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각자 소속된 직장에서 일이 바쁘다 보니 좀처럼 시간을 내어 모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 남자친구가 같은 직장 내 여자동료에게 소개팅을 시켜주려고 소개팅 날짜를 잡으려던 찰라, 뒤늦게서야 그 여자가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와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그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자가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그 존재를 숨기는 것은 '남자친구가 창피하기 때문' 이라는 말에 열띤 토론 아닌 토론이 벌어졌습니다.
"여자들이 종종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곤 하는데, 그건 남자친구가 창피하니까 숨기는 거잖아."
그 말을 듣자 마자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버섯 너도 연애초기,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알리지 않은 건 남자친구가 창피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잖아." 라는 말을 들은 것 같아서 말이죠.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단계에선 콩깍지가 단단히 씌어선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감정만 풍선처럼 크게 부풀어 올라 있었으니 말이죠. 그리곤 세상에 남자친구와 나, 단 두 사람만 그 풍선을 잡고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콩깍지가 서서히 벗겨지면서 세상의 눈으로 다시금 남자친구를 바라 보게 됩니다. 하트만 가득 차 있었던 제 눈이 어느 새, 세상이 말하는, 타인이 이야기 하는 조건과 자격 위주로 남자친구를 재고 판단하고 있더군요.
그러면서 정말 많이 다퉜습니다. 평소 같음 퇴근길, 남자친구가 건네는 작은 사탕 하나에도 폴짝 거리며 좋아했을 텐데, 세상의 눈으로 남자친구를 보니 '고작 사탕?' 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제 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남자친구를 보는 제 눈이 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난 변하지 않았어. 다만, 이전보다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게 된 것뿐이야." 라고 합리화 했습니다.
갑자기 냉정해진 제 모습에 남자친구는 그저 '더 잘 할게'라는 말을 거듭했지만 좋아하는 감정만으로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거라며 세상의 눈으로만 남자친구를 판단하려 했습니다.
콩깍지에 씌어 마냥 좋기만 하다가 세상의 눈을 갖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까운 몇몇 지인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한 후, 돌아온 그들의 쏴한 반응 때문이죠.
제가 가장 믿고 따르는 선배 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음을 알렸습니다. 축하 받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죠.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아직 학생이라는 신분, 명문대학이 아니라는 점, 그렇다고 집안이 아주 잘 사는 건 아닌 것 같고… 하나하나 꼽으며 알려주더군요.
"네가 지금 콩깍지가 씌어서 남자를 제대로 볼 수 없는 거야. 좀 더 크고 넓게 봐야 해. 지금 이 남자가 전부인 것 같지? 세상에 남자 많아."
나름 믿고 따르는 언니들이건만, 모두 축하의 인사 이전에, 뭐 하는 사람인지를 묻고선 다시 생각해 보라고만 했습니다. 그 이후, 직장에서며 친구들에게며 남자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숨겼습니다. 타인의 '헤어져' '별로인데' 라는 말에 더 이상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말이죠.
솔직히 세상의 어떠한 말에 휘둘리지 않을 만큼 내 남자친구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면, 남자친구가 있음을 당당히 말했겠지만 세상의 시선과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을 자신은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말이죠. (ㅠ_ㅠ)
그러면서 천천히 남자친구와 만나면서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확신이 들었을 때에야 주위에 알렸습니다. (주위에서 헤어지라고 하건, 뭐라고 하건 휘둘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을 때)
만약 끝까지 '세상의 눈'을 고집하고 조건만을 내세웠다면 남자친구와 얼마 지나지 않아 헤어졌을 겁니다. 그렇다고 좋아하는 감정 하나만으로 '콩깍지가 씌어진 눈'으로 남자친구를 바라보았다면 당장에야 좋았겠지만 콩깍지에서 벗어나는 어느 한 순간, 곧장 이별로 직행했겠죠. 좋아하는 감정만으로 되지 않는 것이 연애, 사랑이기도 하지만, 조건만을 따지는 세상의 눈으로만 되지 않는 것도 연애, 사랑입니다.
두 개의 눈이 적당히 타협했을 때, 연애가 지속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감정적이어서도 안되고, 지나치게 계산적이어서도 안되고 말이죠.
당장의 재산이나 재물보다는 사회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친화력과 능력, 노력을, 당장의 '너무 좋아 죽겠어~' 하는 감정보다는 동반자로 함께 하는데 서로를 얼마나 아끼고 배려하는지를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뭔가 횡설수설하지만, 뭐. 보통 여자가 남자친구가 있어도 숨기는 이유는 창피해서다- 라는 단순한 논리에 대한 반박을 하고 싶었습니다.
아, 오늘 포스팅은 정말 결론 없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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