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교제로에서 애교만땅이 되기까지


일곱 아들, 두 딸. 그 중 장남이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첫째 딸로 커 오면서 이쁨을 받는 사랑스러운 딸이기 보다는 장녀로서 책임감을 두 어깨에 잔뜩 짊어진 든든한 아들 같은 딸로 보이기를 제 스스로가 더 희망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다 보니, 애교와는 담을 쌓고 살았죠.

전형적인 경상남도 무뚝뚝한 아버지와 가끔 통화를 하게 될 때면.


아들, 잘 지내냐?”
. 잘 지내고 계시죠?”
그래. 밥 잘 챙겨먹어라.”


그리곤 뚝.

딸이라고 불리는 때보다는 아들이라 불리는 때가 많았고, 서울에 올라와 독립하여 지내면서 더욱 책임감 강하고, 튼튼한, 듬직한 딸로 보여지길 바랬습니다. (3 이후로 서울에 올라와 홀로 지내는 딸을 보며 얼마나 불안해 하셨을지 잘 압니다. 아들이라는 표현으로 그 불안함을 숨기고 싶으셨는지도 모릅니다)

걱정을 끼쳐 드리기 싫어 더욱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죠.

길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할 때도 난감해 하거나 당황해 하기 보다 침착하게 행동하는 제 모습에 친구들이 모두 기겁했습니다. 독한 아이라고 말이죠.

지하철에서 승하차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왠 젊은 아가씨의 하는 짧은 비명 소리에 놀라 쳐다 보니 제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괜찮아요?” 라고 묻더군요. 아니나 다를까, 제 허벅지에서 피가 나고 있더군요. 누군가가 내리면서 면도칼로 허벅지를 그으면서 내린 것을 보고 여자분이 놀라서 소리친 것이었습니다. (의외로 싸이코를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여대 인근에서 한동안 이슈화 되었던 사건이더군요.

이런 저런 일을 겪어도 웬만해선 울지 않고 웬만해선 무서워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처음으로 연애를 시작했을 때에도, 100% 마음을 열기 보다는 견제하고 알게 모르게 계산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먼저 연락하지 말아야지, 내가 먼저 사랑한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이렇게 하면 날 쉽게 보겠지, 이렇게 하면 나에게 싫증 나겠지, 질투하고 있다는 걸 들키면 안돼,


좋게 표현하자면 밀고 당기기이겠지만, 나쁘게 표현하자면 그 사람에게 푹 빠진 사랑이 아닌 지극히 제 자신을 보호하며(상처 받지 않게) 계산하는 겉치레 사랑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엔 말입니다.

헤어짐을 거듭하며 들은 말은, , 날 정말 사랑한 것 맞아?” 넌 여성스럽지가 않아 넌 너무 애교가 없어 라는 말들이었습니다. 그 말들이 너무나 큰 상처가 되어 다시 제 자신을 가둬 놓곤 했습니다.

애교를 어떻게 부리냐? 애교는 나와 전혀 무관한 말이거든? 애교도 할 줄 아는 사람이 하는 거야.


그랬던 제 자신이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나서 1, 2, 3년에 접어들면서 차츰 변화하더군요. 자존심만 엄청 센 고집쟁이의 제 모습이, 먼저 자존심을 굽히고 먼저 고개 숙이는 남자친구 앞에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떠한 사물을 보거나 어떠한 이야기를 들어도 비판적이고 냉소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던 저와 달리,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먼저 이야기하는 남자친구를 보며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설사 크게 놀랄 만한 일이 있어도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만 삭혀서 친구들에겐 독한아이로 통하던 제가, 이런 일이 있었쪄요-“ 라며 남자친구에게 먼저 그 날의 있었던 일을 털어놓고 멋지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남자친구에게 최고, 최고 (정말 최고를 외칠만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를 외치는가 하면,

서로의 의견이 맞지 않아 싸우게 되면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토라져 있곤 했는데 남자친구의 네가 좋아하는 보쌈 사줄게 (남자친구는 아직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보쌈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한마디에 싱긋 웃으며 좋아- 좋아-” 하며 넘어가니 말입니다.


애교와 거리가 멀다고 이야기 했던 제 모습이 이렇게 바뀔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말입니다. 밀고 당기기에 치우치고, 제 자신을 지키고자 계산적으로 했던 겉치레 사랑에서 진심을 담아 매 순간 마다 최선을 다 하니 진짜 속깊은 사랑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