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상형이 '나보다 강한 남자'였던 이유

 

어렸을 때부터 마음 속 깊숙이 칼을 품고 다녔다. 누구든 나에게 화살을 쏘려 한다면 내가 그 전에 품고 있던 칼을 내밀겠다는 생각으로.

 

누군가 나에게 아픔을 주면 상대에게 몇 배의 고통을 주어야 한다고. 그렇게 해야 내가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다만, 너무 어린 나이에 다소 감내하기 어려운 여러 일을 겪으며 스스로를 그렇게 만들어 갔던 것 같다.

 


10대의 나이에 어느 누군가 시킨 것이 아님에도 인생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라며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다. 20대가 되어서도.

이상형이 '강한 사람'이었던 이유


서로의 살 길이 바쁘다 보니 길을 가다 낯선 이와 어깨를 부딪힐 수도 있고, 어쩌다 보니 의도치 않게 상대가 나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엔 소소한 그런 것들 조차 용납할 여유가 조금도 없었다. 늘 마음 속엔 독기를 품고 있었고, 얼굴엔 살기를 품고 있었다. 하루하루 생계를 위해 살아가기 바빴기에.

 

그리고 20대 초반, 처음으로 내 마음을 두드린 상대방과 연애를 하면서도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계산하고 끊임없이 평가하고 있었다. 상대방의 조그만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나의 기준, 나의 잣대에 맞춰 있었다. 나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놓은 것만큼,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엄격한 잣대를 놓고서 판단했다.

 

"너 나 좋아하지? 그런데 왜 나한테 맞추지 않는 거니?"

 

내가 좋다는 상대에게 나의 호불호에 맞춰 줄 것을 요구했다. 상대가 날 좋아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일방적 억지를 부리는 연애의 결말은 뻔하디 뻔하다. 
 

"이젠 정말 나보다 강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

 

자존심도 세고, 이런 저런 따지는 것도 많고 까다로운 나의 성격을 함께 맞출 사람은 아마도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어야 가능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하자는 대로 하는 남자 보다는 나를 이끌어 줄 수 있는 남자가 좋은 것 같아."
"나쁜 남자 스타일? 네가 아니라고 해도 확 밀어붙일 수 있는?"
"음. 그렇게 되는 건가? 아무튼 나보다 강한 사람."

 

'나보다 강한 사람'

 


어째서인지 이상형이 '나보다 강한 사람'이 되어 버렸다. 내가 고집이 세기에 나의 고집을 꺾어 줄 수 있는 더 억센 남자를 원했고. 내가 욕심이 많기에 나만큼이나 욕심이 많은 남자를 원했다. 그 땐, 그런 남자가 나와 잘 어울리는 남자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6년 넘게 연애하고 있는, 결혼을 약속한 지금의 내 남자친구는 내가 그리 외쳤던 '강한 사람'과는 완전 상반되어 보인다.

 

"내 남자친구 어때? 멋있지?"
"버섯, 그새 이상형이 바뀐 거야? 네가 어렸을 적 그렇게 이야기 하던 '강한 남자'는 아닌 것 같아. 부드럽고 순해 보여. 이야기 들어 보니 자상한 것 같고."
"그렇지?"

 

6년만에 만난 친구들은 어렸을 적부터 내가 그렇게 이야기 하던 이상형과 다른 남자친구를 보곤 의아해 했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장기간 만나면서도 친구들만큼이나 나도, 어째서 이상형과 상반된 듯한 지금의 남자친구를 이토록 사랑하게 된 건지 궁금증을 풀지 못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 VS 가장 약한 사람


늦은 시각, 지하철역엔 제정신이라 하기 힘들 정도로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욕을 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보곤 한다. 혹여 저 사람이 나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무서운 마음에 남자친구의 곁으로 더 가까이 붙어 섰다.

 

"왜? 무서워?"
"응. 저런 사람들이 제일 무서워."
"술에 취해서 욕하는 사람이 무서워?"
"응. 술에 취하지 않았는데도 욕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도 많아. 오빤 안 무서워?"
"하하. 바보. 그런 사람들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이야."

 

내가 살아가면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남자친구에겐 '가장 약한 사람'이란다.

무서운 것이 많은 사람일 수록, 약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겉으로 더 강해 보이려 하고, 무서워 보이려 한다고. 진짜 무섭고 강한 사람은 굳이 그렇게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고.

그 이유를 들으니 어째서인지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궁금증을 해결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때, 살아가기 힘들어 독기와 살기를 품었던 나는 나 스스로가 참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남자친구 말대로 무서운게 많아 겉으로 강한 척 했을 뿐 실상 약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그래서 난 나보다 강한 사람을 이상형으로 그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게 남자친구는 강한 사람이다. 내 이상형과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사람이다.

'강한 사람'. 겉모습이 강한 사람이 아니라, 속이 깊고 강한 사람.

책을 통해, TV를 비롯한 각종 대중매체를 통해 삶에 대한 자세를 배우고 몰랐던 바를 깨닫곤 한다. 난 남자친구와의 연애를 통해서도 그런 배움을 얻곤 한다. 

하루 하루 남자친구에게 감사하게 된다. 덕분에 많이 배우고 깨닫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