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에 대하여, 결혼이란 무엇인가

또 다른 한 주가 시작되었다. 또 다른 월요일이 나를 찾아왔다. 바쁘게 출근 준비를 하고 출근길을 나선다.

이 글을 '지금은 연애중' 카테고리로 분류할까 하다가 '워킹맘 육아일기' 카테고리로 분류했다. '경어체'가 아닌 '평서체'를 쓰기 위해. 이제는 속마음을 이야기하기엔 '평서체'가 더 편해졌다.

직장 후배가 종종 내게 묻는다.

"결혼하면 좋아요? 정말 좋아요?"

과거의 내 모습이라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도 수시로 결혼한 언니들을 붙잡고 결혼을 하면 좋냐- 남편을 믿을 수 있냐- 바람 피우면 어떡하냐- 이런 저런 질문을 참 많이도 했다.

최근에 종영한 '부부의 세계'를 신랑과 함께 보며 꽤나 울었다. 과거의 내 모습이 떠올라, '부부'가 초점이 되는 드라마임에도 난 초반부터 지독하게 '준영이'에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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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결혼'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우리 부부, 우리 가족에게 집중된 단어라는 느낌이 들지만, 오늘의 시간이 오기까지 난 지독히도 '부모님'께 집중된 단어였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제일 먼저 우리 부모님이 먼저 생각났으며 지독히 불행하며 불운한 단어로 와닿았다. 결혼은 절대 해선 안되는 것- '엄마'라는 존재의 철저한 희생이며 '아빠'라는 존재의 지독한 이기심이라 생각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부모님을 통해 처음으로 '결혼'이라는 단어를 배웠기 때문이다. 신랑과 결혼 약속을 하며 여러번 강조하기도 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기에 솔직히 두렵고 무섭다고-

행복하고 단란한 가정 아래 커 온 친구들 조차 결혼을 앞두고 두려움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지라 더 무섭고 더 두려웠다. 나도 부모님과 같은 결혼의 '실패'를 맛보게 될까봐. 이제는 결혼생활에 있어 '성공'이나 '실패'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으며 타인의 사례가 내 사례가 될 수 없고, 부모님의 사례가 내 사례가 될 수 없음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다. 오로지 나의 노력과 배우자의 노력이 우리의 결혼생활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것을 받아 들이기까지가 참 많이도 힘들었다.

그래서 철저히 타인의 사례를 분석하려 했고, 타인의 행복 여부를 통해 결혼생활을 가늠하려 했던 듯 하다. 그래도 짧게나마 결혼생활을 하며 경험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부모님의 의지가 아닌 우리의 의지

시댁도 친정도 금전적으로 여유롭지 않으셨고, 우리를 도와줄 형편이 되지 않으셨다.

철저히 우리는 우리 부부의 자금 계획을 세워 움직여야 했다. 오피스텔 전용면적 5평 남짓 공간에서 월세로 신혼생활을 시작해 아이가 태어나면서 조금 더 넓은 옥탑방으로 옮기게 되었고 두 아이가 태어나면서 엘리베이터가 있는 13평 남짓의 빌라로 이사했다. 지금 살고 있는 수도권 내 신축 아파트로 이사를 오기까지 참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신랑과 이전에 살던 동네를 찾을 때면 우리 참 좋았지? 라며 미소짓는다. 배불뚝이 만삭 임산부로 5층 옥탑방을 엘리베이터 없이 올라갈 때에도 몸이 잠깐 힘들었지, 퇴근 후 신랑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당시엔 TV도 없었다.) 아, 물론 검지손가락만 바퀴 벌레를 보고 많이 힘들긴 했다. 덜덜덜.

우리만 좋으면 됐다. 신혼이기에 누릴 수 있는 그런 베짱은 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80대 이상의 노부부가 되어 힘겹게 사는 것보다 좀 더 젊을 때의 고생이 낫다며 말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 보다 '우리만 좋으면' 이라는 생각으로 신혼 생활을 하면 좋겠다.

남들의 시선 따위!

그렇기에 우리 부부는 양가 어른의 이런 저런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철저히 우리 부부가 우선 순위가 되었다.

결혼을 하더라도 '누구엄마', '누구아빠'는 되지 말 것

출산을 앞두고 산후조리원 투어를 시작하면서 듣게 된 낯선 말. '누구(아기이름) 어머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의 이름(태명)과 함께 듣게 된 '어머님'이라는 표현이 무척 낯설었다. 

신랑과 결혼을 하며 '누구(아기이름)엄마', '누구(아기이름)아빠' 라고 부르지 말자는 약속을 했다.

아이들에게 표현할 땐 '엄마', 아빠' 라는 표현을 쓰지만, 서로를 부를 때는 애칭을 부른다. 그래서 두 아이가 없을 때나 두 아이가 잠들고 난 이후엔 연애할 때와 다를 바 없이 애칭을 부르며 투닥거린다. 

연애를 하며 결혼계획을 짤 때 신랑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결혼하고 나서 '누구아빠'라고 부르거나 '누구엄마'라고 부르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물론 내 자식의 아빠가 맞고 엄마가 맞으니 그 호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으로부터 불리는 것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내 짝이 나 자신을 그렇게 부르면 어느 샌가 자신의 이름(존재)이 없어지는 것 같아 속상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도 오래도록 자신의 이름을 달달하게 불러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부부의 날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두 아이를 각각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낸다. 둘째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 가방에 어느 날 맥주 두 캔과 안주거리가 포장되어 들어 있었다. '부부의 날' 기념으로 원장 선생님이 준비해 주신 선물이었다. 우선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는 짧은 메시지를 붙여 주셨는데 무척 인상적이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부모가 되고 나면 어느새 아이가 우선시 되고 부부 사이는 소원해지곤 한다. 어린이집 원장 선생님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기 이전에 인생 선배로서 부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알려주시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선생님께 참 감사하다)

비전(계획)을 공유할 것

결혼을 하며 단칸방에서 시작할 때, 신랑은 가진 것이 없이 미안하다며 목놓아 울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공부했다. 국내 경제 상황과 세계 경제 흐름,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 대해. 이미 나는 집안의 가장 노릇을 하느라 내 명의의 집이 있었기에 청약저축 1순위가 될 수 없었고, 신랑은 당시 백수였기에 대출이 나오지도 않았다. 

불안한 상황 속에서 월세로 들어가 끊임없이 신랑과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하며 공부했다. 

더 좋아지면 더 좋아졌지, 나빠질 것은 없다며 서로를 달래며 차근차근 나아갔다. 보증금 천만원에 월세 45만원 옥탑방을 힘겹게 오르내리던 우리는 수도권 내 20평대 신축 아파트의 주인이 되었다. 청약으로 당첨 가능성은 낮으니, 피(프리미엄)를 주고 분양권 매수 계획을 세우고 그 실행 과정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이야기를 참 많이도 나누었다. 여기저기 부동산 투어를 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자산 증식 계획, 부부가 함께!

프리미엄 100만원을 주고 구매한 아파트는 자산 가치로 어느 새 1억 이상 올라 있다. (인플레이션으로 나날이 화폐 가치는 떨어지기에 현금 보유만이 정답은 아닐 수 있다)

사실 내집마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자산을 증식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가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 대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언제까지 근로소득(직장인)으로만 살아갈 순 없으니 말이다.

주위 친구들을 보면 부모님의 여유자금으로 이미 강남권의 집을 보유한 친구들도 있고, 부족함 없는 출발을 한 경우도 많다. 신랑과 나는 이야기를 한다. 그들만큼은 힘들겠지만 우리도 조금씩 성장해 나가자고. 비교의 대상을 찾아 그들을 향한 부러움과 시샘, 질투로 대화를 이어나가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 부부의 성장 방향을 이야기 한다. 그렇기에 대화가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