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능을 앞둔 후배들에게 하고픈 말

수능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듯 합니다.

이번엔 11월 18일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더군요. 제 블로그를 방문하는 분들 중, 의외로 고3 수험생도 있는 듯 합니다. 주로 연애 관련 포스팅만 하다 문득, 후배들을 위해 꼭 들려 주고픈 이야기가 있어 또 이렇게 끄적이게 되었습니다.

뭔가 객관적인 증거가 있으면 더 의미 심장하게 다가올텐데 수능성적표는 받아서 어떻게 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으니… -_-;; 어디로 간걸까요? 제 수능성적표는...

제가 수능을 치른 지 어느덧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이렇게 시간이 빠를 줄이야…

초등학교 때는 딱히 공부랄 것 없이 시험만 치면 '수'가 나오니 그 성적표를 받아 들고 집에 가 자랑스럽게 내미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성적표는 누구에게든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어지는 +_+ ㅋㅋㅋ)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고민해 보지 않은 성적 고민을 하게 되었고, 헤어나올 수 없는 하락세를 그리는 성적표에 기겁을 했습니다. 고3, 수능을 앞두고서도 이만 저만 초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의고사 성적표를 보면 터무니 없는 점수와 등급에 내가 가고 싶어 하던 대학은 커녕, 아예 대학교 자체를 꿈도 못꾸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4등급 -_-

진학이 어려움 -_-^

내신 또한 최악이었습니다. 고1 성적표인데요. 수학이며, 과학이며 사회며, 미가 그나마 잘 한 거고, 양이 흔하기도 했고 말이죠.

수학 양, 과학 양, 사회 미 -_-^

제가 수능시험을 치룰 당시가 2002학년도였습니다. 100% 수능 점수로 대학교를 갈 수도 있었지만 (그러기 위해선 수능 점수가 상당히 높아야 겠죠) 대부분 내신을 일부 반영하고 수능을 반영하는 시스템이었던터라 (지금은 또 어떤지 모르겠네요) 제가 가고 싶어 하는 대학교를 입학하는 건 정말 하늘에서 별 따기 처럼 느껴졌습니다. 4등급과 3등급을 오가는 점수로 제가 원하는 대학교를 가기란... -_-;

4등급에서 3등급으로

정말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정신차리고 공부했습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라는 말을 해 봤자 공부 못하는 아이의 그럴싸한 핑계로만 느껴질테니 최대한 상위권에 속해 그런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적표에서 '양'과 '미'없애기 놀이

최대한 대학교 내신에 반영되는 주요 과목은 '양'이나 '미'는 보이지 않게 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내신 점수에도 신경을 썼고, 학원이나 과외를 하지 않는 친구들을 따로 모아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따로 빈 교실에서 서로 모르는 것 물어 가며 공부했습니다.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던터라)

공부를 하면 할 수록 성적은 분명히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내놓았고, 수능 성적 결과 또한 최종 모의고사에선 3등급이 나오더니 그보다 높은 등급이 나와 그렇게 제가 가고 싶어 하던 대학교와 제가 가고 싶었던 학과를 택해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습니다. 초기 모의고사 결과엔 줄곧 제가 택한 대학교에 '진학이 어려움'이라는 문구로 번번히 낙방 시키더니 말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받아 좋은 대학교를 가라- 라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교와 학과를 택하더라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대학교를 내걸 일도 없을 뿐더러 어느 대학교를 나왔느냐에 따라 그것을 판가름 하지 않습니다. 사회생활을 하며 그에 따른 실력을 오히려 높게 평가하죠. 교대를 나와 교사가 되더라도 서울교대냐 지방교대냐가 아니라, 교사로서의 자질과 그 실력을 평가하고 회계사가 되더라도, 변호사가 되더라도 서울대 출신의 회계사나 변호사를 내거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그 성과를 봅니다.

그럴싸한 대기업에 취직한다 하더라도 넌 서울대 나왔고, 넌 지방대 나왔으니 서울대 출신인 너를 먼저 승진시켜 주겠다- 는 것 따위도 절대 없습니다. 공정하게 같은 라인에서 출발하니 말이죠.

그럼에도 제가 최악의 성적표까지 내밀며 학생일 때, 최선을 다해 공부하라며 포스팅 하는 이유는 어른들이 그토록 말씀하시는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그 때가 좋은 때다" 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듯 합니다. 꾸미지 않아도 예쁘고, 있는 그대로 교복을 입고 책만 들고 있어도 예뻐 보인다는 그 말처럼 30대를 앞두고 제가 보는 학생들의 모습도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습니다.

정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말이죠. 직장인이 되면 직장생활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결혼하여 아이의 엄마가 되면 또 아이의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는 학생이라는 그 모습과 역할은, 정말 그 때를 놓치면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저도 기억이 납니다. 고 3, 그 때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말이죠.  

누군가 제게 다시 고 3으로 돌아갈 기회를 줄테니 더 열심히 공부해 보겠느냐고 제안한다면 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 시기가 얼마나 힘겨웠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ㅠ_ㅠ

그저 고3, 수능을 앞둔 후배들을 위해 힘내라는 말 꼭 전해 주고 싶어 포스팅해 봤습니다.
시간이 지나 가장 최선을 다한 그 순간을 돌이켜 보면 정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겁니다.

고3, 수험생 여러분 힘내세요! ^^

[보물공개]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그저 주저 앉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런 때 말이죠. 저 또한 !’ 하고 놀랄만한, 그러한 일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이 한 면에 소개 하기엔 그 양이 너무 많으니 짧게 토막 내어 소개 할게요.

열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은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들었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힘들다, 죽고 싶다를 연발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너가 정말 그랬냐고 되물을지도 모르지요.

judge me now,   #2 in explore
judge me now, #2 in explore by ashley ros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양육권 판결에 따라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과 저는 당시 생활 여력이 더 높았던 아버지를 따라 나서야 했습니다.
새 집, 새 책상, 새 침대모든 것이 낯선 와중에 만난 첫 날부터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는 새 엄마까지. 드라마 속, 만화 속 계모를 제대로 체감하였습니다.

너무나도 큰 아파트, 좋은 컴퓨터, 새 책상, 새 침대, 처음엔 꿈만 같았던 그 상황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질 없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 어린 나이에 다시 고민에 빠졌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다 꺼내려면 너무 길어지니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죠.

End of summer / Fin del verano
End of summer / Fin del verano by Claudio.A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그러한 새로운 환경과 새 엄마의 구박 속에 견디다 못해 2년 여 정도 버티다 곧바로 홀로 힘들게 생활하고 계셨던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양육권이니 그러한 법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아버지와 새 엄마에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당시 고3.

my desk corner 2
my desk corner 2 by Laurie :: Liquid Pap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에 심적인 불안감과 부담감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단칸방에서 힘겹게 공부하며,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밖으로 나가야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제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동생과 어머니가 계셨기에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공장을 다니며 힘겹게 돈을 모아 생계비며, 집 월세며, 동생과 저의 학비 부담까지. 3이었던 터라 교재비도 상당했죠. 단순히 큰 딸, 장녀로서가 아닌 생계를 책임지고 한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더욱 커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공장일을 하시다가 몸이 많이 나빠지셔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학업에도 신경 써야 했지만 생활비와 학비에 대한 부담감에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착하고 예쁜 딸이기 보다는 강하고 든든한 아들로 보이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9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한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 당시의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채찍질 하기 위해 제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있죠.

바로 2002학년도 당시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표와 수능 전 날, 저에게 건네주었던 동생의 편지입니다.



지금도 이 껌이 나오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당시 열 세 살이었던 어린 동생은 본인이 먹고 싶었을 텐데 꾹 참고 아껴서 저에게 건네준 풍선껌인 듯 합니다.



제 지금 나이 스물일곱.

제 자신에게 이야기 하곤 합니다. “참 잘 컸다- 수고했어-“라고 말이죠.

비록 화목한 가정 속에서 때론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가족 여행을 가고 싶은, 그런 마음도 컸었고 난 왜 그런 평범한 가정 속에서 자라나지 못했을까, 라는 현 상황을 낙담해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악물고 버텼었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공부라는 것과 수능을 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어른이 되면 어머니께도, 동생에게도 보다 떳떳한 딸이, 언니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의 결과는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특히 나와 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 자칫 잘못된 길을 선택하려는 후배나 어린 동생들이 있다면 붙잡아 주고 싶어요. 자신을 믿고 노력하면 절대 그 노력은 너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서울에 위치한 4년제 대학교에 합격하여 지방에서 서울로 홀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지방에 있는 동생과 어머니를 위해 틈틈이 아르바이트, 과외, 교수님을 도와 프로젝트를 하는 등 여러 사회생활을 겸하며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졸업 하기 전에 운 좋게 바로 취직하여 지금은 동생과 어머니도 서울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 보물입니다.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이를 악물고 버티게 해 준 동생의 편지와 당시 수험표를 작성하며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는 마음이 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그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저의 보물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꺼내서 보곤 합니다.

일찍 어른이 된 만큼, 분명 보다 큰 기회가, 큰 행복이 찾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