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아이의 기억력, 아이 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면 안되는 이유

두 살 터울의 남매는 종종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우애 돋는 모습을 연출해 주곤 한다. 그리고 또 때로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서로 잡아 먹을 듯이 다투곤 한다. (표현은 이렇게 하지만 막상 다툰다고 해봤자, 말다툼 하나 어느 한쪽이 우는 정도)

두 아이가 다툴 때면 "엄마, 아빠가 사랑하는 축복이와 행복이인데 이렇게 다투면 엄마, 아빠가 속상한데, 어떡하지? 축복이 행복이 떨어져서 살거야?" 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 그럴 때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싫다고 소리지르며 서로를 부둥켜 안는다. 서로 그렇게 다투면서도 서로를 무척이나 아끼고 좋아한다.

아이 앞에서 부부 싸움을 하면 안되는 이유

또 두 아이가 서로 '내거야!' 를 외치며 다투고 있어 둘이 이렇게 싸우면 속상하다고 이야기 하니 첫째가 나즈막한 목소리로 질문을 한다. 

"근데 축복이가 아기였을 때 엄마랑 아빠랑 엄청 싸웠잖아."

흠칫-

"그랬어?"

"응. 축복이가 아기였을 때 엄마랑 아빠랑 소리 치면서 싸웠어."

"아, 그 때는..."

 

미안해...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결혼 초기, 신랑과 얼마나 많이 다퉜는지 모른다. 주된 이유는 부부 사이의 문제라기 보다 시댁과의 갈등이 주 원인이었다. 지금이야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시댁 어른들이 편하고 왕래도 잦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결혼 초기 시댁 집에 들어가 살면서 예상치 못한 마찰이 잦았다. (사실, 처음부터 분가를 하는 게 나았을 듯)

중간에 낀 남편 입장에서 중재자 역할을 능숙하게 잘 하는 것도 아니었고 (결혼이 처음이다 보니- 응?) 그러면서 시댁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남편은 맏이 아들로서의 역할도 잘 하고 싶었고, 한 아내의 남편으로서의 역할과 한 아이의 아빠로서의 역할도 잘 하고 싶었을테다. 제일 어려운 중간자의 역할.

아이가 태어나고 분가를 결정하면서 자연스레 시댁과의 갈등으로 곪았던 상처 부위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물다가 다시 또 덧나는 부위가 있듯이, 회복은 쉽지 않았다.

축복이가 태어난 지 10개월 정도 되던 시기, 힘든 형편에 좁은 원룸 형태의 옥탑방으로 신혼집을 마련하다 보니 자연스레 아이에게 부부가 다투는 모습이 노출되었다. 

 

아침 7시 30분마다 어린이집 문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리던 남매

 

10개월 된 아기가 뭘 알겠냐만은, 엄마 아빠의 모습이 아이의 눈엔 꽤나 무섭게 느껴졌나 보다. 나도 기억을 한다. 우리 부부의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아이의 울음 소리 역시 상당히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러다 아이가 어떻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축복이는 자지러지게 울었다. 흔히들 아이는 부모가 싸우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감정을 느낀다고 한다. 

나 역시, 나의 부모님이 다투는 모습을 보고 그런 감정을 느꼈으니 이 아이가 느꼈을 감정도 어떠했을지 대충 짐작이 된다. 첫 결혼생활이었고, 첫 부모였던지라 많은 부분에서 미숙했다. 자다가 깨서 자지러지게 우는 축복이를 어르고 달래 재운 기억이 있는데, 축복이는 그 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본인이 '아기였을 때' 라는 표현을 해 가며 당시를 회상한다. 지금도 아기인데 말이다. 축복이에게 무척이나 미안하다. 많이 힘겨웠던 시기인지라 부부 다툼이 있었는데 그 모습을 여태 기억하고 있다니. 

축복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부모가 눈 앞에서 소리를 치며 다투니 무서워서, 그 충격으로 축복이가 당시 상황을 기억을 한다고 생각했다.

축복이는 어렸을 적 이마가 다쳤을 때의 일도 기억을 하고 있었다

 

퇴근 후 친정집에 들려 두 아이를 데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늘 그렇듯 카시트에 행복이를 태우는데, (행복이는 이제 28개월이다.)

"이모가 여기 앉고, 외할머니가 앞에 앉고... 그 때 그렇게 갔었잖아."

딱 한 번. 행복이와 이모, 외할머니가 함께 근거리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행복이가 12개월이 되기도 전에 있었던 일이다. 걷지도 못하던 시기, 말도 못하던 시기의 일. 그저 외할머니 품에 안겨 같이 외식했던 그 단 한번의 일인데 어떻게 기억할까? 아이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기억하는걸까.

말만 못할 뿐.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듣고 느낀 그 감정을 고스란히 기억해뒀다가 말을 할 수 있는 시기 부모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내뱉는 느낌이다. 첫째 축복이도, 둘째 행복이도 종종 '내가 아기였을 때' 라는 이야기를 꺼내며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는데 무척 놀랍다.

왜 어른들이 아이 앞에서 행동을 조심하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아이가 아직 어리니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

맞다. 정말. 아이들의 세계는 놀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