헉!

"그럼 어떡해? 혀 안꿰도 된대?"
"감염되지 않게 소독을 신경써서 잘 해주라고 하시네." 

신랑이 회사에서 연락을 기다리며 걱정하고 있는 내게 실시간으로 사진을 찍어 내게 보내줬다. 수면 마취로 깊이 잠들어야 봉합 수술이 가능한데 깊이 잠들지 않아 수술이 힘든 것이었다. 수면마취를 기다리는 의사선생님과 잠들고 싶어하지 않는 행복이와의 길고 긴 싸움 끝에 행복이의 승리!

울다 지쳐 행복이는 잠들었다. (절대 수면마취로 인한 잠든 것이 아님 주의)

혀가 찢어졌는데 뭐 제대로 먹을 순 있냐고 물어보니 피는 멎어서 관리만 잘 해주면 된다고. 집으로 돌아와 만난 행복이는 너무나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활발했다. 그리고 행복이는 혀가 꽤나 심하게 찢어졌음에도 잘 먹었다. 너무나도 다행히도...

 

이렇게 또 배운다.

첫째 아이 이마가 찢어졌을 때 아무 생각이 나지 않고 혼미한 상태에서 응급실행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는데 누군가 내게 아이 이마가 찰과상으로 찢어졌다고 하면 곧장 유명한 성형외과로 가라고 할 것 같다. 최대한 이마 봉합수술을 하며 흉터를 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하니. (의사선생님의 말씀)

마찬가지로 둘째의 혀가 찢어지는 사고를 겪고 나니 피가 멎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찢어지는 사고가 아닌 이상 굳이 봉합수술을 권하진 않을 것 같다. (철저한 양치질로 세균 노출을 관리한다는 전제하에) 혀는 자가치유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그런데 아기는 치유능력이 더 뛰어나다. (의사선생님의 말씀)

저 당시에는 혀가 다쳤으니 커서 발음이 나쁘면 어떡하냐, 제대로 식사를 못하면 어떡하냐, 별별 걱정이 참 많았었다. 봉합수술을 하려 했으나 수면 마취가 되지 않아 봉합수술을 결국 하지 못했으나, 다행히 봉합수술을 하지 않고도 먹는데 지장이 없었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았다.

덕분에 빨리 낫기도 했고.

아이들은 자가치유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나다

1년이 지난 지금은 너무나도 멀쩡하다. 혀를 봐도 어디가 어떻게 찢어졌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봉합수술을 받은 것도 아닌데 찢어진 흔적 조차 없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들의 소소한 사고로 심장이 덜컹하는 일이 많을 것이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조금은 도움이 될까 해서 예전 아이가 아팠던 때의 기록을 다시 남겨본다.

결혼에 대하여, 결혼이란 무엇인가

또 다른 한 주가 시작되었다. 또 다른 월요일이 나를 찾아왔다.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길을 나선다.

이 글을 '지금은 연애중' 카테고리로 분류할까 하다가 '워킹맘 육아일기'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경어체'가 아닌 '평서체'를 쓰기 위해. 이제는 속마음을 이야기하기엔 '평서체'가 더 편해졌다.

직장 후배가 종종 내게 묻는다.

"결혼하면 좋아요? 정말 좋아요?"

과거의 내 모습이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수시로 결혼한 언니들을 붙잡고 결혼을 하면 좋냐- 남편을 믿을 수 있냐- 바람 피우면 어떡하냐- 이런 저런 질문을 참 많이도 했다.

최근에 종영한 '부부의 세계'를 신랑과 함께 보며 꽤나 울었다.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부'가 초점이 되는 드라마임에도 난 초반부터 지독하게 '준영이'에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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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말하다/워킹맘 육아일기] - '부부의 세계' 아들 준영이를 보며 계속 운 이유

나에게 '결혼'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우리 부부, 우리 가족에게 집중된 단어라는 느낌이 들지만, 오늘의 시간이 오기까지 난 지독히도 '부모님'께 집중된 단어였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우리 부모님이 먼저 생각났으며 지독히 불행하며 불운한 단어로 와닿았다. 결혼은 절대 해선 안되는 것- '엄마'라는 존재의 철저한 희생이며 '아빠'라는 존재의 지독한 이기심이라 생각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부모님을 통해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단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신랑과 결혼 약속을 하며 여러번 강조하기도 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기에 솔직히 두렵고 무섭다고-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 아래 커 온 친구들 조차 결혼을 앞두고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지라 더 무섭고 더 두려웠다. 나도 부모님과 같은 결혼의 '실패'를 맛보게 될까봐. 이제는 결혼생활에 있어 '성공'이나 '실패'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며 타인의 사례가 내 사례가 될 수 없고, 부모님의 사례가 내 사례가 될 수 없음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오로지 나의 노력과 배우자의 노력이 우리의 결혼생활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것을 받아 들이기까지가 참 많이도 힘들었다.

그래서 철저히 타인의 사례를 분석하려 했고, 타인의 행복 여부를 통해 결혼생활을 가늠하려 했던 듯 하다. 그래도 짧게나마 결혼생활을 하며 경험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부모님의 의지가 아닌 우리의 의지

시댁도 친정도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으셨고, 우리를 도와줄 형편이 되지 않으셨다.

철저히 우리는 우리 부부의 자금 계획을 세워 움직여야 했다. 오피스텔 전용면적 5평 남짓 공간에서 월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해 아이가 태어나면서 조금 더 넓은 옥탑방으로 옮기게 되었고 두 아이가 태어나면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13평 남짓의 빌라로 이사했다. 지금 살고 있는 수도권 내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오기까지 참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신랑과 이전에 살던 동네를 찾을 때면 우리 참 좋았지? 라며 미소짓는다. 배불뚝이 만삭 임산부로 5층 옥탑방을 엘리베이터 없이 올라갈 때에도 몸이 잠깐 힘들었지, 퇴근 후 신랑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당시엔 TV도 없었다.) 아, 물론 검지손가락만 바퀴 벌레를 보고 많이 힘들긴 했다. 덜덜덜.

우리만 좋으면 됐다. 신혼이기에 누릴 수 있는 그런 베짱은 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80대 이상의 노부부가 되어 힘겹게 사는 것보다 좀 더 젊을 때의 고생이 낫다며 말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 '우리만 좋으면' 이라는 생각으로 신혼 생활을 하면 좋겠다.

남들의 시선 따위!

그렇기에 우리 부부는 양가 어른의 이런 저런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철저히 우리 부부가 우선 순위가 되었다.

결혼을 하더라도 '누구엄마', '누구아빠'는 되지 말 것

출산을 앞두고 산후조리원 투어를 시작하면서 듣게 된 낯선 말. '누구(아기이름) 어머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이름(태명)과 함께 듣게 된 '어머님'이라는 표현이 무척 낯설었다. 

신랑과 결혼을 하며 '누구(아기이름)엄마', '누구(아기이름)아빠' 라고 부르지 말자는 약속을 했다.

아이들에게 표현할 땐 '엄마', 아빠' 라는 표현을 쓰지만, 서로를 부를 때는 애칭을 부른다. 그래서 두 아이가 없을 때나 두 아이가 잠들고 난 이후엔 연애할 때와 다를 바 없이 애칭을 부르며 투닥거린다. 

연애를 하며 결혼계획을 짤 때 신랑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하고 나서 '누구아빠'라고 부르거나 '누구엄마'라고 부르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물론 내 자식의 아빠가 맞고 엄마가 맞으니 그 호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불리는 것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내 짝이 나 자신을 그렇게 부르면 어느 샌가 자신의 이름(존재)이 없어지는 것 같아 속상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도 오래도록 자신의 이름을 달달하게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부부의 날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두 아이를 각각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낸다. 둘째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가방에 어느 날 맥주 두 캔과 안주거리가 포장되어 들어 있었다. '부부의 날' 기념으로 원장 선생님이 준비해 주신 선물이었다. 우선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짧은 메시지를 붙여 주셨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고 나면 어느새 아이가 우선시 되고 부부 사이는 소원해지곤 한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 이전에 인생 선배로서 부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알려주시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선생님께 참 감사하다)

비전(계획)을 공유할 것

결혼을 하며 단칸방에서 시작할 때, 신랑은 가진 것이 없이 미안하다며 목놓아 울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했다. 국내 경제 상황과 세계 경제 흐름,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 대해. 이미 나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느라 내 명의의 집이 있었기에 청약저축 1순위가 될 수 없었고, 신랑은 당시 백수였기에 대출이 나오지도 않았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 월세로 들어가 끊임없이 신랑과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하며 공부했다. 

더 좋아지면 더 좋아졌지, 나빠질 것은 없다며 서로를 달래며 차근차근 나아갔다. 보증금 천만원에 월세 45만원 옥탑방을 힘겹게 오르내리던 우리는 수도권 내 20평대 신축 아파트의 주인이 되었다. 청약으로 당첨 가능성은 낮으니, 피(프리미엄)를 주고 분양권 매수 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이야기를 참 많이도 나누었다. 여기저기 부동산 투어를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자산 증식 계획, 부부가 함께!

프리미엄 100만원을 주고 구매한 아파트는 자산 가치로 어느 새 1억 이상 올라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나날이 화폐 가치는 떨어지기에 현금 보유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사실 내집마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산을 증식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언제까지 근로소득(직장인)으로만 살아갈 순 없으니 말이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의 여유자금으로 이미 강남권의 집을 보유한 친구들도 있고, 부족함 없는 출발을 한 경우도 많다. 신랑과 나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만큼은 힘들겠지만 우리도 조금씩 성장해 나가자고. 비교의 대상을 찾아 그들을 향한 부러움과 시샘, 질투로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 부부의 성장 방향을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대화가 즐겁다.

아이 혼자 재우기, 남매 잠자리 독립 비결

직장생활을 하며 유일한 낙, 점심 시간 마음이 맞는 직장 동료들과 수다를 떨며 맛있는 점심밥 먹기. 이 날도 어김없이 직장 동료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아이들의 잠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섯살인 첫째 아들과 세살인 둘째 딸. 한국 나이로 계산하니, 큰 아이 같지만 아직 내 눈엔 첫째나 24개월이 막 지난 둘째나 마냥 아기다. 그럼에도 두 아이 모두 잠자리를 각각 따로 가진다.

"언니, 뭐라고? 아니. 남매 둘이 같이 자는 것도 아니고. 따로 잔다고?"

적잖이 놀란 듯한 회사 동생. 난 이게 놀랄 일인가 싶었는데 동생의 입장에선 꽤나 쇼킹했나 보다.

"따로 자려고 해? 엄마, 아빠랑 같이 자겠다고 하지 않아?"

그렇게 시작된 '아이의 잠자리 문제', '아이 혼자 재우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면서 양가의 도움은 일체 받지 않고 옥탑방 월세 살이를 시작해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어찌보면 참 불편한 시작을 했다. 특히, 엘리베이터가 없는 오래된 구축 빌라의 옥탑방이었던터라 그 곳에서 지낼 때는 걷지 못하는 첫째 아이를 안고 오르락 내리락 해야 하니 무척이나 불편했다.

우리 부부는 결혼 후 단칸방에서 지내면서부터 첫째 아이와 우리의 잠자리를 구분했다. 단칸방인데 어떻게 잠자리를 구분하냐고? 옥탑방이라 겨울이면 방이 무척 추워 난방텐트를 구매했다. 집안에서 쓰는 난방텐트. 그 공간은 자연스레 아이의 독립된 공간이 되었다. 첫째 아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를 난방텐트에 재워 주기 시작했고. 신기하게도 아이가 졸리면 먼저 난방 텐트 안으로 기어 들어가 잠들곤 했다. 돌이 갓 지난 아기인데 졸리면 기어서 텐트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무척 신기하기도 하고 마냥 귀여웠다. 아이가 잠이 들면 텐트 문을 살짝만 열어두고 빛이 들어가지 않게 닫고서 신랑과 나는 다시 불을 켜고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며 그 작은 단칸방에서 소소한 신혼을 즐겼다.

첫째는 그렇게 너무나도 수월하게 잠자리를 구분짓는 듯 했다. 그러나, 둘째를 임신하면서 방 두 칸 짜리 빌라로 이사를 갔고 상황은 바뀌었다.

독립해서 잘 자던 첫째가 둘째가 태어나면서 엄마가 아기를 항상 데리고 자니 본인도 함께 자고 싶어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첫째의 독립된 잠자리 교육은 흐지부지 끝나는 듯 했다. 둘째가 통잠을 자는 시기까지 우리 네 식구는 좁디 좁은 거실에서 함께 잠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두 아이의 잠자리 교육을 시작한 것은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오면서부터다. 넓은 평수는 아니지만 방이 네개라 안방(부부의 방), 서재(알파룸), 첫째방, 둘째방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한동안은 첫째방, 둘째방이 아닌 두 아이의 잠자리방, 놀이방으로 구분했으나 남매이고, 첫째인 아들이 조금씩 여동생과 본인의 소변 누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는 듯 하여 서둘러 방을 따로 나누고 잠자리를 나누기로 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아이들의 가구를 살 수 있는 가구 매장에 방문했다. 내가 좋아하는 가구는 원목 가구에 무난한 우드 컬러이지만, 아이들 가구는 우드 가구이긴 하되, 컬러풀한 색감이 가미된 침대를 골랐다. 블루 색상의 벙커 침대를 아들에게 보여주고, 러블리한 핑크 색상의 싱글 침대를 딸에게 보여주며 의사를 물었다.

"축복아, 이 침대 어때? 축복이 침대로 사주려고 하는데, 어때? 좋아?"
"이 침대 사주면 앞으로 축복이가 이 침대 올라가서 자야 되는데 혼자서 잘 잘 수 있겠어?"


"행복아. 이건 행복이 침대야. 아까 저건 오빠 침대지? 이건 행복이거야. 행복아, 엄마아빠방에 오지 않고 행복이 침대에서 혼자 잘 잘 수 있어?"

침대를 구매 하기 전, 직접 아이들과 가구매장에 가서 아이들이 침대 위에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과 잠자리 약속을 한 뒤, 최종 결제를 했다.

그렇게 아들과 딸에게 침대를 사주며 따로 잘 것을 약속 했고 실제 침대가 집으로 배송, 설치된 이후로는 각자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 물론, 잠이 들 때까지는 신랑은 첫째 방에서, 나는 둘째 방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단, 두 아이의 침대 위로 올라가지는 않으며 두 아이 곁에만 머문다. 아이들은 하나님 노래라고 부르는 찬송가를 자장가 대신으로 들려주고 빠를 땐 두 곡, 오래 걸릴 땐 다섯 곡이 끝날 때쯤 잠이 든다.

다섯살 첫째 아들 방

첫째 축복이는 대소변을 가리는지라,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 본인의 방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로 가 볼일을 본다. 하지만 둘째는 이제 막 24개월이 지난, 아직 기저귀를 차고 있다. 대소변 훈련을 하면서 침대에 쉬를 할까봐 초조하긴 하다. (어쩌리. 그 또한 겪어야 하는 일인것을.)  

세살 둘째 딸 방

두 아이의 잠자리 독립이 성공한 뒤, 우리 부부의 데이트 시간이 더 늘어났다. 종종 시댁 어른들이 집으로 놀러 오신다. 시댁어른들이 놀러 오셔서 저녁 무렵 댁으로 돌아가시려고 하면 첫째 아들은 할머니 손을 잡는다. 그럼 둘째가 또 쫓아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는다.

"행복아. 엄마는 안가. 그런데도 갈거야?"
"할머니, 나도 갈거에요. 나도 갈거야."
"엄마, 아빠는 안가니까 가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자야 돼. 그래도 괜찮아? 울지 않고 잘 잘 수 있어?"

첫째 아들에 이어 한참을 나도 데려가 달라며 펑펑 눈물을 쏟는 둘째 행복이.

"둘은 안돼. 둘은 할머니 힘들어."
"아니야. 할머니, 할아버지. 나도 갈거야."

"너네 작전 세운거지?"
"아니에요. 하하."
"다음부터는 너네 집에 안와!"

어머님은 너네 작전 세운거 아니냐며, 아이들에게 시킨 것 아니냐며 투정반 기쁨반의 코멘트를 남기시고 두 아이의 손을 잡고 댁으로 돌아가셨다. 한편으로는 얼마나 좋아하실까 싶기도 하다. (진심으로 우리가 작전을 세웠다거나 아이들에게 시킨 것이 아닌데 말이다)

양가 찬스로 주말이면 종종 우리 부부만의 시간을 보낸다. 두 아이가 잠자리를 독립하면서부터 부부의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되었다. 

24개월 둘째가 부모의 곁을 떠나 잘 지내는 것도 감사한데 부모와 떨어져서도 잠을 푹 잘자니 우리 부부의 입장에선 꽤나 큰 복이다. 아이의 독립된 잠자리 교육은 모질고 차갑게 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아이와 대화를 하고 아이의 의지로 행하게끔 해야 한다.

두 아이가 먼저 선뜻 할아버지댁에 가서 자겠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부모와 헤어져도 부모님이 반드시 다시 돌아오신다는 믿음과 부모님은 약속을 지킨다는 신뢰가 바탕으로 깔려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잠자리 교육을 시킬 때 억지로 우는 아이 떼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 우선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 시작은 화장실부터였다.

'엄마, 화장실 다녀올게. 기다려.'

'엄마, 설거지만 하고 해 줄게. 기다려.'

'엄마, 빨래만 개고 도와줄게. 기다려.' 

아이의 잠자리 독립문제로 고민이라면 작은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3일간 미열 지속, 아이 코로나 괴질 증상 해프닝

내 아이가 코로나?

지난 3일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머리가 아프다. 내 아이의 지속되는 미열에 코로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아찔한 3일을 보냈다.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유치원과 어린이집 정상 등원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아직 코로나가 종식되진 않았으나. 마스크를 쓴다는 것 외엔 이전의 생활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른 아침부터 부랴부랴 출근 준비를 하고 두 아이를 등원 시켰다. 늘 그렇듯 평온한 일상을 보내는 듯 했는데, 하원 시간이 다 되어갈 무렵, 어린이집에서 연락이 왔다. 둘째 딸 아이가 열이 난다고. 37.5도와 37.8도를 오간다고 했다. 아침에도 열이 없었고, 컨디션이 좋았던지라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37.5도만 넘어도 해열제를 먹이는 때가 있었는데, 소아과 선생님을 통해 38도를 넘어가면 해열제를 먹이라는 권고를 듣고 나선 조금은 열이 나는 것에 대해 무뎌졌다고나 할까.

미열 수준이니 별 일 아니겠거니 했다. 가벼운 감기이겠거나. 오늘 하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겠거니.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집에 구청에서 지침이 강력하게 내려왔다고 한다. 열이 날 경우, 바로 하원. 그리고 등원해도 괜찮다는 확인서가 있어야 어린이집에 다시 등원 가능하다고 한다. 친정 어머니께 부탁드려 아이를 하원시켰고 퇴근후 아이를 데리러 가니 여전히 미열이 있었다.

두 아이에게 순차적으로 찾아온 발열 증상

유치원에 갔던 첫째도 돌아오고. 문제는 그때부터다. 첫째 아이 목 뒷편이 시뻘건 발진 증상이 있었다.

알레르기인가? 두드러기인가? 이게 뭐지? 

간지러운 듯 첫째 아이는 목 부위를 긁었고, 얼굴 앞 부분 이마 쪽으로도 빨갛게 두드러기가 올라왔다. 이마에 손을 대니 열감도 느껴졌다. 순간, 코로나라는 생각과 함께 괴질이라는 단어가 함께 떠올랐다. 

(직장 동료 아들이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독감 검사처럼 긴 면봉을 콧속으로 넣어 검사를 받았다고.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음성.)

그때부터 나 역시, 심장이 미친듯이 뛰며 열이 났다. 둘째가 열이 난다는 건 어린이집 선생님을 통해 들어 알고 있었지만 갑작스러운 첫째 발열에 당황스러웠다. 체온계를 재니 38도. 안되겠다는 생각에 두 아이에게 타이레놀 계열의 해열제를 먹였다. 해열제를 먹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즐겁게 놀던 두 아이는 잠이 들었다. 둘째가 열이 나자 마자 곧바로 첫째가 열이 나니. 함께 코로나에 걸린건가. 옮긴건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해열제를 쓰면 열이 잡혔다

열이 잡히길 기대했건만 다음날 저녁 무렵 다시 열이 올랐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열. 신랑에게 이야기를 해 소아과로 향했다. 38도 이상의 높은 열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해열제로 열이 잡히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해열제를 쓰면 열이 떨어지긴 하니 말이다. 오히려 더 수상쩍었다. 특별히 두 아이의 컨디션이 나빠 보이지 않는데 미열이 지속되니.

보통 감기면 노란 콧물이 나와야 할텐데 맑은 콧물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알레르기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첫째는 나를 닮아 꽃가루 알레르기일 수 있는데 또 알레르기 증상으로 열이 나는 건 아닌지라 애매모호했다. 더군다나 둘째는 알레르기도 없는데.

이런 저런 걱정을 안고 소아과 선생님을 마주했다. 첫 질문은 "혹시 코로나 증상은 아닌가요?" 였다. 조심한다고 조심하지만, 맞벌이 부부인지라 둘 다 사회생활을 하고 있어 알게 모르게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마주치는 사람이 많다. 마스크가 100% 막아줄거라는 확신도 들지 않고.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노라니, 의사선생님은 목이 많이 부어있다며 편도가 부어 열이 나는 것이라 설명해주셨다.

최근 아데노바이러스가 돌고 있어 이로 인해 병원을 찾는 어린이 환자가 많다고도 설명해 주셨다. 코로나는 아닐 거라 이야기에 조금은 안도했다. 이렇게 편도가 부어있고 겉으로 증상이 뚜렷한 경우엔 오히려 더 코로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병원을 다녀오고 처방 받은 약을 먹었다. 그래도 그 날 밤은 다시 열이 올랐다.

애매한 37.8도. 그리고 38도를 오가는 찝찝한 미열이 지속되었다.

미열 지속, 코로나는 아니겠지

걱정을 안고 3일 동안 두 아이를 관찰하느라 신경을 곤두세웠다.

신랑에게 두 아이가 코로나면 진짜 다 엎어 버릴거야! 이 시기에 회식하는 회사가 어딨어! 라며 괜한 짜증을 부렸다. (그런데 인간적으로 이 시기에 회식은 아니지 않나.) 그리고 4일째 되던 날, 다행히 두 아이 모두 36.8도 수준. 37.5도 이하로 내려왔다. 그리고 오늘까지 더 열이 오르진 않고 있다. 오늘 밤은 어떨지 또 지켜봐야겠다.

코로나로 민감한 시기이다 보니 의사선생님의 말씀이 맞을거야 - 하면서도 걱정되는 건 여전하다. 별 일 아니기를...

엄마, 고추가 아파요 - 다섯살 아들 고추에 염증이? 귀두포피염

오늘 유치원 첫 등원. 긴급 보육으로 가는 둥 마는 둥 하다 드디어! 오늘 개학을 했다. 사실, 이태원 발 코로나 재확산 조짐으로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다. 맞벌이 부부로서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으니 힘든 것 또한 사실이나, 그렇다고 이렇게 아이를 보내도 되나- 싶은. 뉴스에 유치원 개학을 너무 크게 떠들어서 더 이상 재택근무의 '사유'가 사라져 버렸다.

셔틀버스를 태워 보내는데 마음이 참 짠했다. 셔틀버스 타기 전, 코로나 의심환자일까 봐 선생님 앞에서 체온계로 아이의 열을 재고 직접 정상 범위임을 확인한다. 그리고 마스크를 잘 착용한 후 탑승. 셔틀버스에 타고 있는 아이들이 모두 마스크로 무장하고 있다. 눈만 겨우 보일 뿐, 아이들의 표정이 잘 읽혀지질 않았다. 마찬가지로 셔틀버스에 타고 있는 아들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지만, 내 표정이 혹여 마스크 때문에 안 보일세라 열심히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눈웃음치지도 못하는데)

"축복이 어때? 잘갔어?"
"응. 잘 갔어."
"고추 아프대? 오늘은 어떻대?"
"응. 괜찮대."

아들을 셔틀버스에 태워 보내고 나니, 곧바로 아들 고추 걱정에 신랑에게서 전화가 왔다.

주말이면 종종 시댁으로 놀러 가는데 지난 주말, 시댁 어른들이 축복이를 유심히 보더니, 왜 자꾸 고추를 만지냐고 하셨다. 그러게요... 왜 자꾸 고추를 만질까요...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그 일이. 그다음 날은 예민하게 다가왔다.

코로나로 인해 늘 마스크 신세

"축복아, 왜 자꾸 고추를 만져?"
"음... 그게..."
"아파? 아니면 가려워?"
"아... 아니. 안 아파."
"아프면 말해. 병원 가야 돼."
"주사 맞으러?"

다섯 살 아들의 시원치 않은 대답. 그리고 마지막 '주사'에 포인트가 맞춰진 듯한 쐐 한 느낌. 

"축복아, 걱정 마. 아파도 주사는 안 맞아. 그냥 약만 바를지도 몰라. 다시 말해봐. 아파?"
"응. 아파. 그런데, 아프다고 하면 엄마가 걱정하잖아."
"아니지. 아픈데도 안 아프다고 그러면 엄마가 더 속상하지."

축복이가 주사를 맞을까 봐 꽤나 겁이 났던 모양. 아픈데도 숨겼나 보다. 그때부터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이건 '귀두포피염'인 듯하다. 인터넷 정보에 따르면 평소 아들의 고추를 까서(?) 뒤집어서(?) 씻어주라는 이야기가 나와 신랑에게 물었다.

내가 같은 여자라 딸을 잘 아는 것처럼, 신랑도 아들과 같은 남자로서 동성이니 당연하게 잘 알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고추 어떻게 까? 까는 법 좀 알려줘. 연고 어디에 발라?"
"왜 그래... 나도 기억이 안 나. 포경수술 하기 전이잖아. 어렸을 때 기억이 나질 않아."

포경수술 전의 고추를 본 적 없는 나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신랑의 이상한 대화. 아들의 고추를 보며 진심으로 걱정하는 신랑의 표정에 웃음이 절로 터졌다.

신랑은 정말 전-혀- 몰랐다. 포경수술 하기 전의 고추 모양도 기억나질 않고 이렇게 뒤집어서 씻어주라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다고 한다. 하하; 나 또한 내 아들임에도 내 아들의 고추를 자세히 본 적이 없다. 이 날, 고추가 아프다는 아들의 이야기에 굉장히 섬세하게 조심스레 아들의 고추를 바라본 것 같다.

연주하는 아들과 딸, 제일 행복하다!

나름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나름 이런저런 육아서적을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에도 아들 고추 씻기는 법이나 고추 다루는 법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하아... 나 참. 딸이야, 내가 같은 여자이기도 하고 엄마로부터도 산부인과에서도 항상 많은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배변을 하고 나면 바로바로 씻기고 생식기와 항문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기에 더욱 신경 쓰곤 했다. 아들은, 밖으로 나와 있으니 더 위생적이지 않나. 소변을 보고 씻겨주라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데?

염증이 심하면 진물에 고름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접하고 곧바로 소아과로 향했다. 소아과에서는 다행히 염증이 심하지는 않아 항생제 처방(먹는 약)까지는 가지 않고 연고만으로 가능하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에스로반 연고를 처방 받았다

그리고 가장 궁금했던, 인터넷으로 접한 아들 고추를 까서 씻어야 되냐는 질문에 의사 선생님은 그렇게 하지 않고, 소변 후, 소변 찌꺼기가 쌓이면서 염증을 유발하는 것이기에 평소 잠들기 전에 샤워기로 가볍게 고추 끝부분만 씻어주면 된다고 하셨다. (까기 금지 - 깠다가 세균이 더 들어갈 수 있어 감염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함)

연고는 어떻게 발라야 하냐는 질문에 고추를 살짝 까서 면봉으로 바르면 된다고 하셨는데 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어떻게 까야하는지 몰라 시범을 요청했다. 그렇게 내 아들의 고추는 여기저기 까이고 있었다. (응?)

난 어디서 주워들은 걸까. 남자는 고추가 밖으로 나와 있어 안쪽에 위치한 여자보다 더 위생적이고 깔끔하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포경 전, 아들의 고추를 제대로 씻겨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저 샤워할 때 씻겨주는 것으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 몸만 제대로 씻겨주었지, 아들의 고추를 세세하게 씻겨줄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다. 

고추가 아프다고 한 지 오늘로서 3일째. 유치원을 등원하는 아들의 컨디션이 좋아 보여 다행이었다. 여자 아이들의 생식기가 안쪽에 위치해 있어 염증이 잘생기고 주의를 좀 더 기울여야 된다고 생각했지, 포경수술 전 남자아이들의 생식기 또한 포피에 덮여 있기 때문에 염증이 잘생긴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고추가 아프다는 아들을 데리고 소아과를 다녀오고 나서야 알았다. 국내 육아서적의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아들의 고추에 관한. -_-;; 왜 포경수술 전 아들의 고추 관리법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가!

아들 고추 염증으로 꽤나 놀랐지만, 다행히 염증이 심하지 않고 연고만 3일 정도 바르면 된다고 하니 안심이다.

앞으로 아들에게 훈련시켜야 할 몇 가지. 

- 쉬 하고 나면 탈탈 털기

- 혹시 또 고추 아프면 꼭 엄마에게, 아빠에게 말하기 (숨기는 건 나빠!)

- 자기 전 고추 씻고 자기

다양한 보이스피싱, 스미싱 등장! 나도 낚일 뻔!

개인적으로 보이스피싱에 노출된 적은 많지만, 한 번도 당한 적은 없는지라 앞으로도 당할 일은 없을거라 자신하고 있었는데요. 나날이 보이스피싱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음을 오늘 다시금 느꼈습니다.

(광고)를 내세워 (보이스피싱) 아닌 척 하기!

정부 긴급재난지원금이야 이용하고 있는 카드사에 세대주가 신청하는 것이기에 이로 인한 보이스피싱이 있을만한게 없을거라 생각했는데요. 발단은 오늘 아침입니다. 신랑이 코로나 때문인지 저리로 대출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며 문자를 보여주더군요. 떡하니 (광고) 라고 표기하여 발신된 문자. 내용을 보니 'KB 국민은행' 에서 특별지원 대출 상품이 나와 홍보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Web발신]
(광고)
『고객님께서는 **특별지원** 대출상품 대상자입니다.』

안녕하세요. 5월의 따스한 햇살 그리고 [KB국민]과 함께 오늘도 기분 좋은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고객님의 경제 및 생계 활동에 부담을 덜어들이고자 담보와 보증없이 진행되며 저금리로 특별지원하는 대출상품 안내드립니다.
아래 내용을 확인하시고, 고민하지 마시고 지금바로 문의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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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사업자,법인사업자 운영중이신 분들 및 급여수령중인 직장인 및 공무원 그리고 프리랜서도 OK(급여수령 3개월 이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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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진행시 별도 발생하는 수수료 및 기타발생비용 절대없음

[신청기간]
2020년 5월 26일 마감
※ 신청자가 많으니 빠른신청 바랍니다.

[신청방법]
- 본 문자수신번호로 전화 하셔서 1번 누르시면 신청완료
(동일시간대에 접수자가 많을시에는 상담이 지연될수 있습니다. 통화연결이 안된 경우에는 안내멘트에 따라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친절한 여신전문상담원이 연락드리겠습니다.)

**수신을 희망하지 않으실 경우에는 아래 번호로 전화주시면 등록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무료거부0801560086

이 문자를 보고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신랑이 출근하며 점심시간에 은행에 한 번 다녀와봐야겠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저리의 대출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모른다면서 말이죠.

그리고 저에게도 문자가 왔습니다. 위와 동일한 내용의 문자이나 이번엔 'KB국민'이 아닌 '신한캐피탈'로 말이죠. 

보이스피싱이라 생각하지 않고 (광고) 로 생각했어요

신한캐피탈은 제3금융권이기 때문에 제1금융권에 비해 알아볼 확률이 적지만, 신랑의 경우처럼 'KB국민'으로 오면 'KB국민은행'이라 생각하고 제1금융권이니 저리로 나온 대출상품이면 알아볼만 하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성격 급한 저라면 그냥 전화해서 먼저 확인하는게 어때? 라고 했을 법한데, 신중하고 꼼꼼한 신랑인지라 은행에 직접 내방하여 알아보겠다고 가더군요. 만약 문자내용대로 전화를 걸어 1번을 눌러 상담신청을 했다면 고스란히 보이스피싱으로 개인정보가 넘어갔을지도 모르죠.

최근 들어 다양한 형태의 보이스피싱이 늘어나고 있는 듯 합니다. 

카카오톡으로 단체채팅방 강제소환하기!

어제는 강제로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소환되기도 했죠. 친구로 등록되어 있지 않은 사용자임에도 그 상대방이 저를 초대하면 강제로 단톡방에 초대되는 게 꽤나 불쾌하더군요. 바로 카카오팀으로 신고 접수를 했죠.

이처럼 원치 않는 그룹채팅으로 초대 받게 될 경우, 상단에 있는 링크를 클릭해 꼭! 신고하세요!

친구가 아닌 이에게서 단톡방으로 강제 소환

CJ택배 스미싱! 택배기사님이 문자 보내신 줄! 링크 클릭 금지!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쇼핑이 잦은 편인데요. 당연히 온라인 쇼핑을 자주 하는 편이다 보니 택배기사님으로부터 문자도 자주 오는 편입니다. 주로 집에 없으면 어디로 택배물을 보관하겠느냐는 내용의 카톡 내지는 문자가 오죠. 요즘은 택배 배송 시스템이 잘되어 있어서 부재중 택배물을 어디에 보관할 건지도 굳이 유선 통화를 하지 않아도 톡톡, 몇 번의 터치만으로 설정이 가능해 좋더라고요. 

이 날도 문자가 온 것을 보곤 당연히 택배 기사님이 보내신 문자라 생각했어요. 내가 물건 배송지를 잘못 설정한 게 있었나? 아무 의심없이 링크를 클릭했더니 뜨는 설치 파일. 헉. CJ 택배 문자 스미싱이구나! 스팸 문자임에도 스팸이라 뜨지 않아 의심을 하지 못했어요.

"다운로드" 를 눌렀다면 어떻게 됐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죠.

'다운로드'를 눌렀다면?!

온라인 쇼핑으로 뭔가를 주문하여 배송 상태를 확인하고 싶다면, 이렇게 택배 문자로 오는 링크를 클릭하기 보다는 직접 해당 쇼핑몰 사이트의 배송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에요. 혹은 해당 택배사 사이트를 직접 들어가서 운송장번호를 확인하시는게 좋아요. (문자나 카톡으로 온 링크를 클릭하는 것보다는 말이죠.)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는 많은 보이스피싱 그리고 스미싱.

저야 이 포스팅을 작성하기 위해 일부러 캡쳐를 하고 흔적을 다 남겼어요. 저도 잠시 멈칫 하며 클릭하는 순간이 있는데, 연세가 든 어르신들이나 부모님 세대는 정말 피하기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문자메시지의 인터넷 주소는 절대 클릭하지 마시고 스마트폰 보안설정을 강화해 미확인앱이 깔리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코로나로 인해 모두가 힘든 시기에 이런 보이스피싱과 스미싱이 활개를 치는 것 같아 무척 씁쓸하네요. ㅠ_ㅠ

'부부의 세계' 아들 준영이를 보며 계속 운 이유

처음엔 흔하디 흔한 '불륜 드라마'처럼 남녀의 치정을 그린 드라마라 생각했다. 신랑과 함께 별생각 없이 보다가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이제 종영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 부부였던 지선우와 이태오, 그리고 불륜녀인 여다경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뻔하디 뻔한 드라마라 생각했는데 이혼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식의 입장까지 잘 드러낸 드라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부부의 세계 드라마 속 이준영

'부부의 세계'를 보며 연신 눈물을 훔치니 신랑이 물었다.

"울보. 괜찮아? 난 드라마 캐릭 중에서 준영이가 제일 공감이 안되거든. 넌 많이 공감되는구나?"
"응. 난 이 드라마에서 준영이가 제일 공감이 돼."

신랑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약속하면서 수십 번 약속하고 부탁한 것이 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배신하지 말자고. 배신하지 말아 달라고.

부부의 세계 속 지선우(연인 또는 엄마)의 입장에서 부탁한 것이 아니라, 준영이(자식)의 입장에서 부탁을 했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의 입장을 대신해 부탁했다.

아이는 부모 이혼의 원인이 본인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 이혼의 원인이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어려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엄마, 아빠는 이제 각자의 길을 갈 거야. 엄마, 아빠는 헤어지지만 그래도 넌 엄마, 아빠의 소중한 자식이야. 부부는 헤어지면 남남이지만 부모 자식 간의 연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단다."

부모는 영원한 나의 엄마, 아빠일거라 생각했는데 헤어지면 남남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인지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당장 나의 부모의 헤어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힘들었다. 

"내가 딸이 아닌 아들이었으면 엄마, 아빠가 헤어지지 않았을거야."
"내가 좀 더 부모님께 잘했더라면 엄마, 아빠가 헤어지지 않았을 거야."
"내가 그 여자를 마주했을 때 욕이라도 퍼부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안다. 원인제공자가 내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 원인을 '나'로부터 찾았다. 

아이는 부모님의 이혼 시점과 과정을 모른다

# 아이는 부모님이 어느 시점부터 헤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열세 살, 부모님의 이혼은 드라마 속 준영이처럼 무척 혼란스러웠다. 마음속에는 증오가 가득했고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이혼을 하셨다고 생각한 두 분이 집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드라마 속 준영이처럼 혼란을 겪었다.

혹시, 엄마, 아빠가 사이가 좋아지신 걸까. 다시 함께 사는 걸까. 다시 잘 될 수 있는 걸까. 다시 내게 엄마, 아빠가 생기는 걸까. 

내가 학교에 등원했을 시간, 아빠가 집에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어린 동생에게 전해 듣고 두 분 사이가 어때 보였느냐, 좋아 보였냐 등 하나하나 캐물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헛된 기대를 품었던 그 날이 이혼 조정기간이 끝난 실제 이혼 확정 날이었음을.

아이에게 실제 이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는 것인지 알려줘야 한다. 아이는 당신의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생각한다. 

돈이 있음에도 이혼한 부모의 아이가 물건을 훔치는 이유

# 돈이 있음에도 아이가 물건을 훔치는 이유

"준영이가 물건을 왜 훔치지?"
"그러게. 그런데 나도 그랬어."

정말 놀랍게도 드라마 속 준영이는 나와 닮아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불륜녀. 그래도 극 중 이태오(아빠)는 아들인 준영이에게 '새엄마'라는 호칭을 강요하거나 '엄마'라고 부를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 부분에선 최소 멋진 아빠다.)

새엄마와 살게 된 그 집은 무척이나 호화스러워 보였다. 당시 엄마와 단칸방에 살다가 그 집으로 가게 되었으니. 없던 내 방이 생기고, 없던 침대며 책상. 나를 위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늘 허했다.

새 집으로 이사 가고 나선 매일 악몽을 꾸었다. 불륜녀인 새엄마 앞에서 말 한마디 못했지만, 꿈속에서는 매번 그녀를 원망하고 죽였다. 우리 가족을 배신한 아빠 앞에선 말 한마디 못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증오심이 들끓었다. 이혼 후, 단칸방에서 살고 계셨던 엄마 앞에서 말 한마디 못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늘 그리워했고 서글펐으며 걱정되었다. 기댈 곳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마트에서 파는 작은 초코바를 하나씩 훔쳤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또는 수중에 돈이 없어 훔친 것이 아니다. 정확히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도벽을 계속하다가 갑자기 꿈 속에서 만난 새하얀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손길에 단번에 멈췄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신기한 경험이다) 분명한 것은 나를 멈추게 할 그러한 특정 계기가 없었다면 계속 훔쳤을 테고, 결국 나쁜 길로 들어서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의 이혼은 아이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 아이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이혼을 부부만의 문제로 제한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나아간다면 부부 양가에 이혼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정도.

이혼을 결정하고 준비하고 확정하기까지 아이는 '양육의 대상'이지, 이혼 과정에서 협의를 해야 할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아직 어려서 모른다라는 전제로 말이다. 세 살만 되어도 아이는 부모가 지금 어떤 상태이며 두 사람이 싸우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눈치를 살핀다. 심지어 '엄마, 아빠가 나 어렸을 때 싸웠었잖아.' 라며 세 살보다 더 어렸을 적의 부모의 모습을 기억하기도 한다.

부부는 이혼과 동시에 남남이 가능할지 모르나, 아이의 입장에선 '부모'가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아이에겐 영원할 것 같은 큰 울타리가 무너짐으로 인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큰 슬픔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부모님의 이혼으로 '부모님'은 사라지고 '아버지', '어머니'만 남았다. 더 이상 한 자리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모셔두고 '부모님'이라 칭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글프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지금까지의 흔한 불륜 드라마와 다르게 이혼하는 과정에서, 이혼을 하면서 겪게 되는 아이의 시선까지 담아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드라마의 인기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이는 '아직 어려서 모를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존중해야 할 인격체이며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느끼고 있음을 인지했으면 한다.

졸음운전 교통사고, 죽다 살아나다

평소 겁이 많은 편이냐, 적은 편이냐 물어본다면 늘 저의 대답은 '겁이 없는 편입니다' 라고 대답해 왔습니다. 산 날이 얼마 되지 않고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 나이지만, 살아 오면서 무섭고 두려운 건 없었노라고 자신 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긴급보육으로 두 아이를 맡기고 출퇴근 하는 길, 이 날도 어김없이 그 현장을 지나왔습니다. 바로 제가 죽을 뻔한 큰 교통사고 현장이죠. 이 날의 교통사고로 인해 무서운 것이 생겼습니다. 다름 아닌 졸음운전.

제가 사고가 났을 당시보다 속도가 더 낮은 50km 으로 제한속도가 바뀌었더라고요. 사고 당시에는 다행히 오가는 차량이 없었습니다.

신차를 뽑은지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고가 크게 났습니다. 제가 타고 있던 운전석 바퀴가 터졌고 사이드미러는 물론 차량 운전석 절반을 전체적으로 다 긁어 차량수리비만 500만원 이상이 나올 정도의 큰 사고였습니다. 도로에는 반파된 제 차량에서 나온 부속품이 여기 저기 흩어 떨어져 있어 뒷수습을 해야 했습니다.

졸음 운전으로 사고가 나긴 했는데 112에 신고해야 되는지 따로 보험사에 신고해야 되는지 차량에서 내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레카차 2대가 연달아 도착했습니다. 제가 신고하지도 않았는데 신기하죠?

어차피 차량은 타이어가 터져 운행이 불가능했던터라 (엔진도 작동되지 않았어요) 전 따로 이동해야 했고, 보험사를 통해 자기손해 부담금을 안고 수리를 했습니다. 500만원 이상의 비용에서 자기돈 비용 50만원만 지불하면 되니 보험이 좋긴 좋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제 차량의 감가상각은 어마어마하게 되었겠지만요.

레카차를 타고 온 운전기사가 어리둥절 해 하며 제게 물었습니다.

"혹시 여기 타고 있던 운전자 못보셨어요? 이미 구급차가 다녀갔나요?"
"아뇨. 제가 운전자인데요."

너무나도 멀쩡하게 서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아저씨는 꽤나 당황해 했습니다. 

"...괜찮으세요?"

운전 당시, 졸음을 이겨내려고 일부러 시속 60 이상의 속도로 터널을 통과했습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잠에서 깨어나니) 제 차는 이미 반파되어 있던 상황이었고 통과한 줄 알았던 터널 안에 제가 있었습니다. 사고 후, 잘 열리지 않는 운전석 문을 겨우 열고 나왔죠. 

사고 직후, 지금은 신랑이고 당시는 남자친구였던, 그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연애를 하며 경험하게 되는 미묘한 밀당과 신경전은 이 날 교통사고와 함께 끝이 났습니다. 이 사고로 신랑과 저의 관계는 여자친구와 남자친구가 아닌 정말 운명을 같이하는 관계처럼 서로를 아꼈습니다.

신랑은 종종 이 터널을 지날 때마다 제게 이야기 합니다. 만약, 그 날 사고로 널 잃었다면 평생 나 자신을 원망했을거라고. 어찌나 다행이라 생각하고 감사기도를 했는지 모른다고. 그럴만도 한 것이 신랑과 즐겁게 데이트 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간 날이었기 때문이죠. 

술 한 잔도 마시지 않는 제가 음주 운전을 할 리는 없고, 안전운전을 하는 편인데 잠에 취해 음주운전보다 더 큰 사고가 났으니... 사고 소식에 무척이나 놀랄만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중앙분리대가 있어 중앙분리대를 박고 혼자 사고가 나서 다행이었지, 만약 중앙분리대가 없는 상황에서 중앙선을 침범하여 상대 차량과 사고가 났으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 집니다. 

음주운전보다 졸음운전이 더 무섭다고들 합니다. 실제 이 날 사고로 졸음운전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지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사고 현장을 지나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감사하게 됩니다. 

자칫 그 날 사고로 내 인생이 끝나버렸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보면서 감사 또 감사하게 되더라구요. 졸음운전을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저의 어리석음을 이 도로를 달릴 때마다 되내이고 또 되내입니다.

쌀쌀하기만 했던 날씨가 서서히 포근해지고 따스한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봄이 왔나 봅니다. 봄철은 특히, 졸음운전을 하기 쉬우니 졸음운전 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모두 안전 운전 하세요!

코로나로 재택근무를 하며 알게 된 사실

코로나로 인해 유치원과 어린이집 긴급보육이 이어지고 있다. 다음달도 정상화되긴 힘들다고 하는데, 6월쯤엔 예전처럼 정상 등원이 가능할까.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으나,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 달리 대부분의 직장은 정상화된 듯 하다. 

육아휴직이라도 해야 하나, 코로나로 인해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아 많은 고민을 하다가 상사에게 보고드리고 유연근무제를 하고 있다. 재택근무를 주로 하고 업무상 필요 시, 회사에 출근한다. 내가 신입사원이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직급과 경력, 업무상 전문성이 있으니 누릴 수 있는 혜택은 아닐까.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입사하게 된 첫 회사에 14년차 재직중이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면서 결혼을 했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청춘을 바친 회사에 워킹맘이 되어서도 다니고 있는데 걱정스럽긴 하다.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지. 육아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많이 느낀다.

코로나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며 일상 속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마주하게 된다. 맞벌이를 줄곧 해온데다 생후 100일 남짓 때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왔던터라 이토록 가까이에서 살을 부비며 함께 보낸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 새벽녘부터 깬 둘째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어 무척 놀랬다. 엉덩이 발진크림을 본인의 얼굴에 덕지 덕지 바른 모습을 보고 꽤나 당황했다.

신랑네 회사는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초점을 맞춰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에 포인트를 두고 있는 듯 했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의도로 가지는 이벤트인데 아이디어가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또 이게 뭐라고 아이들과 함께 열성적으로 색칠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이 색칠을 하면 그 위에 덧칠하여 명암을 살리고자 애썼다. 새삼 어렸을 적 색칠공부 했던 기억도 나고 추억 돋았다. 하하.

종종 스마트폰 갤러리를 보다가 놀라곤 한다. 내가 찍지 않은 사진들이 잔뜩이다. 이제 24개월인 딸이 나의 폰을 들고 여기 저기 구석 구석 사진을 찍는다. 

벌써 이렇게 많이 컸나? 시간 참 빠르다.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자고 깨며 많은 시간을 함께 했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부부의 대부분의 시간은 직장에서 두 아이의 대부분의 시간은 어린이집에서 보냈다. 평소 두 아이가 잠에서 깰 때 그리고 잠이 들 때의 시간 정도만 함께 할 수 있었다.

아침 어린이집 등원, 저녁 어린이집 하원. 반복. 또 반복.

그러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되면서 신랑의 퇴근 시간은 앞당겨졌고, 나는 유연근무로 집안일과 회사일을 병행하며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여유로움과 행복감이다. 

잘 때 빼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는데, 유연근무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안식처로써의 집이 어떤 것인지 또한 많이 깨닫게 되었다. (집에서 잠만 자다가 말이다;) 코로나가 종식되면 다시 이전처럼 이른 시간 출근과 늦은 시간 퇴근이 일상이 될 지 모른다. 그리고 아이들과 지금만큼 많은 시간을 보내긴 다시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순간을 감사하라고들 한다. 코로나로 인해 날씨는 따뜻해지고 있건만 마스크는 일상이 되어 버렸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회 생활을 하는데 제한이 따른다. 그럼에도 순간에 감사한다. 코로나로 인해 피로감은 크지만, 이토록 아이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가족과 함께 붙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으니 말이다. 

오늘 하루도 감사하며 :)

재택근무, 회사일과 육아 사이, 겨울과 봄 사이

코로나19 사태가 언제쯤 잠잠해질까. 코로나로 인해 주에 2회 정도 출근하고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재택근무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막상 아이를 돌보며 재택근무를 하니...

와...

신세계다. -_-

일을 하는 건지, 아이를 돌보는 건지...

회사일을 하다가 아이를 달래고, 집안일을 하다가 회사 업무로 전화를 받는다. 어쩌다 보니 아이를 TV 앞에 앉혀 놓고 회사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내가 회사일을 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만큼 고스란히 아이는 TV 앞에 방치된다.

 

아직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는 만 두 살과 이제 막 어린이집을 졸업한 만 네 살, 두 아이를 집에서 혼자 돌보며 회사일을 할 자신은 없어 그나마 케어하기 수월한 첫째를 시댁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택시를 하시는 아버님이 무척 걱정하셨다. 하루에도 여러 명 택시를 태우고 승하차를 하는데 코로나 확진자가 탔을지, 무증상인 코로나 승객이 탔을 수도 있고.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택시라는 업 때문에 혹여 당신이 코로나에 걸려 아이들에게까지 감염시킬까봐 걱정하셨다. 

어머님은 얼마전부터 기침을 한다며 열은 나지 않는다고는 하시지만, 걱정된다고 하소연 하셨다.

시댁 어른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맡기면서도 맡기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재택근무라고는 하지만 반쪽짜리 재택근무라 회사 호출이 있으면 언제 어느 때나 출근해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첫째를 시댁에 맡겼지만, 부디 코로나에 노출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 밖에.

재택근무를 하면 막연히 좋을 거라 생각했던 이전과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업무의 종결이 무의미해져 버렸다. 출근과 퇴근이 명확했던 종전 업무 스타일과 달리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퇴근을 하니 반대로 직원들 사이에서도 업무 시간과 무관하게 카톡으로 업무 지시를 하고 자료를 요청하고 수시로 전화를 했다. 

"엄마, 왜요?"
"응. 엄마 회사일 때문에."

만 두 살 둘째 아이가 업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낯선지 물어본다. 왜요? 라고.

 

그나마 나라도 재택근무가 가능하니 다행이다. 신랑네 회사는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지 않다. 심지어 사무실 내 고열 환자가 발생하는 사태도 있었으나 결과가 '음성'으로 나와 다행이라는 말만 나왔을 뿐.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은 일상 업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대다수 많은 회사가 재택근무를 하지 않고 평소처럼 출퇴근하고 있을 거라 생각된다.

한동안 회사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재택근무를 그래도 제 때 시행한 걸 보면 (비록 반쪽 짜리라고는 하나) 그래도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감사하게 된다. 

언제쯤 코로나가 터지기 전의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회사에 출근하며 즐기던 모닝커피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엄마, 마스크! 마스크!"

집 밖을 나설 때면 큰 일이라도 난 것 마냥 마스크를 찾는 둘째 아이의 모습이 기특하기도 하지만, 짠하다. 언제쯤 마스크 없이 밖을 나설 수 있을까. 따뜻한 봄날이 찾아오고 있는데 우리 아이의 얼굴은 아직 겨울이다. 

출근길 도심에 등장한 기린, 아이의 눈으로 보다

이른 아침, 출근길. 늘 그러하듯, 뒷좌석에는 두 아이를, 보조석에는 신랑을 태우고 회사로 향했다. 오늘만 버티면 된다- 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서는 금요일 아침 출근길이다. 

"엄마, 기린이야. 봤어?"

뒷좌석에서 자는 줄 알았던 첫째 아이가 잔뜩 들 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축복아, 뭐라고? 기린?"

분주한 출근길, 삭막하다 못해 살벌한 도로. 도로 위엔 버스며 자가용이며 여러 종의 차가 빼곡하게 장악하고 있고 좌우로는 높은 빌딩과 그 와중에 먼지가 날리는 공사판이다. -.-

여기에 왠 기린? 동물원도 아니고?

당황한 건 나만이 아니었나보다. 신랑도 의아한 표정으로 첫째 아이가 말한 기린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 본다.

"기린이 엄청 크다. 그치?"
"기린이다!"

첫째 축복이에 이어 둘째 행복이까지 '기린'을 외치며 목이 길다, 크다는 말을 내뱉는다. 두 아이의 눈에는 도심 속 한가운데 기린이 보이는데, 신랑과 나는 아무리 둘러 보아도 기린이 보이질 않는다.

나보다 먼저 발견한 신랑은

"우와! 그러네. 기린이 목이 엄청 길어. 그치?" 라며 아이들의 말에 호응해준다.

신호대기중이던 차가 출발하려던 찰라, 뒤늦게서야 아이들이 말한 기린을 나도 알아챘다.
살벌하고 삭막하다 못해 어서 지나가고픈 공사판 바로 옆인데 저 모습을 보고 기린이라 표현하는 아이들이라니.

역시, 아이들의 눈은 정말 신비롭다.

자, 도심 속 기린, 한 번 보시겠어요?

 

기린이 어디에 있다는거지?


기린.


기.린.

아, 찾았다! 기린!

 

나도 아이들처럼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봐야겠다.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온다. 

기린이라니...

하하;

우한 폐렴 확진자 나날이 증가, 송파구에도?!

"아빠,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이렇게 팔 소매로 기침해야지!"

첫째 아들이 아빠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기침하는 것을 보고 손이 아닌, 팔로 입을 가리며 기침 하는 법을 알려준다. 옆에서 보고 있노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빠가 잘못했네~~~

"누가 알려줬어?"
"어린이집 초록반 선생님이."
"아, 그렇구나! 꼭 그렇게 해야겠다. 똑똑하네. 우리 축복이!"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기저기 난리다. 하루가 멀다하고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나오니, 무척이나 불안하다. 

두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이 아닌, 자차로 이동하다 보니 차 안에서는 마스크를 끼지 않는다.

"엄마, 마스크 껴야 돼!"

이제 36개월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마스크를 찾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위생관념이 철저하다며 웃어야 할 지, 이런 환경을 물려줘서 미안해하며 울어야 할 지 헷갈릴 지경이다. 

우한 폐렴 확진자 나날이 증가, 송파구에도?!

'라떼는 말이야.' 시전하기 싫지만, 정말 나 때는 가재를 잡으러 뒷산에 가곤 했는데 말이다. (고향이 시골이라...)

각종 매연에 미세먼지, 이제는 알 수 없는 각종 바이러스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너무 속상하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알아서 먼저 마스크를 챙기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손톱 아래까지 구석 구석 뽀독 뽀독 씻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확실히 교육의 힘인 것 같다.

회사 점심시간, 팀장님, 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서는 각기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 했음에도

"그건 맛있냐? 나도 한 입 먹어봐도 될까?"

먹던 숟가락으로 내가 먹으려던 음식에 망설임 없이 푸욱 퍼 가시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는 '아놔!' 를 외쳤지만, 나보다 상사라는 생각에 꾹꾹 눌러 참으며 인내했다. 

도대체 위생관념이... 라는 생각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하며 말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똑부러지게 개인 위생 관리에 신경 쓸 것 같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한다.) 점차 개인 위생에 대한 인식이 더 달라지고 강해졌으면 좋겠다. 

'안죽어! 안죽어! 괜찮아! 괜찮아! 뭘 그리 호들갑이야?' 라는 말을 하며, 개인위생에 신경쓰는 사람을 호들갑 떠는 사람 취급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자신이 마셨던 술잔을 상대에게 권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술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출근길, 오늘도 어김 없이 어린이집에 두 아이를 데려다 주고 회사 출근을 했다. 어린이집에 두 아이가 들어서자 마자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은 두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손을 씻겼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일이 없기를... 늘 기도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아이들의 어린이집이 위치한 '송파구'에도 우한 폐렴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송파구청장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구에서는 어제(2.5.) 자가격리자 중 확진환자 1명(19번)이 발생하여 서울의료원에 격리 치료중입니다.

19번 확진자는 17번 확진자의 동료로 지난달 18~23일 싱가포르 컨퍼런스에 참석한 후 자가격리 중이었으며, 어제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추가 확산 방지를 위하여 확진자의 접촉자 격리와 방역조치를 모두 마쳤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서울시, 송파구가 함께 역학조사 및 동선파악 중이며 결과가 나오는 데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지역 내 확산방지를 위하여 관내 송파책박물관, 송파체육문화회관, 송파여성문화회관, 청소년센터, 경로당 등의 운영을 임시 중단합니다.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구민 여러분께서도 예방수칙을 준수해 주시고, 호흡기 증상 발생 시 송파구 보건소로 연락(☎ 02-2147-3478) 주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지역 내 확산을 막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장 내 아이가 우한 폐렴에 걸린 것이 아님에도 그 기사만으로 상당한 공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비타민과 유산균을 주문했다. 그리고 각종 과일, 야채를 추가 주문했다. 

어서 이 위험한 시기가 지나가기를...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올바른 손씻기 / 올바른 기침예절

연애할 땐 몰랐던 신랑의 예쁜 모습

지금의 신랑과 연애를 할 때는 그저 멋있어서 좋았다. 외모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 배려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무척 멋있어 보였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왕자님이랄까.

결혼을 하기 전, 연애를 할 때부터 카페 데이트를 하면 늘 수다스러웠다. 나는 여자이지만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편인데 반해 신랑은 남자임에도 상대적으로 말이 많은 수다쟁이였다. 그래서일까. 카페 데이트를 하면서도 1이라는 주제에서 시작해 그에 파생되는 1-1, 1-2, 1-3의 주제, 그리고 2라는 주제에 다시 2-1, 2-2, 2-3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이야기거리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기 전부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녀 교육관이나 맞벌이에 대한 생각, 재무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할 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음에도, 연애하며 여러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어쩜 이렇게 나와 생각이 비슷할까? 결혼해서 살아도 정말 잘 살 것 같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 잡혔던 것 같다. 

내게 그는 '나와 잘 맞는 멋진 사람' 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 사람 어때?' 라고 물으면 '그 사람 멋있어.' 라고 대답할 정도로 '멋짐' '멋있음' 과 연관된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까지는.

아이들만 예쁜 게 아니더라-

이제는 '그 사람 어때?' 라는 질문에 마냥 '멋있어' 라는 한 단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음을 요즘 많이 느낀다. 연애할 땐 그 사람을 보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함께 카페에서 두 손을 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마주보던 여유로움은 어디가고, 두 아이가 잠이 들면 나는 설거지를 하고, 신랑은 빨래를 한다. 빨래를 돌리기 위해 세탁실 앞에서 한참 분주하던 신랑.

어느 새,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에 다녀왔나 보다.

"아이들 자는 모습 봤어?"
"아니. 못봤어."
"봐 봐. 진짜 예뻐."

분명 1시간 전, 두 아이를 함께 재우고 거실로 나왔음에도 한참 집안일을 하다가 다시 아이들 방에 다녀와선 내게 두 아이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곤히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오는 신랑의 모습이 내 눈엔 참 예뻐보였다. 

다음 날을 위해 두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미리 싸고 있으니, 신랑이 다시 재촉한다.

"봤어?"
"아니. 아직."
"어서 가서 봐. 둘이 똑같은 자세로 자고 있어. 지금 봐야 돼! 아, 아냐. 내가 사진 찍어서 보여줄게."

신기하지.

두 아이들이 예쁘다고 이야기 하는 신랑의 눈엔 나를 보며 미소지어줬던 그 멋진 눈빛과는 다른 예쁜 눈빛이 묻어난다. 

이 사람, 멋있는 줄만 알았더니 예쁘기까지 하다. 그렇게 내 폰엔 신랑이 사진을 찍어 전달해 준 두 아이의 잠든 모습(낮잠이건 밤잠이건)이 여러장이다.

아빠가 찍어준 낮잠 자는 두 아이
아빠가 찍어준 밤잠 자는 두 아이

연애할 땐 몰랐던 감정,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던 그의 눈빛이다. 두 아이를 생각하고 살펴주는 모습이 나를 생각하고 살펴주던 '멋짐'과는 다른 '예쁨'으로 다가와 나를 또 설레게 한다.

어린이집 겨울방학을 앞두고 펑펑 운 이유

 

 

맞벌이를 하며 첫째 아들을 낳고 2살 텀으로 딸을 낳았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딱히 힘든 일은 없었다. 아이들이 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힘든 것들은 모두 견딜만한 힘듦이었기에 잘 견뎌낼 수 있었다. (내가 조금 더 고생하고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잘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로서 가장 힘든 것은 '사회생활'이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에 육아가 뒷전이 되는 것.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너무 큰 것.)

이제 2020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싱글일 때는 연말이면 한 해를 마감하고 다음해를 맞이하는 조금은 들뜨면서도 각종 모임에 행사로 즐겁기만 한 시기였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이 되고 나니 연말모임이 버겁고 힘겹다.

 

 

가정 어린이집의 방학은 총 3번이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봄방학.

봄방학이야 다음 학기 준비를 위한 것으로 기간이 짧아 회사 연차를 소진해 쉴 수 있지만, 여름방학, 겨울방학은 각각 1주일이기에 어린이집에 맡기지 못하는 기간 동안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름방학은 여름휴가를 이용해 신랑과 내가 번갈아 쉬며 아이를 돌보거나 함께 쉬며 아이를 돌본다. 반면, 겨울방학은 12월의 마지막주인데다 신년이라 무척 애매하다. 

한 해를 마감하며 회사에서 가지는 송년회, 그 외 각종 소모임 연말 모임 등. 연말이면 각종 행사와 모임에 무척 바쁘다.  

"다른 소모임은 취소한다고 치더라도 26일은 회사 전체 송년회라 절대 못빠져."
"어떡하지? 나도 이번에 회사 송년회가 26일이야."

각종 회식으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며 죄송하다며 번번히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향했다.

 

 

친정이 안되면 시댁으로. 각각 한참 먼 거리이건만 그렇게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이동했다. 두 아이를 맡길 곳이 양가댁 말곤 대안이 없었기에. 어린이집과 댁이 가까우면 어린이집 마치는 시간에 맞춰 픽업을 부탁드리겠지만, 거리가 멀기에 항상 회식 전날 밤에 미리 맡겼다. 그리고 다음날 회식이 끝나면 다시 두 아이를 데리고서 집으로 향하곤 했다. 

"엄마, 아빠가 내일 회식이 있어서 미안해. 한 밤 자고 내일 저녁에 엄마, 아빠가 회식 마치고 빨리 올게."
"아냐. 차라리 지금 빨리 다녀와."
"아냐. 지금은 밤이잖아. 내일 아침에 회사 출근하고 마치고 회식을 가는거라서 그래. 내일 회식 마치면 빨리 올게."
"아냐. 싫어."

이번엔 승진 회식이 있어서 빠질 수 없다며 양가에 각각 아이를 맡기고, 곧이어 3일 뒤엔 회사 송년회가 있다며 양가에 또 다시 각각 아이를 맡겼다. 이제는 어린이집 겨울방학이다. 1주일.

"처제한테 부탁해 보는 건 어떨까?"
"동생도 우리처럼 직장인이라 연말 회식도 많고 모임도 많더라고. 연초 휴일 껴서 여행 계획하고 있던데 우리 애들 때문에 여행 계획 취소하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의 아이다. 그럼에도 당연하듯, 어린이집이 쉬면 손녀 봐주세요- 손자 봐주세요- 양가에 맡기는 것이 너무 죄송하고 민망하다. 기껏 자식 키워 놨더니 손자, 손녀 키워 달라고 하니 말이다. 

 

 

친정 어머니는 항상 괜찮다고 하신다.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데리고 와. 괜찮아."

어머니 허리가 안좋으시면서도 괜찮다고 하신다. 나를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인데 이제는 내 아이도 봐달라고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불효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눈물이 핑 돌아 멍하니 있으니, 20개월 딸이 묻는다.

"왜요? 엄마 왜요?"
"아니. 그냥. 좀 힘들어서."
"힘들어서?"

내 눈이 빨개진 만큼, 딸의 눈이 빨개졌고 내가 눈물을 흘리니 딸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죄송해서 울고 있는데, 내 딸이 엄마인 내 눈물을 보고 따라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머니께 죄송하고 딸에게 미안한 복잡한 감정. 

"이젠 너 때문에 엄마가 마음 편히 울지도 못하겠다."

맞벌이의 가장 큰 고충이다. 야근으로, 회식으로, 이런 저런 갑작스런 상황으로 두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는 것.

둘째가 태어나면서 바뀐 것

둘째의 환한 미소

첫째 때는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임신, 출산, 육아에 정신이 없었지만 아이에게 남는 건 사진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반면, 둘째 때는 모든 것이 두 번째라 그런지 소홀하고 인색했다.

오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문득 둘째를 보고 있자니, 짠한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들었다. 

첫째 때는 산부인과에서 오라고 하는 시기에 딱 딱 맞춰 산부인과를 찾았다. 혹여라도 잘못되는건 아닌지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며,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없는 듯하면 산부인과로 냅다 뛰기도 했다. 둘째 때는 때가 되면 다 나오는거라며 산부인과 가는 것도 무척이나 게을렀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좋은 생각하고 잘 먹기만 하면 예쁜 아기가 나올 거라며 내 일을 하는데 좀 더 몰두했다. 

첫째의 이 시기엔 절대 용납되지 않았을 뽀로로음료

첫째 때는 간이 센 음식을 너무 일찍 접하면 안 된다며 이유식 시기에 맞춰 간을 조절하였고 초콜릿, 사탕류는 절대 주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아이가 예쁘다며 어른들이 건네주시는 간식도 조금은 불편해하며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히곤 했다.

반면, 둘째는 모든 것이 허용이었다. 첫째 때가 이 시기였다면 접하지 않았을 젤리나 쿠키도 먼저 접하고, 간도 좀 더 세다. (이제 뭐 거의 어른 수준이다)

귤바구니 속 귤은 어디로?

첫째는 딸기 킬러인데 반해, 둘째는 귤 킬러다. 귤 한 박스 가량을 담아 두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진 귤바구니 속 귤을 보고 기겁했다. 

우리의 결혼생활 첫 시작은 단칸방이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힘들진 않았던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단칸방 생활을 하려니 무척이나 힘들었다. 단칸방, 옥탑방에서 시작한 우리의 신혼생활은 첫째를 낳고 나서는 더욱 힘들었다. 양가 도움 없이 우리가 해낼 수 있다며 떵떵거렸던 우리의 거침없는 발걸음은 조금은 위태롭기도 했다.

옥탑방에서 15평 빌라 전세로 이사를 했을 때만 해도 우리 이 정도면 그래도 성공했다며 자축했다. 하지만 또 다시 둘째를 임신하면서 조급해졌다. 어서 더 안정적인 집을 마련하고 싶다며.

돈은 아껴야 겠고, 먹성 좋은 두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는 싶고, 돈은 부족한데 좀 더 큰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싶은 욕심. 적어도 다른 건 몰라도 과일은 먹고 싶다고 할 때 꼭 사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모든 것이 상충되어 참 어려웠다. 이제는 24평 아파트에 (비록 서울이 아닌 서울 외곽이긴 하지만) 자리를 잡아 다시 또 힘을 내보자며 서로(부부)를 격려한다. 

대출이자에 허덕이는 맞벌이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힘을 낼 수 있는 건,

바로 이 아이의 먹성좋은 미소 덕분이 아닐까.

+ 덧) 아, 사진첩을 정리하다 보니 둘째 사진이 정말 없다. 둘째 녀석의 사진을 앞으로 많이 찍어줘야겠다. 

내가 욕하던 30대 워킹맘이 되고 나니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운 좋게 취직한 첫 회사. 그리고 그렇게 20대에 첫 사회생활을 내딛었던 그 회사를 30대 중반이 훌쩍 넘어서기까지 다니고 있다. 이직하네 마네 말 많고 탈 많았던 여러 시간을 지나 아직까지 이 회사만을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이 회사가 나를 내쳐야만 그만 둘 기세다.

20대 초반 한참 외모와 자기개발에 신경을 쓰고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거라던 철 없는 아가씨는 어느덧 아들, 딸을 낳아 아줌마가 되었다. 누가 알았을까. 내가 이렇게 바뀔 줄은.

어느 덧 두 아이의 엄마

오늘도 지각이다. 8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이미 8시 30분이다. 오늘은 유독 더 심하게 막혔다. 이상하지.

경기도 남부쪽에 있는 집에서 어린이집까지 1시간. 어린이집에서 마포에 위치한 회사까지 1시간. 최소 다음해까지는 이 고생을 해야 한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을 갈 때까지는.

맞벌이 부부의 출근시간, 퇴근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종일반이 가능한 곳을 찾아 헤매다 겨우 대기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어린이집을 찾아 어린이집에 맞춰 집을 이사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음해 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친정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렇다 보니 텀이 생겨 유치원 입학하는 3월까지, 약 3개월 남짓 정도 이 고생을 해야 한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두고 운전석에 다시 앉으니 손이 떨렸다. 지각이다. 또 지각이다. 긴장을 해서 손에 자꾸 쥐가 났다. 손을 주무르면서 운전을 했다. 지각이다. 어떡하지. 지각이다.

'여자면 지각해도 되는거야? 여자라서 그렇다는 말 정말 싫어.'

'우리 회사에 여자 차장님이 계시는데 항상 지각해.'

'애가 있는 게 대수야?'

내가 20대 때, 같이 회사를 다니던 기혼인 여자 사수를 두고 항상 가졌던 불만이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다. 충격적이게도... 팀장님께도 너무 죄송하지만 팀원들 보기에도 너무 부끄럽고 민망하다. 

가방은 차에 두고 차 키와 회사 출입증만 챙긴 채, 뒷문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두 아이가 생기기 전엔 항상 일찍 출근해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건만, 인사를 잊은지 오래다. 

팀원들도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는 나를 곁눈질로 쳐다볼 뿐. 팀장님께 카톡으로 '죄송해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늦으신대요. 선생님 오시면 바로 아이들 두고 출발할게요.'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오늘 유독 더 심하게 막히네요. 죄송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너무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아이가 아파서 친정에 맡기고 갑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과 주고 받은 카톡 대화 내용을 보면 온통 '죄송합니다' 가득이다. 

맞벌이는 정말 힘든 것 같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어서.

"버섯 차장! 잠깐 회의실로 오지?"

팀장님이 회의실로 호출하셨다. 

알 듯 모를 듯 걱정 반 두려움 반, 회의실로 가자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두고 회사 출근하기 힘들지? 보통 시간이 몇 시쯤 될까? 여유있게. 9시? 9시 30분?"

"우리 여동생도 탄력근무를 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안그랬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더라고."

"맞벌이다 보니 어느 한 사람이라도 탄력근무, 유연근무제가 시행되면 좋은데 그게 아니면 아무래도 힘들지."

"인사팀엔 내가 건의를 해볼테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팀장님께 너무 감사하다)

우리 회사는 탄력근무제, 유연근무제가 시행되지 않는 회사다. 그럼에도 팀장님이 건의해 보신다고 하니 이미 그 말씀만으로 너무 큰 힘이 되었다. 1시간 늦게 출근한 만큼 1시간 늦게 퇴근하는 것. 

신랑과 나 둘 다 아침 8시 30분까지 출근이다 보니 아둥바둥 새벽 같이 두 아이를 깨워 나서기가 많이 힘들었다.

그래. 돈이라도 좀 여유 있으면 회사 근처 마포에 집이 있으면 좀 더 편할 수 있었겠지.

그래. 돈이라도 좀 여유 있으면 아이들 도우미라도 써서 어린이집 등하원을 맡기면 좀 더 수월했겠지.

돈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생기는 요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돈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또 다시 맞벌이로서의 삶을 지속해야 한다. 

이 탈출구는 어디일까?

어린이집 가기 싫어하는 아이, 마음이 아프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낮이 짧아졌다. 정말 겨울이다. 늘 그렇듯 7시쯤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면 어둑어둑하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차 안. 첫째는 눈을 비비며 묻는다.

"아직 깜깜하잖아." (왜 벌써 깨운거야?)
"응. 아직 깜깜하네." (미안해. 이렇게 이른 시간에 깨워서)

첫째가 내뱉은 말의 함축적 의미를 모두 알 수 있다. 모르는 척, 애써 다른 말을 내뱉으며 생각을 돌리려 하지만 아이의 속내를 모르는 건 아니다. 돌이 되기 전부터 가정어린이집을 다녔다. 초기 이사를 두 번 정도 다니면서 어린이집도 여러번 바꼈다.

집에서는 이렇게도 씩씩하게 잘 노는데!

국공립 어린이집을 다니고 싶었으나, 대기가 너무 무한대기라 포기하고 가정어린이집으로만 다녔다. 특히, 이번 어린이집은 아는 분이 계시는 곳이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를 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린이집에 맞춰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2년 가량 다니면서 적응하고 큰 탈 없이 잘 큰 첫째인데, 최근 많이 힘들어한다. 

"엄마, 무서워. 그 선생님 무서워."

오늘은 유독 차에서 내리기를 두려워했다. 차라리, 소리내어 엉엉 울면 좋으련만, 울음조차 삼켜가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어서 두 아이를 내려 놓고 출근해야 하는데- 다급한 마음과 초조한 마음, 아이를 향한 안쓰러운 마음이 교차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어린이집에 있는 두 아이.

아침마다 어린이집 당번 선생님이 다르다. 매주 화요일에 있는 당번 선생님을 첫째는 상당히 무서워한다. 반면, 매주 목요일은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고 당번 선생님이 누군지 확인하곤 신나서 어린이집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화요일은 무척 무서워하고 목요일은 너무 좋아한다. 

매일 같은 어린이집을 가고 있지만, 매일 다른 표정의 아이를 본다.

"무슨 계기가 있어서 그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것일텐데."
"그러게. 화요일과 목요일이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나."

아는 사람이 있으니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좋아서 찾아간 어린이집. 그러나 그 아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첫째를 보고 나니 꽤나 껄끄럽다. 철저한 을의 입장이 되어버렸다.

"언니, 선생님한테 말했다가 혹시 아이한테 해꼬지 할까봐 말 못하는거지? 그러지마. 그래도 이야기 해야 돼. 안 그러면 계속 '을'이 될 수 밖에 없어."
"아는 분이라 좋아했는데, 그 아는 사람을 첫째가 무서워하니 너무 힘드네."

오늘 밤, 잠들기 전엔 꼬옥 안아주고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물어봐야겠다.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 그 사건을 통해 꼭 알아야 할 것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으로 이른 아침, 오전 7시 30분쯤 어린이집에 두 아이를 맡기고 저녁 7시 30분쯤 되어서야 두 아이를 찾아 온다. 어린이집 종일반으로 12시간 이상을 어린이집에 두 아이는 있는 셈이다. 두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는 맞벌이 부부이기에 가장 먼저 신경을 쓴 것은 어린이집 분위기, 선생님이 좋은지 여부였다. 어린이집 폭행 사건도 많고 성추행 사건도 있었기에.

요즘 바빠서 뉴스를 접할 수 없었는데 최근 이슈가 된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을 어제 처음 접했다. 

딸 아이 기저귀를 갈고 있다가 지인을 통해 들었다.

"조심해요. 요즘은 어린이집에서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니까."

내 귀를 의심했다. 성폭행? 어린이집?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도 아닌, 어린이집? 어린이집이면 최장 길게 다닌다고 해 봐야 만 6세인데...

"네? 어린이집이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성폭행한거에요?" 
"아뇨. 어린이집 아이들끼리 서로 망도 봐주고. 선생님한테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요즘 한참 그 사건 때문에 시끄럽잖아요."

 

헉!

 

 

소소하게 아이들끼리 장난치는 수준이라고 하기엔 '똥구멍에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피해자 아이가 표현) 라는 이야기에 이미 거품을 물었다. 너무 놀라 신랑에게 바로 이야기를 했다. 이 사건, 알고 있었냐면서. 

뉴스를 찾아보고 가해자 입장과 피해자 입장에 대한 이야기도 보며 사건을 파악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궁금한 건 어느 뉴스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왜?!

 

정확한 가해자 어린이의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는 최고 나이인 만6세라고 가정했을 때 그래도 성적인 개념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치마를 입은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들추며 '아스께끼!' 하는 수준이라면 어려서 그럴 수 있지, 관심의 표현이지 라며 웃어 넘긴다지만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분명 노출이 되었을 것이다.

부모가 성관계 하는 모습을 봤거나, 성관련 영상을 TV나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접했을 것이다.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이런 사건이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 딸의 입장에서만 걱정하며 '내 아이에겐 저런 일이 없어야 될텐데' 라는 방어적인 입장에서만 설 수 없다. 아들도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 주의해야 하고 미리 알아야 한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 왜 가해자 어린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비밀로 하라고 했으니, 아이가 분명 잘못된 행동임을 인지하는 것 같거든. 부모가 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봤거나, 그런 영상을 봤거나 일텐데 원인을 알고 싶은데. 찾을 수 없어. 그런 취재 뉴스는."
"아무래도. 요즘은 그런 취재는 잘 하지 않으니. 사건에 대한 자극적인 이슈몰이에만 집중하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가면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경우를 많이 본다. 스마트폰으로 구글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는 경우인데, 구글 계정을 아이 계정으로 따로 파지 않는 한 부모의 계정으로 된 스마트폰을 쥐어주게 되면 엄마가 보던 영상, 혹은 아빠가 보던 영상과 비슷한 영상이 자동추천영상으로 뜨게 된다. (유튜브 구독 영상이 아니더라도) 또한, 이미 구글 계정 자체가 성인 계정이기에 본 영상이 시작되기 전 나오는 광고 영상이 아이 나이대에 맞지 않는 광고 영상이 뜰 수도 있다.

 

단순히 아이만 믿고 스마트폰을 아이에게 쥐어주기엔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구글은 보는 이가 아이인지, 성인인지 식별할 수 없다. 계정만 성인계정이면 성인으로 본다.) 또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게 될 경우, 유튜브 영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부모의 폰에 저장되어 있는 다른 영상이나 사진 등을 볼 수도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쉽게 자극적인 영상도 접할 수 있다. 여러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부모의 폰을 아이에게 쥐어주기 보다는 아이만 쓸 수 있도록 따로 별도의 계정 폰을 주거나, 유아 태블릿을 사주는 게 차라리 나을 듯 하다.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만 6세의 아이가 처음부터 나쁜 아이일거라 생각지 않는다. 다만, 자라온 환경이나 어떤 상황에서 자극적인 뭔가를 접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손가락을 집어 넣는 행동은 절대 할 수 없을거라 생각된다. 욕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단순, 혈육 상 부모 뿐만 아니라 양육자로 있는 부모(할아버지, 할머니)의 행동과 말투 또한 얼마나 아이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이, '아이는 알아서 잘 커.' 라는 표현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향해 '아이에게 뭘 보여주고 어떻게 키운거야' 라며 손가락질하지만 사실 알 수 없다. 그 원인 제공자는 부모일수도. 또 다른 양육자일 수도.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하는 부모가 대다수인 요즘. 주 양육자인 아이를 키우는 부모, 손자를 맡아 돌보는 조부모 등 모두가 많이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우리 아이가 욕을?! 4살 아기가 욕을 하다니!

"어제 나 첫째한테 충격적인 말을 들었어."
"무슨 말?"
"블록놀이를 하다가 자기 뜻대로 잘 안됐나 봐. 그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것 같은데... 욕을 하더라고."
"어떤? ㅆㅂ?"
"응."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두 아이가 아프거나 부득이하게 야근, 회식 등으로 늦어지게 되면 시댁이나 친정에 맡기는 일이 종종 있다. 지난 한 주간 역시, 각자의 일과 회식으로 어쩔 수 없이 시댁 찬스를 사용했다.

36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 어느 날은 어른들의 말투를 따라 "~했냐?"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다그치곤 했다. 어른에게는 공손하게 표현하는 거지, 절대 ~했냐?라는 표현은 하지 말라고 말이다. 어른에게 반말로 ~했어?라고 해도 따끔하게 가르쳐야 할 판에 ~했냐?라고 하니 무척이나 듣기 싫었다. 

퇴근하고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픽업 후, 다시 집으로 향한다

 

사실, '아, 저러다가 어린이집 가서 선생님들한테 미움받겠네.'라는 생각이 너무 크다 보니 더 나무랐던 것 같다.

큰일이다. 이제는 어느새 욕을 배워 왔다. 듣자마자 누구에게 배운 말투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 집이야 딸 둘을 키운 집이니 그렇지 않지만, 아들 둘을 키운 시댁은 (내가 느끼기에) 상대적으로 터프하고 과격하다. 말이나 행동적인 면에서. 그래서 결혼을 하고 초기 시댁에 갈 때면 종종 울곤 했다. 나쁜 의도로 내뱉는 말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뭐 그때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들을 때마다 놀라고 당황한다.

두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양가 어른에게 맡기고 부탁하는 입장이다 보니 이게 참 애매하다.

친정은 내가 나서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시댁은 내가 나서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바쁜 출근길, 신랑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역시나, 신랑의 표정을 보니 생각이 많아 보였다.

"어떡하지? 조심해 달라고는 연락드리겠는데 그런 말 절대 쓰지 마세요. 한다고 해서 한 순간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이제 시댁에 맡기지 말까?"
"어디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나?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양가에 맡기는 거였는데."

마찬가지다. 

초콜릿, 사탕 등은 최대한 늦게 접하게 하고 싶었으나, 어린이집에서 생일잔치를 하며 언니, 누나, 형, 오빠를 통해 초콜릿, 사탕을 접하니 시기에 비해 빨리 접하게 되었다. 밥 먹기 전, 과자는 절대 안 돼! 를 외쳤으나 시댁에 맡기다 보니 아이가 예뻐서 줬다고 이야기하시니 어쩌랴.

TV는 늦게 접하게 하고 싶다고 TV 구매를 늦췄으나 (지금 집엔 TV가 없다) 시댁과 친정에만 가면 TV로 뽀로로를 틀어 달라며 아우성이다. 시아버지가 첫째 아이가 천재라며 엄지를 치켜세우셔서 무슨 말인고 하니,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줬더니 36개월 아기인데도 스마트폰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유튜브를 선별해서 본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오! 마이 갓!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주시면 어떡해요. (이상한 영상에 노출되면 어쩔;)

신랑과 나의 관점에서 '절대 안 돼!'인 것들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장해제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늘 또 다른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늦은 밤, 바로 잠들지 않고 더 놀겠다고 아우성이다.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

 

'잘 부탁드립니다. 늘 죄송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분주한 출근길,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급하게 맡기고 나오며 철저한 '을'이 된다. 우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혹여 우리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더욱 조심하게 된다. 

날이 추워지고 밤이 길어져 시간은 아침 시간인데 어둑한 가운데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미안해. 엄마, 아빠가 바빠서. 주말에 또 좋은 곳에 놀러 가자.

죄송합니다. 회식이 잡혀서요. 죄송합니다. 야근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이미 두 아이를 잘 키워 시집, 장가보내셨는데 연세 많으신 양가 어른에게 손자를 또 부탁드리니 양가 어른에게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게 된다. 

이 상황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맞벌이 육아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처음학교로 유치원 접수, 첫째 아이 유치원 보내기 ; 맞벌이 부부 고충

처음학교로 우선접수는 끝난 상태고 오늘이 처음학교로 일반접수 첫째날이다. 처음학교로는 선착순이 아니며, 모바일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접수시 혼잡이 예상되어 미리 회원가입을 해두었기에 좀 더 수월하게 접수 할 수 있었다. 

'처음학교로'는 모바일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처음학교로 사이트 >> https://www.go-firstschool.go.kr/

결혼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관문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늘 아이와 연관이 되어 있다. 아무래도 맞벌이부부이다 보니 회사 출근과 동시에 내 몸이 내 몸이 아닌지라 (회사의 몸인가?) 늘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첫째 아이는 내년에 유치원을 간다 (가야한다)

'처음학교로'는 유치원 입학을 원하는 보호자가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유치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여 신청하고 유치원은 공정하게 선발된 결과를 알려줌으로써 학부모의 불편 해소와 교원의 업무를 덜어주는 입학지원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시접속자수가 많아지니 이런 에러가 발생하기도 한다.

유치원입학관리시스템 처음학교로

얼마전까지만해도 유치원 3곳을 쫓아가 줄을 서고, 번호표 추첨에 당첨되길 간절히 바라는 상황이 번번이 연출되었다고 한다. 어느 한 곳이라도 유치원이 되어야 하기에 (대학교가 아님에도) 온 가족이 총출동하여 접수를 하고 추첨을 기원했다고 하니 참 웃픈 현실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하루 하루 힘을 주는 두 아이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걱정하면서도. 산부인과를 가 보면 늘 산모가 넘치고 어린이집은 늘 무한대기이며 유치원 또한 클릭 한번을 위해 대기를 하는구나.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한 시설이나 환경은 더 열악한 듯 하다.

"내가 회원가입 했어."
"응. 잘했네. 내가 가입해야 하나 했어."
"선착순이 아니긴 하지만 빨리 해버리는게 속편하지 않겠어? 내가 접수해보고... 내가 회의나 외근이 잡히면 내가 가입한 아이디랑 비번 공유해줄게."
"응. 그럼 내가 접수하면 되겠다. 이번에 꼭 처가댁 근처 유치원으로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맞벌이부부인지라 집 근처 유치원이 아닌 친정 근처 유치원으로 접수를 했다. 유치원은 일찍 등원이 안되기 때문에 (다른 말로, 회사 출근이 너무 이르기 때문에) 친정에 먼저 맡길 생각이었다.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이 2살 터울이기에 첫째 유치원만 잘 들어가면 둘째는 첫째의 득을 좀 보지 않을까 싶다. 재원생 형제 및 자매가 다니고 있다면 우선모집 지원이 가능하다. (어린이집도 마찬가지) 자격조건이 되어야 우선모집 지원이 가능하기에...

상대적으로 첫째에 비해 아직 어린 둘째

아마 대다수가 나처럼 일반모집으로 지원하는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된다.

친정 근처 유치원에서 탈락하게 되면 다시 첫째는 어린이집으로 다녀야 할 듯 하다. 나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나이인지라 어린이집 역시, 유치원 탈락을 대비해 대기를 걸어두어야 한다. 

맞벌이다 보니 당연히 교육과정+방과후 과정을 선택해 접수했다. 방과후과정으로 접수 할 경우에는 맞벌이 부부 등 관련 증빙서류를 해당 유치원에 제출해야 한다. 교육청 정책에 따라 방과후과정 증빙서류 없이 접수가 가능한 곳도 있다고 하니 맞벌이 부부가 아님에도 어쩔 수 없이 방과후과정까지 가능한 유치원을 찾고 있다면 유치원별 모집요강을 확인하고 접수하는 것이 좋겠다. 

 

지난 주말, 유치원설명회를 다녀오고 난 이후, 첫째는 더욱 더 유치원에 가고 싶은가보다. 이제 만3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정어린이집만 다니던 첫째가 이제 정말 많이 컸음을 느낀다. 자신의 의사를 언어로 표현하는가 하면 화장실을 스스로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다 큰 아이 같다. (둘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맞벌이부부라 조금은 미안하고 조금은 서글프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도 많고 함께 나누고픈 것도 많은데 돈의 제약과 시간의 제약을 많이 느낀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미안함과 서글픔을 없애기 위해 더 아이에게 사랑으로 보살피고 살펴주어야겠다.

[워킹맘 육아일기] 22개월 아기 이마봉합수술 1년 그 후, 이마봉합수술 상처관리 방법

이미 아이가 다친 지 1년여 가까이 흘러 첫째 축복이 이마는 다 아물었다. 그리고 그때 일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게만 느껴지는데 여러번 방명록이나 댓글로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아 다시 글을 올린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이쪽 분야로 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하나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전문가 못지 않을 정도로, 아이가 다친 직후, 여러 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관련 전문의에게 많이 질의하고 답을 구했다. 그리고 병적으로 집착하며 관리, 또 관리했다. (내가 진작 이렇게 공부했으면 의사가 되었을 듯;)

이마의 상처는 가로 방향이냐, 세로 방향이냐에 따라 아무는 속도가 다르다. (피부 방향과 상반되면 회복 속도가 더디다) 축복이는 세로 방향인자라, 상처가 더 눈에 띄며 회복 속도가 더뎠다. 

[나를 말하다/워킹맘 육아일기] - [워킹맘 육아일기] 찢어진 이마 봉합 수술 후, 6개월이 지나고 난 후 - 지금도 여전히 관리중

[나를 말하다/워킹맘 육아일기] - [워킹맘 육아일기] 22개월 아기 찢어진 이마 상처 관리 - 메피폼, 스테리스트립, 켈로코트 병행

[나를 말하다/워킹맘 육아일기] - [워킹맘 육아일기] 22개월 아기, 이마 봉합수술 받다




1. 스테리스트립의 사용방법
스테리스트립을 보통 하고 나면 매일 갈아주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더 위생적일거라 생각해서 말이다. 그러나 절대, 스테리스트립은 자주 갈아주면 안된다. 자연스럽게 떨어질 때까지는 건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위생적인 측면이라며 스테리스트립을 일부러 갈아주려고 떼어내는 과정에서 더 상처가 벌어진다. 

상처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스테리스트립을 부착한다

스테리스트립의 용도는 찢어진 상처를 잘 아물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 몸의 치유 능력을 믿어야 한다. 보조만 잘 해주면(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괜히 더 스테리스트립을 떼어내고 다시 붙이고 떼어내고 붙이면 떼어내고 붙이는 과정에서 상처는 더 벌어진다. 

흔히 말하는 흉이 생기는 이유는 상처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상처가 최대한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게 1순위다.


2. 흉터연고
흉터연고는 종류가 다양하다. 이전 글에도 소개한 적이 있으니, 흉터연고에 대해 알아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대다수의 의사분들이 이야기 한다. 흉터가 없을 수는 없다고.

다만, 정도의 차이. 
꿰매는 수술을 하고 나면 당연히 딱지가 앉기 마련. 흉터연고는 딱지가 있는 상태에서 바르는 것이 아니다. 
딱지가 떨어지고 다 아문 상태에서 더 이상 보기 싫게 흉 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르는 것이다. 봉합사 제거 후, 피부가 어느 정도 아문 상태에서 흉터 연고를 발랐다. 괜히 흉터가 신경쓰인다며 아물기 전에 흉터 연고를 바르는 것은 비추다. 

흉터연고와 재생연고는 역할이 다르다. 연고의 사용법에 맞춰서 사용해야 한다. 

3. 메피폼
사실 이거 도대체 언제까지 붙여야 되는거야? 싶을 정도로 오랜 기간 사용했던 것이 메피폼. 아이의 피부 봉합수술 이후 관리하고 현재 시점이 되기까지 다시금 느끼는 것은 상처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외선 차단' 이라고 생각한다. 

한 여름에 다친 이마인데 겨울까지 메피폼을 붙였다


실제 응급의가 "흉터가 완전히 없을 수는 없다. 다만, 흉터를 덜 나게 하는 방법은 자외선 관리다." 라는 말씀을 해 주셔서 그에 맞춰 자외선 차단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예쁜 아기 얼굴의 이마 상처, 맴찢


메피폼 대신 흉터연고를 계속 사용해도 된다. 그러나 메피폼을 따로 구매하여 관리한 이유는 메피폼이 상처 부위 자외선 차단을 효과적으로 해 주기 때문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 유아 자외선 차단제가 있다고는 하나, 그 성능도 못믿겠고. (자외선차단제를 잘 바르고 난 후, 나중에 잘 씻겨야 되는데 상처 부위가 더 벌어지지 않게 잘 씻길 자신도 없었다.) 자외선 차단제는 일정 시간 이후 덧바르는게 좋은데 우리는 맞벌이라 늘 아이와 함께 있는 건 아니니. 그리고 한참 뛰어 다니기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더운 날씨, 땀으로 인해 효과도 보장 못한다. (하필, 부위도 이마인지라)

어린이집에 메피폼 여분도 꼭 함께 챙겨 보냈다


메피폼은 밀착되어 자외선 차단이 됨과 동시에 하루 종일 부착하고 돌아 다니니 부담이 없었다.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그리고 외출할 때마다 부착했다. 

물론, 따가운 부담이 있다. 

"어머, 이마 다쳤어? 어떡해." 라는 주의의 시선. 
"이제 그만 떼어도 되지 않니?" 라는 어른들의 타박. ㅠ_ㅠ

만약 그러한 시선과 이야기들을 버텨내지 못하면 메피폼을 6개월 이상 붙이고 다니기 난감하다. 

이마봉합수술 이후, 아이 이마는 늘 메피폼과 함께;;

현재 첫째 아들, 축복이는 이마 봉합 수술 이후, 1년이 지났으며 흉터는 사진으로는 알 수 없다. 사진으로 흉터를 담아 내는 게 더 힘들 지경. 눈으로는 이마에 상처를 찾으려고 신경쓰면 발견 가능. 그냥 바라봤을 때는 잘 알 수 없다. 

이제는 '이마상처' 숨은그림찾기

 

사고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참담하고 암울하고 모든 것이 내 잘못 같기만 하다. 그런 마음 때문에 더 치열하게 아이 상처가 없던 그때의 깨끗한 이마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 했던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애기애기했던 때의 깨끗한 이마


사고는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온다. 워터파크를 가는 순간부터 긴장했다. 물놀이를 하면서도 아이만 주시했으며 물놀이가 끝나고 목욕탕으로 이동해서도 혹시 모를 사고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신발을 신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그 순간에 사고가 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아이를 두고 어른들이 하신 그 말씀이 이제는 너무나도 와닿는다. 



(*) 아이 상처 관리 잘 해 주세요!

[워킹맘 육아일기] 날 당황하게 만든 35개월 아들의 말 "아빠는 아빠지!"

[워킹맘 육아일기] 날 당황하게 만든 35개월 아들의 말 - 호칭을 이해하다

택시를 이용하거나 공유차만 이용하다가 애가 둘이 생기고 나니 도저히 안되겠다며 작은 SUV 를 구매. 카시트는 조금 더 있다가 사자- 라고 이야기를 나눴으나, 역시 안전을 생각해 더 미룰 순 없다며 카시트를 구매. 역시, 아이가 있으니 자금계획이 생각한대로 잘 굴러가진 않는다.  

카시트를 사자마자 당연하게 카시트는 뒷좌석에 나란히 설치. 처음 카시트에 앉아보는 첫째와 둘째. 카시트에 적응하지 못해 울기도 하고 거부한다는데, 두 아이는 카시트에 앉아선 서로 마주보며 너무 좋댄다. (이럴 때면 둘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카시트를 구매함으로 인해 두 아이만큼이나 행복해 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신랑이다.

차를 탈 때면 뒷좌석에서 초조해 하며 두 아이를 보조하던 신랑은 드디어 앞좌석으로 입성했다. 두 팔에 자유를 얻은 신랑은 차를 탈 때면 보조석에 앉아 있는 애교만땅이다. (아, 참고로 우리집은 내가 드라이버. 신랑은 면허가 없다.) 

신랑과 연애 2년, 결혼 3년차. 아직 신혼. 2살 연하인 신랑은 종종 '오빠' 라는 말을 종종 듣고 싶어하는 듯 하다. 어떤 자랑거리를 늘어놓을 때면 마지막 멘트는 꼭 '오빠 멋있지?' 로 끝맺음을 하곤 한다. 어떤 날은 '어우, 우리 오빠 최고!' 라는 리액션을, 또 때로는 '우쭈쭈, 우리 신랑 멋지다!' 라는 말로 대체를 한다. 

다정한 신랑, 자상한 아빠를 만난 것도 참 큰 복이다

 

신랑 덕분에 애교가 좀 늘긴 했으나, 좀처럼 말이 없고 무뚝뚝한 나와 달리, 신랑은 말이 많고 애교가 많으며 섬세한 남자다. (남녀가 바뀐 것 같다.)

퇴근길, 신랑 회사 앞에서 신랑을 픽업하는 순간부터 재잘 재잘 신랑의 수다가 시작된다.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픽업해 집으로 가는 5분 남짓한 시간에도 신랑이 못다한 말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문제는, 아빠를 쏙 빼 닮은 두 아이 역시,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 재잘재잘 말이 많다는 것이다. 난 참 복이 많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이렇게나 화자가 많으니 말이다. 

대답을 할 때까지 물어보는 아이와 자신의 이야기에 어서 공감해 주길 바라는 신랑 사이에서 종종 어느 대답을 먼저 해야 할 지 골 때리는 상황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좋다. 

"아, 오늘 회사에서 상무님께 보고를 했는데, 생각보다 잘 한 것 같아. 칭찬 받았어. 어때? 오빠 멋있지?"
"오, 멋있네! 오빠, 최고!" (엄지척!)

늘 그렇듯, 일상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뒷좌석에 있던 첫째가 갑자기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마치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어린이집에서 대다수의 시간을 보내는 첫째 아들

 

"아하하... 아빠! 아빠는 아빠! 내가 오빠!"

 

...?!

 

"아빠는 아빠지! 아빠가 왜 오빠야? 아하하... 오빠는 나! 아빠는 아빠!"

 

...

 

"아, 그렇지. 맞아. 빈이가 오빠지. 아빠는 아빠지. 맞아."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때려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빠를 닮아 참 밝다

 

그렇지. 첫째 아이의 입장에선 아빠는 아빠지.

 

어른들이 종종 아이 앞에서 호칭에 신경써라, 호칭에 주의하라, 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첫째 아이 입장에서 오빠는 여동생이 있는 본인일테고. 뒷좌석에 앉아서 둘의 대화를 이해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모든 대화를 다 이해하고 있고, 호칭까지 정정해 줄 정도로 아이가 컸다는 생각에 정말 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그리고 본인이 아는 걸, 엄마, 아빠는 왜 모르지? 그걸 왜 몰라? 하며 깔깔 웃으며 알려 주는 귀여운 첫째 녀석의 행동이 무척 귀여웠다. 언제 크지? 싶었던 아이가 어느 덧, 35개월. 곧 36개월이구나... :)

[워킹맘 육아일기] '나도 엄마랍니다' 이제 제법 엄마 같네?

작년 여름, 첫째 아이의 이마가 찢어지는 사고로 인해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은 처음 가 보았다. 이번에는 나의 아이들이 아닌 '나' 다. 올해만 해도 발목 수술과 허리 통증에 이어 몇 번째 병원행인지 모르겠다.

난 그대로라고 생각하는데 내 몸은 전과 같지 않다. 순식간에 달리진 내 몸. 내 몸인데, 내 몸 같지 않다.

흠칫- 그러고 보니 이 멘트, 뭔가 익숙하다. 

"아이구, 아이구, 허리야. 너도 나이 들어봐.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아. 젊은 게 좋은거야."

평소 늘 달달한 부부 사이지만, 종종 신랑과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는 날이면 늘 속이 쓰렸다. 마음이 아픈게지. 이 날도 신랑과 소소하게 말다툼을 했다. 정말 별 것 아닌 것으로. 물론, 6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풀었지만. 보통은 그렇게 풀고 나면 답답한 속이 뻥 뚫리곤 했는데 심상찮았다. 속이 영 갑갑했다. 

"이상해. 속이 너무 쓰려."
"약 먹는게 나으려나?"

신랑이 약국에 가서 속쓰림 약을 사와 약을 먹고. 평일 일상이 늘 그렇듯,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픽업해 와 먹이고 씻기고 정신이 없었다. 평범한 맞벌이 부부의 일상이었다.

일하고 돌아와 녹초가 된 엄마, 아빠와 달리 남매는 늘 밝다

밤 11시가 넘어서자, 통증이 더 심해졌다. 속이 쓰리다- 라는 감각에서 이젠 명치 부근의 뻐근함이 느껴졌다. 꽉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묘했다. 

순간, 심장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 라는 공포가 밀려와 신랑을 붙들어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도착은 12시 전에 했으나, 대기가 있어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어찌 저찌 증상을 설명하고 심전도 검사와 혈액검사 X-ray 촬영까지 마치고 링겔을 맞고 대기.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약화되었고 담당의는 위염 내지는 역류성 식도염이 의심된다고 했다. 검사로는 딱히 두드러지지 않는 관계로 증상이 계속되면 병원을 재방문할 것을 권고받았다.

응급실에서 처방받은 약 먹고 어서 낫자!

예전과 몸이 다르다. 그리고 예전과 마음도 다르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말고 약도 멀지 말고 버티자던 예전의 똥고집은 어디 가고, 조금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싶으면 내 몸을 챙기게 된다. 

나를 챙기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가족을 챙기기 위함이다. 

내가 아프면 내 아이들은 어떡해. 내 남편은 어떡해.

결혼하고 아이를 임신하고 갓 출산했을 때만 해도 과연 내게 모성애가 있나, 엄마의 자격이 있나 끊임없이 되묻곤 했다. 아마도 그 기준이 나를 키우시느라 많은 희생을 하신 '엄마' 를 떠올렸기 때문인 것 같다. 

링겔을 다 맞고 약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3시 30분. 2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다시 출근 준비를 했다. 

조금은 멀고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엄마' 라는 옷이 이제 조금 내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맞벌이부부이다 보니 퇴근 후, 함께 저녁 식사를 먹으려면 시간이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신랑과 함께 하는 저녁은 메뉴가 뭐건 늘 맛있다

때론 두 아이를 케어하느라 두 아이를 재우고 밥을 먹기도 일쑤였다. 야식 겸 저녁식사가 되고. 또 졸리면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잠들기도 했다. 아마 그런 패턴이 계속되다 보니 응급실까지 가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부부 역시 건강을 잘 챙겨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