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 챙기기 꼼수 부리려다 한방 맞은 사연

연애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친구가 곧 다가오는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남자친구에게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는 이야기에 나도 한 때 그런 때가 있었지… 라며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캬! 나도 그런 때가 있긴 했는데..."

선물만 고민인가요? 어떤 편지지에 어떻게 마음을 담아 표현할지도 고민을 하죠.


연애 초기만 해도 발렌타인데이니 어떤 걸 선물해 줘야 할까, (초콜릿은 기본이며 선물과 편지는 그와 덤으로 딸려 가는 옵션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곤 화이트데이니 사탕을 달라, 로즈데이 장미며, 빼빼로데이 빼빼로며, 먼저 요구하기도 하고 남자친구가 먼저 챙겨줘도 '당연히 받아야 하는 날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혹여 남자친구가 '그런 거 다 상술이야' 라며 넘어가려고 하면 토라져서 씩씩 거리기도 했는데 말이죠. 그렇게 받는 것에도 연연해 하고 주는 것에도 연연해 하던 제가 직장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너스레를 떨며 기념일을 대~충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밥 사주기'로 넘어가는 거죠. (편지라도 덤으로 있어야 할텐데 오로지 밥으로 통일해 버렸습니다)

꽃보다 밥! 언제부턴가 실리를 따지기 시작하다

"우리 버섯. 한 때는 안 챙겨 준다고 씩씩거리더니 이제 먼저 밥으로 은근히 다 통일하네. 이제 아줌마 다 된 거야?"
"하하. 뭐. 오빠도 나도 바쁘니까. 그러고 보면 상술 맞는 것 같아. 이제 실리를 좀 따져야지."

발렌타인데이도 밥! 화이트데이도 밥! 꽃보다는 밥! 남자친구의 그런 거 다 상술이라는 말에 씩씩거리던 제가 이제는 실리를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하겐 바쁘다는 핑계로 기념일 챙기기를 슬슬 귀찮아 하고 있다고 봐도 될 듯 합니다) 결혼반지로 다이아몬드보다 금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하면서 말이죠.


"결혼할 때 다이아몬드 보다는 금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나을지도 몰라. 금테크를 하는 거지. 우리도! 어때?"

기념일 뿐만 아니라 웬만한 모든 것에 그렇게 실질적으로 어떤 것이 더 이득이 될 지를 고민하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문득, '데이트 비용도 만만찮지만 기념일 챙기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결혼하면 기념일을 챙기는 비용도 훨씬 줄어 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하면 기념일이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이미 결혼 10년차를 훌쩍 넘기고 아들까지 키우고 있는, 살림과 직장생활을 똑 부러지게 하고 있는 직장 선배 언니에게 기념일 선물 챙기기에 대한 고충을 털어 놓았습니다. 바쁜 직장생활을 하며 기념일을 챙기려니 힘들다는 구차한 이유를 늘어 놓은 뒤, 매번 기념일마다 뭘 해야 할지,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결혼하면 좀 더 이런 고민에서 해방되지 않을까… 라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결혼하면 좋을 것 같아요. 기념일이며 선물에 크게 연연해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어머. 얘 좀 봐! 결혼해도 당연히 챙겨야지. 아니, 결혼하면 더 챙겨야지."

순간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

쿵!

'어라?! 결혼하면 더 챙겨야지?!'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난 고민하고 있어. 남편 생일 때마다, 결혼기념일마다 뭘 선물해 줘야 할지. 어떻게 하면 감동을 줄지. 늘 남편에게 미안해. 그래도 연애할 땐 내가 잘 챙겨줬었는데,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니 남편에게 가야 할 100%의 마음이 이제는 거의 아이에게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야. 신랑 입장에선 많이 서운하겠지."

"결혼하면 더 잘 챙겨줘야 돼. 네가 아직 결혼하기 전인데다 엄마가 되기 전이니 잘 모르겠지만 특히, 아이가 생기고 나면 남편을 더 챙겨주고 싶어도 마음만큼 잘 못 챙겨 주게 된다."

"아이만 챙겨주면 남편이 토라지기도 해. 난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기분이야."

선배언니는 어느 정도 우스갯소리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그 말 하나하나가 너무 와 닿았습니다. 내가 단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바쁜 직장생활과 살림을 함께 하고 있으면서도 연애 할 때 보다 기념일은 더 꼭 꼭 챙긴다는 선배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결혼하면 기념일을 좀 더 편하게 넘어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저를 돌아보게 되더군요. 편해지면 편해질수록,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더 소소한 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잘 해줘야 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던 건 아닌지… '기념일보다 평소에 잘하면 되지 뭐.' 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내 입장을 합리화 시키고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지… 정작 상대방 입장은 생각지 못하고 말이죠.

이번 발렌타인데이엔 더 이상 바쁘다는 핑계를 대지 않고 주말을 이용해 편지를 꼭 써주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연애 초기엔 편지를 참 자주 썼었는데 정말 오랜만이라는 말과 함께 은근 기대하는 남자친구의 표정과 말투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밤 늦은 시각, 혹시라도 잊을까봐 센스있게 문자도 보내줬네요. 오랜만에 편지 쓰려니 이거 은근히 부담되는걸요? +_+

+ 덧) 결혼 후, 아이가 생기고 나면 남편을 잘 챙겨 주고 싶어도 아이에게 많이 신경을 쓰다보니 상대적으로 덜 챙겨주게 된다며 챙길 수 있을 때 잘 챙겨 주라는 말이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역시, 결혼 후 알콩달콩 잘 살고 있는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겨요. (응?) 어느 책에서도 볼 수 없는 귀한 실전 연애 정보를 들려 주시니 말이죠. :)

남자친구가 고마울 수 밖에 없는 이유

*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부터인지, 혹은 내 나이 어떤 시점을 지나면서부터인지.

다만, 분명한 것은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지어 '남자는 어떠하다…' '여자는 어떠하다…' 와 같은 말에 언제부턴가 더 이상 공감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꽤 분위기 있어 보이는 사진에 '여자는 말이야' 혹은 '남자는 다 그래' 와 같은 류의 그럴싸한 여자, 남자 운운하는 글을 보고 맞아, 맞아, 하며 끄덕이기도 하고 쫓아 다녔던 내가 말이다.  

'남자'가 문제가 아니다. '여자'가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문제일 뿐. 개개인의 문제일 뿐.

사랑에 대한 아름다움과 황홀함이 가득한 문구들을 쫓던 내가 20대가 되어 연애를 하게 되었을 때, 그 연애는 순탄치 않았다. 당시 연애를 하면서도 난 지금 당장 이 남자와 헤어지더라도 아쉬울 건 없다는 나름의 자만심을 가지고 연애를 했었는지도 모른다. 데이트를 하면서도 만나거나 연락을 함에 있어서도 늘 계산적이었다. 밀고 당기기랍시고, 상대가 밀면 난 더 거세게 밀며 나를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첫 연애를 실패한 후엔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 남자를 욕하기에 바빴다. "역시. 남자는 다 그래. 왜 그런지 몰라. 남자는 역시 못믿겠어!" 내가 만난 남자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를 대표하기라도 하는 듯, 남자는 다 그래… 라고.

하지만,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나서 나의 이 작고 짧은, 편협한 생각은 산산조각 나 버렸다.

분명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상도 크게 존재하고 있고, 내가 만나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간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마냥 작은 세상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힘겨워 했는지 지금의 남자친구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다. 여러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남자' 이기 이전에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극히 이기적이었던 나를 먼저 걱정하고 챙겨주는 남자친구를 통해 '배려'라는 것을 배우고,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다. 아니, 지금도 배우고 있다.

단순히 서로의 좋아하는 감정을 확인하고 채워 나가는 것이 연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당신에게 연애가 뭡니까?'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답해 주고 싶다.
지금껏 내가 가진 하나의 눈으로 보던 세상. 이 하나의 눈으로 보지 못했던 세상까지 볼 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더 큰 눈을 더 가지게 되는 것이 연애이고, 사랑이라고. 물론, 갖게 되는 다른 하나의 눈은 기존 내가 가지고 있던 나의 눈과 보는 시야나 높낮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왜? 각자 살아오며 봐온 것이 다르고, 겪어온 것이 다르니 당연히 다를 수 밖에... 

다만, 그 눈높이와 시야를 잘 조절하고 맞춰 나가는 것이 나와 그가 할 일이다. 그럼 더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 희미했던 목표가 더 선명해 지고, 불투명했던 미래가 더 밝아 지는 듯 하다.
지극히 하나의 편견에 빠져 허덕이던 내가, 지극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던 내가, 한 사람이 보여준 진심어린 사랑 앞에서 변했다.

"남자는 말이야" "여자는 말이야" 운운했던 내가 이젠 더 이상 '남자 VS 여자'가 아닌, '그 남자(남자친구)와 그 여자(나)'를 말하고 있다.

내 사랑에게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단순히 날 사랑해줘서? 아니.
내가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 줘서.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고마워. 사랑해. 앞으로도 예쁘게 사랑하자.

[보물공개]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그저 주저 앉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런 때 말이죠. 저 또한 !’ 하고 놀랄만한, 그러한 일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이 한 면에 소개 하기엔 그 양이 너무 많으니 짧게 토막 내어 소개 할게요.

열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은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들었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힘들다, 죽고 싶다를 연발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너가 정말 그랬냐고 되물을지도 모르지요.

judge me now,   #2 in explore
judge me now, #2 in explore by ashley ros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양육권 판결에 따라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과 저는 당시 생활 여력이 더 높았던 아버지를 따라 나서야 했습니다.
새 집, 새 책상, 새 침대모든 것이 낯선 와중에 만난 첫 날부터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는 새 엄마까지. 드라마 속, 만화 속 계모를 제대로 체감하였습니다.

너무나도 큰 아파트, 좋은 컴퓨터, 새 책상, 새 침대, 처음엔 꿈만 같았던 그 상황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질 없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 어린 나이에 다시 고민에 빠졌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다 꺼내려면 너무 길어지니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죠.

End of summer / Fin del verano
End of summer / Fin del verano by Claudio.A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그러한 새로운 환경과 새 엄마의 구박 속에 견디다 못해 2년 여 정도 버티다 곧바로 홀로 힘들게 생활하고 계셨던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양육권이니 그러한 법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아버지와 새 엄마에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당시 고3.

my desk corner 2
my desk corner 2 by Laurie :: Liquid Pap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에 심적인 불안감과 부담감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단칸방에서 힘겹게 공부하며,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밖으로 나가야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제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동생과 어머니가 계셨기에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공장을 다니며 힘겹게 돈을 모아 생계비며, 집 월세며, 동생과 저의 학비 부담까지. 3이었던 터라 교재비도 상당했죠. 단순히 큰 딸, 장녀로서가 아닌 생계를 책임지고 한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더욱 커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공장일을 하시다가 몸이 많이 나빠지셔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학업에도 신경 써야 했지만 생활비와 학비에 대한 부담감에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착하고 예쁜 딸이기 보다는 강하고 든든한 아들로 보이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9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한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 당시의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채찍질 하기 위해 제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있죠.

바로 2002학년도 당시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표와 수능 전 날, 저에게 건네주었던 동생의 편지입니다.



지금도 이 껌이 나오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당시 열 세 살이었던 어린 동생은 본인이 먹고 싶었을 텐데 꾹 참고 아껴서 저에게 건네준 풍선껌인 듯 합니다.



제 지금 나이 스물일곱.

제 자신에게 이야기 하곤 합니다. “참 잘 컸다- 수고했어-“라고 말이죠.

비록 화목한 가정 속에서 때론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가족 여행을 가고 싶은, 그런 마음도 컸었고 난 왜 그런 평범한 가정 속에서 자라나지 못했을까, 라는 현 상황을 낙담해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악물고 버텼었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공부라는 것과 수능을 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어른이 되면 어머니께도, 동생에게도 보다 떳떳한 딸이, 언니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의 결과는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특히 나와 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 자칫 잘못된 길을 선택하려는 후배나 어린 동생들이 있다면 붙잡아 주고 싶어요. 자신을 믿고 노력하면 절대 그 노력은 너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서울에 위치한 4년제 대학교에 합격하여 지방에서 서울로 홀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지방에 있는 동생과 어머니를 위해 틈틈이 아르바이트, 과외, 교수님을 도와 프로젝트를 하는 등 여러 사회생활을 겸하며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졸업 하기 전에 운 좋게 바로 취직하여 지금은 동생과 어머니도 서울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 보물입니다.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이를 악물고 버티게 해 준 동생의 편지와 당시 수험표를 작성하며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는 마음이 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그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저의 보물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꺼내서 보곤 합니다.

일찍 어른이 된 만큼, 분명 보다 큰 기회가, 큰 행복이 찾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