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생활을 위해 서울에 올라왔지만, 지방에 있다가 처음 서울에 발을 내디뎠던 때를 떠올리면 당시의 묘한 떨림과 기대감이 제 심장을 뛰게 만듭니다.
지방에 있다가 서울에 간다고 해서 뭐가 크게 바뀌겠냐? 라고 말하던 저였지만, 솔직히 지방에 있을 때보다 서울에 오고 나서 뭔가 보는 눈이 더 크게 뜨인 건 사실인 듯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찬가지로 국내에만 머무는 것 보다 국외로 나갔을 때는 또 더욱 큰 세상을 보게 되고 다양한 문화와 접하게 되니 또 다른 큰 눈이 뜨여지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처음 서울에 발을 내딛고서는 제일 먼저 신경 쓴 것이 혹시 나의 말투로 인해 놀림을 받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말은 표준어를 쓴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게 되는 억양은 어떻게 숨겨야 할지 좀처럼 가늠이 되지 않더군요.
"오빠야" "언니야" 라고 부르던 호칭도 이제는 서울말답게 "오빠" "언니"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지끈거리더군요. 그렇게 말투에 신경을 쓰다가도 유일하게 서울에서 마음 편히 사투리를 마음껏 구사할 수 있는 때가 있으니 바로 향우회 모임을 가는 때였습니다. 무척이나 친근하고 가까운 선배, 후배, 동기들간의 모임이었죠. 대학생 새내기였던 당시, 그 모임에서 문득 나온 이야기가 남자가 여자친구 가방을 들어 주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헐. 완전 깬다. 사내 자식이 어떻게 여자 가방을 들어주냐? 진짜 민망하군."
"그러니까- 사내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여자 가방을 들어. 좀팽이 같은 자식."
더불어 그 선배들을 보며 친구와 저는 나름 그 선배들의 별칭을 붙여주었죠. '가부장1' '가부장2' 라고 말입니다. 그 후,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남자 선배들의 이야기를 주워 들은 것이 있어 절대적으로 여자라고 약한 척하거나 폐를 끼쳐선 안되겠다- 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했습니다.
그때도 몰랐습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말이죠. 그리고 왜 그게 헤어지는 이유가 되는 지도 말이죠.
"아니. 갖고 싶은 거 없어. 돈 아까우니까 그냥 와" ("정말? 우와- 독일로 컨퍼런스 가는거야? 멋지다- 그럼 난 조그만 립글로스 하나 사 주면 안돼?")
"그래? 그럼 다음에 내가 살게." ("정말? 아싸- 고마워. 다음엔 내가 쏠게!")
"아냐. 혼자 들 수 있어. 나 힘세잖아." ("역시, 우리 오빠가 최고야. 고마워. ^^")
그야말로 연애 초보가 따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라는 단호한 대답보다는 웃으며 '고마워-' 한 마디 하면 되는데 말이죠. 뭔가 연애를 하면서도 '남자친구에게 폐를 끼쳐선 안 된다'는 생각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레 남자 쪽에서는 "날 사랑한 건 맞니? 날 믿긴 하는 거니? 내가 남이니?" 라고 물을 수 밖에요.
일부 남자들의 대화를 나름 확대 해석해서 나는 그러지 말아야겠다- 라고 행동한 것이 오히려 연애에 있어서는 치명적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바로 얼마 전 친구를 통해 들은 이야기 입니다.
"여자 가방 이야기 했던 그 선배 기억나? 그 '가부장 넘버원'을 코엑스에서 봤는데, 여자친구 핸드백을 손에 들고 가더라."
악! 이런 급 반전이! =_= (분명, 본인의 입으로 여자 핸드백 들고 다니는 남자는 좀팽이라고 했으면서!!!)
저의 첫 연애는 그렇게 아주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덕분에 지금의 멋진 남자친구를 만날 수 있었지만 말이죠. 그 첫 연애의 허무함으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어느 누구도 연애의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는 거죠.
개개인마다 선호하는 스타일도 다르고, 생각하는 것도 다르니 말입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절대 남자들끼리의 이야기를 기준 삼거나 잣대 삼지 않습니다.
'저 남자들이 그러니 내 남자도 그럴 거야' 라는 억측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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