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나무, 친구의 의미를 돌아보니

 

오랜만에 고향에서 친구가 서울로 올라와 주말을 함께 보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 한참 힘이 들었던 시기에 알게 된 친구. 정말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친구이자, 존경하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늘 책임감 가지고 성실히 하는데다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정말 부지런하다 싶어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친구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없이 게으른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 그만큼 배울 점이 많은 소중한 친구이죠.

 

고3 때를 떠올려 보면, 전 무척이나 '국사'라는 과목을 싫어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늘 공부를 하면서도 원리를 이해하면 풀 수 있는 수학이나 과학은 좋아하는 반면 국사라는 과목 자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 '국사는 이해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암기 과목이잖아!' '외워!' 라는 이야기를 들어도 뭔가 이해를 해야 외우지- 라는 생각이 컸던 거죠. 그 와중에 이 친구가 제가 답답해 하는 부분을 속 시원하게 긁어 줬습니다. 그렇게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 나가며 함께 힘든 시기를 겪어 나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이 부분에 대해 포스팅 할 기회가 있다면 과감히 성적 변화와 함께 공부방법을 공개하고 싶습니다. +_+ 끝없이 곤두박질 치던 성적이 어떻게 올라갔는지 말이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 이 친구 덕분에 얻은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음, 이 친구를 보면 늘 떠오르는 동화가 있습니다. 바로 "아낌 없이 주는 나무" 입니다.

 


 

전 이 친구에게 늘 받기만 한 것 같은데, 이 친구는 늘 자신이 받은 게 많다며 뭔가를 늘 내어놓습니다. 그 중 제일이 바로 이 말입니다.

 

 

"난 너가 너무 자랑스러워. 넌 진짜 자랑스러운 친구야."

 

이 말이 제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 친구는 알까요?

 

모처럼 이 친구가 먼 지방에서 서울로 온 터라 많이 피곤할 것 같고 아침 식사를 못할 것 같아 집에서 부지런히 도시락을 쌌습니다. 그렇게 도시락을 싸 들고 친구를 만나기 위해 향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까? 더 많이 예뻐졌겠지? 지금도 여전히 '꺄르르' 잘 웃겠지? 이런 저런 생각에 한껏 들떠서 말이죠. 친구와 제가 직장생활을 하고 난 이후로는 좀처럼 서로 얼굴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간헐적으로 2년에 한 번씩 혹은 1년에 한 번씩 꼭 얼굴을 마주한 것 같습니다. 그렇게 가끔씩 만나도 매일같이 만나왔던 친구처럼 편하고 그리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 멀리에서부터 제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손을 흔드는 친구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만나자 마자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동생의 안부를 물으며 가족처럼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습니다. 한 해, 한 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많은 친구들을 만나게 되고,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있지만 '친구'라는 의미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가끔씩 시간이 서로 되면 함께 만나 시간을 보내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존재- 라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 덕분에 친구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내어 보고 깊이 반성하게 되는 듯 합니다.

 

"야야, 내가 낼게. 왜 너가 서울까지 와서 너가 내려고 해."
"이전에 내가 서울에 왔을 때 너한테 신세 많이 졌잖아."

 

서로 돈을 내겠다고 지갑을 여는가 하면 서로 돈을 내지 말라며 밀어내기 바빴습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는 거잖아."

 

 

다른 친구들과 만나면 늘 그렇듯 더치페이를 고수하고, 하나의 정해진 룰처럼 한 사람이 내면 다음은 다른 한 사람이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만나는 친구들이나 저나 누구든 한치의 거부감 없이 그게 당연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하더라도 돈이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민감해 질 수 밖에 없으니 말입니다.

 

헌데, 이 친구. 다른 친구들과 달리 자꾸 자기가 내겠다고 합니다. 전 해 준 게 없는데 자꾸 받은 게 많다고만 하는 친구. 그러니 저도 안간힘을 써서 제가 내겠다고 안달인 거죠.



 

"이건, 중간에서 너가 꿀꺽 하면 안된다. 꼭 어머니 갖다 드려라."
"이게 뭔데?"
"뭘 사드려야 하나 고민했는데, 많은 건 아니고. 직접 얼굴 뵙고 인사 드렸어야 되는데"

 

어머니께 갖다 드리라며 내미는 조그만 봉투. 상품권이더군요.

 

그 친구는 조그만 것이라고 표현했지만, 제 친구가 저의 어머니께 이러한 선물을 챙겨 준다는 것 자체가 제겐 너무나도 큰 자랑거리이자 큰 기쁨이었습니다.

 

 

"엄마, 나한테 이런 친구가 있다니까!"

 

가족에게 친구 자랑 늘어 놓기 바빴습니다. 나에겐 '이런 친구가 있어!' 라며 말입니다. 이런 친구가 있어 세상 살 맛 난다! 라는 생각도 들면서 말입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많은 시간을 보내왔지만 단 한번도 그 친구의 어머니께 선물을 해 드린다는 생각은 한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헌데, 이 친구를 통해 '친구의 어머니께 건네는 선물' 이 얼마나 깊은 의미의 선물인지 깨달은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선물을 받은 것보다 더 기분이 좋고, 어머니께 '제겐 이런 자랑스러운 친구가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선물을 받은 어머니도 좋아하시니 말입니다.

 

친구를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 계속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아, 그것도 선물해 줄걸.' '서울에 왔으니 그 맛집을 소개해 주고 같이 갔어야 되는데.'

 

그리고 오늘 아침, 친구가 선물해 준 옷을 입고 기분 좋게 회사에 출근하고 나니, 직장 동료이자 직장에서 절친한 언니가 물었습니다.

"어? 이거 처음 보는 옷인데?"
"고향 친구가 사 준 옷이에요. ^^"
"음, 근데 친구가 너한테 옷을 왜 사 줘?"
"네?"
"너 생일이었어? 무슨 날이야?"
"아뇨. 아무 날도 아닌데…"
"근데 왜 사 줘? 오~ 친구가 돈이 많은 가보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친구가 돈이 많은 가보다'라는 마지막 말에는 정말 뭐라 할 말이 없어지더군요. 제 친구는 돈이 많은 집안의 친구가 아닙니다. 그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저와 같은 직장인인걸요.

"친구가 너한테 옷을 왜 사 줘?" 라는 질문 자체가 '친구' 라는 요즘의 의미를 말해 주는 것만 같아 씁쓸했습니다. 마음 속엔 그저 "친구니까요."라는 대답 외에는 떠오르는 대답이 없더군요. 그야말로 그런 친구 사이니 말입니다. 무슨 날이어야만 선물을 주고 받고, 무슨 날이어야만 연락하는 그런 친구가 아닌, 정말 마음을 담아 서로에게 진심을 다하는 친구 사이 말입니다.

 

분명, 제가 만나고 있는 그리고 만나게 될 친구들에게 진심을 다해 마음을 열고 다가간다면 그 친구들 또한 제게 그러한 친구로 다가오겠죠? 그 친구 덕분에 제가 '친구'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것처럼 말입니다.


 

 

아낌 없이 주는 나무.

상대방이 먼저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되기를 기다리기 이전에 제가 먼저 아낌없이 베풀면 분명 그 친구도 아낌없이 베풀어 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의심치 않습니다.

 

이런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많아 진다면 정말 세상은 더 아름다워 지겠죠?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