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많은 다섯살, 그 속내를 듣고 나니

"선생님, 축복이 왔어요. 문 열어 주세요!"

가정 어린이집을 다니는 행복이와 유치원을 다니는 축복이. 2살 터울의 남매다.

매일 출근길, 나는 가정 어린이집에 둘째 행복이를 먼저 데려다주고 첫째 축복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준다. 가까운 집 근처로 보내고 싶지만 맞벌이인지라 하원이 어려워 친정 근처의 어린이집과 유치원으로 간다.

두 살 터울의 남매, 지금으로부터 2년 전

15분 정도를 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그 시간동안 차 안에서 행복이와 축복이는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눈다. 2살 위인 다섯 살의 오빠와 24개월 갓 지난 여동생의 대화, 대화가 되긴 할까-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을까- 싶지만, 의외로 축복이는 행복이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 준다. 

"행복아. 오빠가 행복이 먼저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유치원 갈게."

분명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건 나인데, 어린이집에 도착해선 차에서 내려 동생을 챙긴다. 결국, 둘을 챙기는 건 나다. 

"선생님, 축복이 왔어요. 문 열어 주세요!"

가정 어린이집이라 아파트 공동현관 벨을 눌러야 어린이집 선생님이 문을 열어주시는데 아파트가 떠나가라 큰 소리로 선생님을 찾는다. 제발- 쉿-!

행복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축복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기 위해 이동하는 길. 또다시 축복이는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 보인다. 

"축복아, 왜? 무슨 고민 있어?"
"엄마, 행복이 어린이집에서 잘 지내겠죠? 휴."
"아, 동생 걱정 하는 거야?"

엄마인 내가 걱정해야 할 일 같은데 나름 오빠랍시고 동생을 걱정하는 모양새다. 왜 그리 웃기는지 모르겠다. 아직 너도 엄마, 아빠 눈엔 아기야-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이 기준에서는 또 다른 아이 세상에서의 고민거리가 있겠지. 나 역시, 어렸을 때 그런 고민이 있었겠지. 개구리가 올챙이 적 기억 못 한다고 나 또한 그런 고민을 했음에도 기억을 못 하는 거겠지. 라며 그 시절을 돌아보곤 한다.

"엄마, 아빠는? 아빠가 왜 안오지?"
"아, 아빠가 오늘 회사일이 많아서 조금 늦으신대."
"그래요?... 우리 아빠한테 전화해볼까?"
"아냐. 아빠 금방 오 실 텐데."
"아니야. 전화해보자."

잠들기 전, 아빠가 보이지 않자 또 다시 축복이는 걱정한다. 축복이가 엄마인 나 못지 않게 걱정거리가 많아 보인다. 아빠 걱정하랴, 동생 걱정하랴...

친정으로 하원하는 축복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유치원에서는 어땠는지, 외할머니와는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본다. 한 번은 갑자기 울먹거리며 이야기를 했다.

"너무 힘들었어. 얼마나 힘들었는데."
"왜? 무슨 일 있었어?"
"밥 ...느라 힘들었어."
"...? 응? 뭐라고 축복아? 다시 말해줄래?"
"밥 먹느라 힘들었어요! 얼마나 힘들었는데요!"
"응? 밥 먹는게 왜 힘들지?"
"밥 양이 많았어."

밥 양이 많으면 남기면 된다고 설명하며 그게 그렇게 힘들다고 토로할 일인가 싶어 웃음이 터졌다. 그러다 뒤이어 내뱉은 축복이의 말에 뒷통수를 세게 맞았다.

유치원 다니는 다섯살

"밥을 많이 먹어야 엄마가 걱정 안하잖아요."

눈물이 핑 돌았다.

워킹맘으로서 '엄마는 힘들지만, 너희들을 생각하며 하루 하루 힘내서 돈을 벌고 있어.' 라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때가 있다. 그러면서 망각한다. 마치 우리 부모만 아이들을 걱정하고 위하고 있다고 말이다. 사실은 아이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24개월이건, 48개월이건 그 개월수에 맞게, 그 나이대에 맞게 고민을 안고 있다.

축복이에게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잠들기 전, 항상 이야기 해 준다.

"오늘 하루도 고생했어. 내일 또 일찍 일어나서 유치원 가야 되니까 피곤하겠다. 그렇지? 잘자. 좋은 꿈 꾸고."

각자의 자리에서 일하고 돌아온 부부 사이의 인사가 자연스레 아이들과 함께 나누는 공통 인사가 되었다. 

수고했어. 오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