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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나를 마녀라고 부르는 이유

"넌 마녀야! 마녀!"


남자친구. 또 시작이다. 이젠 남자친구의 이 외침이 귀여운 앙탈로 들린다. 훗. 귀여워라. 남자친구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듣기 싫은 말 중의 하나가 "처음에 잘 길들였어야 되는데 잘못 길들였어." 라는 말이다.


실컷 길들여 놓고서 이제 와서 무르고 싶어지는 건가.


남자친구 집과 우리집. 그 거리만 해도 대략 1시간 20분 정도. 지하철 한 번 딱 타고 쭉 간다면 그나마 편하겠지만 2번의 환승은 화를 부를 만도 하다. 문제는 직장이 더 먼 거리에 위치해 있다 보니 직장에서 집까지 거리만 2시간이 훌쩍 넘는다는 것. 2번의 환승은 잘 참을 수 있다 하더라도 4번의 환승은 주먹을 부른다. -_-;;

어쨌건, 중간 지점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 가는 길. 난 절대 집까지 데려다 달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그렇지. 절대 말은 하지 않지. 하지만 표정에서 묻어난다. '데려다 주세요. 한번만. 이번만.' 이라고 말이다.

 

"오빠, 오늘 너무 즐거웠어. 잘 들어가."
"아, 표정."
"응? 표정? 내 표정이 왜?"


아쉬움이 가득한 내 표정에 남자친구는 늘 고민이 되나 보다. 그럴 때마다 내가 거울을 꺼내 내 표정을 볼 수도 없고, 어떤 표정으로 남자친구를 마주하는지 통 감이 오지 않는다.


차라리 "나 데려다 줘. 오늘도 안 데려다 줄 거야?" 라고 투정을 부리면 같이 으르렁 거리며 "나도 매번 데려다 주기 피곤해!" 라고 맞설 수 있을 텐데 정작 데려다 달라는 말은 없고 마녀처럼 표정으로 말하고 있으니 꽤나 살벌한 모양이다. 


"오빠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 오늘 너무 즐거었어."
"응. 나도 즐거웠어."
"먼저가."
"아냐. 너 가는 거 보고."
"고마워." (아쉬움이 역력한 표정)
"에이, 안되겠다. 데려다 줄게. 중간까지만."
"어? 정말? 이히히히. 역시, 우리 오빠가 최고야."
"넌 마녀야! 마녀!"
"에이. 내가 무슨 마녀야."


남자친구에게 데려다 달라고 굳이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남자친구 말대로 잘못 길들여져서 이다. 무려 6년 이상을... 데려다 달라고 먼저 말하지 않아도 늘 먼저 데려다 주었던 남자친구 때문이다.


첫 데이트를 할 당시엔 남자친구가 나의 호감을 얻기 위해 집까지 늘 꼬박꼬박 데려다 줬었다. (지하철로 10분 거리. 걸어서 데려다 줘도 30분 남짓.)


매일 매일 데려다 주는 남자친구의 배려에 익숙해 지면서 그게 당연시 되었던 것 같다. 문제는 이사를 가면서부터다. 지하철 10분 거리가 1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가 되다 보니 남자친구 입장에선 속이 타 들어 갈만도 하다.


그래도 나름 남자인데, '이제 너 이사 가서 거리가 멀어졌으니 데려다 주지 않을래.' 라고 까놓고 말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종전처럼 매번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도 그렇고. 나름 남자친구 입장에서 방안을 찾은 것이 중간지점까지만 데려다 주는 것이다.


정작 난 데려다 줘도, 데려다 주지 않아도 어차피 집으로 가야 하기에 가야 할 길을 가는 것뿐 인데 남자친구 입장에선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서로의 거리가 멀어지면서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차량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거리가 먼 커플들의 데이트 방식과 여자친구를 어떻게 데려다 주는지 보이기 시작했나 보다. 정작 난 신경을 쓰고 있지 않는데 괜히 쭈뼛거리며 미안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아쉽다. 내가 차가 있으면 편하게 데려다 줄 텐데. 몇 년째 우리 버섯이 너무 고생이 많네."
"지금 말고. 나중에 우리 결혼해서 여유 생기면 그 때 장만하면 되지. 우리 젊잖아? 미리 차 사면 돈이 줄줄 새어 나가서 돈 모으기 힘들다고 하더라고."


남자친구 입장이 되어 보지 않아, 정확하게 그 마음은 헤아릴 수 없지만.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는 것은 '미안함'이다.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표정으로 아쉬움을 말하는 내게 '마녀!'라고 외치면서도 곧이어 '차가 있었더라면 좀 더 편하게 데려다 줄 텐데…' 라고 말하는 남자친구.

그래서일까.
내게 '마녀!'라고 외치는 남자친구의 말이 자꾸만 '미안해'로 들린다. 남자이기 때문에, 내 여자친구를 위해 갖게 되는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털어놓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덧) 이랬는데, 마녀가 진짜 '마녀'를 의미하는 거면 -_-;; 완전 깨는거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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