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운전 교통사고, 죽다 살아나다

평소 겁이 많은 편이냐, 적은 편이냐 물어본다면 늘 저의 대답은 '겁이 없는 편입니다' 라고 대답해 왔습니다. 산 날이 얼마 되지 않고 앞으로 살 날이 더 많은 나이지만, 살아 오면서 무섭고 두려운 건 없었노라고 자신 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긴급보육으로 두 아이를 맡기고 출퇴근 하는 길, 이 날도 어김없이 그 현장을 지나왔습니다. 바로 제가 죽을 뻔한 큰 교통사고 현장이죠. 이 날의 교통사고로 인해 무서운 것이 생겼습니다. 다름 아닌 졸음운전.

제가 사고가 났을 당시보다 속도가 더 낮은 50km 으로 제한속도가 바뀌었더라고요. 사고 당시에는 다행히 오가는 차량이 없었습니다.

신차를 뽑은지 2년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고가 크게 났습니다. 제가 타고 있던 운전석 바퀴가 터졌고 사이드미러는 물론 차량 운전석 절반을 전체적으로 다 긁어 차량수리비만 500만원 이상이 나올 정도의 큰 사고였습니다. 도로에는 반파된 제 차량에서 나온 부속품이 여기 저기 흩어 떨어져 있어 뒷수습을 해야 했습니다.

졸음 운전으로 사고가 나긴 했는데 112에 신고해야 되는지 따로 보험사에 신고해야 되는지 차량에서 내려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 레카차 2대가 연달아 도착했습니다. 제가 신고하지도 않았는데 신기하죠?

어차피 차량은 타이어가 터져 운행이 불가능했던터라 (엔진도 작동되지 않았어요) 전 따로 이동해야 했고, 보험사를 통해 자기손해 부담금을 안고 수리를 했습니다. 500만원 이상의 비용에서 자기돈 비용 50만원만 지불하면 되니 보험이 좋긴 좋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제 차량의 감가상각은 어마어마하게 되었겠지만요.

레카차를 타고 온 운전기사가 어리둥절 해 하며 제게 물었습니다.

"혹시 여기 타고 있던 운전자 못보셨어요? 이미 구급차가 다녀갔나요?"
"아뇨. 제가 운전자인데요."

너무나도 멀쩡하게 서 있는 제 모습을 보고 아저씨는 꽤나 당황해 했습니다. 

"...괜찮으세요?"

운전 당시, 졸음을 이겨내려고 일부러 시속 60 이상의 속도로 터널을 통과했습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잠깐 눈을 감았다 떴는데 (잠에서 깨어나니) 제 차는 이미 반파되어 있던 상황이었고 통과한 줄 알았던 터널 안에 제가 있었습니다. 사고 후, 잘 열리지 않는 운전석 문을 겨우 열고 나왔죠. 

사고 직후, 지금은 신랑이고 당시는 남자친구였던, 그에게 제일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연애를 하며 경험하게 되는 미묘한 밀당과 신경전은 이 날 교통사고와 함께 끝이 났습니다. 이 사고로 신랑과 저의 관계는 여자친구와 남자친구가 아닌 정말 운명을 같이하는 관계처럼 서로를 아꼈습니다.

신랑은 종종 이 터널을 지날 때마다 제게 이야기 합니다. 만약, 그 날 사고로 널 잃었다면 평생 나 자신을 원망했을거라고. 어찌나 다행이라 생각하고 감사기도를 했는지 모른다고. 그럴만도 한 것이 신랑과 즐겁게 데이트 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간 날이었기 때문이죠. 

술 한 잔도 마시지 않는 제가 음주 운전을 할 리는 없고, 안전운전을 하는 편인데 잠에 취해 음주운전보다 더 큰 사고가 났으니... 사고 소식에 무척이나 놀랄만 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중앙분리대가 있어 중앙분리대를 박고 혼자 사고가 나서 다행이었지, 만약 중앙분리대가 없는 상황에서 중앙선을 침범하여 상대 차량과 사고가 났으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 집니다. 

음주운전보다 졸음운전이 더 무섭다고들 합니다. 실제 이 날 사고로 졸음운전이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지 제대로 깨달았습니다. 

사고 현장을 지나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감사하게 됩니다. 

자칫 그 날 사고로 내 인생이 끝나버렸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사랑스러운 두 아이를 보면서 감사 또 감사하게 되더라구요. 졸음운전을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저의 어리석음을 이 도로를 달릴 때마다 되내이고 또 되내입니다.

쌀쌀하기만 했던 날씨가 서서히 포근해지고 따스한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봄이 왔나 봅니다. 봄철은 특히, 졸음운전을 하기 쉬우니 졸음운전 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모두 안전 운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