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둥이인 줄 알았던 남자친구, 알고 보니

연애를 하며 한번쯤 의심하게 되는 "혹시, 이 사람 바람둥이 아니야?"

지금의 제 남자친구를 만나 첫 데이트를 할 당시 솔직히 제 머릿속에는 온통 '선수 같은데?' 라는 생각이 물음표가 맴돌고 있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미리 영화 예매를 하고 근처 어느 식당에 뭐가 맛있는지도 친절하게 알려 주며 능숙하게 메뉴 괜찮은지 물어보고 샤방 미소를 날려주니 말입니다. '첫 연애라더니... 첫 데이트라더니... 거짓말!'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이유가 보통 일반적인 어색해 하는 남자의 경우,

"뭐 좋아하세요?"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아, 그럼 뭘 먹지… 뭘 먹을까요?"
"아…"
"저기, 그럼 한식, 중식, 일식, 아, 이탈리아 음식도 좋아하세요? 하나 골라 보세요."
"네? 아, 네..."

이렇게 고민하는 데만 15분 이상을 가만히 서서 망설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헌데 제가 늘 꿈꿔왔던 자상하면서 주도적인 스타일을 막상 마주하고 나니 '여자를 많이 만나봤군' 으로 자연스레 생각이 이어지더군요.

"아, 여기 근처엔 어디가 무슨 메뉴로 괜찮다고 하더라 구요. 이 음식 좋아하세요?"
"아, 네. 좋아해요."
"그럼, 그쪽으로 갈까요?"

늘 친구들을 만날 때면 제가 주도하고 끌어가는 스타일이었던 터라 연애를 하게 된다면 이젠 내가 좀 끌려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막상 그런 남자를 마주하고 나니 선수인가, 바람둥이인가, 의심부터 품게 되니;;; 헙;

저녁을 먹고 나서도 예매된 영화를 보기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은 상황.

가까운 찻집에 들어가서도 첫 데이트인지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해 지더군요.

소개팅이나 미팅으로 만난 사이가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울리는 자리에서 자연스레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사귄 사이라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땐 이런 저런 말도 많이 하고 시끄럽게 떠들며 서로 이야기 하겠다고 재잘거렸지만 막상 단 둘, 데이트라 명하고 만나니 갑자기 어색해 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남자친구가 심리테스트를 해 주겠다며 종이 한 장을 가방에서 꺼내더군요.

"영화 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았잖아. 혹시라도 영봐 보기 전까지 시간 애매해지면 뭐할까 고민하다가 심리테스트 챙겨왔어."
"우와."

겉으로는 '우와!' 를 외치고 속으로는 '선수 같애!' 를 연신 외쳤습니다.

여자 심리를 꿰뚫고 있는 듯 술술 내뱉는 말이며 미리 미리 뭔가를 준비하고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말입니다.

막상 제가 꿈꾸던 주도적이고 이끌어주는 멋진 이상형의 남자를 만난 것 같기도 한데 자꾸만 선수처럼 느껴지고 바람둥이일 것 같은 느낌을 지워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첫 데이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친구에게 수다스럽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름 난 지금 콩깍지가 씌인 상태인 것 같아서 명확하게 판단할 줄 모르니까 친구들에게 물어보자- 라는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물어본 것이었습니다만, 이전 글(친구 따라 강남 가듯 친구 따라 연애하기?) 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연애는 친구가 하는 것이 아닌 제가 하는 것이기에 참고만 하는 것이 좋죠.

"정말 선수인걸까?"
"응. 아무래도 선수 같아. 너한테 그렇게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매너있게 했다고 하니."
"헉! 정말?"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많은 맛집을 미리 알고 있겠어? 이미 여러 여자 만나봤으니까 그렇게 잘 아는거지."
"그런가..."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데이트를 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주변 맛집을 먼저 알아두고 첫 데이트인지라 설렘을 안고 이것저것 미리 준비한 것이더군요.

만약, 그때 주위 친구들의 말을 듣고 '바람둥이야' '선수야' 라고 단정지어 그를 향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면 5년간 알콩달콩 예쁜 사랑을 하고 있는 남자친구가 지금 제 곁에 없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해 지는데요? ^^

그 사람이 바람둥이라는 확실한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심적인 증거만으로 '이러이러하니까 바람둥이 같아' 라고 단정 짓는 것은 적어도 예쁜 사랑을 지속하는데 있어서 장애물인 것은 분명한 듯 합니다. 오랜만에 찾아온 예쁜 사랑을 제 발로  뻥 차버릴 뻔 했네요.


"남자친구랑 워터파크에 갔더니 다른 노출 심한 예쁜 여자만 골라서 보는 것 같아. 치! 언제는 항상 나만 본다고 하더니."
"하하. 남자가 예쁜 여자를 보는 건 본능이야. 그런 본능은 정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어. 그냥 저절로 눈이 가는 거거든. 일종의 아이쇼핑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정말 네가 남자친구에게 한 소리 해야 하는 상황은 길을 가다 예쁜 여자를 힐끗 본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그 본능을 이성으로 제압하고 이겨내지 못하고 널 두고 다른 여자를 만날 때 해야지.
바람? 솔직히 남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걸. 대부분의 남자가 바람 피울 줄 몰라서 바람 안 피우는 줄 아냐?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기 싫으니까 그 마음으로, 욕구를 이겨내는 거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 '이 남자는 바람 안피울거야', 혹은 '이 남자는 바람 피울거야' 라고 쉽게 단정 짓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