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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여자의 함축적 표현

남자친구가 저에게 종종 하던 말이 있습니다.


"네가 말하지 않으면 난 죽었다 깨어나도 몰라. 꼭 말해줘. 왜 화가 났는지. 뭐 때문에 서운한지."


지금은 뭔가 서운하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그 날 중 꼭 남자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는 편입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되 말투는 상당히 온화하게 말이죠. 그래서 종종 남자친구는 제게 우스갯소리로 '마녀'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오호호호' 웃으면서 할 말은 다 하니 말이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쨌든;)

하지만 연애 초기엔 꿀 먹은 벙어리처럼 화가 나면 씩씩거리기, 입 삐죽거리기, 안 그래도 작고 찢어진 눈인데 더 밉살스럽게 새우 눈 모양을 하고선 째려보기 등등으로 무언의 투쟁을 했었습니다.


속 마음을 알지 못해 답답해 하는 자(남자친구)와 속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자(여자친구). 두둥!

남자친구와 연애 초기 그렇게 다투게 될 때면 늘 제 마음 한 구석에선 "오빤 도대체 왜 내가 화 난 걸 모르는 걸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왜! 왜! 왜! 왜 몰라! 왜에에에에!



그러던 어느 날, 친구 커플인 남군(가명)여양(가명)의 사건으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다들 직장인이 되고 난 이후로 평일 시간을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던 중 오랜만에 친구들과 저녁 약속을 잡았습니다. 친구들 모두 각자 직장이 다른 곳에 위치해 있어 약속 장소를 정하기 애매하던 차에 결국 중간지점인 사당역에서 만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사당역은 마침 남군의 여자친구인 여양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남군여양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오늘 친구들과 사당역에서 만나기로 했어. 7시쯤 마칠 것 같은데 중간에 애들도 태워야 하고 퇴근 시각이라 막힐 것 같으니까 사당역 도착할 때쯤 전화할게. 너도 그 때 나와."
"알겠어."


직장생활을 하면서 평일 퇴근 시간에 딱 맞춰 약속을 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예상 외의 변수가 종종 일어나기도 하니 말이죠. 남군이 퇴근을 하기 2시간 전, 그의 여자친구인 여양에게 온 문자. '나 강남역이야.'

만나기로 약속한 곳은 여자친구 집 근처인 사당역인데 쌩뚱맞게 왜 강남역에 있는 걸까? 라고 생각하다 보니 평소 친구들과 강남역에서 어울려 종종 노는 여양의 모습이 기억이 났습니다. '아, 강남역에서 친구들과 선약이 있었나 보다. 그럼 좀 늦게 온다는 말인가 보네?'

대수롭지 않게 남군은 업무를 마무리 짓고 친구들을 하나 둘 차에 태워 목적지 모임 장소에 도착해서는 느긋하게 여자친구 여양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직 강남역이야? 친구들 만나고 있어?"
"내가 언제 친구들 만나고 있다고 말한 적 있어?"
"응? 강남역이라며?"
"내가 강남역에서 왜 친구들을 만나고 있다고 생각해? 난 강남역 대형서점에서 책 읽으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 강남역에서 만나기로 한 거 아니잖아. 사당역이라고 했잖아. 그리고 좀 늦을 지도 모르니까 너네 집 근처에 내가 도착하면 전화한다고 했잖아. 그때 나오라고."
"내가 무슨 대기조도 아니고. 그러길래 내가 강남역이라고 문자 보냈을 때 왜 연락을 안해?"
"헐!"

나 강남역이야 = (나 강남역 대형서점이야. 여기서 책 보면서 기다리고 있을게. 이쪽으로 와서 나 데리고 가.)


'

나 강남역이야' 라는 문자 하나로 '아, 강남역 교보문고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고 있구나' 라고 추측 해야 하고, '아, 그쪽으로 데리러 오라는 이야기구나' 를 유추하고 상황이 그렇지 못할 것 같으면 안될 것 같다고 회신하는 것까지 완료가 되어야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는 상황이었습니다. -_-;;;


"헐! 아니. 내가 '강남역이야' 라는 문자 하나에 어떻게 그 모든 의미를 알아 듣냐고!"



여자친구와 통화를 한 후, 황당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남자. 웃으면 안 되는데 옆에서 빵 터진 저와 친구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혹 나도 남자친구에게 비슷한 실수를 저지르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더군요.  

"맞아. 너도 그런 때 있어."
"정말?"
"응. 함축적 표현 쓰지 말고, 하나하나 쉽게 이야기 해 줘."


여자친구는 화가 나서 씩씩거리고 있고, 남자친구는 여자친구가 왜 화가 난 건지 몰라 당황해 하는 그림. 그리 낯설지 않습니다.


얼마 전 TV프로그램에서 충청도 사투리 '거시기'를 두고 오가던 말이 생각났습니다. "거시기 거시기 했쑤? 거시기는 어쨌쑤?" 라는 말에도 단번에 알아듣는 상대방. 어떻게 거시기라는 말 하나로 대화가 통하는 걸까? 라고 생각했는데 그 상황에서의 전제조건은 반드시 상대방이 '거시기' 가 무엇인지 반드시 서로가 알고 있는 것을 지칭할 때 통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서로 잘 통하는 연인 사이라고 하지만 '거기!' '저기!'를 외친다고 해서 서로가 같은 A라는 곳을 떠올릴 가능성은 낮을 수 밖에 없는데 말이죠. 사랑하는 사이, 할 말이 있으면 할 말을 똑부러지게 하는 것 못지 않게 함축적으로, 단답식으로 이야기 하고선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준다면, 오해의 소지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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