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이미 나에 대한 프로필은 알고 있었기에, 처음엔 가만히 들어만 주고 있었다.
"지금 나이면 결혼하셔야 할 나이이시잖아요. 지금 한참 적령기인데 빨리 짝을 찾으셔야죠. 지금 이 때 아니면, 너무 늦어요. 언제쯤 결혼하려고 생각중이신가요?"
"서른다섯 쯤에요."
"어머, 큰일 날 소리 하시네. 여자는 나이 들면 끝이에요. 지금이 딱이에요"
"전 제 업무 하면서 실력 쌓으면서 저와 마음이 맞는 사람 만날거에요."
"여자는 실력 쌓는 것보다 나이와 외모라는 거 모르세요? 실력 쌓아봤자, 어느 정도 쌓으시려구요?"
20여 분간 통화했을까.
상위1%만 가입되어 있다는 이 결혼정보회사. 제대로 된 결혼을 하려면 그냥 만나서 연애하다가 결혼하는 것도 좋지만, 본인의 결혼정보회사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보고 결혼하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어떤 남자를 찾으세요? 제가 맞춰 드릴게요."
"연봉이 20억 이상이어야 합니다."
"하하하. 20억 이상이요? 연봉이?"
"네."
"그 정도의 분은 없구요. 재산이 그 정도 이상이신 분은 있어요. (중략) 다만, 그런 분들일수록 특히 어린 나이의 여자분을 좋아하시거든요. 그러니 지금 이때가 적령기인거죠. 지금보다 더 나이들면, 그런 분들 못만나요. 여자는 나이 들면 끝이에요."
어떻게 같은 여자이면서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걸까. 아무리 본인의 결혼정보회사를 어필하고 싶을 지언정, 저렇게 말하면 본인이 말을 내뱉어 놓고서도 본인의 말에 속이 더부룩하지 않을까."그렇게 젊은 여자 밝히는 남자라면 애시당초 만나고 싶지도 않네요. 결혼해서 조금 나이 들면 그런 사람은 당장 이혼하고 새 젊은 여자 찾겠죠. 안그래요?"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세요. 안그런 남자분도 많아요."
"지금 업무 시간이예요"
"지금 통화 끊으신다는 거죠? 언제 또 통화 가능하세요?"
"9시요."
"아니, 어떤 업무 하시길래 9시에 끝나나요?"
"업무는 6시에 끝나지만, 수영을 하거든요."
"매일이요?"
"네. 매일이요. 기본 아닌가요?"
"아, 몸매 관리 철저히 하시네요. 맞아요. 그래야 되요. 좋은 자세예요."
내용을 짧게 중략했지만, 거슬렸던 말이 한두개가 아니다.
남자는 결혼할 때 실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여자는 남자와 결혼할 때 실력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말과 그런 실력을 쌓고 결혼하는 것 보다는 보다 젊은 나이에, 어린 나이에 결혼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결혼정보회사.
회원을 유치시키기 위한 눈물겨운 노력의 멘트였겠지만, 통화 내내 불쾌했다.
처음 통화를 하면서 연봉 20억 이상이어야 한다는 나의 멘트에 화들짝 놀라 하며 전화를 끊을 것을 기대한 것에서 잘못 된건가.
연봉 20억 이상이어야 한다는 말에 꼬리를 물고 20여 분간 통화하면서 얻은 것은, 여자는 나이 들면 제대로 된 결혼하기 힘들다는 것과 여자는 실력보다는 외모와 나이라는 말이다.
이 결혼정보회사 외에도 다른 결혼정보회사도 이러한 방법으로 고객을 유치하는지 모르겠으나, 사람의 성품이 아닌 획일화된 재산의 보유정도와 외모, 나이로 사람을 평가하는 그 잣대의 실상을 알고 나니 참으로 씁쓸하다.
덧붙임.
연봉 20억? 말도 안되는 소리이며, 매일 수영하는게 기본이라는 둥 하는 말은 그야말로 설득력 없는 소리를 하는 결혼정보회사의 팀장이라는 여자분에게 말 그대로 말도 안되는 말로 받아친 대답임을 알려드립니다.
'나를 말하다 >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게 말이 됩니까?" 아침부터 언성 높이는 회사분위기, 완전 꽝! (0) | 2009.08.24 |
---|---|
[보물공개]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15) | 2009.08.21 |
소는 음모- 염소는 음메- (0) | 2009.08.11 |
낯선이에게 맞을 뻔한 황당한 사건 (2) | 2009.08.10 |
2009. 05. 01 뽑기는 나에게 맡겨 (1) | 2009.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