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독감으로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목소리가 심하게 변한 것도 남자친구이고, 많이 힘들어 보이는 것도 남자친구인데 1주일만에 만나자 마자 제 걱정부터 하는 남자친구를 보니 마음이 짠하더군요.
"어이쿠. 너도 감기 걸렸구나? 목소리가 코맹맹이 소리인데? 약은 먹었어?"
"오빠 목소리가 더 코맹맹이 소리야. 나보다 더 심해."
"콧물 훌쩍이는 거봐. 으이그. 이리와봐."
"아니야. 지금 뜨거운 거 먹고 있어서 그런 거야."
"어? 너 열나는 것 같은데?"
"아냐. 오빠 손이 뜨거운 거야."
"거 봐. 오늘 비 올 거라고 했잖아. 너 우산 안 가져왔지? 이거 가져가."
"아냐. 괜찮아. 나 집까지 금방이야. 오빠가 가져가."
먼저 걱정해주고, 감싸주고, 배려해 주는 모습에서 '이성'인 남자친구 그 이상의 감정을 느끼곤 합니다.
음. '존경'이라고나 할까요.
전 제 스스로가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기 보다는 이기적이고 상당히 계산적이고 치밀한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기적인 사람', '계산적인 사람'이라는 것에 큰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 그래야만 이런 험한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있지 않겠냐- 는 생각을 품고 있었으니 말이죠.
길거리에서 나이 많은 할머니가 나눠주는 전단지를 보고도 쌩하니 지나치는 저와 달리, 그래도 고개 숙여 받는 남자친구를 보며...
지하철에서 껌 하나 사 달라며 다가오는 분을 보고선 딴 짓을 하거나 모르는 척 하는 저와 달리, 지갑을 열어 천원 한 장을 선뜻 내미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며...
길을 헤매는 듯한 할머니에게 먼저 다가가 친절을 베푸는 남자친구를 보며...
제게는 없는 모습에, 저와는 다른 모습에,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남자친구의 모습에 '대단하다'라는 생각만 들었습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 만나고 싶어!"라고 이야기 하던 철부지 때의 제 모습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먼저 베푸는 건 어리석은 거야.
먼저 배려하는 건 어리석은 거야.
그렇게 해서 휘어잡겠어?
남자는 잘해주면 바람피운다니까.
남자와 여자를 구분지어 남자는 여자에게 이렇게 하면 안되고, 여자는 남자에게 그렇게 하면 안되고... 수 많은 연애서적이나 카더라 통신으로 듣던 이런 저런 이야기들.
그 모든 것을 떠나 남자친구 앞에서 있는 그대로 웃을 수 있는 이유는.
있는 그대로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착한게 아니라 멋진거지. 내 남자친구여서가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남자친구를 정말 존경해."
"그 정도야? 남자친구한테 정말 잘해줘야겠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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