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준비하는 여자친구, 어떡하지?

이전에도 포스팅 한 적 있지만, 제가 지금 5년 째 연애를 하며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4년 전 쯤 "헤어지자" 를 선언하고 영원히 남남이 될 뻔 한 적이 있습니다. (헉! 버섯 그렇게 안 봤는데 쉽게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는 여자였구나! 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ㅠ_ㅠ)

남자친구와 헤어짐을 결심한 이유

몇 번 포스팅 한 바 있지만 다름 아닌, 남자친구의 '게임' 때문에 말이죠. 솔직히 게임은 핑계였는지도 모릅니다. 겉으로 드러나기엔 '게임' 하나였는지 몰라도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게임'이 아닌 '불안한 미래' 였거든요. 저도 게임을 좋아합니다. 스타크래프트나 와우를 즐겨 하고 종종 동생과 함께 게임 채널을 즐겨 보기도 하니 말입니다. 하지만 게임으로 인해 나의 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누군가(친구나 동료, 애인)와의 약속을 게임 때문에 져버리는 행동은 단 한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남자친구와 헤어짐을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저와의 약속까지 번번히 져버릴 정도로 게임에 빠져 있는 남자친구의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약속을 져버릴 정도로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앞으로 함께 미래를 꿈꾸고 그려 나갈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불안감이 엄습해왔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헤어짐을 결심하고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하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는 저에게 '헤어지자'는 말은 그렇게 쉽게 내뱉는 게 아니라고, 오히려 화를 내더군요. 고작 그게 이별의 이유가 되냐면서 말입니다.

'헤어지자'고 말하는 당사자는 정말 오랜 고민 끝에 헤어짐을 결심한 것이건만 이별을 통보 받는 입장에서는 화를 낼 만합니다. 지금껏 늘 똑같은 상황에서 '게임이 뭐길래!' 라며 화를 내면 '미안해. 다음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정도로 사과를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환하게 웃곤 했는데! 그런 그녀가 헤어지자고 이별을 말하니 그야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겠죠.

"이별 하는 상황에서까지 다투고 싶지 않아. 미안한데, 나도 더 이상 못 참겠어."
"진짜? 헤어지자고? 장난해?"
"내가 장난하는 걸로 보여? 헤어지자."
"헤어지자는 말, 그렇게 쉽게 하는 거 아닌데."
"나 쉽게 하는 거 아닌데?"
"…"

이별을 하는 상황에서까지 다투고 싶지 않아 최대한 차분하게 말하는 저와 달리, 목소리가 높아지고 커지던 남자친구. 그리고 "차라리 시간을 갖자"는 말을 건네던 남자친구.

사랑 앞에 자존심은 무의미

왜 상대방이 헤어짐을 결심할 수 밖에 없었는지, 왜 헤어지자고 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자 한다면 이별로 가는 길을 막아 설 수 있습니다.

일단 1차적으로 '헤어지자'는 저의 말에 '시간을 갖자'라고 말을 돌린 남자친구를 받아 들인 것부터가 제 마음 속엔 조금은 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헤어지자'는 말은 마음에서 나온 말이 아닌, 머리에서 나온 말이었으니 말입니다. 남자친구를 향한 좋아하는 감정이야 이별을 고하고도 아련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남자친구를 향한 마음은 분명했지만 당장 내 마음을 들여다 보기 보다 '앞으로 어떡하지-' 라는 생각에 머리로 앞날을 생각하고 계산해서 내뱉은 말이었으니 말입니다.

남자친구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매일 하나, 혹은 두 개씩 꼬박 꼬박.

"밥 먹었니?" "날씨 추운데 옷은 따뜻하게 입었니?" "잘자"

전 이미 헤어졌다고 생각하고 스팸 문자로 등록을 해 놓고 신경을 쓰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2일 째, 3일 째로 접어들 때까지도 마음이 짠하고 아련하기만 했는데 5일 정도가 넘어서니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에 익숙해 지면서 제 감정에 무덤덤해 지더군요. 흔히들 말하는 시간을 갖자는 말이 왜 연인 사이에 독이 되는지 말이죠. 시간을 가지면 가질수록,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대에 대한 감정이 무덤덤해지고 이별에 가까워지는 느낌이었으니 말입니다. 그러다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남자친구.

"무릎이라도 꿇으면 받아 줄래?"
"아니."

"난 정말 무릎이라도 꿇을 수 있어. 진짜 한번만 더 믿어주면 안될까?"
"내가 어떻게 해야 내 진심을 받아 줄래?"
"…"

1주일이 지나고 나서야 만난 남자친구의 두 눈은 시뻘겋게 달아 올라 금방이라도 울 것만 같았습니다. 그때 확실히 느꼈습니다. '아, 이래서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들 하는 건가.'

그 날, 극적으로 서로를 부둥켜 안고 얼마나 엉엉 울었는지 모릅니다.

"미안해. 믿어줘서 고마워. 내가 더 잘할게."
"응. 나도 더 잘할게. 노력할게."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헤어지자는 말은 결코 쉽게 나오지 않는다 

제가 남자친구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던 그 순간만큼은 정말 큰 결심이었고 진심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그 마음도 진심이었고, 이별을 내뱉은 그 마음도 진심이었습니다. 그만큼 절실했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헤어지자'는 말을 습관처럼 쉽게 내뱉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쯤은 아마 연애를 하는 이들이라면 기본적으로 다들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서로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사이라면 결코 순간적 '욱' 하는 기분에 '헤어지자'는 말을 내뱉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토라지거나 삐치고 아무 말 없이 입술을 삐죽거리고 있을지도 모르죠. 남자라면 동굴 속으로 숨어버릴지도 모르죠.

그(녀)에게 다른 사람이 생겼거나 바람이 나지 않는 이상, 그(녀)의 이별통보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연인을 붙잡고 싶다면 그 이유가 뭔지, 왜 그러는 건지 눈치 채고(모르면 추궁을 해서라도) 아쉬움이나 미련 따위 남지 않을만큼 붙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 자존심은 남겨 두겠다는 말은 쓰레기통으로 고고!

"어이없어. 이미 이전에 같은 이유로 여러 번 다투긴 했지만, 사과하면 바로 받아주곤 하더니. 이번엔 헤어지자고 하네. 뭘까?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야, 남자가 되가지곤. 여자친구 헤어지자고 하는 거 받아 주면 버릇된다. 초반에 바로 잡아야지. 한 2주만 연락하지 말고 있어봐. 바로 여자가 보고 싶다고 연락할 걸?"
"그래? 흠. 그럼 2주만 버텨 봐야 겠네."

이별하러 가는 길.

조언을 해 주던 친구들이 우르르 함께 이별 하러 가는 길을 마중 나와 주면 얼마나 큰 위로가 될까요. 하지만 어쩌죠. 이런 저런 조언을 해 주는 친구들도 결국엔 당신의 연애에서는 제 3자 일 뿐인걸요.

"버릇되니까 초반에 잘 길들여야 된다던 녀석들 말 믿고 자존심 세우며 2주 버텼다가 허무하게 떠나 보냈어. 독하다 독해. 2주를 왜 못기다려 주냐? 아, 그냥 그 때 자존심 다 버리고 붙잡기라도 했으면 이렇게 미련이 남진 않을텐데..." 

정말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인연이라면! 필사적으로 진심을 보여주고 붙잡아 보는 건 어떨까요? 나중에라도 후회나 미련이 절대 남지 않도록. 

+ 덧) 인상적이었던 두 여인의 대화
A양 : 자존심까지 버려가며 붙잡았는데 이 남자, 나 돌아봐 주지 않으면 어떡함?
B양 : 바람 난 것 아니고, 딴 여자 생긴 것도 아닌데 널 돌아봐 주지 않는다면 그땐 댁도 쿨해지삼.
A양 : 어디 그게 쉬움?
B양 : 세상에 쉬운 이별이 어디있고, 어려운 이별이 어디 있남? 도전하지 않아 후회하는 것보다야 도전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아프냐? 나도 아프다” 드라마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남자친구와 처음 만나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지금처럼 제가 남자친구를 사랑하게 될 줄은 솔직히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랑이 뭔데?" 라고 되려 묻던 저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연애를 하면서도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대사,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좋겠다." 혹은 "아프지마. 내 마음이 아프잖아." 와 같은 대사를 들을 때면 '정말 말도 안돼! 어떻게 저게 가능해?'를 외쳤으니 말입니다.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엔, 진심으로 누군가를 걱정하고 상대방이 아픈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같이 아파한 적이 없습니다. 가족이 아닌 이상…

"많이 아파?"
"응. 많이 아파."
"어떡해. 워크샵 그냥 빠지면 안돼?"
"입사한지 얼마 안됐는데 감기 때문에 아프다고 1년에 한 번 있는 워크샵 빠지기엔 좀 그래."
"그래서 갈 거야?"
"응. 가야지."

남자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쯤 엔, 전 이제 막 회사생활을 시작한 신입사원이었고 남자친구는 대학생이었습니다. 제가 감기로 인해 심하게 아프지만 신입인지라 워크샵에 빠질 수 없다고 이야기 하니 재차 전화로 걱정스럽게 물어 보는데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내가 아프다고 하니 예의상, 혹은 그저 그렇게 해줘야 될 것 같으니 걱정스럽게, 아닌 걱정스러운 척 하며 물어 본다고 생각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금방 갈게."

오랜 자취 생활을 해 온 터라 이미 몸이 아프면 스스로 병원에 가고 약을 처방 받고 밥 잘 챙겨먹고 하는 것쯤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스스로 잘 하는 저인데 유독 남자친구의 이 한마디를 듣고 나니 혼자서 아무것도 못하는 어린 양이 된 것 마냥 멈칫거렸습니다.

잠깐 병원을 다녀 오겠다며 회사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남자친구의 손에 붙들려 병원에 가서 처방을 받고 약을 받고 닝겔을 맞고 40분 가량을 누워 있었습니다. 저 건너편에서 의사 선생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자친구의 모습이 얼핏 보였습니다.

씨엔블루 정용화

워크샵으로 친목도모 겸 난생 처음 떠나는 스키장.

"아프지마. 의사 선생님한테 물어 봤는데 단순 감기가 문제가 아니라 감기 몸살이 심해서 휴식 취하는 게 정말 중요하대. 워크샵으로 어쩔 수 없이 스키장 간다고 이야기 했더니 가급적 찬 바람은 쐬지 말고 꼭 마스크 하고 무리해서 장시간 스키 타지 말래."

"이거 진짜 따뜻해. 입어봐."

"아파서 점심 제대로 못 먹었지? 이거 회사 사람들이랑 나눠 먹어."

머리는 너무 뜨겁고 몸은 으슬으슬 추운데 그 와중에 남자친구가 건네는 스키점퍼와 마스크, 도시락, 꿀물이 너무 마음을 짠하게 만들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너무 감동적이라 눈물이 났습니다.

"버섯씨, 많이 아픈가 보구나?"
"아, 네. 조금."
"무리해서 워크샵 가지 않아도 되는데. 그래도 가면 정말 좋을거야."
"약 먹어서 금새 괜찮아 질 거에요. 아, 도시락 드세요!"
"뭐야? 어디서 난 거야?"
"남자친구가 만들어 준 거에요."
"이야,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아프다고 하니 지극정성이네. 그 점퍼도 남자친구가 준 거구나?"

그전까진 누군가를 사랑해서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것에 대해 믿지 않았습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라는 드라마 속 대사를 보며 콧방귀 끼며 비웃었으니 말입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워크샵 가는 길, 멍한 머릿속에는 오로지 남자친구의 모습만 떠올랐습니다. 결국, 워크샵을 가긴 했지만 스키장에 발도장만 찍고 너무 아파 스키를 타진 못했네요. 그 날은 난생 처음 스키장을 간 날이자, 난생 처음 가족이 아닌, 상대방에게 보살핌을 받은 날이라 평생 잊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 

늘 스스로 제 자신을 챙기고 다독이며 오랜 자취생활을 해 왔기에, 독립심이 강해 누군가에게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이토록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길 수도 있구나-" 라고 말입니다.

워낙 건강 체질이라 좀처럼 아픈 경우가 없는 저인데 말이죠. 매해 겨울이 되면 그 날의 남자친구 모습이 떠올라 남자친구에 대한 감정이 더욱 애틋해 집니다.

"예전에 오빠가 나 아팠을 때 병원도 같이 가주고, 약도 챙겨주고 그랬던 거 생각나?"
"응. 생각나지."
"그 때 완전 감동이었는데... 나 또 아프면 그때처럼 그렇게 해 줄 거야?"
"아, 그…그럼…"
"뭐야? 대답이 느려. ㅠ_ㅠ"
"하하. 장난이지. 그보다 아프지나 마."
"응. 오빠도 절대 절대 아프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