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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다이애건 앨리를 선물하며 - 남편의 취미생활 그리고 결혼에 대하여

새벽 5시. 잠결에 제가 눈을 떴을 때, 신랑은 제 곁에 없었습니다. 거실로 나와 보니 식탁에 앉아 식탁등만 켠 채로 레고 다이애건 앨리를 열심히 만들고 있더군요. 

레고 다이애건 앨리 - 초집중 모드 신랑의 취미생활

 

"여태까지 안잔거야? 피곤하지 않아?"
"어? 이제 일어났어? 아니야. 너무 재미있어!"

신랑은 새벽 5시가 다 되어가도록 레고 다이애건 앨리 블럭을 만드는데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책장 제일 위 칸에 있는 나머지는 다음 주 주말에 할 것들이야."

3개월 전, 신랑의 생일 무렵, 신랑에게 무엇을 선물받고 싶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랑은 너무나도 설렘 가득한 목소리로 '레고 다이애건애리'를 외치더군요. 바로 사 주고 싶었으나 재고가 없어 사주지 못하다가 3개월이 지난 오늘에서야 사주었습니다.

좋은 셔츠와 멋스러운 구두가 아닌, 레고를 사 달라던 신랑의 아양에 웃음이 빵 터져 나왔습니다.

신랑은 아이들의 눈을 피해 책장 제일 높은 한 켠을 본인만의 공간으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손이 닿지 않는 공간이자, 아이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곳이죠.

알파룸에 마련된 이 책장은 좌측은 신랑의 공간이고, 책장의 우측은 저의 공간입니다. 서로가 각기 좋아하는 책과 서로의 취미가 담겨 있는 공간이죠.

결혼을 하기 싫었던 이유

좋아하는 것을 결혼과 동시에 포기한다는 건 참 씁쓸한 일인 것 같습니다. 혼자 사는 것이 더 좋지, 굳이 왜 결혼을 하느냐. 그로 인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하지 않느냐. 결혼을 하면 개인의 시간이 줄어든다. 저 역시,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1인인터라, 결혼을 하고 나서도 최대한 신랑의 취미를 존중하려 하고 신랑 역시 저의 취미를 존중해 줍니다.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주말 그 잠깐의 시간. 보통 밤 11시~아침 9시. 신랑과 저에겐 무척이나 황금 같은 시간 입니다. 각자의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왜 하필 그 시간? 네. 두 아이가 잠든 시간이기 때문이죠. 두 아이의 에너지를 받아 주려면 반대로 엄마 아빠에게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그렇게 에너지를 쏟아 내고 나면 아이들을 재우다 부모인 엄마, 아빠가 함께 잠들 수 있다는 거죠. 그러나 아이들이 잠들어야 마주할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을 위해 절대 잠들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아들은 신랑이 재우고, 딸은 엄마인 제가 재웁니다. 이번엔 제가 딸을 재우다 잠이 들었습니다. 밤 10시에 잠이 들어 눈을 뜨니 새벽 5시. 

그렇게 신랑은 새벽 5시가 다 되어 가서야 잠을 자려고 누웠고, 저는 반대로 새벽 5시쯤 깨어 씻고 하루의 시작을 준비했습니다. 주중 회사일로 쌓인 일상의 피로를 풀고 싶어도 두 아이가 두 눈을 반짝이며 엄마 아빠만을 바라보고 있는터라 개인의 시간을 가지기 쉽지 않습니다. 혹여 어느 한 사람이 개인의 시간을 가지려 하면 나머지 다른 한 사람이 오롯이 두 아이를 돌보아야만 합니다. 어쩌다 보니 약속이나 한 것처럼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그 한밤 중과 새벽녘이 우리 부부의 취미 생활 시간이 된거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바로 새벽 5시 입니다. 

시간을 되돌려도 다시 결혼할건가요?

결혼하지 않은 미스인 후배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기도 하고, 제가 결혼 전, 먼저 결혼한 기혼자들에게 가장 많이 질문한 부분입니다.

"결혼하면 정말 좋은가요?"

그 질문을 계속 던진 이유는 하나 입니다. 결혼과 동시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놓아 버려야만 할 것 같아서. 제가 좋아하는 취미 활동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많은 제약이 따를 거라 생각했기에 그것이 두려워 여러번 묻고 또 물었던 것 같습니다. 

분명,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함께 살다 보면 이런 저런 마찰도 따를 테죠. 30년 가까이 각자의 다른 삶의 시간을 보낸 두 사람이 만나 이룬 것이 결혼생활이니 말이죠.

결혼식을 준비하면서부터 마찰은 시작되었습니다. 연애할 땐 연애 당사자인 남자친구. 여자친구로서 서로만 바라보면 되었건만 결혼을 하기 위해 양가 인사를 드리면서부터 더 이상 서로만 바라보면 되질 않더군요. 상대 부모님의 의사를 존중해야 하니 말입니다. 

서로 모아 놓은 돈도 없으니 결혼식을 비롯한 예물, 예단 등을 생략하고 집을 마련하는데 돈을 쏟자던 우리 부부의 생각과 다르게 양가 어른은 생각이 달랐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런 저런 마찰이 생겨 결혼이 왜 힘든 지 알 것 같았습니다. 신랑에게 물어도 답은 같았습니다. 그 과정이 너무 싫었다고 말이죠.

저 역시, 결혼생활은 좋으나 결혼식을 준비하고 그 조율하는 과정은 정말 싫었습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하고픈대로 결정하게 둔다면 모를까 어른들이 간섭하고 관여하면 그때부터 상당히 많이 삐걱거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삐거거리면 결혼식을 끝내고 나서도 앙금이 남아 더 화가 나곤 했습니다. 결혼을 하면서 알았어요. 축의금이 결혼하는 부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죠. 하하하. 그제서야 이해가 되더군요. 결혼식을 왜 그토록 해야 된다고 고수하셨는지. -.-

결혼식을 준비하는 시간은 최악이었습니다. 건너 뛸 수 있다면 결혼식은 하고 싶지 않았고 그 시간을 돌이키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결혼생활을 좋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되돌려도 다시 결혼할건가요? 라는 질문의 대답은 '결혼식은 건너 뛰고 진짜 결혼생활부터 하고 싶어요.' 입니다.

서로 닮은 듯 다른 성향, 그래서 더 잘 맞는 우리

서로의 경제 관념이나 정치 성향, 자녀 교육관 등이 참 많이 닮았습니다. 연애할 때 그런 부분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전혀 다른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연애할 땐 볼 수 없었던 생활습관을 경험하게 되니 말이죠. 

아침에 배변활동을 위해 화장실에 가는지, 몇 분을 화장실에 있는지 그런 것까진 알 수 없잖아요. 하하;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무리 기다려도 좀처럼 화장실 밖으로 나오지 않는 신랑에게 괜찮냐고 여러번 묻기도 했습니다. (혹여 화장실에서 쓰러지거나 다쳤을까봐) 

집에 한 번 들어 오면 좀처럼 나가기 싫어하는 성향의 저는 뭔가가 먹고 싶어도 사러 나가기 귀찮아서 차라리 안먹을래!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랑은 나가는게 뭐가 힘들어서? 라며 곧장 옷을 갈아 입고 밖으로 나가 사야 하는 것이 있으면 두 번이 되었건 세 번이 되었건 나갔다 오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성향은 연애할 땐 알 수 없고 결혼하고 같이 살아 가며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닮은 부분이 있고 전혀 상반되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조화를 잘 이루면 결혼생활이 정말 재미있는 것 같아요. 닮은 부분은 닮아서 재미있고, 다른 부분은 달라서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재미도 정말 쏠쏠한 것 같아요.

결혼에 돈이 중요한가요? 사랑이 중요한가요?

'지금은 연애중' 카테고리에 10년 전부터 글을 쓰면서도 그러했고, 결혼을 한 지금도 생각은 한결 같습니다. '돈' 보다는 '사랑' 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아직까지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아직 결혼생활이 끝난 것도 아니고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중인지라 결과론적으로는 이야기 할 수 없지만 시간을 다시 되돌려도 '돈' 보다는 '사랑' 에 중요성을 둘 것 같아요.

결혼 준비 과정에서 힘들었다고 한 이유는 모아 놓은 돈이 없었던 상황에서 예단을 요구하여 마이너스 통장으로 예단비를 시댁에 드리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주위에서 다들 미쳤냐고 만류했던 기억이) 그 예단비를 드릴 돈으로 저희 부부가 집을 사는데 보태는게 더 나을 것 같은데요- 라는 저의 생각과 시댁 어른의 생각이 대립되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예단비로 마찰이 생기면서 결혼을 시작하는데 있어 돈이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처음 갖게 되었습니다.

양가에서 결혼에 대한 지원금은 전혀 없었고, (받고 싶지도 않았고) 오히려 예단비로 마이너스 통장까지 털고 나니 남들보다 더 마이너스로 시작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시 신랑은 이렇다 할 소득이 없어 제가 가진 돈으로 신혼집 마련부터 생활비까지 마련해야 했습니다. 

첫 신혼집은 보증금이 낮은 월세 오피스텔이었고, 이후 옥탑방 생활로 이어졌습니다. 옥탑방에서 단칸방 살림을 하며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것까진 괜찮았는데 임신을 하면서 1층부터 5층 옥탑방까지 계단을 올라가려니 힘이 너무 들어서 돈이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두 번째로 하게 되었습니다.

오르락 내리락이 힘들었던 빌라 옥탑방 계단

만삭이 되었을 때 90%의 전세대출금을 받아 엘리베이터가 있는 빌라로 이사를 갔죠. 이후 자산 증식과정을 거쳐 지금의 아파트 생활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결혼에 돈이 중요하냐, 사랑이 중요하냐에 과감히 사랑에 베팅할 수 있었던 이유이 사람은 놓치면 이런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할 것 같았고 돈은 없어도 내가 돈을 벌 자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렇더라구요.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포스팅에서 풀어 보도록 할게요.

새벽 5시. 갑자기 문득 잔뜩 신난 얼굴로 날이 새도록 레고를 조립하고 있는 신랑의 모습을 보니 아들이 신나서 레고를 조립하던 모습과 오버랩이 되며 '결혼생활이 뭘까' 에 대한 글을 쓰고 싶어져 후다닥 써내려갔네요. :)

참 행복한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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