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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상사 명절 선물 고민, 퇴사한 직장 상사와 나눈 추석 연휴 인사

· 댓글개 · 버섯공주

매 추석 연휴 때면 나의 직속 상사였던 팀장님은 팀원에게 추석 선물을 준비해 건네주곤 하셨다. 때로는 백화점 상품권, 때로는 제철 과일... 처음에는 무척이나 생소했다.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추석 선물을 복지포인트로 지급하는데 그 외에 팀장님이 따로 챙겨주시니 말이다. 늘 궁금했다.

부하 직원의 선물을 챙기는 직장상사

첫째, 회사에서 추석 선물을 주는데 왜 굳이 따로 팀원을 챙기는 걸까? 회사에서 일로 만나는 사이, 업무적인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사이. 왜 굳이 명절 선물을 명목으로 팀원을 따로 챙기는 건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심지어 아래 직원이 상사에게 선물을 건네는 모습은 종종 봐왔는데 상사가 아래 직원을 챙기기 위해 명절 선물을 매해 한다니, 너무 생소했다. 

둘째, 왜 굳이 개인 돈을 들여 가며 명절 선물을 살까? 팀장이다 보니 회사에서 제공하는 법인카드가 있고 팀별 예산이 있다. 팀원에게 선물을 주며 생색을 내려고 하는 것이라면, 굳이 개인 돈을 들여 가며 직원에게 선물할 이유는 없다. 회사 법인카드를 이용해 주어진 예산 내에서 선물을 구매해 돌리면 될 일이었다. (실제로 영업부서나 타 부서에서는 그렇게 쓰는 팀장이나 본부장이 많았다) 그럼에도 늘 팀장님은 회사 법인카드가 아닌, 개인 명의 개인카드를 사용해 명절 선물을 구매하셨다.

내가 봐 온 상사는 팀원 한 명이 승진을 하면 팀원에게 '승진 턱 안 쏘냐?' 하거나 그 외 기념일이면 '뭐 없냐?' 되물으며 아래 직원에게 선물을 바라는 분이었다. 그리고 상사가 직접적으로 뭔가를 요구하지 않아도 아래 직급의 직원이 눈치껏 상사에게 아부성으로 명절 선물을 보내거나 잘 봐주십사 하는 의도를 가지고 인사를 하는 게 익숙하다. 실제 그런 상사와 그런 부하 직원을 봐왔다.

그렇게 기존에 봐왔던 상사의 이미지가 있건만, 이 분은 기존의 상사와 많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나고서도 눈치 보며 야근하고 퇴근하는 보수적인 문화를 바꾼 것 또한 나의 직속 상사였던 이 분 덕이다. 이 분이 팀장이 되고 나서는 퇴근 시간이 되었는데도 퇴근하지 않는 건 무능력하거나 인력이 부족하다는 반증이었다. 눈치 보지 말고 늘 빨리빨리 퇴근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실제로 일이 많아서 업무가 딸리면 망설이지 말고 속내를 이야기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실제 속내를 털어놓으면 그 방법을 강구하셨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이 분 참 멋지다고 생각한 게.

'상사'가 이렇게 멋있을 수도 있구나!

앞서 여러번 포스팅하기도 했지만, 첫 회사이자 한 회사에서만 16년 넘게 다니다가 2개월 전 퇴사를 했다. 이미 이직한 지 2개월이나 지났으나, 오랫동안 다닌 회사인 데다 첫 회사였던지라 종종 이전 회사가 떠오르곤 한다. 한 회사만 오래 다니다 보니 비교 대상이 없어 그동안 몰랐다. 나의 상사가 얼마나 좋은 분이었는지.

직장 상사 명절 선물 고민
직장 상사 명절 선물 고민

비교대상이 없으면 비교할 수 없다

"추석 선물 하나도 안들어오니 이상하죠?"
"네?"
"왜 보통 회사에 파트너나 관련 업체, 기관 등에서 명절이라고 선물 하나쯤은 들어오잖아요."
"아, 그러게요. 회사에 따로 추석 선물이 들어오진 않네요."
"그거 다 팀장님 개인 집 주소지로 다 가요. 하나도 빠짐없이."
"아! 그래요? 그렇군요."
"거기다 심지어 저희한테 명절 선물 언제 주나 내심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흠칫. 직장 상사에게 명절 선물을 줘야 한다?! 부하 직원이 직장 상사에게 선물을?! 덜덜. 아니, 나 시댁 서물이며 친정 선물 챙기기도 바빠...

추석 연휴가 되니, 자연스레 또 이사님이 생각났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비슷한 '아낌 없이 주는 상사' 랄까.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날, 출근길에 폰 배터리가 없어 꺼지는 바람에 사무실에 들어와서야 폰을 켰다. 폰을 켜자마자 생각난 이들에게 추석 연휴를 잘 보내라는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폰이 켜지자 마자 밀려 있던 메시지가 들어왔다. 그리고 발신인이 누구인지도 찍혀 있지 않은 10만 원 상품권 기프티콘이 하나 들어와 있었다. 발신인이 누구인지 찍혀 있지 않아도 단번에 나는 누가 이 기프티콘을 나에게 보냈는지 알 수 있었다. 

'아, 한 발 늦었네.'

조금의 망설임 없이 전 직장의 이사님께 메시지를 남겼다.

'좋은 아침입니다.'

직장 상사 명절 선물 고민
직장 상사 명절 선물 고민

퇴사를 하기 전에는 '이 분 참 좋은 분이다. 오래 뵙고 싶은 분이다. 배울 점이 참 많은 사람이다.'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지 단 한 번도 그분 앞에서 표현한 적 없다. 가족 못지않게 매일 얼굴을 보는 사이다 보니 존경한다는 표현을 하는 것도 무척 낯간지럽고 어색한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맙습니다' 정도로 고개 숙여 인사하는 게 내겐 최선이었다. 그러다 막상 퇴사를 하고 나니 같은 회사를 다녔던 전 직장 동료나 상사에게 칭찬을 하거나 격려를 함에 있어 부끄러움도 없고 표현하는데 어려움도 없다. 오히려 자주 보질 못하니 더 자신 있게 강한 어조로 나의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같다.

직장 상사 명절 선물 고민
퇴사한 직장 상사와 나눈 추석 연휴 인사

같은 직장 내 상사와 직원으로 있을 때에는 선물 하나 건네는 것도 평가자와 피평가자의 관계이기 때문에 생각할 거리가 많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같은 직장 내 상사와 부하 직원이 아니기에 다음 명절에는 내가 먼저 존경하는 마음 가득 담아 선물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 내 많이 믿었고 친하다고 생각했던 직장 동료에게 배신을 당하고 꽤나 큰 충격을 받았을 때도 나의 상사는 냉정하게 현실을 이야기해 주셨다.

원래 직장에서 만난 사람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게 좋아.

이사님 바라기라고 존경한다고 하니, 이전에 말씀하셨던 멘트를 다시 하셨다. 역시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신 분이다. 멋지다.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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