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장관리 당한 그 남자 그리고 그 여자

'호의'와 '호감'의 미묘한 경계선.

저 또한 그 경계선을 오가며 많은 착각을 하였고, 그로 인해 많이 울기도 했고 많이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호의(好意) : 친절한 마음씨. 또는 좋게 생각하여 주는 마음.
호감(好感) : 좋게 여기는 감정.

"남자친구 없어?"
"네? 아, 네."
"빨리 남자친구 만들어야지. 네가 몇 살인데, 지금 너 나이 결코 적은 나이 아니다."
"그쵸. 근데 오빠는 왜 여자친구 안 만들어요?"
"안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거지 뭐."
"아…"
"너한테 대시하는 남자 없어?"
"뭐. 조금 있죠.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아닌 것 같은데? 뭐. 에잇. 기분이다. 심심하면 연락해. 언제든지. 내가 만나줄게."


"야, 첫 만남부터가 이상한데?"
"어장관리 하는 거 딱 표가 나네. 뭐."
"만나자도 아니고, 만나줄게는 뭐야."


첫 만남부터 "심심할 때 연락해. 언제든지 만나줄게." 라는 멘트가 이미 범상치 않음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런데 그렇게 만난지 한 달이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사귀자' 혹은 '좋아한다' 라는 어떠한 표현이 없다 보니 더더욱 친구의 입장에선 '어장관리'라는 확신이 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저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 또한 어장관리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더군요.

"만나지마. 남자가 진짜 여자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말하는게 남자야. 그 선배, 그렇게 안봤는데 정말 깬다. 어장관리라니..."
"그치? 아, 정말 왜 어장관리 하는 남자만 내 주위에 이렇게 많은거야."


꽤나 예쁘게 생긴 이 친구는 좀처럼 자신의 주위에 괜찮은 남자가 없다며, 하소연 하곤 했습니다. 주위 친구들도 모두 이 친구에게 좀처럼 멋진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 것이 궁금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유독 번번히 이 친구의 표현대로 '어장관리남'만 주위를 서성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요즘 혜영이랑도 연락하고 지내니?"
"요즘 혜영이 완전 신났잖아요. 남자친구랑 데이트 하느라 바쁜 것 같던데."
"아, 드디어 남자친구 생겼구나."
"왜요?"
"나 혜영이 한 때 좋아했었잖아."
"엥?"


혜영이를 좋아했다는 이 남자. 그리고 제 친구(혜영이)에게 오히려 본인이 어장관리 당했다고 말하는 이 남자. 어찌된 영문일까요? (서로가 상대방에게 어장관리 당했다고 말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

꽤나 예쁘게 생겨 누가 봐도 남자친구가 있을 것 같은 외모의 혜영이. 하지만 그 외모가 오히려 남자에겐 적잖은 부담으로 다가 올 수도 있나 봅니다. 그렇다 보니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이야기할 용기도 없고, 좋아한다고 이야기 했다가 바람 맞을까봐 두렵기도 해서 최대한 쿨한 척(관심 없는 척)하며 간접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이 '심심할 때 연락해' 라는 표현이었다고 하네요. 헌데 또 혜영이는 그 이야기를 듣고 곧잘 연락하고 같이 식사를 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랬겠죠. 혜영이도 그 선배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죠.

선배의 말에 따르면 자신을 보고 잘 웃어 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있어 하며 잘 들어주기도 하여 그렇게 좋게 잘 만남을 이어가는 듯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연락을 딱 끊어 버리더라는거죠. (그녀가 '어장관리'라고 확신한 순간이었겠죠)



호의를 호감으로 둔갑시킨 채, 어장관리를 하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감을 애써 숨기기 위해 호의로 둔갑시켜 표현하다 되려 상대방이 어장관리로 받아들여 이처럼 어긋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로에게 어장관리 당했다고 생각하는 그 남자, 그리고 그 여자. 만약, 두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 먼저 용기내어 손을 내밀었다면 지금 두 사람은 연인 사이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죠.  

"미안. 너가 오해 했나 본데, 내가 너에게 손을 내민건 그저 '호의'였을 뿐이야. '호감'이 아니라구."

어장관리남, 혹은 어장관리녀의 마지막 단골 멘트죠.

하지만 제가 생각할 땐 설사 그런 어장관리의 최후의 멘트를 듣게 되더라도 단순한 '호의'냐 나를 향한'호감'이냐- 어장관리냐 아니냐- 를 맞닥뜨려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습니다. 표현할 수 있을 때 표현하지 못해 놓치고 나서 뒤늦게 후회하는 것보다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