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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 생각주머니가 머리 밖으로 나왔어요 - 잔혹한 사건현장이 무섭지 않은 이유

· 댓글개 · 버섯공주

"엄마, 사람 머릿속에는 생각 주머니가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예요."

다섯 살 딸아이가 동화책을 읽고 자신이 느낀 점을 나에게 이야기해주다 갑자기 '생각주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이 이렇게 생각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할 수 있는 건 머릿속에 있는 '생각주머니' 때문이라는 이야기였다.

"행복이도 '뇌'를 '생각주머니'라고 표현하네. 유치원에서 '생각주머니'라고 배우는 걸까?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그러게. 유치원에서 배우는 건가? 아니면 버섯 딸이어서 그런가?"

사람 머릿속에는 생각주머니가 있어요

내가 여섯 살, 유치원에 다니던 시기. '뇌'를 '생각주머니'라 표현한 큰 사건이 있었다. 당시 여섯 살이던 나는 등 하원 유치원 버스에 3명의 등하원 보조 선생님과 함께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집 앞에 버스가 서면 다섯살에서 많게는 일곱살인 유치원생 친구들이 유치원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잘 갈 수 있도록 보조해 주시는 선생님이 세 분이셨다.

학부모들 사이에 꽤나 유명했던 큰 규모의 유치원. 등하원 유치원생이 많다 보니 버스 또한 시내버스 사이즈 정도로 상당히 큰 버스였다. 사고가 일어나던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어느 한 지점에서 버스가 섰고 몇몇 유치원생들이 유치원 보조 선생님의 보조를 받으며 버스에서 내렸다. 나는 버스 안 창가에서 그 친구들을 향해 잘 가라고 손을 흔들었다. 

친구들이 모두 내리고 아이들의 하원을 도우셨던 보조선생님이 다시 버스에 탔다. 그리고 버스가 대로로 나가기 전, 잠시 후진을 하는 듯했다. 버스가 후진을 하는데 뭔가에 부딪힌 것 같기도 하고 뭔가를 밟은 것 같은 버스가 다소 이상하게 덜컹 거리며 움직였다. 뭔가를 밟은 것 같아 다시 버스가 앞으로 전진했고 그제야 그 형체가 보였다.

곧이어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에 타고 있던 3명의 보조 선생님이 뭔가를 보시곤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큰 괴음을 지르며 흐느껴 울기 시작하셨다. 1명, 2명, 3명... 그리곤 유치원 보조 선생님뿐만 아니라 유치원 버스에 타고 있던 몇몇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보조 선생님들은 곧장 여러 아이들을 최대한 꽈악 안아 아이들이 창가 밖으로 보이는 광경을 보지 못하도록 막으시곤 아이들을 달래기 시작하셨다.

나는 창가에 앉아 있었던 터라 창가 밖으로 무엇이 있는지 보았다. 분명, 방금 전까지 손을 흔들고 헤어졌던 친구 중의 한 명인데 그 친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얼굴이 뭉개져 있었고 붉은색이 아닌 검은색에 가까운 검붉은 피와 뒤섞여 머리 밖으로 뇌가 나와 있었다. 곧이어 경찰과 구급차 여러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바로 경찰로 인계되었고 나를 비롯한 어린 친구들은 다른 차량으로 이동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35년 가까이 흐른 사건임에도 아직까지 그 광경은 잊히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잊혀지지 않는 그 현장의 모습이 무서운 기억이거나 두려운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다. 난 그 뒤로도 잠을 아주 잘 잤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일상생활을 했다. 친구가 죽었다는 인지보다는 '피는 빨간색이 아니라 검은색에 가깝네.' '생각주머니가 저렇게 생겼구나.' '친구가 하늘나라에 갔어.' '큰 차 뒤로는 위험하니 지나가면 안 돼.' 정도로 받아들인 것 같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인지하기 전의 나이인 데다 그 당시 상황에 대한 어른들의 대처방법에 더 집중해서 그런 듯하다. 

교통사고는 무섭다

당시 버스에 함께 타고 있었던 보조 선생님들이 당신들도 무서워 엉엉 울면서도 아이들을 꼭 껴안고 사건 현장을 보지 말라며 눈을 가리기도 하고 달래주며 안아주던 모습이 더 깊이 뇌리에 박혔다고나 할까. 내가 집으로 도착하기도 전에 유치원 사고 소식을 먼저 들으신 어머니는 정작 사고 현장을 목격한 나보다 더 놀란 듯 보이셨다. 

"괜찮아? 괜찮아?" 

함께 하원하던 동네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도 모두 많이 놀란 듯 보였다.

"엄마, 친구 생각 주머니가 머리 밖으로 나왔어요."  

담담하게 울지 않고 이야기하는 내 모습에 어머니는 많이 놀라셨다고 한다. 그리고 '뇌'를 뜻하는 표현을 '생각주머니'라고 표현하는 모습에 또 놀랐다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내 딸이 내게 사람의 머릿속에는 '생각주머니'가 있다는 표현을 하니, 당시 사고가 떠오르기도 하고 '뇌'라는 표현을 '생각주머니'라고 똑같이 표현하는 내 딸이 신기하기도 하다. 

어린 나이에 잔혹한 사고 현장을 목격했으니, 분명 좋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난 너무나도 멀쩡하게 잘 살고 있다. 오히려 그 사건 이후로 성인이 되어 교통사고 현장에서 우연히 사체를 목격하기도 했지만 덤덤했다. 피로 얼룩진 현장의 무서움보다 그 사건이 일어나는 과정이 무섭다고나 할까.

사고의 실질적인 가해자라 할 수 있는 운전기사 아저씨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분이셨다. 항상 웃으며 인사하시고 친절하고 배려심이 많은 분이셨으며, 함께 탑승했던 보조 선생님들도 모두 상냥하고 좋은 분이셨다. (최소 어렸을 적 내 기억으론) 그럼에도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는 늘 예상치 못한 순간 찾아온다

(사건 현장)은 무섭지 않다. 그 원인이 되는 (사건/사고)가 무서울 뿐이다.

 

보통 어린 나이에 무서운 사건을 목격한 아이들을 상대로 잔혹한 광경을 목격했으니 분명 정신적으로 영향이 갔을 거라며 치료가 필요할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한다. 나는 여섯 살, 그런 광경을 봤으니 그 후유증으로 비슷한 광경이나 피를 보면 자지러질까? 전혀 아니다.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아이들은 약하지 않다.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좀 더 삶과 죽음에 대해 깨우치고 죽음의 무서움을 인지한 나이였다면 똑같은 사건 현장을 목격하고도 난 더 큰 공포심을 느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런 무서움보다 예쁜 것을 더 많이 보고 예쁜 생각을 더 많이 했던 나이라, 그 잔혹한 사건 현장을 보고도 그 친구가 (예쁜) 하늘나라에 갔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저 그 친구와의 이별이 아쉽고 속상했을 뿐이다.

건강하게 이대로만 자라기를

두 아이를 데리고 함께 길을 거닐 때면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한다.

"아직 우리 행복이와 축복이는 어른만큼 키가 크지 않기 때문에 차 뒤로 가면 운전하는 사람이 우리 행복이와 축복이를 못 볼 수 있어. 그러니 차 뒤로 가면 안 돼. 알겠지? 그리고 주차장에서는 꼭 어른 손을 잡고 가는 거야. 우리 행복이와 축복이 다치면 엄마가 속상해서 엉엉 울잖아."

어렸을 적, 생각주머니와 함께 검붉은 피가 얼룩진 현장을 목격한 바, 나는 사고가 얼마나 무서운 지 안다. 죽은 사람이 무섭거나, 피가 무서운 게 아니다. 사고가 무서운 것이다. 한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할 수 있으니.

난 오늘도 더 좌우를 살피며 운전을 하고, 난 오늘도 아이들의 두 손을 꼭 잡으며 길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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