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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세계' 아들 준영이를 보며 계속 운 이유

· 댓글개 · 버섯공주

처음엔 흔하디 흔한 '불륜 드라마'처럼 남녀의 치정을 그린 드라마라 생각했다. 신랑과 함께 별생각 없이 보다가 드라마에 빠져들었다. 이제 종영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는데, 부부였던 지선우와 이태오, 그리고 불륜녀인 여다경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뻔하디 뻔한 드라마라 생각했는데 이혼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식의 입장까지 잘 드러낸 드라마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부부의 세계 드라마 속 이준영

'부부의 세계'를 보며 연신 눈물을 훔치니 신랑이 물었다.

"울보. 괜찮아? 난 드라마 캐릭 중에서 준영이가 제일 공감이 안되거든. 넌 많이 공감되는구나?"
"응. 난 이 드라마에서 준영이가 제일 공감이 돼."

신랑과 연애를 하고 결혼을 약속하면서 수십 번 약속하고 부탁한 것이 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배신하지 말자고. 배신하지 말아 달라고.

부부의 세계 속 지선우(연인 또는 엄마)의 입장에서 부탁한 것이 아니라, 준영이(자식)의 입장에서 부탁을 했다. 아직 세상에 태어나지도 않은 자식의 입장을 대신해 부탁했다.

아이는 부모 이혼의 원인이 본인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 이혼의 원인이 본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어려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엄마, 아빠는 이제 각자의 길을 갈 거야. 엄마, 아빠는 헤어지지만 그래도 넌 엄마, 아빠의 소중한 자식이야. 부부는 헤어지면 남남이지만 부모 자식 간의 연은 절대 끊어지지 않는단다."

부모는 영원한 나의 엄마, 아빠일거라 생각했는데 헤어지면 남남이 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인지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지함과 동시에 당장 나의 부모의 헤어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힘들었다. 

"내가 딸이 아닌 아들이었으면 엄마, 아빠가 헤어지지 않았을거야."
"내가 좀 더 부모님께 잘했더라면 엄마, 아빠가 헤어지지 않았을 거야."
"내가 그 여자를 마주했을 때 욕이라도 퍼부었다면 어땠을까."

분명 안다. 원인제공자가 내가 아니라는 것을. 그럼에도 끊임없이 그 원인을 '나'로부터 찾았다. 

아이는 부모님의 이혼 시점과 과정을 모른다

# 아이는 부모님이 어느 시점부터 헤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열세 살, 부모님의 이혼은 드라마 속 준영이처럼 무척 혼란스러웠다. 마음속에는 증오가 가득했고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 이혼을 하셨다고 생각한 두 분이 집에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드라마 속 준영이처럼 혼란을 겪었다.

혹시, 엄마, 아빠가 사이가 좋아지신 걸까. 다시 함께 사는 걸까. 다시 잘 될 수 있는 걸까. 다시 내게 엄마, 아빠가 생기는 걸까. 

내가 학교에 등원했을 시간, 아빠가 집에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어린 동생에게 전해 듣고 두 분 사이가 어때 보였느냐, 좋아 보였냐 등 하나하나 캐물었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알았다.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헛된 기대를 품었던 그 날이 이혼 조정기간이 끝난 실제 이혼 확정 날이었음을.

아이에게 실제 이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되는 것인지 알려줘야 한다. 아이는 당신의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생각한다. 

돈이 있음에도 이혼한 부모의 아이가 물건을 훔치는 이유

# 돈이 있음에도 아이가 물건을 훔치는 이유

"준영이가 물건을 왜 훔치지?"
"그러게. 그런데 나도 그랬어."

정말 놀랍게도 드라마 속 준영이는 나와 닮아 있었다. 부모님의 이혼, 그리고 불륜녀. 그래도 극 중 이태오(아빠)는 아들인 준영이에게 '새엄마'라는 호칭을 강요하거나 '엄마'라고 부를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 부분에선 최소 멋진 아빠다.)

새엄마와 살게 된 그 집은 무척이나 호화스러워 보였다. 당시 엄마와 단칸방에 살다가 그 집으로 가게 되었으니. 없던 내 방이 생기고, 없던 침대며 책상. 나를 위한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나 마음은 늘 허했다.

새 집으로 이사 가고 나선 매일 악몽을 꾸었다. 불륜녀인 새엄마 앞에서 말 한마디 못했지만, 꿈속에서는 매번 그녀를 원망하고 죽였다. 우리 가족을 배신한 아빠 앞에선 말 한마디 못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증오심이 들끓었다. 이혼 후, 단칸방에서 살고 계셨던 엄마 앞에서 말 한마디 못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늘 그리워했고 서글펐으며 걱정되었다. 기댈 곳이 없었다. 

언제부턴가 마트에서 파는 작은 초코바를 하나씩 훔쳤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또는 수중에 돈이 없어 훔친 것이 아니다. 정확히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한 달 가까이 도벽을 계속하다가 갑자기 꿈 속에서 만난 새하얀 할아버지의 이야기와 손길에 단번에 멈췄다. (평생토록 잊지 못할 신기한 경험이다) 분명한 것은 나를 멈추게 할 그러한 특정 계기가 없었다면 계속 훔쳤을 테고, 결국 나쁜 길로 들어서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부모의 이혼은 아이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 아이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이혼을 부부만의 문제로 제한해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나아간다면 부부 양가에 이혼 사실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정도.

이혼을 결정하고 준비하고 확정하기까지 아이는 '양육의 대상'이지, 이혼 과정에서 협의를 해야 할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는 아직 어려서 모른다라는 전제로 말이다. 세 살만 되어도 아이는 부모가 지금 어떤 상태이며 두 사람이 싸우는 건 아닌지 끊임없이 눈치를 살핀다. 심지어 '엄마, 아빠가 나 어렸을 때 싸웠었잖아.' 라며 세 살보다 더 어렸을 적의 부모의 모습을 기억하기도 한다.

부부는 이혼과 동시에 남남이 가능할지 모르나, 아이의 입장에선 '부모'가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아이에겐 영원할 것 같은 큰 울타리가 무너짐으로 인해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큰 슬픔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부모님의 이혼으로 '부모님'은 사라지고 '아버지', '어머니'만 남았다. 더 이상 한 자리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모셔두고 '부모님'이라 칭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서글프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는 지금까지의 흔한 불륜 드라마와 다르게 이혼하는 과정에서, 이혼을 하면서 겪게 되는 아이의 시선까지 담아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드라마의 인기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이는 '아직 어려서 모를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 존중해야 할 인격체이며 아이들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느끼고 있음을 인지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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