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결혼이란

초등학생 때 6학년으로 올라가면서 갓 입학한 어린 1학년 아이들을 보며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와. 이제 우리 늙었어!"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이 되어 교복을 새로 맞추며 친구들과 또 한번 이런 대화를 나눴습니다.

"우와. 우리 몇 살이야? 벌써 고등학생이야? 우와. 우리 진짜 늙었다!"

또 대학교를 졸업하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하아. 진짜 늙었구나...'

어른들이 보시기엔 얼마나 우습고 우스운 대화였을까요.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결혼이란


하지만 당시 어린 저희들은 저희들이 보는 세상만 전부라 믿고 우리들의 시각으로만 판단했으니 그런 철없는 생각을 했던거겠죠. 앞날은 보지 못하고 과거만 볼 수 있으니 말이죠. 하지만, 철이 든 성인이 되고 난 후로도 또래 친구들을 만나면 여전히 이런 대화를 주고 받습니다.


"우와! 우리 다음해엔 벌써 스물아홉이야. 징그러워! 우리 늙었어!"

뻔히 늙었다고 말하면서도 '그래도...(아직은 우리 젊어!)'라는 한편의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늙었다고 말하는 묘한 심리. 어째서인지 매번 결혼은 현실이라고 이야기 함에 있어서도 이와 유사한 심리가 적용하는 듯 합니다.

연애 따로, 결혼 따로? 오히려 비현실적


요즘 남녀 할 것 없이 '연애 따로, 결혼 따로' 가 팽배해져 있다고들 하지만 어찌 보면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역시 돈 많은 남자를 만나야 돼" 라며 당장이라도 돈 많은 남자가 나타나면 사귀고 있는 남자친구를 뻥 차버리고 뒤돌아 설 것처럼 말을 늘어놓지만, 막상 돈과 조건만 따져 결혼하는 경우는 제 주위엔 없었습니다. 

정말 '헉' 할만큼의 돈 많은 사람과 결혼한다 싶어 그 속 이야기를 들어 보면 전제 조건이 '사랑'이지 사랑하는 마음 없이 오로지 '돈'만을 전제로 결혼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현실적인 결혼이란


이미 결혼하신 분들도 저에겐 "돈 많은 남자 만나!" 라는 말을 하지만 막상 "그럼 만약 다시 결혼할 수 있다면 지금 남편 포기하고 돈 많은 재벌가 남자와 결혼하실거에요?" 라는 질문을 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 날 사랑해 주는 남자." 라는 뜬금없는 대답을 듣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도 '돈'을 보고 연애를 한다 하더라도 결국 '사랑'으로 이어진다면 모를까, 아무리 돈이 많은 남자나 여자를 만나 연애를 한다 하더라도 연애 하며 알게 되는 서로의 마음. 서로를 향한 마음이 거짓인데 오로지 돈만 보고 그런 남자나 여자와 결혼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어렸을 때 부터 찢어지게 가난해서 먹고 사는 것에 하루하루 허덕였다면 모를까...
 
자신은 돈 벌 능력이 전혀 없어 돈 많은 남자나 여자를 만나는 것이 유일한 탈출구라 생각한다면 모를까...

"야, 요즘 여자애들이 얼마나 영악한줄 알아?"
"왜?"
"클럽만 가도 돈 많은 남자 붙잡아서 뜯어 내려는 여자애들이 줄 섰어."


왜 클럽에서 만난 여자를 두고 모든 여자는 사랑 없이 돈만 뜯어 내려는 영악한 여자라고 표현하는건지.


"나한테 그렇게 호감을 드러내더니. 왜 연락이 안와? 남자들 바람기란."
"왜?"
"헌팅 당했거든. 길거리에서. 근데, 1주일 지나고 나니 연락이 없어."


왜 길거리에서 헌팅한 남자가 연락이 없자 모든 남자는 왜 바람기가 많냐고 말하는건지.

딱 그만큼의 시각. 딱 그만큼의 경험. 자신이 바라본 시각과 자신의 경험만을 토대로 한 딱 그만큼의 판단.

매해 거듭되는 "아, 우리 늙었어..." 라는 말. 언제쯤이면 그칠 수 있을까요?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결혼은 현실이야. 돈 많은 남자 만나서 결혼해..." 결혼은 현실... 맞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얼마나 돈 많은 남자를 만나야. 얼마나 돈을 쌓아놓고 있어야 지금의 사랑이 최고야! 지금의 결혼이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삶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늙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현재 나이에 지금 무엇을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가 중요하고, 결혼을 하는데 현실적이어야 한다며 '돈 많은 배우자' 운운 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어떻게 돈을 모아가며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요? 

+ 덧) 결혼은 현실이라면서 '그러니 돈 많은 남자 만나!'라는 더 현실적이지 못한 '연애 따로, 결혼 따로' 동화 속 이상만 심어주고 있는 건 아닌지... -_-;;

 


조건만 따지던 내가 사랑을 마주하기까지

제가 '연애'라는 것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눈을 마주보고 오랜 시간 이야기 한다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닭살스럽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 뿐인가요.
드라마나 이런 저런 소설 속 등장하는 근사한 인물을 이상형이라 말하고, 연봉은 얼마 이상이면 좋겠다를 서슴없이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와중에 알콩달콩 연애 하고 있던 친구들이 남자친구의 눈빛에 녹아내릴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당시 솔로였던 저는 책에서 접한 이런 저런 이론을 들먹거리며 트집잡는 멘트를 날리곤 했었습니다.

"민망해! 어떻게 눈을 계속 뚫어져라 봐? 책 안봤어?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눈을 계속 마주하기 보다는 눈 뿐만 아니라 코와 입술 사이에 위치한 인중도 번갈아 가며 보는 게 가장 이상적이래. 눈만 보지 말라구!"
"으이그! 말이라도 못하면! 너 연애하게 되면 두고보자!"
"아! 그래! 솔직히 나도 좀 눈빛에 녹아 내리고 싶다고! 도대체 언제쯤 내게도 그런 사랑이 오는 걸까?"

당시엔 정말 언제쯤 오려나 싶었던 그 순간(눈빛에 녹아 내리는 순간. 캬!)이 제게 오긴 오더군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 그 모든 것들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말이죠.

내겐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랑' 이라는 감정

솔로일 때까지만 해도 지하철에서 연인끼리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거나 어깨에 기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심술이 나서 노려보곤 했습니다. 특히, 무척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댈 곳이 없어 잠결에 혼자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발견했을 땐 정말 속상하더군요. '아! 정말 추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혹 모릅니다. 헤드뱅잉을 하다 좌측과 우측에 앉으신 분들에게 마구 머리박기를 했을지도;;

그런 제가 지금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더라도 이제 더 이상 헤드뱅잉하지 않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퇴근 후, 남자친구와 잠깐 데이트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남자친구의 어깨에 기대선 잠들어 버렸나 봅니다. 

"이제 일어나야지. 다음 역이야. 졸립지?"
"어? 어. 응!"

남자친구의 목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뜨니 헉!

세상 모르고 너무 푹 잠들어 버렸었나 봅니다. 입가가 촉촉해져 버린. 킁. 본능적으로 제가 기댄 남자친구의 어깨에도 그 흔적이 남은 게 아닌지 확인하고선(흔건하게 젖어 있지 않아 다행입니다) 남자친구의 시선을 피해 냉큼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직 남자친구는 모르는 듯 합니다. 이럴 땐, 최대한 태연한 표정과 자연스러운 포즈가 필요합니다. 그 와중에 조심스럽게 입가를 닦아 내는데... 이미 남자친구 눈엔 포착되어 버렸나 봅니다.

"왜 그래? 왜?"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아, 너 침 흘렸구나? 이리와봐! 어디 보자!"

하악!

 -_-

"많이 피곤했었구나? 내가 닦아 줄게!"
"아냐. 없어. 이미 다 닦았어. 없어. 짠!"
"으이그! 완전 애야! 애! 귀여워!"

민망. 뻘쭘. 어색.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쿨한 척 웃으며 애써 웃어 보려하지만 자꾸만 붉어지는 얼굴. 그런 저의 마음을 아는지 오히려 귀엽다며 자연스럽게 웃어 주고 감싸 주는 남자친구를 보며 '선배 언니가 말하던 그 사랑을, 지금 내가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행복하더군요.

선배 언니가 말하던 사랑, 그리고 결혼

한 남자를 만나 이렇게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이 감정 이대로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답니다.

예전엔 막연히 서로에게 예쁘고 멋진 모습만을 보여 주는 것이 연애이고, 데이트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서로의 실수나 민망한 모습을 보더라도 서로 다독여 주고 감싸 주는 것에서 '아, 이게 정말 사랑이라는 거구나.' 라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는 듯 합니다.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선배에게 '사랑이 뭘까요?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요?'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선배 언니의 말이 이제는 너무나도 와닿습니다. 

"남자친구 입가에 묻은 고추가루를 보고 '아, 정말 더럽다! 못봐주겠다! 쪽팔린다!'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야.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고 먼저 티슈를 꺼내 닦아 주는게 사랑이지! 너가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너에게도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

'사랑이 도대체 뭐에요?' 를 묻던 제가 사랑을 하고 있네요. 이상형을 이렇게 저렇게 늘어 놓던 제가 이젠 지금의 남자친구가 이상형이라 말하고, 이런 저런 현실적 조건을 따지고 들며 '사랑'보다 '조건'이라 말하던 제가 사랑을 하고 있네요. :) 

나의 사랑, 두 마음 앞에서 울다

남자친구와 함께 만나 데이트를 할 때면 각자의 집 중간 지점에서 만나 데이트를 합니다. 서로 직장인이고 다음날 출근을 하다 보니 평일에 만날 때면 서로가 집으로 돌아가기 좋도록 중간지점에서 만나 헤어지는 거죠. (연애 초기에는 남자친구가 집 앞까지 항상 데려다 주곤 했습니다.) 실로,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저한테 누군가가 남자친구를 매일 같이 집 앞에 데려다 주라고 한다면, (긁적긁적)...
요즘은 서로 집까지 가는 동안 통화를 합니다. 그렇게 만나고도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 와중에 종종 남자친구의 팔을 붙들고 "반만 데려다 주면 안돼?" 라고 내뱉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혼자 가기 싫어서가 아니라, 좀 더 같이 있고 싶어서라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죠.

문득, 몇 년 전 연애 초기, 남자친구가 집 앞까지 데려다 주었다가 갑작스레 어머니를 마주한 일이 있었습니다. 본인 차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하철로 오가며 데려다 주던 남자친구. 그저 지하철로 데려다 주는 것만으로도 무척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이 넘치고 넘치는데,

"차라도 있으면 편하게 데려다 줄 텐데…" 라고 이야기 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괜히 마음이 시큰해져서는 살포시 안아주었습니다. 헌데, 그 모습을 드라마 속의 한 장면처럼 어머니와 동생이 뒤에서 목격한 거죠.

순간 온 몸이 빳빳하게 굳는 듯 했고, 표정은 이미 넋이 반은 나간 표정이었을 겁니다.


"왜 그래?"
"헉…"

연애의 '연'자도 모르고 남자의 '남'자도 모르며 공부 밖에 모르는 완전 어리버리 순진한 꼬맹이라고만 생각하셨을 터, 어머니가 받은 충격은 실로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대로 아무런 말씀 없이 분명히 눈이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집으로 쌩 들어가시더군요.

왜 하필 그 많고 많은 모습 중, 이런 모습을 보여 주게 된 건지 속상하기도 했고 그래도 이제는 나도 연애하고 있어요, 라는 것을 밝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코 적은 나이도 아니니 말입니다.


문제는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니의 반응이었습니다.

"뭐 하는 애냐?" "집이 어딘데?" "학생이냐?" "회사 어디 다니는데?" "설마 결혼하려고?"

머리로는 분명 어머니를 이해하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울고 또 울었습니다. 어머니의 질문에 하나하나 대답할 때마다 어머니의 표정은 굳어지셨고, 전 제 나름대로 갑갑해져서는 속이 까맣게 타 들어 갔습니다.

힘들게 키운 딸, 보다 좋은 남자 만나서 고생하지 않고 시집 잘 보내고 싶어 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질문을 받을수록 제 사랑이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랑으로 받아 들여지지 않고 현실적인 조건이라는 잣대 속에 판단된다는 것이 너무 마음 아팠습니다.

집 앞에서 이렇게 황당하게 마주하여 엉겁결에 남자친구와 어머니의 첫 대면이 된 것이 너무 속상했습니다. 좀 더 제대로 된 자리에서 마주보고 인사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후에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와 집으로 들어가서 어떻게 되었냐고 물어 이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본인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며 "돈 많이 벌어야지!" 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분명 기뻐해야 할 것 같은데 눈물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도 잘 알고,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위하는 남자친구의 마음도 너무나 잘 압니다.

사랑하는 딸 아이가 조금은 덜 고생했으면 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좀 더 아껴주고 싶은 마음.

두 마음 사이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문득, 그 때의 일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덕분에, 무척 울적한 글이 되어 버렸습니다ㅠ_ㅠ) 

이제는 그저 조용히 저의 연애를 지켜 보고 계시는 어머니. 그리고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남자친구.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