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가 현실이 되었던,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날

제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감성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달려라 하니' 만화를 보며 함께 울었던 기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저의 이런 풍부한 감성은 아버지를 닮은 걸까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게 되면 슬픈 멜로물을 극히 꺼려 합니다. 이유가 그런 것이 우느라 바쁘기 때문이죠. =.=


모두가 무섭게 본 영화 '장화홍련' 또한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오면서 '엉엉' 우는 제게 그렇게 무서웠냐며 묻는 친구를 보며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더군요.

장화, 홍련
감독 김지운 (2003 / 한국)
출연 염정아, 김갑수, 임수정, 문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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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 사이의 뭔가 미묘한 아픔이 제게 전이되었다고나 할까요? 지나치게 감수성이 짙은 듯 하여 조금이라도 '울 것 같은데-' 싶으면 눈을 가려 버립니다. 잠시 장화홍련의 이야기를 빗대어 저의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 새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던 터라 영화가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이시지만, 당시엔 제가 무척이나 증오(증오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그토록 싫어했습니다)했던 분이시기도 하죠. 제 생애 최저의 몸무게를 기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감사한 분이기도 하구요. 중학생 시절, 도시락을 가져가야 하는데 항상 멸치와 김치만을 싸주시고 어린 동생과 제가 학교에서 마치고 돌아와 집으로 가려고 하면 항상 밤 늦은 시각까지 공장일을 시키시곤 했죠. 그리곤 시험기간이라 학교를 마치고 공장일을 하지 않고 집으로 가려 하면 "운동도 할 겸 걸어서 집으로 가라" 라고 하시던 그 분이 그야말로 신데렐라 동화 속 등장하는 계모가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친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부터가 저와 동생에겐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Walt Disney Studios D23 Expo - Day 1

저주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그 분을 미워하고 또 미워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를 통해 들은 "돌아가셨다" 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죠. 정말 드라마나 영화 줄거리처럼 갑작스레 돌아가셨습니다. 그것도 한낮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로 말이죠.

Mother of Alex Dimitriades Buried In Sydney

새어머니는 이미 아버지와 재혼하기 전, 전 남편과 사별하였는데 그 사이에 아들이 있었죠. 저보다 4살 위인. 할머니 손에 커 온 그 아들을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예상 밖의 어머니의 죽음이었으니 황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을지도 모릅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와 제 동생 그리고 저를 향해 쏘아보는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그는 '너희들 때문이야' 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정작 동생과 저는 '저 분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희생 했는데…' 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말이죠. 마지막 순간까지 그 아들과 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던 입장 차이. 그리고 이젠 돌아가신 새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도 한 때 그토록 미워했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묻어 나오지 않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요?

South Africa, Johannesburg: Float with you
South Africa, Johannesburg: Float with you by kool_skatka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먼저 이 세상을 떠난 그 분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 분이 떠나고 나니 알겠습니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게 얼마나 아무 의미 없는 것인지. 막상 그토록 증오하던 사람이 이 세상에 없고 나니, 왜 그토록 미워했을까? 어차피 한번 살다 갈 인생. 이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마지막 일거라 생각지 못하고 떠난 그 분 또한 저 못지 않은 후회를 하진 않을까- 새삼 궁금해 집니다.

왕성한 사춘기 시절이었던10대, 그리고 20대 초반까지 일어났던 이 드라마 같은 일은 제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웬만큼 힘든 일이 있어도 이 당시의 일만큼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히 견뎌냅니다) 제 자신과 가족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듯 합니다.

서로의 성격 차로 인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이 세상을 떠나신 새 어머니. 어린 나이에 인생을 다 안다고 감히 말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인생은 미워하는 마음 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안고 살아가기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듭니다.

더불어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참고 견뎌내면 또 다른 역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드라마처럼 펼쳐졌던 한 때의 그 일들은 지금은 하나의 추억으로 담아두며 소소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너무 힘들어요' '학교 생활하기 너무 힘들어요' '취직이 안되니 걱정이야' '세상에 나만 홀로 버려진 것 같아'

지금은 당장 힘들지라도 괜찮아요. 또 다른 역전의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죠. ^ㅡ^

 

+덧붙임)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한 때의 이야기. 조금이나마 지금 힘들어 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보물공개]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그저 주저 앉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런 때 말이죠. 저 또한 !’ 하고 놀랄만한, 그러한 일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이 한 면에 소개 하기엔 그 양이 너무 많으니 짧게 토막 내어 소개 할게요.

열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은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들었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힘들다, 죽고 싶다를 연발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너가 정말 그랬냐고 되물을지도 모르지요.

judge me now,   #2 in explore
judge me now, #2 in explore by ashley ros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양육권 판결에 따라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과 저는 당시 생활 여력이 더 높았던 아버지를 따라 나서야 했습니다.
새 집, 새 책상, 새 침대모든 것이 낯선 와중에 만난 첫 날부터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는 새 엄마까지. 드라마 속, 만화 속 계모를 제대로 체감하였습니다.

너무나도 큰 아파트, 좋은 컴퓨터, 새 책상, 새 침대, 처음엔 꿈만 같았던 그 상황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질 없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 어린 나이에 다시 고민에 빠졌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다 꺼내려면 너무 길어지니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죠.

End of summer / Fin del verano
End of summer / Fin del verano by Claudio.A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그러한 새로운 환경과 새 엄마의 구박 속에 견디다 못해 2년 여 정도 버티다 곧바로 홀로 힘들게 생활하고 계셨던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양육권이니 그러한 법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아버지와 새 엄마에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당시 고3.

my desk corner 2
my desk corner 2 by Laurie :: Liquid Pap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에 심적인 불안감과 부담감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단칸방에서 힘겹게 공부하며,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밖으로 나가야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제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동생과 어머니가 계셨기에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공장을 다니며 힘겹게 돈을 모아 생계비며, 집 월세며, 동생과 저의 학비 부담까지. 3이었던 터라 교재비도 상당했죠. 단순히 큰 딸, 장녀로서가 아닌 생계를 책임지고 한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더욱 커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공장일을 하시다가 몸이 많이 나빠지셔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학업에도 신경 써야 했지만 생활비와 학비에 대한 부담감에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착하고 예쁜 딸이기 보다는 강하고 든든한 아들로 보이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9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한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 당시의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채찍질 하기 위해 제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있죠.

바로 2002학년도 당시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표와 수능 전 날, 저에게 건네주었던 동생의 편지입니다.



지금도 이 껌이 나오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당시 열 세 살이었던 어린 동생은 본인이 먹고 싶었을 텐데 꾹 참고 아껴서 저에게 건네준 풍선껌인 듯 합니다.



제 지금 나이 스물일곱.

제 자신에게 이야기 하곤 합니다. “참 잘 컸다- 수고했어-“라고 말이죠.

비록 화목한 가정 속에서 때론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가족 여행을 가고 싶은, 그런 마음도 컸었고 난 왜 그런 평범한 가정 속에서 자라나지 못했을까, 라는 현 상황을 낙담해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악물고 버텼었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공부라는 것과 수능을 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어른이 되면 어머니께도, 동생에게도 보다 떳떳한 딸이, 언니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의 결과는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특히 나와 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 자칫 잘못된 길을 선택하려는 후배나 어린 동생들이 있다면 붙잡아 주고 싶어요. 자신을 믿고 노력하면 절대 그 노력은 너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서울에 위치한 4년제 대학교에 합격하여 지방에서 서울로 홀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지방에 있는 동생과 어머니를 위해 틈틈이 아르바이트, 과외, 교수님을 도와 프로젝트를 하는 등 여러 사회생활을 겸하며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졸업 하기 전에 운 좋게 바로 취직하여 지금은 동생과 어머니도 서울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 보물입니다.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이를 악물고 버티게 해 준 동생의 편지와 당시 수험표를 작성하며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는 마음이 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그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저의 보물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꺼내서 보곤 합니다.

일찍 어른이 된 만큼, 분명 보다 큰 기회가, 큰 행복이 찾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