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때문에 이혼을 참는다는 말, 자식에겐 피눈물

종종 비밀댓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는 분들이 있는데요. 한번쯤 '이와 관련한 포스팅을 해야지' 하다가 오늘에야 끄적여 봅니다. 20대 후반. 이제 철부지 사춘기를 지나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그간 짧게나마 살아오며 겪었던 이런 저런 시간들이 제겐 너무나도 큰 교훈을 주고 있어 그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자식에게 부모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마냥 친구들과 어울려 뛰놀던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서로 등을 돌리고 남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야 부모님 사이에 이혼 이야기가 오가자 그 때 비로소 '남과 남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구나' 그리고 '결혼한 부부는 뒤돌아서면 다시 언제건 남과 남이 될 수 있는 사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관련 글 보기 >>

열 세 살, 아버지가 저를 불러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성격 차로 이혼하게 되었다" 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마 당시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르셨을 겁니다. 두 사람이 이혼하는 이유, 성격 차라고 포장하셨지만 당시 여섯 살이었던 동생과 저는 그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는 걸요.

자식이 잠들었다고 생각했을 새벽 시각, 거기다 문이 굳게 잠겨 있으니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는지 모르지만 두 분의 이런 저런 말다툼에 어린 동생과 저는 서로를 꼭 껴안고 귀 기울여 듣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방과 저희들의 방은 꽤 거리가 멀었고 푹 잠 들었을 시각임에도 어떻게 그 시각에 깨어 두 분이 다투는 것을 듣고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번 두 분이 다투실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혼을 결정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세상에 영원한 사랑 같은 것은 없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 라는 단정적인 편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자연스레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전에도 포스팅 한 적 있지만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남자를 만남에 있어서 오로지 '돈' '조건'만 따졌습니다.

왜? 당장 부모님을 보더라도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며, 한 순간 쉽게 변하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말이죠. 그만큼 어린 시기에 부모님의 이혼은 큰 충격이었고 그 영향력은 무척이나 컸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생각이 깨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쉽게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자식 때문에 이혼을 참는다?

모두가 사랑을 할 땐 예쁜 사랑을 꿈꾸고 기대합니다. 모두가 결혼을 할 땐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마음 먹은 대로, 기대한 만큼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냐 만은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막막한 현실 앞에 주저 앉곤 합니다.

저의 포스팅에 비밀댓글로 꽤 길게 쓰여진 한 사연이 너무나도 와 닿았습니다. 중학생인 한 여학생의 사연이었는데요. 밤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서는 종종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욕을 하는데 그런 아버지가 정말 견디기 힘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보다 이 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하더군요.

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 밤 늦게 집으로 와서는 폭력을 행사하고 욕을 하는데도 그 마저 '너(자식)를 위해서 참는다'는 말로 포장을 하고, '딸이 커서 시집 잘 가는 걸 볼 때까지 이혼하지 않겠다'는 말로 자식을 핑계 삼아 이혼을 참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다 너희들 생각해서 참는 거야. 너희가 어려서 뭘 알겠니. 너희들 다 크고 나면 그 때 난 네 아버지랑 이혼 할 거다."

정말 자식을 생각해서 이혼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그 말 자체를 사춘기인 어린 여학생에게 아예 내뱉지 말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이혼을 생각 중인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솔직하게 자식의 의견을 물어도 좋은데 말이죠.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제 스무 살이 된 아이도, 열 세 살의 아이도 마냥 어린 아이로만 보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해 주기엔 철 없는 아이로만 보는지 모르겠지만 막상 그 나이의 아이들도 자기 나름의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상황 이해나 판단은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의 입장을 한번쯤 헤아려 주세요

자식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절대 부모가 자식 앞에서 '너의 아버지는 이런 이런 점이 못났다' 혹은 '너의 어머니는 왜 저러느냐' 와 같은 말은 하지 못할 겁니다. 당장 결혼한 부부야 뒤돌아서면 언제건 남이 될 수 있는 사이일지 모르나, 자식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등을 돌린다고 하여 등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 모셔야 할 세상에 단 한 분 뿐인 어머니, 아버지이니 말입니다.

부모가 사랑해야 할 자식이기 이전에 자식들 또한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인격체이며 존중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운다면 한번쯤 자식의 입장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종 비밀 댓글로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들다는 사연도 보고, 부모님의 다툼으로 학업에 전념하기 힘들다는 사연을 봅니다.  전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인생과 어머니의 인생을 각기 다르게 지켜 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사춘기에 부모님의 이혼을 핑계 삼아 충분히 엇나가 살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엇나갈 수 있었음에도 엇나가지 않은 것은 두 분이 각기 선택한 인생의 길이 있듯이 저 또한 제 인생의 길은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혹, 가정사로 인해 힘들다고 이야기 하거나,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들다고 이야기 하는 분들에게 제가 이야기 하고픈 것은 부모님도 한 사람의 인격체이니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 길을 새롭게 개척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심으로...
 
부모가 자식의 입장을 헤아리고, 자식이 부모의 입장을 헤아리려 노력한다면 절대 "내가 자식 때문에..." 혹은 "내가 부모님 때문에..." 라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탓하는 일은 없을 듯 한데 말이죠.

여섯 살 당시, “친구의 처참하게 죽은 모습과 뇌를 보았습니다”

어머니께서 가끔씩 농담 삼아 넌 애기였을 때부터 간덩이가 부었어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다섯 살 때 처음으로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귀신의 집을 들어섰다고 합니다. 아이가 혹시 놀라거나 울까 봐 손을 꼭 잡고 들어섰는데, 놀라거나 울기는커녕 웃으며 좋아했다고 하네요. (=.= …)

여섯 살 때 이런 저의 간덩이를 더욱 크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터졌습니다. 그 당시 상황이 지금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요. 유치원을 마치고 유치원 통원버스(현재의 시내버스 만한 크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한 명 씩, 한 명 씩 해당 아이의 집 인근에 내려주죠) 버스가 이윽고 한 아이의 집 인근에 도착하여 버스의 뒷문이 열렸고, 뒷문에서 내리려고 기다리고 있던 아이가 어머니가 마중 나온 모습을 보고 웃으며 내리려던 순간, 버스가 뒤로 급 후진을 하면서 그 큰 뒷바퀴에 아이가 깔려 죽는 잔인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해당 사진과 사건은 무관합니다



당시 모습은 지금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만큼 생생한데, 당시 전혀 무섭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뇌가 저렇게 생겼구나. 근데 피가 왜 까맣지? 차가 뒤로 움직였을 뿐인데 친구가 왜 다쳤지?” 라는 궁금증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가 다쳤다고는 인지했지만, 친구가 죽을 거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한 듯 합니다. 구급차가 왔으니, 병원으로 가서 치료 받으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죽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친구가 내리던 뒷문의 바로 뒷좌석이었던데다 사고가 발생한 해당 지점의 창가 쪽에 앉아 있었던 지라 그 광경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것은 그 울음소리의 주인공은 당시 차량에 탑승한 유치원생들이 아닌, 유치원 선생님과 조교 선생님들의 울음소리라는 것입니다. 곧이어 경찰차를 비롯하여 구급차가 도착했고, 운전기사는 경찰차의 질문에 몇 번 답변을 하는 듯 하더니 그의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그 이후의 정황은 잘 모르겠네요.

일명 봉고차라고 하는 작은 사이즈의 유치원 차량이 와 사고 차량에 탑승하고 있었던 저를 비롯한 유치원생들이 그쪽으로 옮겨 탔고 집으로 안전하게 도착했습니다.


해당 사진과 사건은 무관합니다


당시 사고 소식이 인근 지역에 크게 입 소문이 나 당시 사고를 목격한 유치원생들의 학부모들이 상당히 놀란데다 혹여 목격한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는지 걱정하는 듯 했습니다
. (충분히 그럴 만 하죠) 어머니도 제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무섭지 않냐고 물으시며 괜찮다고 한참 동안을 안아 주셨습니다. 정작 전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어머니가 오히려 더 놀라신 듯 하더군요. (지금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만 하죠)

당시 버스에 타고 있었던 유치원생(최하 5살에서 7살까지)들은 그 낯선 상황을 파악하기도 힘들었고 죽음에 대한 인식도 제대로 잡혀 있지 않았었기에 그 충격은 어른이 되고 난 후의 충격보다 약한 듯 합니다. (나이가 어릴수록 그 충격은 약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오히려 당시 차량에 탑승했던 유치원선생님과 조교선생님 사고가해자로 볼 수 있는 운전기사가 그 몇 배의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싶네요.

성인이 된 지금, 그러한 상황을 목격한다면 단순히 우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몇 년, 몇 십 년을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무서워했을지도 모르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그 공포를 알고 있으니 말이죠.

이 사고는 어릴 적 당시 저에게는 무서운 경험이라기 보다는 매사에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 계기가 된 듯 합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거나 내릴 때 문 가까이 밀착해서 서는 것을 꺼려하는데, 아무래도 어렸을 적의 경험으로 그 위험성을 깨달았기에 더욱 조심하는 듯 합니다.   

요즘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거나 내릴 때 황급히 타거나 황급히 내리는 손님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빨리빨리문화 속 폐해라고나 할까요. 어떤 때는 정말 그런 몇몇 분들을 붙잡고 싶은 때도 있습니다. (님아- 좀 천천히 내리세요) 보는 제가 다 조마조마 하더군요. 특히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버스 계단을 부랴부랴 뛰다시피 내리시는 분들과 친구들과 장난치느라 정신 없어 하며 급하게 내리는 꼬마 친구들 말이죠.

당시 정황을 다시 생각해 보면, 유치원 그 아이가 그 큰 버스의 뒷문에 서 있다가 뒷문이 열리자 냉큼 뛰어 내렸는데, (아마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버스에서 더욱 빨리 내리고 싶어서 였겠죠-) 버스가 갑자기 뒤로 급 후진이 되면서 (. 평지였는데 왜 갑자기 후진이 된 걸까요?) 차 바퀴에 아이의 발부터 순차적으로 빨려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사고가 난 듯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차나 지하철의 문이 열렸다고 황급히 내리려 하지 말고 한 템포 쉬고 내리는 것, 어렵지 않잖아요.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행동합시다!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사건, 사고가 많이 일어납니다) 너무나도 예쁘고 귀여운 천사 같은 사랑스러운 아들, 딸이 있다면 꼭 한번 더 차나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조심할 수 있도록 이야기 건네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 덧붙임 )

전 제 자식을 낳으면 제일 먼저 차 조심을 강조하며 차를 타고 내릴 때도 조심하라고 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