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도심에 등장한 기린, 아이의 눈으로 보다

이른 아침, 출근길. 늘 그러하듯, 뒷좌석에는 두 아이를, 보조석에는 신랑을 태우고 회사로 향했다. 오늘만 버티면 된다- 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서는 금요일 아침 출근길이다. 

"엄마, 기린이야. 봤어?"

뒷좌석에서 자는 줄 알았던 첫째 아이가 잔뜩 들 뜬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축복아, 뭐라고? 기린?"

분주한 출근길, 삭막하다 못해 살벌한 도로. 도로 위엔 버스며 자가용이며 여러 종의 차가 빼곡하게 장악하고 있고 좌우로는 높은 빌딩과 그 와중에 먼지가 날리는 공사판이다. -.-

여기에 왠 기린? 동물원도 아니고?

당황한 건 나만이 아니었나보다. 신랑도 의아한 표정으로 첫째 아이가 말한 기린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 본다.

"기린이 엄청 크다. 그치?"
"기린이다!"

첫째 축복이에 이어 둘째 행복이까지 '기린'을 외치며 목이 길다, 크다는 말을 내뱉는다. 두 아이의 눈에는 도심 속 한가운데 기린이 보이는데, 신랑과 나는 아무리 둘러 보아도 기린이 보이질 않는다.

나보다 먼저 발견한 신랑은

"우와! 그러네. 기린이 목이 엄청 길어. 그치?" 라며 아이들의 말에 호응해준다.

신호대기중이던 차가 출발하려던 찰라, 뒤늦게서야 아이들이 말한 기린을 나도 알아챘다.
살벌하고 삭막하다 못해 어서 지나가고픈 공사판 바로 옆인데 저 모습을 보고 기린이라 표현하는 아이들이라니.

역시, 아이들의 눈은 정말 신비롭다.

자, 도심 속 기린, 한 번 보시겠어요?

 

기린이 어디에 있다는거지?


기린.


기.린.

아, 찾았다! 기린!

 

나도 아이들처럼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봐야겠다.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온다. 

기린이라니...

하하;

우한 폐렴 확진자 나날이 증가, 송파구에도?!

"아빠,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이렇게 팔 소매로 기침해야지!"

첫째 아들이 아빠가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기침하는 것을 보고 손이 아닌, 팔로 입을 가리며 기침 하는 법을 알려준다. 옆에서 보고 있노라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빠가 잘못했네~~~

"누가 알려줬어?"
"어린이집 초록반 선생님이."
"아, 그렇구나! 꼭 그렇게 해야겠다. 똑똑하네. 우리 축복이!"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여기저기 난리다. 하루가 멀다하고 확진자가 지속적으로 나오니, 무척이나 불안하다. 

두 아이를 데리고 대중교통이 아닌, 자차로 이동하다 보니 차 안에서는 마스크를 끼지 않는다.

"엄마, 마스크 껴야 돼!"

이제 36개월이 지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마스크를 찾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위생관념이 철저하다며 웃어야 할 지, 이런 환경을 물려줘서 미안해하며 울어야 할 지 헷갈릴 지경이다. 

우한 폐렴 확진자 나날이 증가, 송파구에도?!

'라떼는 말이야.' 시전하기 싫지만, 정말 나 때는 가재를 잡으러 뒷산에 가곤 했는데 말이다. (고향이 시골이라...)

각종 매연에 미세먼지, 이제는 알 수 없는 각종 바이러스로 조심 또 조심해야 하는 상황인지라 너무 속상하다. 이렇게 어린 아이들이 알아서 먼저 마스크를 챙기고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손톱 아래까지 구석 구석 뽀독 뽀독 씻고 있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 확실히 교육의 힘인 것 같다.

회사 점심시간, 팀장님, 팀원들과 함께 식사를 하러 가서는 각기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 했음에도

"그건 맛있냐? 나도 한 입 먹어봐도 될까?"

먹던 숟가락으로 내가 먹으려던 음식에 망설임 없이 푸욱 퍼 가시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는 '아놔!' 를 외쳤지만, 나보다 상사라는 생각에 꾹꾹 눌러 참으며 인내했다. 

도대체 위생관념이... 라는 생각은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고 속으로만 하며 말이다.

이제 우리 아이들은 우리 세대보다 더 똑부러지게 개인 위생 관리에 신경 쓸 것 같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야 한다.) 점차 개인 위생에 대한 인식이 더 달라지고 강해졌으면 좋겠다. 

'안죽어! 안죽어! 괜찮아! 괜찮아! 뭘 그리 호들갑이야?' 라는 말을 하며, 개인위생에 신경쓰는 사람을 호들갑 떠는 사람 취급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자신이 마셨던 술잔을 상대에게 권하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술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출근길, 오늘도 어김 없이 어린이집에 두 아이를 데려다 주고 회사 출근을 했다. 어린이집에 두 아이가 들어서자 마자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은 두 아이를 화장실로 데려가 손을 씻겼다. 부디 우리 아이들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일이 없기를... 늘 기도 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우리 아이들의 어린이집이 위치한 '송파구'에도 우한 폐렴 확진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송파구청장입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으로 사회적 불안이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구에서는 어제(2.5.) 자가격리자 중 확진환자 1명(19번)이 발생하여 서울의료원에 격리 치료중입니다.

19번 확진자는 17번 확진자의 동료로 지난달 18~23일 싱가포르 컨퍼런스에 참석한 후 자가격리 중이었으며, 어제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추가 확산 방지를 위하여 확진자의 접촉자 격리와 방역조치를 모두 마쳤습니다.

질병관리본부, 서울시, 송파구가 함께 역학조사 및 동선파악 중이며 결과가 나오는 데로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지역 내 확산방지를 위하여 관내 송파책박물관, 송파체육문화회관, 송파여성문화회관, 청소년센터, 경로당 등의 운영을 임시 중단합니다. 다소 불편하시더라도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구민 여러분께서도 예방수칙을 준수해 주시고, 호흡기 증상 발생 시 송파구 보건소로 연락(☎ 02-2147-3478) 주시기 바랍니다.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지역 내 확산을 막는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당장 내 아이가 우한 폐렴에 걸린 것이 아님에도 그 기사만으로 상당한 공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비타민과 유산균을 주문했다. 그리고 각종 과일, 야채를 추가 주문했다. 

어서 이 위험한 시기가 지나가기를...

마스크를 벗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싶다.

 

올바른 손씻기 / 올바른 기침예절

연애할 땐 몰랐던 신랑의 예쁜 모습

지금의 신랑과 연애를 할 때는 그저 멋있어서 좋았다. 외모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나를 위해 배려하고 행동하는 모습이 무척 멋있어 보였다. 마치 나를 위해 준비된 왕자님이랄까.

결혼을 하기 전, 연애를 할 때부터 카페 데이트를 하면 늘 수다스러웠다. 나는 여자이지만 무뚝뚝하고 말수가 적은 편인데 반해 신랑은 남자임에도 상대적으로 말이 많은 수다쟁이였다. 그래서일까. 카페 데이트를 하면서도 1이라는 주제에서 시작해 그에 파생되는 1-1, 1-2, 1-3의 주제, 그리고 2라는 주제에 다시 2-1, 2-2, 2-3으로 파생되는 다양한 이야기거리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기 전부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녀 교육관이나 맞벌이에 대한 생각, 재무관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할 지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음에도, 연애하며 여러 방향으로 이야기를 나누었기에 '어쩜 이렇게 나와 생각이 비슷할까? 결혼해서 살아도 정말 잘 살 것 같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자리 잡혔던 것 같다. 

내게 그는 '나와 잘 맞는 멋진 사람' 이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그 사람 어때?' 라고 물으면 '그 사람 멋있어.' 라고 대답할 정도로 '멋짐' '멋있음' 과 연관된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기 전까지는.

아이들만 예쁜 게 아니더라-

이제는 '그 사람 어때?' 라는 질문에 마냥 '멋있어' 라는 한 단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음을 요즘 많이 느낀다. 연애할 땐 그 사람을 보며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함께 카페에서 두 손을 잡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마주보던 여유로움은 어디가고, 두 아이가 잠이 들면 나는 설거지를 하고, 신랑은 빨래를 한다. 빨래를 돌리기 위해 세탁실 앞에서 한참 분주하던 신랑.

어느 새,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에 다녀왔나 보다.

"아이들 자는 모습 봤어?"
"아니. 못봤어."
"봐 봐. 진짜 예뻐."

분명 1시간 전, 두 아이를 함께 재우고 거실로 나왔음에도 한참 집안일을 하다가 다시 아이들 방에 다녀와선 내게 두 아이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곤히 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조심스레 문을 닫고 나오는 신랑의 모습이 내 눈엔 참 예뻐보였다. 

다음 날을 위해 두 아이의 어린이집 가방을 미리 싸고 있으니, 신랑이 다시 재촉한다.

"봤어?"
"아니. 아직."
"어서 가서 봐. 둘이 똑같은 자세로 자고 있어. 지금 봐야 돼! 아, 아냐. 내가 사진 찍어서 보여줄게."

신기하지.

두 아이들이 예쁘다고 이야기 하는 신랑의 눈엔 나를 보며 미소지어줬던 그 멋진 눈빛과는 다른 예쁜 눈빛이 묻어난다. 

이 사람, 멋있는 줄만 알았더니 예쁘기까지 하다. 그렇게 내 폰엔 신랑이 사진을 찍어 전달해 준 두 아이의 잠든 모습(낮잠이건 밤잠이건)이 여러장이다.

아빠가 찍어준 낮잠 자는 두 아이
아빠가 찍어준 밤잠 자는 두 아이

연애할 땐 몰랐던 감정, 아이를 낳기 전엔 몰랐던 그의 눈빛이다. 두 아이를 생각하고 살펴주는 모습이 나를 생각하고 살펴주던 '멋짐'과는 다른 '예쁨'으로 다가와 나를 또 설레게 한다.

어린이집 겨울방학을 앞두고 펑펑 운 이유

 

 

맞벌이를 하며 첫째 아들을 낳고 2살 텀으로 딸을 낳았다.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딱히 힘든 일은 없었다. 아이들이 순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육아를 하면서 힘든 것들은 모두 견딜만한 힘듦이었기에 잘 견뎌낼 수 있었다. (내가 조금 더 고생하고 내가 조금 더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잘 버텨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일하는 엄마로서 가장 힘든 것은 '사회생활'이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에 육아가 뒷전이 되는 것.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너무 큰 것.)

이제 2020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싱글일 때는 연말이면 한 해를 마감하고 다음해를 맞이하는 조금은 들뜨면서도 각종 모임에 행사로 즐겁기만 한 시기였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이 되고 나니 연말모임이 버겁고 힘겹다.

 

 

가정 어린이집의 방학은 총 3번이다. 여름방학, 겨울방학, 봄방학.

봄방학이야 다음 학기 준비를 위한 것으로 기간이 짧아 회사 연차를 소진해 쉴 수 있지만, 여름방학, 겨울방학은 각각 1주일이기에 어린이집에 맡기지 못하는 기간 동안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 여름방학은 여름휴가를 이용해 신랑과 내가 번갈아 쉬며 아이를 돌보거나 함께 쉬며 아이를 돌본다. 반면, 겨울방학은 12월의 마지막주인데다 신년이라 무척 애매하다. 

한 해를 마감하며 회사에서 가지는 송년회, 그 외 각종 소모임 연말 모임 등. 연말이면 각종 행사와 모임에 무척 바쁘다.  

"다른 소모임은 취소한다고 치더라도 26일은 회사 전체 송년회라 절대 못빠져."
"어떡하지? 나도 이번에 회사 송년회가 26일이야."

각종 회식으로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다며 죄송하다며 번번히 아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향했다.

 

 

친정이 안되면 시댁으로. 각각 한참 먼 거리이건만 그렇게 두 아이를 차에 태우고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이동했다. 두 아이를 맡길 곳이 양가댁 말곤 대안이 없었기에. 어린이집과 댁이 가까우면 어린이집 마치는 시간에 맞춰 픽업을 부탁드리겠지만, 거리가 멀기에 항상 회식 전날 밤에 미리 맡겼다. 그리고 다음날 회식이 끝나면 다시 두 아이를 데리고서 집으로 향하곤 했다. 

"엄마, 아빠가 내일 회식이 있어서 미안해. 한 밤 자고 내일 저녁에 엄마, 아빠가 회식 마치고 빨리 올게."
"아냐. 차라리 지금 빨리 다녀와."
"아냐. 지금은 밤이잖아. 내일 아침에 회사 출근하고 마치고 회식을 가는거라서 그래. 내일 회식 마치면 빨리 올게."
"아냐. 싫어."

이번엔 승진 회식이 있어서 빠질 수 없다며 양가에 각각 아이를 맡기고, 곧이어 3일 뒤엔 회사 송년회가 있다며 양가에 또 다시 각각 아이를 맡겼다. 이제는 어린이집 겨울방학이다. 1주일.

"처제한테 부탁해 보는 건 어떨까?"
"동생도 우리처럼 직장인이라 연말 회식도 많고 모임도 많더라고. 연초 휴일 껴서 여행 계획하고 있던데 우리 애들 때문에 여행 계획 취소하라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의 아이다. 그럼에도 당연하듯, 어린이집이 쉬면 손녀 봐주세요- 손자 봐주세요- 양가에 맡기는 것이 너무 죄송하고 민망하다. 기껏 자식 키워 놨더니 손자, 손녀 키워 달라고 하니 말이다. 

 

 

친정 어머니는 항상 괜찮다고 하신다.

"괜찮아. 어쩔 수 없지. 데리고 와. 괜찮아."

어머니 허리가 안좋으시면서도 괜찮다고 하신다. 나를 키우시느라 고생하신 어머니인데 이제는 내 아이도 봐달라고 부탁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큰 불효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다. 

눈물이 핑 돌아 멍하니 있으니, 20개월 딸이 묻는다.

"왜요? 엄마 왜요?"
"아니. 그냥. 좀 힘들어서."
"힘들어서?"

내 눈이 빨개진 만큼, 딸의 눈이 빨개졌고 내가 눈물을 흘리니 딸이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죄송해서 울고 있는데, 내 딸이 엄마인 내 눈물을 보고 따라 우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 

어머니께 죄송하고 딸에게 미안한 복잡한 감정. 

"이젠 너 때문에 엄마가 마음 편히 울지도 못하겠다."

맞벌이의 가장 큰 고충이다. 야근으로, 회식으로, 이런 저런 갑작스런 상황으로 두 아이를 믿고 맡길 곳이 없는 것.

둘째가 태어나면서 바뀐 것

둘째의 환한 미소

첫째 때는 난생처음 경험해 보는 임신, 출산, 육아에 정신이 없었지만 아이에게 남는 건 사진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에 사진을 참 많이 찍었다. 반면, 둘째 때는 모든 것이 두 번째라 그런지 소홀하고 인색했다.

오늘 저녁 식사를 마치고 문득 둘째를 보고 있자니, 짠한 생각이 들어 카메라를 들었다. 

첫째 때는 산부인과에서 오라고 하는 시기에 딱 딱 맞춰 산부인과를 찾았다. 혹여라도 잘못되는건 아닌지 하루하루 노심초사하며, 조금이라도 움직임이 없는 듯하면 산부인과로 냅다 뛰기도 했다. 둘째 때는 때가 되면 다 나오는거라며 산부인과 가는 것도 무척이나 게을렀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좋은 생각하고 잘 먹기만 하면 예쁜 아기가 나올 거라며 내 일을 하는데 좀 더 몰두했다. 

첫째의 이 시기엔 절대 용납되지 않았을 뽀로로음료

첫째 때는 간이 센 음식을 너무 일찍 접하면 안 된다며 이유식 시기에 맞춰 간을 조절하였고 초콜릿, 사탕류는 절대 주면 안 되는 음식이었다. 아이가 예쁘다며 어른들이 건네주시는 간식도 조금은 불편해하며 정중히 거절 의사를 밝히곤 했다.

반면, 둘째는 모든 것이 허용이었다. 첫째 때가 이 시기였다면 접하지 않았을 젤리나 쿠키도 먼저 접하고, 간도 좀 더 세다. (이제 뭐 거의 어른 수준이다)

귤바구니 속 귤은 어디로?

첫째는 딸기 킬러인데 반해, 둘째는 귤 킬러다. 귤 한 박스 가량을 담아 두었는데 순식간에 사라진 귤바구니 속 귤을 보고 기겁했다. 

우리의 결혼생활 첫 시작은 단칸방이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힘들진 않았던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단칸방 생활을 하려니 무척이나 힘들었다. 단칸방, 옥탑방에서 시작한 우리의 신혼생활은 첫째를 낳고 나서는 더욱 힘들었다. 양가 도움 없이 우리가 해낼 수 있다며 떵떵거렸던 우리의 거침없는 발걸음은 조금은 위태롭기도 했다.

옥탑방에서 15평 빌라 전세로 이사를 했을 때만 해도 우리 이 정도면 그래도 성공했다며 자축했다. 하지만 또 다시 둘째를 임신하면서 조급해졌다. 어서 더 안정적인 집을 마련하고 싶다며.

돈은 아껴야 겠고, 먹성 좋은 두 아이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는 싶고, 돈은 부족한데 좀 더 큰 집에서 두 아이를 키우고 싶은 욕심. 적어도 다른 건 몰라도 과일은 먹고 싶다고 할 때 꼭 사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모든 것이 상충되어 참 어려웠다. 이제는 24평 아파트에 (비록 서울이 아닌 서울 외곽이긴 하지만) 자리를 잡아 다시 또 힘을 내보자며 서로(부부)를 격려한다. 

대출이자에 허덕이는 맞벌이의 삶이지만 그럼에도 힘을 낼 수 있는 건,

바로 이 아이의 먹성좋은 미소 덕분이 아닐까.

+ 덧) 아, 사진첩을 정리하다 보니 둘째 사진이 정말 없다. 둘째 녀석의 사진을 앞으로 많이 찍어줘야겠다. 

내가 욕하던 30대 워킹맘이 되고 나니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운 좋게 취직한 첫 회사. 그리고 그렇게 20대에 첫 사회생활을 내딛었던 그 회사를 30대 중반이 훌쩍 넘어서기까지 다니고 있다. 이직하네 마네 말 많고 탈 많았던 여러 시간을 지나 아직까지 이 회사만을 다니고 있는 것을 보면 이 회사가 나를 내쳐야만 그만 둘 기세다.

20대 초반 한참 외모와 자기개발에 신경을 쓰고 결혼은 절대 하지 않을거라던 철 없는 아가씨는 어느덧 아들, 딸을 낳아 아줌마가 되었다. 누가 알았을까. 내가 이렇게 바뀔 줄은.

어느 덧 두 아이의 엄마

오늘도 지각이다. 8시 30분까지 출근해야 하는데 어린이집에 도착하니 이미 8시 30분이다. 오늘은 유독 더 심하게 막혔다. 이상하지.

경기도 남부쪽에 있는 집에서 어린이집까지 1시간. 어린이집에서 마포에 위치한 회사까지 1시간. 최소 다음해까지는 이 고생을 해야 한다.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을 갈 때까지는.

맞벌이 부부의 출근시간, 퇴근시간에 맞춰 어린이집 종일반이 가능한 곳을 찾아 헤매다 겨우 대기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어린이집을 찾아 어린이집에 맞춰 집을 이사했다. 그리고 이제는 다음해 유치원을 보내기 위해 친정 근처로 이사를 했다. 그렇다 보니 텀이 생겨 유치원 입학하는 3월까지, 약 3개월 남짓 정도 이 고생을 해야 한다.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두고 운전석에 다시 앉으니 손이 떨렸다. 지각이다. 또 지각이다. 긴장을 해서 손에 자꾸 쥐가 났다. 손을 주무르면서 운전을 했다. 지각이다. 어떡하지. 지각이다.

'여자면 지각해도 되는거야? 여자라서 그렇다는 말 정말 싫어.'

'우리 회사에 여자 차장님이 계시는데 항상 지각해.'

'애가 있는 게 대수야?'

내가 20대 때, 같이 회사를 다니던 기혼인 여자 사수를 두고 항상 가졌던 불만이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있다. 충격적이게도... 팀장님께도 너무 죄송하지만 팀원들 보기에도 너무 부끄럽고 민망하다. 

가방은 차에 두고 차 키와 회사 출입증만 챙긴 채, 뒷문으로 살금살금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두 아이가 생기기 전엔 항상 일찍 출근해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건만, 인사를 잊은지 오래다. 

팀원들도 나의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인사를 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자리에 앉는 나를 곁눈질로 쳐다볼 뿐. 팀장님께 카톡으로 '죄송해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늦으신대요. 선생님 오시면 바로 아이들 두고 출발할게요.' '비가 많이 와서 그런지 오늘 유독 더 심하게 막히네요. 죄송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너무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아이가 아파서 친정에 맡기고 갑니다. 죄송합니다.'

팀장님과 주고 받은 카톡 대화 내용을 보면 온통 '죄송합니다' 가득이다. 

맞벌이는 정말 힘든 것 같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싶어서.

"버섯 차장! 잠깐 회의실로 오지?"

팀장님이 회의실로 호출하셨다. 

알 듯 모를 듯 걱정 반 두려움 반, 회의실로 가자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두고 회사 출근하기 힘들지? 보통 시간이 몇 시쯤 될까? 여유있게. 9시? 9시 30분?"

"우리 여동생도 탄력근무를 할 수 있으니 다행이지, 안그랬으면 많이 힘들었을 것 같더라고."

"맞벌이다 보니 어느 한 사람이라도 탄력근무, 유연근무제가 시행되면 좋은데 그게 아니면 아무래도 힘들지."

"인사팀엔 내가 건의를 해볼테니까."

눈물이 핑 돌았다. (팀장님께 너무 감사하다)

우리 회사는 탄력근무제, 유연근무제가 시행되지 않는 회사다. 그럼에도 팀장님이 건의해 보신다고 하니 이미 그 말씀만으로 너무 큰 힘이 되었다. 1시간 늦게 출근한 만큼 1시간 늦게 퇴근하는 것. 

신랑과 나 둘 다 아침 8시 30분까지 출근이다 보니 아둥바둥 새벽 같이 두 아이를 깨워 나서기가 많이 힘들었다.

그래. 돈이라도 좀 여유 있으면 회사 근처 마포에 집이 있으면 좀 더 편할 수 있었겠지.

그래. 돈이라도 좀 여유 있으면 아이들 도우미라도 써서 어린이집 등하원을 맡기면 좀 더 수월했겠지.

돈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생기는 요즘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돈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또 다시 맞벌이로서의 삶을 지속해야 한다. 

이 탈출구는 어디일까?

어린이집 가기 싫어하는 아이, 마음이 아프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낮이 짧아졌다. 정말 겨울이다. 늘 그렇듯 7시쯤 두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서면 어둑어둑하다.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차 안. 첫째는 눈을 비비며 묻는다.

"아직 깜깜하잖아." (왜 벌써 깨운거야?)
"응. 아직 깜깜하네." (미안해. 이렇게 이른 시간에 깨워서)

첫째가 내뱉은 말의 함축적 의미를 모두 알 수 있다. 모르는 척, 애써 다른 말을 내뱉으며 생각을 돌리려 하지만 아이의 속내를 모르는 건 아니다. 돌이 되기 전부터 가정어린이집을 다녔다. 초기 이사를 두 번 정도 다니면서 어린이집도 여러번 바꼈다.

집에서는 이렇게도 씩씩하게 잘 노는데!

국공립 어린이집을 다니고 싶었으나, 대기가 너무 무한대기라 포기하고 가정어린이집으로만 다녔다. 특히, 이번 어린이집은 아는 분이 계시는 곳이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아 아이를 보내기 시작했다. 심지어 어린이집에 맞춰 인근으로 이사를 했다. 2년 가량 다니면서 적응하고 큰 탈 없이 잘 큰 첫째인데, 최근 많이 힘들어한다. 

"엄마, 무서워. 그 선생님 무서워."

오늘은 유독 차에서 내리기를 두려워했다. 차라리, 소리내어 엉엉 울면 좋으련만, 울음조차 삼켜가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어서 두 아이를 내려 놓고 출근해야 하는데- 다급한 마음과 초조한 마음, 아이를 향한 안쓰러운 마음이 교차한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어린이집에 있는 두 아이.

아침마다 어린이집 당번 선생님이 다르다. 매주 화요일에 있는 당번 선생님을 첫째는 상당히 무서워한다. 반면, 매주 목요일은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않고 당번 선생님이 누군지 확인하곤 신나서 어린이집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화요일은 무척 무서워하고 목요일은 너무 좋아한다. 

매일 같은 어린이집을 가고 있지만, 매일 다른 표정의 아이를 본다.

"무슨 계기가 있어서 그 선생님을 무서워하는 것일텐데."
"그러게. 화요일과 목요일이 이렇게나 다를 수가 있나."

아는 사람이 있으니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좋아서 찾아간 어린이집. 그러나 그 아는 사람을 무서워하는 첫째를 보고 나니 꽤나 껄끄럽다. 철저한 을의 입장이 되어버렸다.

"언니, 선생님한테 말했다가 혹시 아이한테 해꼬지 할까봐 말 못하는거지? 그러지마. 그래도 이야기 해야 돼. 안 그러면 계속 '을'이 될 수 밖에 없어."
"아는 분이라 좋아했는데, 그 아는 사람을 첫째가 무서워하니 너무 힘드네."

오늘 밤, 잠들기 전엔 꼬옥 안아주고 어린이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물어봐야겠다.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 그 사건을 통해 꼭 알아야 할 것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워킹맘으로 이른 아침, 오전 7시 30분쯤 어린이집에 두 아이를 맡기고 저녁 7시 30분쯤 되어서야 두 아이를 찾아 온다. 어린이집 종일반으로 12시간 이상을 어린이집에 두 아이는 있는 셈이다. 두 아이를 맡길 수 밖에 없는 맞벌이 부부이기에 가장 먼저 신경을 쓴 것은 어린이집 분위기, 선생님이 좋은지 여부였다. 어린이집 폭행 사건도 많고 성추행 사건도 있었기에.

요즘 바빠서 뉴스를 접할 수 없었는데 최근 이슈가 된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을 어제 처음 접했다. 

딸 아이 기저귀를 갈고 있다가 지인을 통해 들었다.

"조심해요. 요즘은 어린이집에서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니까."

내 귀를 의심했다. 성폭행? 어린이집?

중고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도 아닌, 어린이집? 어린이집이면 최장 길게 다닌다고 해 봐야 만 6세인데...

"네? 어린이집이요?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를 성폭행한거에요?" 
"아뇨. 어린이집 아이들끼리 서로 망도 봐주고. 선생님한테 비밀로 하라고 하면서. 요즘 한참 그 사건 때문에 시끄럽잖아요."

 

헉!

 

 

소소하게 아이들끼리 장난치는 수준이라고 하기엔 '똥구멍에 손가락을 집어 넣었다' (피해자 아이가 표현) 라는 이야기에 이미 거품을 물었다. 너무 놀라 신랑에게 바로 이야기를 했다. 이 사건, 알고 있었냐면서. 

뉴스를 찾아보고 가해자 입장과 피해자 입장에 대한 이야기도 보며 사건을 파악했다. 하지만, 정작 내가 궁금한 건 어느 뉴스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왜?!

 

정확한 가해자 어린이의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는 최고 나이인 만6세라고 가정했을 때 그래도 성적인 개념이 없을 거라 생각한다. 치마를 입은 여자 아이들의 치마를 들추며 '아스께끼!' 하는 수준이라면 어려서 그럴 수 있지, 관심의 표현이지 라며 웃어 넘긴다지만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분명 노출이 되었을 것이다.

부모가 성관계 하는 모습을 봤거나, 성관련 영상을 TV나 혹은 스마트폰을 통해 접했을 것이다. 

딸과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이런 사건이 더욱 남다르게 다가온다. 딸의 입장에서만 걱정하며 '내 아이에겐 저런 일이 없어야 될텐데' 라는 방어적인 입장에서만 설 수 없다. 아들도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내 아이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 주의해야 하고 미리 알아야 한다. 

"아무리 찾아도 없어. 왜 가해자 어린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비밀로 하라고 했으니, 아이가 분명 잘못된 행동임을 인지하는 것 같거든. 부모가 성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봤거나, 그런 영상을 봤거나 일텐데 원인을 알고 싶은데. 찾을 수 없어. 그런 취재 뉴스는."
"아무래도. 요즘은 그런 취재는 잘 하지 않으니. 사건에 대한 자극적인 이슈몰이에만 집중하니까."

아이들을 데리고 식당에 가면 주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는 경우를 많이 본다. 스마트폰으로 구글 유튜브 영상을 틀어주는 경우인데, 구글 계정을 아이 계정으로 따로 파지 않는 한 부모의 계정으로 된 스마트폰을 쥐어주게 되면 엄마가 보던 영상, 혹은 아빠가 보던 영상과 비슷한 영상이 자동추천영상으로 뜨게 된다. (유튜브 구독 영상이 아니더라도) 또한, 이미 구글 계정 자체가 성인 계정이기에 본 영상이 시작되기 전 나오는 광고 영상이 아이 나이대에 맞지 않는 광고 영상이 뜰 수도 있다.

 

단순히 아이만 믿고 스마트폰을 아이에게 쥐어주기엔 위험하다는 이야기다. (구글은 보는 이가 아이인지, 성인인지 식별할 수 없다. 계정만 성인계정이면 성인으로 본다.) 또한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쥐어주게 될 경우, 유튜브 영상이 아니라 하더라도 부모의 폰에 저장되어 있는 다른 영상이나 사진 등을 볼 수도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쉽게 자극적인 영상도 접할 수 있다. 여러 경우를 생각해야 한다. 

부모의 폰을 아이에게 쥐어주기 보다는 아이만 쓸 수 있도록 따로 별도의 계정 폰을 주거나, 유아 태블릿을 사주는 게 차라리 나을 듯 하다.  

성남 어린이집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추정되는 만 6세의 아이가 처음부터 나쁜 아이일거라 생각지 않는다. 다만, 자라온 환경이나 어떤 상황에서 자극적인 뭔가를 접하지 않았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손가락을 집어 넣는 행동은 절대 할 수 없을거라 생각된다. 욕이 절로 나온다.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단순, 혈육 상 부모 뿐만 아니라 양육자로 있는 부모(할아버지, 할머니)의 행동과 말투 또한 얼마나 아이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얼마나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이, '아이는 알아서 잘 커.' 라는 표현이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향해 '아이에게 뭘 보여주고 어떻게 키운거야' 라며 손가락질하지만 사실 알 수 없다. 그 원인 제공자는 부모일수도. 또 다른 양육자일 수도. 어쩔 수 없이 맞벌이를 하는 부모가 대다수인 요즘. 주 양육자인 아이를 키우는 부모, 손자를 맡아 돌보는 조부모 등 모두가 많이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인 것 같다.

우리 아이가 욕을?! 4살 아기가 욕을 하다니!

"어제 나 첫째한테 충격적인 말을 들었어."
"무슨 말?"
"블록놀이를 하다가 자기 뜻대로 잘 안됐나 봐. 그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것 같은데... 욕을 하더라고."
"어떤? ㅆㅂ?"
"응."

맞벌이 부부이다 보니 두 아이가 아프거나 부득이하게 야근, 회식 등으로 늦어지게 되면 시댁이나 친정에 맡기는 일이 종종 있다. 지난 한 주간 역시, 각자의 일과 회식으로 어쩔 수 없이 시댁 찬스를 사용했다.

36개월이 조금 지난 시점. 어느 날은 어른들의 말투를 따라 "~했냐?"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다그치곤 했다. 어른에게는 공손하게 표현하는 거지, 절대 ~했냐?라는 표현은 하지 말라고 말이다. 어른에게 반말로 ~했어?라고 해도 따끔하게 가르쳐야 할 판에 ~했냐?라고 하니 무척이나 듣기 싫었다. 

퇴근하고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픽업 후, 다시 집으로 향한다

 

사실, '아, 저러다가 어린이집 가서 선생님들한테 미움받겠네.'라는 생각이 너무 크다 보니 더 나무랐던 것 같다.

큰일이다. 이제는 어느새 욕을 배워 왔다. 듣자마자 누구에게 배운 말투인지 알 수 있었다.

우리 집이야 딸 둘을 키운 집이니 그렇지 않지만, 아들 둘을 키운 시댁은 (내가 느끼기에) 상대적으로 터프하고 과격하다. 말이나 행동적인 면에서. 그래서 결혼을 하고 초기 시댁에 갈 때면 종종 울곤 했다. 나쁜 의도로 내뱉는 말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뭐 그때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들을 때마다 놀라고 당황한다.

두 아이를 어쩔 수 없이 양가 어른에게 맡기고 부탁하는 입장이다 보니 이게 참 애매하다.

친정은 내가 나서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시댁은 내가 나서기도 애매하다. 그래서 바쁜 출근길, 신랑에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했다. 역시나, 신랑의 표정을 보니 생각이 많아 보였다.

"어떡하지? 조심해 달라고는 연락드리겠는데 그런 말 절대 쓰지 마세요. 한다고 해서 한 순간에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을 이제 시댁에 맡기지 말까?"
"어디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되나? 상황이 어쩔 수 없으니 양가에 맡기는 거였는데."

마찬가지다. 

초콜릿, 사탕 등은 최대한 늦게 접하게 하고 싶었으나, 어린이집에서 생일잔치를 하며 언니, 누나, 형, 오빠를 통해 초콜릿, 사탕을 접하니 시기에 비해 빨리 접하게 되었다. 밥 먹기 전, 과자는 절대 안 돼! 를 외쳤으나 시댁에 맡기다 보니 아이가 예뻐서 줬다고 이야기하시니 어쩌랴.

TV는 늦게 접하게 하고 싶다고 TV 구매를 늦췄으나 (지금 집엔 TV가 없다) 시댁과 친정에만 가면 TV로 뽀로로를 틀어 달라며 아우성이다. 시아버지가 첫째 아이가 천재라며 엄지를 치켜세우셔서 무슨 말인고 하니,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줬더니 36개월 아기인데도 스마트폰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유튜브를 선별해서 본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오! 마이 갓!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주시면 어떡해요. (이상한 영상에 노출되면 어쩔;)

신랑과 나의 관점에서 '절대 안 돼!'인 것들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무장해제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늘 또 다른 문제를 마주하게 된다. 

늦은 밤, 바로 잠들지 않고 더 놀겠다고 아우성이다.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

 

'잘 부탁드립니다. 늘 죄송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분주한 출근길,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급하게 맡기고 나오며 철저한 '을'이 된다. 우리 아이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혹여 우리 아이로 인해 다른 아이들이나 선생님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까 더욱 조심하게 된다. 

날이 추워지고 밤이 길어져 시간은 아침 시간인데 어둑한 가운데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려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 미안해. 엄마, 아빠가 바빠서. 주말에 또 좋은 곳에 놀러 가자.

죄송합니다. 회식이 잡혀서요. 죄송합니다. 야근을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이미 두 아이를 잘 키워 시집, 장가보내셨는데 연세 많으신 양가 어른에게 손자를 또 부탁드리니 양가 어른에게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게 된다. 

이 상황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맞벌이 육아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처음학교로 유치원 접수, 첫째 아이 유치원 보내기 ; 맞벌이 부부 고충

처음학교로 우선접수는 끝난 상태고 오늘이 처음학교로 일반접수 첫째날이다. 처음학교로는 선착순이 아니며, 모바일 서비스는 제공되지 않는다. 접수시 혼잡이 예상되어 미리 회원가입을 해두었기에 좀 더 수월하게 접수 할 수 있었다. 

'처음학교로'는 모바일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처음학교로 사이트 >> https://www.go-firstschool.go.kr/

결혼하기 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관문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늘 아이와 연관이 되어 있다. 아무래도 맞벌이부부이다 보니 회사 출근과 동시에 내 몸이 내 몸이 아닌지라 (회사의 몸인가?) 늘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첫째 아이는 내년에 유치원을 간다 (가야한다)

'처음학교로'는 유치원 입학을 원하는 보호자가 온라인으로 편리하게 유치원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여 신청하고 유치원은 공정하게 선발된 결과를 알려줌으로써 학부모의 불편 해소와 교원의 업무를 덜어주는 입학지원 시스템이라고 한다. 그러나 동시접속자수가 많아지니 이런 에러가 발생하기도 한다.

유치원입학관리시스템 처음학교로

얼마전까지만해도 유치원 3곳을 쫓아가 줄을 서고, 번호표 추첨에 당첨되길 간절히 바라는 상황이 번번이 연출되었다고 한다. 어느 한 곳이라도 유치원이 되어야 하기에 (대학교가 아님에도) 온 가족이 총출동하여 접수를 하고 추첨을 기원했다고 하니 참 웃픈 현실이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 하루 하루 힘을 주는 두 아이

나라에서는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걱정하면서도. 산부인과를 가 보면 늘 산모가 넘치고 어린이집은 늘 무한대기이며 유치원 또한 클릭 한번을 위해 대기를 하는구나. 아이를 낳고 키우기 위한 시설이나 환경은 더 열악한 듯 하다.

"내가 회원가입 했어."
"응. 잘했네. 내가 가입해야 하나 했어."
"선착순이 아니긴 하지만 빨리 해버리는게 속편하지 않겠어? 내가 접수해보고... 내가 회의나 외근이 잡히면 내가 가입한 아이디랑 비번 공유해줄게."
"응. 그럼 내가 접수하면 되겠다. 이번에 꼭 처가댁 근처 유치원으로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맞벌이부부인지라 집 근처 유치원이 아닌 친정 근처 유치원으로 접수를 했다. 유치원은 일찍 등원이 안되기 때문에 (다른 말로, 회사 출근이 너무 이르기 때문에) 친정에 먼저 맡길 생각이었다.

첫째 아들과 둘째 딸이 2살 터울이기에 첫째 유치원만 잘 들어가면 둘째는 첫째의 득을 좀 보지 않을까 싶다. 재원생 형제 및 자매가 다니고 있다면 우선모집 지원이 가능하다. (어린이집도 마찬가지) 자격조건이 되어야 우선모집 지원이 가능하기에...

상대적으로 첫째에 비해 아직 어린 둘째

아마 대다수가 나처럼 일반모집으로 지원하는 분들이 많을거라 생각된다.

친정 근처 유치원에서 탈락하게 되면 다시 첫째는 어린이집으로 다녀야 할 듯 하다. 나이가 지금 다니고 있는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나이인지라 어린이집 역시, 유치원 탈락을 대비해 대기를 걸어두어야 한다. 

맞벌이다 보니 당연히 교육과정+방과후 과정을 선택해 접수했다. 방과후과정으로 접수 할 경우에는 맞벌이 부부 등 관련 증빙서류를 해당 유치원에 제출해야 한다. 교육청 정책에 따라 방과후과정 증빙서류 없이 접수가 가능한 곳도 있다고 하니 맞벌이 부부가 아님에도 어쩔 수 없이 방과후과정까지 가능한 유치원을 찾고 있다면 유치원별 모집요강을 확인하고 접수하는 것이 좋겠다. 

 

지난 주말, 유치원설명회를 다녀오고 난 이후, 첫째는 더욱 더 유치원에 가고 싶은가보다. 이제 만3살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정어린이집만 다니던 첫째가 이제 정말 많이 컸음을 느낀다. 자신의 의사를 언어로 표현하는가 하면 화장실을 스스로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다 큰 아이 같다. (둘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맞벌이부부라 조금은 미안하고 조금은 서글프다.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도 많고 함께 나누고픈 것도 많은데 돈의 제약과 시간의 제약을 많이 느낀다. 조금이라도 빨리 이 미안함과 서글픔을 없애기 위해 더 아이에게 사랑으로 보살피고 살펴주어야겠다.

[워킹맘 육아일기] 22개월 아기 이마봉합수술 1년 그 후, 이마봉합수술 상처관리 방법

이미 아이가 다친 지 1년여 가까이 흘러 첫째 축복이 이마는 다 아물었다. 그리고 그때 일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을 정도로 끔찍하게만 느껴지는데 여러번 방명록이나 댓글로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아 다시 글을 올린다.  

나는 의사도 아니고 이쪽 분야로 전문가도 아니다. 다만, 하나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전문가 못지 않을 정도로, 아이가 다친 직후, 여러 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하고 관련 전문의에게 많이 질의하고 답을 구했다. 그리고 병적으로 집착하며 관리, 또 관리했다. (내가 진작 이렇게 공부했으면 의사가 되었을 듯;)

이마의 상처는 가로 방향이냐, 세로 방향이냐에 따라 아무는 속도가 다르다. (피부 방향과 상반되면 회복 속도가 더디다) 축복이는 세로 방향인자라, 상처가 더 눈에 띄며 회복 속도가 더뎠다. 

[나를 말하다/워킹맘 육아일기] - [워킹맘 육아일기] 찢어진 이마 봉합 수술 후, 6개월이 지나고 난 후 - 지금도 여전히 관리중

[나를 말하다/워킹맘 육아일기] - [워킹맘 육아일기] 22개월 아기 찢어진 이마 상처 관리 - 메피폼, 스테리스트립, 켈로코트 병행

[나를 말하다/워킹맘 육아일기] - [워킹맘 육아일기] 22개월 아기, 이마 봉합수술 받다




1. 스테리스트립의 사용방법
스테리스트립을 보통 하고 나면 매일 갈아주는 실수를 범하게 된다. 더 위생적일거라 생각해서 말이다. 그러나 절대, 스테리스트립은 자주 갈아주면 안된다. 자연스럽게 떨어질 때까지는 건드리지 않는다. 오히려 위생적인 측면이라며 스테리스트립을 일부러 갈아주려고 떼어내는 과정에서 더 상처가 벌어진다. 

상처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스테리스트립을 부착한다

스테리스트립의 용도는 찢어진 상처를 잘 아물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우리 몸의 치유 능력을 믿어야 한다. 보조만 잘 해주면(더 이상 벌어지지 않게)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괜히 더 스테리스트립을 떼어내고 다시 붙이고 떼어내고 붙이면 떼어내고 붙이는 과정에서 상처는 더 벌어진다. 

흔히 말하는 흉이 생기는 이유는 상처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상처가 최대한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게 1순위다.


2. 흉터연고
흉터연고는 종류가 다양하다. 이전 글에도 소개한 적이 있으니, 흉터연고에 대해 알아보고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대다수의 의사분들이 이야기 한다. 흉터가 없을 수는 없다고.

다만, 정도의 차이. 
꿰매는 수술을 하고 나면 당연히 딱지가 앉기 마련. 흉터연고는 딱지가 있는 상태에서 바르는 것이 아니다. 
딱지가 떨어지고 다 아문 상태에서 더 이상 보기 싫게 흉 지는 것을 막기 위해 바르는 것이다. 봉합사 제거 후, 피부가 어느 정도 아문 상태에서 흉터 연고를 발랐다. 괜히 흉터가 신경쓰인다며 아물기 전에 흉터 연고를 바르는 것은 비추다. 

흉터연고와 재생연고는 역할이 다르다. 연고의 사용법에 맞춰서 사용해야 한다. 

3. 메피폼
사실 이거 도대체 언제까지 붙여야 되는거야? 싶을 정도로 오랜 기간 사용했던 것이 메피폼. 아이의 피부 봉합수술 이후 관리하고 현재 시점이 되기까지 다시금 느끼는 것은 상처 관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자외선 차단' 이라고 생각한다. 

한 여름에 다친 이마인데 겨울까지 메피폼을 붙였다


실제 응급의가 "흉터가 완전히 없을 수는 없다. 다만, 흉터를 덜 나게 하는 방법은 자외선 관리다." 라는 말씀을 해 주셔서 그에 맞춰 자외선 차단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예쁜 아기 얼굴의 이마 상처, 맴찢


메피폼 대신 흉터연고를 계속 사용해도 된다. 그러나 메피폼을 따로 구매하여 관리한 이유는 메피폼이 상처 부위 자외선 차단을 효과적으로 해 주기 때문이다. 
아직 아이가 어려 유아 자외선 차단제가 있다고는 하나, 그 성능도 못믿겠고. (자외선차단제를 잘 바르고 난 후, 나중에 잘 씻겨야 되는데 상처 부위가 더 벌어지지 않게 잘 씻길 자신도 없었다.) 자외선 차단제는 일정 시간 이후 덧바르는게 좋은데 우리는 맞벌이라 늘 아이와 함께 있는 건 아니니. 그리고 한참 뛰어 다니기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더운 날씨, 땀으로 인해 효과도 보장 못한다. (하필, 부위도 이마인지라)

어린이집에 메피폼 여분도 꼭 함께 챙겨 보냈다


메피폼은 밀착되어 자외선 차단이 됨과 동시에 하루 종일 부착하고 돌아 다니니 부담이 없었다. 어린이집에 갈 때마다 그리고 외출할 때마다 부착했다. 

물론, 따가운 부담이 있다. 

"어머, 이마 다쳤어? 어떡해." 라는 주의의 시선. 
"이제 그만 떼어도 되지 않니?" 라는 어른들의 타박. ㅠ_ㅠ

만약 그러한 시선과 이야기들을 버텨내지 못하면 메피폼을 6개월 이상 붙이고 다니기 난감하다. 

이마봉합수술 이후, 아이 이마는 늘 메피폼과 함께;;

현재 첫째 아들, 축복이는 이마 봉합 수술 이후, 1년이 지났으며 흉터는 사진으로는 알 수 없다. 사진으로 흉터를 담아 내는 게 더 힘들 지경. 눈으로는 이마에 상처를 찾으려고 신경쓰면 발견 가능. 그냥 바라봤을 때는 잘 알 수 없다. 

이제는 '이마상처' 숨은그림찾기

 

사고 당시 기억을 떠올리면 너무나도 참담하고 암울하고 모든 것이 내 잘못 같기만 하다. 그런 마음 때문에 더 치열하게 아이 상처가 없던 그때의 깨끗한 이마로 되돌리기 위해 노력 했던 것 같다. 

지금보다 더 애기애기했던 때의 깨끗한 이마


사고는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온다. 워터파크를 가는 순간부터 긴장했다. 물놀이를 하면서도 아이만 주시했으며 물놀이가 끝나고 목욕탕으로 이동해서도 혹시 모를 사고에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신발을 신고 나가기만 하면 되는 그 순간에 사고가 날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내가 대신 아팠으면'

아이를 두고 어른들이 하신 그 말씀이 이제는 너무나도 와닿는다. 



(*) 아이 상처 관리 잘 해 주세요!

[워킹맘 육아일기] 날 당황하게 만든 35개월 아들의 말 "아빠는 아빠지!"

[워킹맘 육아일기] 날 당황하게 만든 35개월 아들의 말 - 호칭을 이해하다

택시를 이용하거나 공유차만 이용하다가 애가 둘이 생기고 나니 도저히 안되겠다며 작은 SUV 를 구매. 카시트는 조금 더 있다가 사자- 라고 이야기를 나눴으나, 역시 안전을 생각해 더 미룰 순 없다며 카시트를 구매. 역시, 아이가 있으니 자금계획이 생각한대로 잘 굴러가진 않는다.  

카시트를 사자마자 당연하게 카시트는 뒷좌석에 나란히 설치. 처음 카시트에 앉아보는 첫째와 둘째. 카시트에 적응하지 못해 울기도 하고 거부한다는데, 두 아이는 카시트에 앉아선 서로 마주보며 너무 좋댄다. (이럴 때면 둘 낳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카시트를 구매함으로 인해 두 아이만큼이나 행복해 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신랑이다.

차를 탈 때면 뒷좌석에서 초조해 하며 두 아이를 보조하던 신랑은 드디어 앞좌석으로 입성했다. 두 팔에 자유를 얻은 신랑은 차를 탈 때면 보조석에 앉아 있는 애교만땅이다. (아, 참고로 우리집은 내가 드라이버. 신랑은 면허가 없다.) 

신랑과 연애 2년, 결혼 3년차. 아직 신혼. 2살 연하인 신랑은 종종 '오빠' 라는 말을 종종 듣고 싶어하는 듯 하다. 어떤 자랑거리를 늘어놓을 때면 마지막 멘트는 꼭 '오빠 멋있지?' 로 끝맺음을 하곤 한다. 어떤 날은 '어우, 우리 오빠 최고!' 라는 리액션을, 또 때로는 '우쭈쭈, 우리 신랑 멋지다!' 라는 말로 대체를 한다. 

다정한 신랑, 자상한 아빠를 만난 것도 참 큰 복이다

 

신랑 덕분에 애교가 좀 늘긴 했으나, 좀처럼 말이 없고 무뚝뚝한 나와 달리, 신랑은 말이 많고 애교가 많으며 섬세한 남자다. (남녀가 바뀐 것 같다.)

퇴근길, 신랑 회사 앞에서 신랑을 픽업하는 순간부터 재잘 재잘 신랑의 수다가 시작된다.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픽업해 집으로 가는 5분 남짓한 시간에도 신랑이 못다한 말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문제는, 아빠를 쏙 빼 닮은 두 아이 역시, 뒷좌석 카시트에 앉아 재잘재잘 말이 많다는 것이다. 난 참 복이 많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내게 이렇게나 화자가 많으니 말이다. 

대답을 할 때까지 물어보는 아이와 자신의 이야기에 어서 공감해 주길 바라는 신랑 사이에서 종종 어느 대답을 먼저 해야 할 지 골 때리는 상황이 더러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 좋다. 

"아, 오늘 회사에서 상무님께 보고를 했는데, 생각보다 잘 한 것 같아. 칭찬 받았어. 어때? 오빠 멋있지?"
"오, 멋있네! 오빠, 최고!" (엄지척!)

늘 그렇듯, 일상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뒷좌석에 있던 첫째가 갑자기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마치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어린이집에서 대다수의 시간을 보내는 첫째 아들

 

"아하하... 아빠! 아빠는 아빠! 내가 오빠!"

 

...?!

 

"아빠는 아빠지! 아빠가 왜 오빠야? 아하하... 오빠는 나! 아빠는 아빠!"

 

...

 

"아, 그렇지. 맞아. 빈이가 오빠지. 아빠는 아빠지. 맞아."

 

갑자기 뒤통수를 세게 때려 맞은 느낌이 들었다.

 

아빠를 닮아 참 밝다

 

그렇지. 첫째 아이의 입장에선 아빠는 아빠지.

 

어른들이 종종 아이 앞에서 호칭에 신경써라, 호칭에 주의하라, 라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 것 같았다.

 

첫째 아이 입장에서 오빠는 여동생이 있는 본인일테고. 뒷좌석에 앉아서 둘의 대화를 이해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모든 대화를 다 이해하고 있고, 호칭까지 정정해 줄 정도로 아이가 컸다는 생각에 정말 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그리고 본인이 아는 걸, 엄마, 아빠는 왜 모르지? 그걸 왜 몰라? 하며 깔깔 웃으며 알려 주는 귀여운 첫째 녀석의 행동이 무척 귀여웠다. 언제 크지? 싶었던 아이가 어느 덧, 35개월. 곧 36개월이구나... :)

[워킹맘 육아일기] '나도 엄마랍니다' 이제 제법 엄마 같네?

작년 여름, 첫째 아이의 이마가 찢어지는 사고로 인해 119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은 처음 가 보았다. 이번에는 나의 아이들이 아닌 '나' 다. 올해만 해도 발목 수술과 허리 통증에 이어 몇 번째 병원행인지 모르겠다.

난 그대로라고 생각하는데 내 몸은 전과 같지 않다. 순식간에 달리진 내 몸. 내 몸인데, 내 몸 같지 않다.

흠칫- 그러고 보니 이 멘트, 뭔가 익숙하다. 

"아이구, 아이구, 허리야. 너도 나이 들어봐.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아. 젊은 게 좋은거야."

평소 늘 달달한 부부 사이지만, 종종 신랑과 투닥투닥 말다툼을 하는 날이면 늘 속이 쓰렸다. 마음이 아픈게지. 이 날도 신랑과 소소하게 말다툼을 했다. 정말 별 것 아닌 것으로. 물론, 6시간이 지나기도 전에 풀었지만. 보통은 그렇게 풀고 나면 답답한 속이 뻥 뚫리곤 했는데 심상찮았다. 속이 영 갑갑했다. 

"이상해. 속이 너무 쓰려."
"약 먹는게 나으려나?"

신랑이 약국에 가서 속쓰림 약을 사와 약을 먹고. 평일 일상이 늘 그렇듯, 어린이집에서 두 아이를 픽업해 와 먹이고 씻기고 정신이 없었다. 평범한 맞벌이 부부의 일상이었다.

일하고 돌아와 녹초가 된 엄마, 아빠와 달리 남매는 늘 밝다

밤 11시가 넘어서자, 통증이 더 심해졌다. 속이 쓰리다- 라는 감각에서 이젠 명치 부근의 뻐근함이 느껴졌다. 꽉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묘했다. 

순간, 심장에 무슨 이상이 생겼나? 라는 공포가 밀려와 신랑을 붙들어 택시를 타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 도착은 12시 전에 했으나, 대기가 있어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어찌 저찌 증상을 설명하고 심전도 검사와 혈액검사 X-ray 촬영까지 마치고 링겔을 맞고 대기. 시간이 지날수록 통증은 약화되었고 담당의는 위염 내지는 역류성 식도염이 의심된다고 했다. 검사로는 딱히 두드러지지 않는 관계로 증상이 계속되면 병원을 재방문할 것을 권고받았다.

응급실에서 처방받은 약 먹고 어서 낫자!

예전과 몸이 다르다. 그리고 예전과 마음도 다르다. 아파도 병원에 가지 말고 약도 멀지 말고 버티자던 예전의 똥고집은 어디 가고, 조금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싶으면 내 몸을 챙기게 된다. 

나를 챙기기 위함이 아니라 나의 가족을 챙기기 위함이다. 

내가 아프면 내 아이들은 어떡해. 내 남편은 어떡해.

결혼하고 아이를 임신하고 갓 출산했을 때만 해도 과연 내게 모성애가 있나, 엄마의 자격이 있나 끊임없이 되묻곤 했다. 아마도 그 기준이 나를 키우시느라 많은 희생을 하신 '엄마' 를 떠올렸기 때문인 것 같다. 

링겔을 다 맞고 약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니 새벽 3시 30분. 2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다시 출근 준비를 했다. 

조금은 멀고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엄마' 라는 옷이 이제 조금 내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맞벌이부부이다 보니 퇴근 후, 함께 저녁 식사를 먹으려면 시간이 늦어질 수 밖에 없었다.

신랑과 함께 하는 저녁은 메뉴가 뭐건 늘 맛있다

때론 두 아이를 케어하느라 두 아이를 재우고 밥을 먹기도 일쑤였다. 야식 겸 저녁식사가 되고. 또 졸리면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잠들기도 했다. 아마 그런 패턴이 계속되다 보니 응급실까지 가게 된 게 아닐까 싶다. 

아이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부부 역시 건강을 잘 챙겨야 함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 

[워킹맘 육아일기] 육아와 가사를 잘 도와주는 남편의 소중함

갑작스러운 발목 인대 파열로 수술, 입원을 하게 되면서 (거기다 허리 디스크까지) 부득이하게 신랑이 독박육아를 했다. 2개월 가량의 독박육아의 끝. 내가 퇴원하면 모든 것이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것 같았지만 퇴원 후 집으로 돌아와서도 허리 통증으로 힘들어 하는 나로 인해 육아와 가사는 아빠의 몫이 되었다. 의사표현을 잘 하고 두 발로 서고 걷다 못해 무척이나 잘 뛰는 첫째는 무리가 가지 않으나, 아직 두 발로 서 있는 시간보다 무릎으로 기어 다니는 시간이 더 많은 둘째를 케어하기란 무척 힘들다. 환자가 아닌 정상인이 돌봐도 한참 자기의지가 생기는 (그러나 걷지는 못하는) 이 시기의 아이 돌보기란 쉽지 않다. 아이의 무게를 오롯이 내 허리가, 내 팔목이 지탱해야 하기 때문에.

신랑이 환자인 나를 대신해 아이를 많이 안고 돌보지만 신랑 역시 '아이고, 허리야' 라는 표현을 종종한다. 참 미안하다.  

육아는 물론이고 가사까지 신랑이 도맡아 하다가 요즘 컨디션이 좋아진 것 같아 가사일과 육아를 다시 분담하여 하기 시작했다. 2개월 가량 육아와 가사를 오롯이 두 아이의 아빠 혼자 도맡아 했다. 반대로 난 병원에서 입원하여 생활했던지라 아이들과 떨어져 지낸 시간이 상당하다. (주말마다 아이들을 봤다고는 하지만)

'아빠딸' 머리핀을 사주고 싶어 하던 아빠. 결국 샀다.

첫째 아들은 잘 놀아주는 아빠를 어렸을 때부터 잘 따랐다. 둘째 딸은 그래도 엄마인 나를 더 따르는 듯 했는데, 나와 떨어져 지낸 시간이 적지 않아서일까. 딸 역시, 아빠를 무척 좋아하고 잘 따른다. 잠 잘 시간이 되어 불을 끄고 재울 때도 내가 곁에서 재울 때보다 아빠가 토닥이며 재울 때 더 빨리 잠드는 것 같다. (우연인가)

아빠 품에서 떨어지면 울음을 보인 적 있지만, 엄마 품에 있다가 떨어져서 울음을 보인 적 없다. (이 역시 우연인가)

"예뻐! 예뻐!"

신랑은 딸에게 콩깍지가 씌인 모양이다. 

아빠딸

객관적으로 예쁘지는 않은데 신랑은 예쁘다는 말을 남발한다. 사실, 신랑 외에 딸에게 콩깍지가 씌인 한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첫째 축복이다. 산후조리원에서 둘째를 데리고 처음 집으로 왔을 때는 첫째 축복이에게 일부러 예쁘다는 대답을 유도하기 위해 질문을 자주 했다.

"애기 예뻐?" 라고 물어야 "응. 예뻐." 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요즘은 동생을 빤히 보고 있다가 갑작스레 동생이 예쁘다는 말을 한다. 누가 시키지도,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애기 예뻐!"

이제 두 돌 밖에 지나지 않은 본인도 아기이면서 동생을 보며 "애기 예뻐!" 라는 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기도 하고 대견하다. 

첫째가 내게 폰을 달라고 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경우는 2가지. 

하나. 본인의 사진을 보기 위해 (저장되어 있는 사진)

둘. 동생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작동시켜 동생을 촬영)

도란도란 모여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둘째 행복이는 첫째 축복이를 쫓아 다니며 논다. 뭐든 따라 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일까. 확실히 빠르다. 쑥쑥 크는 우리 첫째와 둘째. 

첫째도 둘째도 아직까지는 엄마보다 (혹은) 엄마만큼 아빠를 잘 따른다. 그래서 육아를 하는데 있어서도 가사를 하는데 있어서도 부담이 없다. 한참 아픈 와중에 두 아이 모두 엄마만 찾아 내게 매달렸다면 솔.직.히.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질병으로 아플 수 있을 지언정 사무직이라 상해로 다칠 일이 없어요- 라고 호언장담하며 보험 컨설팅을 받았었는데 정말 사고는 순식간인 듯 하다. 그리고 이번 사고로 엄마 못지 않게 아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막상 내가 다치고 아파 보니 아빠의 소중함을 많이 느낀 듯 하다. 입원 기간 동안 신랑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이기도 하다. 

"내가 아픈데, 당신마저 아프면 안돼. 절대 아프면 안돼."

두 아이에게 엄마가 소중한 만큼, 아빠가 무척 소중함을...

새삼 육아며 가사며 잘 도와주는 신랑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워킹맘 육아일기] 평소와 달리 보채던 아기, 알고보니

[워킹맘 육아일기] 평소와 달리 보채던 아기, 알고보니 중이염. 열이 없이 찾아온 중이염?


"그만해! 이제 그만 자!"


아빠가 화가 났다. 첫째 축복이가 평소와 달리 과하긴 했다. 아프지 않은데 아프다고, 목이 마르지 않은데 물 마시고 싶다고, 우유 달라고... 잠들기 전 자지 않기 위해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맞아. 검색해보니까 잠들기 싫어서 이것저것 요구한대. 다른 아이들도 대다수 그래. 그냥 꾀병인거지 뭐."


그런 줄 알았다. 


요즘 부모 치고 상당히 엄한 편인 아빠. 첫째 축복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또 혹여 한참 울다가 토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어 (감정적으로 크게 동요되어 울 때면 간혹 토하기도 했다) 아빠는 이내 다독이며 안아주었다.




아기들이 잠들기 전 보챈 이유


첫째에 이어 이제는 둘째가 좀처럼 잠들지 않는다. 첫째를 겨우 재우고 나니 둘째가 잠들지 않아 엄마인 나와 아빠인 신랑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나도 이렇게 피곤한데, 신랑도 얼마나 피곤할까.


잘 때는 그냥 푹 자주면 좋은데. 잘 자던 아이들인데 요즘 왜 이럴까. 잘 자던 아이들이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많이 보채는 것 같아 속상했다. 


평소와 달리 보채던 아기, 알고보니집은 늘 난장판이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다음날 오전, 두 아이가 유달리 목이 걸걸하고 콧물이 나오는 듯 하여 오늘은 병원에 가자며 신랑과 약속을 하고 퇴근 후 두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에게 늦게까지 봐주는 소아과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른다. 평일 저녁 8시 30분까지 접수만 되면 진료를 봐주셨다. 


"음. 많이 보채지 않던가요?"
"아..."
"어휴. 이 정도면 많이 보챘을 것 같은데? 한 2~3일 전쯤? 보채지 않았어요? 평소와 다르다던가."


의사선생님이 중이염이라고 하셨다. 아이들이 많이 아팠을거라고. 


"나 때문인가. 나 중이염 때문에 어렸을 때 엄청 고생했잖아."


신랑은 어렸을 때 중이염을 심하게 앓아 수술까지 하고 귀 고막에 이관이란 튜브를 박기도 한 케이스라 혹시 본인 때문에 두 아이들이 영향을 받은건 아닌지 우려했다. 중이염이 유전은 아닐텐데. 신랑도 나처럼 아픈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에 괜히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보는 듯 했다. 


아기 중이염중이염 때문에 그렇게 칭얼거린 거라곤 생각 못했다.

 

열이 없이 찾아온 중이염?


난 나내로 엄마인데 일찍 눈치 채지 못했다는 생각에 속상했다. 또 다시 항생제 치료... 


중이염은 귀 고막의 안쪽인 중이라는 곳에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감염되어 일으키는 병으로 열이 나고 귀가 아픈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심한 경우 귀고막이 터져서 고름이 나오기도 하고 오래 지속되면 고막 안에 물이 차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다행히도 대부분의 경우 별다른 문제가 없이 완전히 좋아진다고 한다.


중이염을 겪어본 신랑은 중이염은 열이 나는 것이 특징인데 두 아이 모두 열이 나지 않아 이상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열이 나도 알 수가 없다. 아침 일찍 어린이집에 보내 지고, 또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 오니 두 아이에게 열이 났음에도 열이 난 줄도 모르고 지나간 것일 수 있다.


워킹맘육아일기매번 안쓰러워 보이는 아기


어린이집에 가는 첫째와 둘째 모두 중이염으로 인해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일단 항생제를 사용하는 경우는 증상이 좋아진다고 임의로 그만 먹어서는 안 되고 반드시 의사가 그만 먹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항생제를 복용해야 하기에 3일 뒤에 또 다시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어린 아이들의 경우 청력이 언어발달이 매우 중요한데 중이에 물이 차면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아서 언어 발달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중이염을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이 첫 중이염이 아닌지라 신경이 많이 쓰인다. 


맞벌이맘 육아일기6개월이 넘어가면서 면역력이 떨어진다


평소와 달리 보채고 짜증을 낸다면, 다그치고 화낼 것이 아니라 아기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우선 되어야 될 것 같다. 역시, 건강이 최고다. 


[워킹맘 육아일기]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하는 말은? 엄마?

[워킹맘 육아일기] 아기 말하는 시기 처음 하는 말은 당연히 엄마인 줄 알았지만


지금의 두 아이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아가들은 '엄마'를 먼저 말하는 줄 알았다. 입을 오므렸다가 벌리기만 하면 발음되는 정말 쉬운 단어 아닌가. 


엄...마!


신랑과 2년? 3년 가까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서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걱정이 많이 되었다. 평소 아기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아기를 가지면 어쩌자는 건지... 우리 부부가 아닌 더 급한 부부에게 아기천사가 먼저 갔어야 되는거 아닌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중한 아기가 너무 일찍 찾아온 게 아닌지. 걱정의 연속이었다. 


참 신기하지. 아기라면 관심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던 내가. 조금씩 불러 오는 배만큼 알게 모르게 모성애가 자라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를 만날 그 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임신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끊임없이 '아빠'를 되내었다. 마음 속으로건, 입 밖으로 내뱉으면서건.


그렇게 의도적으로 첫째 축복이가 '아빠'를 먼저 내뱉길 바라며 뱃속에서부터 가르쳤다. 


[워킹맘 육아일기]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하는 말은? 엄마?임신 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엄마' 보다 '아빠'를 먼저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래서인지 첫째 축복이는 여러 옹알이의 단계를 거쳐 제일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역시, '아빠'를 먼저 했다. 6개월 전후쯤이었던 것 같다. 첫째가 '아빠'를 먼저 하니 역시, 신랑이 무척 좋아했다. 


"다 내 덕분이야."


툭하면 다 내 덕분이라며 이야기를 했고, 신랑은 툭하면 다 내가 아이에게 잘해서라고 응수를 뒀다. 맞다. 신랑이 두 아이에게 정말 잘한다. 


그리고 이후, 둘째 행복이의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는 첫째 축복이 때와는 달리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굳이 '엄마'를 먼저 하길 유도하지도, 굳이 '아빠'를 먼저 하길 유도하지도 않았다.


아기가 태어나서 처음 하는 말은행복아, 너마저 '아빠'를 먼저 하는거니?



그런데. 얼마 전, 행복이가 옹알이 단계를 넘어서 첫 말을 내뱉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아. 빠.


너무나도 정확하게.


뒤이어 반복된 아빠 아빠 아빠 아빠 무한 반복.


"뭐지?"


왜 '아빠'를 먼저 하는거냐며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남편이 알 턱이 있나. 오로지 둘째 행복이만 알겠지. (아니, 행복이도 기억은 못하겠지.)


처음엔 내가 임신 했을 때부터 아빠를 먼저 하도록 교육시켜서 '아빠' 를 먼저 한 거야- 라며 교육의 힘을 강조했다. 막상 교육 시키지 않은 행복이 마저 '아빠' 를 먼저 내뱉고 나니 신랑의 논리가 묘한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아빠와 더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아빠가 두 아이를 더 예뻐해줘서? 두 아이도 아빠를 더 좋아하나? 


워킹맘육아일기22개월 당시 축복이가 그린 아빠



요즘 부쩍 말문이 터진 29개월 축복이에게 신랑이 질문을 했다. 


"축복아, 뽀로로가 좋아? 핑크퐁이 좋아?"
"음... 뽀로로"


설마, 치사하게 아빠 좋아? 엄마 좋아? 묻는 건 아니겠지?


"친구 ㅇㅇ가 좋아? 동생이 좋아?"
"동생"


아, 설마 진짜 치사하게 아빠가 좋냐고 묻는 건 아니지?


"음... 그럼,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아빠랑 엄마랑"


내심 아빠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축복이여서 '아빠' 라고 대답할까봐 조금, 아니 많이 긴장했었다. 그런 나와 달리,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빠랑 엄마랑' 이라고 똑부러지게 대답하는 축복이를 보며 적지 않게 놀랬다. 


우. 문. 현. 답.


그래. 처음 하는 말이 아빠면 어때. 여전히 두 아이는 '엄마랑 아빠랑' 둘 다 이렇게나 사랑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