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만 따지던 내가 사랑을 마주하기까지

제가 '연애'라는 것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눈을 마주보고 오랜 시간 이야기 한다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닭살스럽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 뿐인가요.
드라마나 이런 저런 소설 속 등장하는 근사한 인물을 이상형이라 말하고, 연봉은 얼마 이상이면 좋겠다를 서슴없이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와중에 알콩달콩 연애 하고 있던 친구들이 남자친구의 눈빛에 녹아내릴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당시 솔로였던 저는 책에서 접한 이런 저런 이론을 들먹거리며 트집잡는 멘트를 날리곤 했었습니다.

"민망해! 어떻게 눈을 계속 뚫어져라 봐? 책 안봤어?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눈을 계속 마주하기 보다는 눈 뿐만 아니라 코와 입술 사이에 위치한 인중도 번갈아 가며 보는 게 가장 이상적이래. 눈만 보지 말라구!"
"으이그! 말이라도 못하면! 너 연애하게 되면 두고보자!"
"아! 그래! 솔직히 나도 좀 눈빛에 녹아 내리고 싶다고! 도대체 언제쯤 내게도 그런 사랑이 오는 걸까?"

당시엔 정말 언제쯤 오려나 싶었던 그 순간(눈빛에 녹아 내리는 순간. 캬!)이 제게 오긴 오더군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 그 모든 것들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말이죠.

내겐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랑' 이라는 감정

솔로일 때까지만 해도 지하철에서 연인끼리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거나 어깨에 기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심술이 나서 노려보곤 했습니다. 특히, 무척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댈 곳이 없어 잠결에 혼자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발견했을 땐 정말 속상하더군요. '아! 정말 추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혹 모릅니다. 헤드뱅잉을 하다 좌측과 우측에 앉으신 분들에게 마구 머리박기를 했을지도;;

그런 제가 지금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더라도 이제 더 이상 헤드뱅잉하지 않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퇴근 후, 남자친구와 잠깐 데이트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남자친구의 어깨에 기대선 잠들어 버렸나 봅니다. 

"이제 일어나야지. 다음 역이야. 졸립지?"
"어? 어. 응!"

남자친구의 목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뜨니 헉!

세상 모르고 너무 푹 잠들어 버렸었나 봅니다. 입가가 촉촉해져 버린. 킁. 본능적으로 제가 기댄 남자친구의 어깨에도 그 흔적이 남은 게 아닌지 확인하고선(흔건하게 젖어 있지 않아 다행입니다) 남자친구의 시선을 피해 냉큼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직 남자친구는 모르는 듯 합니다. 이럴 땐, 최대한 태연한 표정과 자연스러운 포즈가 필요합니다. 그 와중에 조심스럽게 입가를 닦아 내는데... 이미 남자친구 눈엔 포착되어 버렸나 봅니다.

"왜 그래? 왜?"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아, 너 침 흘렸구나? 이리와봐! 어디 보자!"

하악!

 -_-

"많이 피곤했었구나? 내가 닦아 줄게!"
"아냐. 없어. 이미 다 닦았어. 없어. 짠!"
"으이그! 완전 애야! 애! 귀여워!"

민망. 뻘쭘. 어색.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쿨한 척 웃으며 애써 웃어 보려하지만 자꾸만 붉어지는 얼굴. 그런 저의 마음을 아는지 오히려 귀엽다며 자연스럽게 웃어 주고 감싸 주는 남자친구를 보며 '선배 언니가 말하던 그 사랑을, 지금 내가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행복하더군요.

선배 언니가 말하던 사랑, 그리고 결혼

한 남자를 만나 이렇게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이 감정 이대로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답니다.

예전엔 막연히 서로에게 예쁘고 멋진 모습만을 보여 주는 것이 연애이고, 데이트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서로의 실수나 민망한 모습을 보더라도 서로 다독여 주고 감싸 주는 것에서 '아, 이게 정말 사랑이라는 거구나.' 라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는 듯 합니다.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선배에게 '사랑이 뭘까요?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요?'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선배 언니의 말이 이제는 너무나도 와닿습니다. 

"남자친구 입가에 묻은 고추가루를 보고 '아, 정말 더럽다! 못봐주겠다! 쪽팔린다!'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야.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고 먼저 티슈를 꺼내 닦아 주는게 사랑이지! 너가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너에게도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

'사랑이 도대체 뭐에요?' 를 묻던 제가 사랑을 하고 있네요. 이상형을 이렇게 저렇게 늘어 놓던 제가 이젠 지금의 남자친구가 이상형이라 말하고, 이런 저런 현실적 조건을 따지고 들며 '사랑'보다 '조건'이라 말하던 제가 사랑을 하고 있네요. :) 

연애초기와 다른 남친, 긴장감 주기? 긴장감도 긴장감 나름!

연애 초기엔 마냥 서로의 눈빛 하나에 취해 그저 함께 보내는 그 시간이 황홀하고 아름답기만 합니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연애 초기의 설렘이나 두근거림보다는 편안함과 서로를 향한 믿음이 커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상대가 날 편안하게 생각한다' 는 이유로 '긴장감을 주고 싶다'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할 것 같다' '권태기인 것 같다' 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하더군요. 저 또한 예외는 아니었지만 말이죠. ^^ 

연애 초기의 설렘이 줄어드는 시점은 언젠가 오기 마련

연애 초기, 손만 살짝 스쳐 지나가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두근거리고 옆에 있는 것만으로 그저 흐뭇하기만 했던 그 때의 감정도 빨리 오는 이들에겐 1년, 혹은 2년, 연애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그러한 마음은 자연히 이전에 비해 줄어 들기 마련입니다. 연애초기의 긴장감이 서로를 향한 편안함으로 바뀌기 시작하죠. 자연스레 서로에 대한 믿음이 더욱 단단해 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편해지는게 나쁘기만 한걸까?

1년 정도 사귄 친구가 연애 초기와 다른 남자친구를 둔 하소연이 이어졌습니다.

"이 남자는 안 변할 줄 알았는데! 연애 초기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또 속았어!"
"무슨 말이야?"
"매일 매일 데려다 주고 늘 보고 싶다고 말하면서 하루라도 못 보면 무슨 큰 일 나는 것처럼 문자도 늘 먼저 해 주곤 했었는데 1년이 다 되어 가니 이젠 예전 같지가 않네. 휴."
"음…"
"뭔가 연애 초기처럼 날 대하지 않는 것 같아. 어떡하지? 난 언제든 널 떠날 수 있으니 긴장 좀 하라고 까놓고 말할 수도 없고. 나의 소중함을 망각하고 있나 봐. 진짜 까놓고 말할까? 긴장 좀 하라고!"

이 이야기를 듣고 순간 '헉!' 했습니다. 연애 초기와 다른 남자에게 긴장감을 주기 위해 '난 언제든 널 떠날 수 있는 여자야! 너 나한테 잘해!' 라는 생각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위험한 생각인지 이 친구는 모르는 듯 했습니다.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면 '엔조이'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연애 초기의 설렘과 긴장감은 연애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사그라 드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그 감정을 두고 상대에게 지속적인 긴장감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연애 초기처럼 지속적으로 설렘을 요구하는 건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옵니다.

분명 서로 좋아서 연애를 하고 있는 사이임에도 '야, 너 나한테 잘해라. 안 그럼 나 뒤도 안보고 깔끔하게 널 떠날 테니.' 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가 그 사람과 오랫동안 연애 하고 싶을까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긴장해야 하는 순간이 한 두 번 찾아 오는 것도 아니고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팍팍하고 긴장감의 연속인데 연애 조차 마음 편히 못하고 눈치 보고 긴장하며 해야 하는 걸까요? -_-?

제가 만약 그런 마음 가짐을 가지고 있는 이성과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다면, '그래. 넌 언제든 날 떠날 수 있는 사람이지. 그러니 난 너와 적당히 즐기다가 정말 나와 평생 함께 할 사람이 나타나면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갈 거야.' 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연애를 결혼을 위한 하나의 연장선으로 보지 않고 연애 따로, 결혼 따로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 할 연인은 없을 겁니다.

뭐가 아쉬워서 '난 언제든 널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해 믿음을 주며 정성을 쏟을까요?

연애를 위한 연애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합니다. 연애를 위한 연애는 결국 언젠가 서로에게 깊은 상처만 남긴 채 끝나기 마련이니 말입니다.

긴장감을 주는 것도 긴장감 주는 방법 나름 

장기간 연애에 접어들면서 너무 편해진 연인 사이. 서로를 더 믿을 수 있는, 진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돈독한 사이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지 못하고 연애 초기의 긴장감과 설렘만을 쫓다가 결국 헤어짐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합니다. 

특히, 이 친구가 가지는 생각처럼 '난 너 없어도 잘 살아!' 와 같은 류의 긴장감을 주는 여자(남자)라면 어느 누구도 이 사람과의 미래를 꿈꾸지 않겠죠. 엔조이처럼 서로에게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사이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긴장감을 주더라도 이런 류의 긴장감이 아닌 다른 류의 긴장감을 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긴장감을 주고 싶다면 "난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여자(남자)야! 있을 때 잘해!" 와 같은 긴장감을 주기 보다는. 

"내 여자친구지만 누가 봐도 정말 매력적인 여자다" 
"과연 어느 누가 날 이렇게 사랑하고 아껴줄 수 있을까? 놓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을 상대방이 갖도록 해 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 될 듯 합니다. 변한 상대방을 향해 상대가 이전과 같지 않다며, 변했다고 답답해 하기 이전에 자신을 가꾸고 더 매력적인 모습으로 상대방에게 어필하면서 정말 진심을 다하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인다면 더 알콩달콩한 멋진 연애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6년째 연애중"


장기간 연애에 접어들면서 너무 편해진 연인 사이. 서로를 더 믿을 수 있는, 진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돈독한 사이가 되는 과정이라 생각지 못하고 연애 초기의 긴장감과 설렘만을 쫓다가 결국 헤어짐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곤 합니다. 

연애 초기의 두근거림과 설렘만을 기대하다 보면 언제나 그 연애는 짧게 끝나기 마련입니다.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또 다른 서로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믿음이 깊어지는 사랑도 꿈꿔 볼만 하지 않을까요? :)

“우리 헤어져!” 한 때는 게임중독이었던 남자친구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멋있고 근사한 남자친구이지만, 한 때는 심각하게 헤어짐을 되내이고 고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2년 전 그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남자친구와 제 사이를 멀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게임.

게임으로 인해 헤어짐을 결심했다는 주위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런 경우도 있구나' 라며 아주 먼 이야기처럼 여겼습니다. 하지만 연애 1년이 넘어서고, 2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야 알게 된 남자친구의 게임 중독. 정말 게임에 혼을 빼놓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게임에 푹 빠져 지내던 남자친구였습니다.

함께 만나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온라인 게임 상에서 만나는 게이머들과의 약속 시간으로 인해 조바심을 내며 안절부절 하는 것이더군요. 특정 한 게임에만 푹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이 나올 때마다 그 게임을 꼭 해봐야 하고, 나중엔 데이트도 PC방에서 하기 일쑤였습니다.


처음엔 저도 게임을 좋아하는지라 함께 어울려 게임을 즐기기도 했지만 점차적으로 그 시간이 길어지고, 잦아 질수록 지쳐만 갔습니다. 게임으로 인해 헤어짐을 결심했던 친구들처럼, 저도 그러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 하던 주위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헤어지자는 말을 여러 번 하기도 했었습니다. 게임만 아니라면 정말 좋은 남자친구이지만 그 게임 때문에 남자친구를 잃어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눈물이 나기도 하더군요.

"도저히 못견디겠어. 헤어져!"

난 그가 게임을 하든, 게임을 하지 않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적은 나이도 아니고 곧 서른을 앞둔 나이에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게임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으로 인해 폐인생활까지 해 본 적이 있던 터라 그 중독성을 알기에 더욱 속상했습니다.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들다는 것도 너무 잘 알기에.

헤어짐을 고할 때마다 그때뿐이었던 남자친구. 포탈사이트를 통해 나와 유사한 경우 어떻게 대처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심지어 지식인이며 네이트며 여기저기 검색해 보기도 했습니다만, 정말 게임에 푹 빠진 남자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헤어지세요- 라는 답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PC방을 찾을 때면 전 옆에서 별 의미 없는(마땅히 할 게 없었거든요) 웹 서핑을 하는가 하면 게임을 하는 남자친구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며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고정.

그러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블로그. 누군가의 추천도 아니고, 누군가의 강요도 아닌 그저 제 속을 털어 놓을 공간이 필요해서 '미니홈피'라는 공간 대신 택한 곳이 바로 '블로그'였습니다.

당시 미니홈피를 통해 이런 저런 사진과 일기를 쓰곤 했지만 '일촌'이라는 울타리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하나의 가식적인 공간이 되어 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 속 대나무 숲과 같은 공간으로 블로그를 찾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남자친구에게 화가 나면 그 억한 감정을 억누르며 블로그질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러면서 블로그의 재미를 알아 가다 보니 PC방에 먼저 가자고 남자친구에게 제안을 하기도 했고 남자친구가 옆에 있음에도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제가 블로깅에 빠져 있으니 뭘 하고 있기에 저리도 푹 빠져 있나 싶어 힐끗 거리며 보기도 하더군요.

솔직히 제가 이전과 달리 옆에 있는 남자친구는 보지도 않고 모니터만 응시하며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으니 뭐에 그렇게 빠져 있는지 궁금해 하며 흘깃거린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옆에서 다가와 보려고 하면 냉큼 블로그 창을 닫아 버렸고, 고의로 보여주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정말 보여주면 안 되는 어떤 것이 있었기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극을 주기 위해 그렇게 행동 한 거죠.

본인이 게임을 하는 이유에 대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으로 합리화 하던 모습 조차 당시엔 너무나도 미웠습니다.

"너 나 몰래 뭐해?"
"뭐? 별 거 아니야."
"보여줘 봐."
"아니. 그냥 게임이랑 비슷한 거야."
"뭐가 비슷해? 말했잖아. 난 게임 하면서 돈 버는 거잖아."
"응~ 그래? 나도 이거 하면 게임으로 버는 돈 보다 더 벌 수 있어."
"거짓말"
"오빠도 빨리 게임 해. 캐릭 죽겠다. 그 캐릭 비싼 거잖아."

"아, 아, 어."

속에선 불이 난 것처럼 부글부글 거리고 속이 타 들어 갔지만 겉으로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무덤덤하게 '당신이 뭘 하든 괜찮아요' 라는 자세로 일관하며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는 남자친구의 말에도 그냥 PC방에서 컵라면 먹자며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급기야 번번히 제가 먼저 PC방에 가자고 하고선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 한번 하지 않고 블로깅에 빠져 있는 (아니, 빠져 있는 척 하는) 저를 보고선 "다음부턴 절대 PC방에 오지 말자!" 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듣고 싶었던 한마디.

"나 이제 게임 안 할거니까 너도 그거 하지마!"

바로 2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백수이면서 게임에 푹 빠져 지내던 남자친구.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직장생활을 하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너무너무 보기 좋은데 말이죠.

요즘도 가끔 PC방에 가곤 합니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중독 수준의 게임이 아닌 함께 할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을 1시간 정도의 시간으로 즐긴다는 점이죠.


블로그가 뭔지 몰랐던 남자친구. 처음엔 숨기기에 급급해 하고 뭔가 열심히 타이핑 하는 것 같아서 옆에서 몰래 채팅 하는 줄 알았다고 하네요. 주위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게임 중독인 남자, 정말 최악인 남자다- 당장 헤어져라.' 하지만 번번히 헤어짐을 고하면서도 제 마음을 안타깝게 한 것은 그만큼 한번 뭔가에 몰입하면 깊게 빠지는 스타일이다 보니 그 집중력을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정말 멋진 남자가 될 것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게임 중독. 누군가의 강요나 타이름보다는 본인 스스로가 그것을 그만 두어야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에만 그만 둘 수 있는 마약과도 같은 것. 지금은 게임이 아닌,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로 나서 일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남자친구가 무척이나 든든해 보이는데 말이죠. 당시의 그러한 시기가 있었음을 주위 사람들은 알지를 못하니 '남자친구가 참 든든해 보인다. 멋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맞장구를 치면서도 '그런 시기를 잘 견뎌 냈기에 지금의 멋진 오빠가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 만약, 답이 없는 '게임 중독'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헤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남자친구는? 그리고 나는?

장기간 연애, 남자친구에게 문득 미안해진 이유

남자친구와 연애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런 저런 소소한 에피소드가 많이 생겨나는 듯 합니다. 더불어 연애 기간이 길어 지다 보니 연애 초기의 마냥 여성스러운 모습에서 벗어나 이런 저런 다양한(때로는 피폐한) 모습을 남자친구에게 보여주는 듯 합니다.


연애 초기, 데이트를 시작하고 그 데이트가 끝날 때까지 초지일관 예쁜 화장에, 예쁜 옷에, 최대한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채 그야말로 좋은 모습, 예쁜 모습만 보여 주려 했던 때와 달리 이제는 피곤하면 피곤한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그대로 떡 하니 남자친구 앞에 나타나니 말입니다. 남자친구와 연애를 처음 할 당시만 해도 장기간 연애해도 "난 절대 안그래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이다 보니 평소 하지 않던 화장을 곱게 하고 역시 최대한 제 몸의 약점을 가려주는 옷을 고르고 골라 차려 입고 나갔습니다. (가린다고 가려질 리는 없겠지만 말이죠. 끄응-)

"너네 언제 결혼해?"
"남자친구랑 사귄 지 얼마나 됐지?"
"오늘도 우리랑 헤어지고 나면 남자친구 만나러 가겠네?"

그렇게 친구들과 한참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문득, 남자친구에게 오랜만에 지금의 이 예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남자친구 앞에서 이렇게 화장을 정성스럽게 하고, 옷을 갖춰 입고 데이트 해 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더군요. 회사 일이 끝난 후, 질끈 묶은 머리와 화장이 거의 다 지워진 모습 혹은 과감한 쌩얼로 데이트 하는 시간이 많았으니 말이죠. 연애 초기엔 이런 모습을 남자친구에게 보여 주게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 오랜만에 이렇게 예쁘게 꾸몄는데 남자친구를 만나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남자친구에게 싱글거리며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이제 친구들이랑 헤어졌어. 중간에서 만나자!"

그렇게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후, 남자친구보다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한 후, 화장실로 냉큼 들어가 화장이 예쁘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옷 매무새를 확인했습니다. 남자친구를 만나면 남자친구가 "평소에도 예쁘지만, 오늘따라 더 예쁘다!" 라는 말을 해 줄 것이라는 묘한 기대감에 들 떠서는 남자친구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기대한 그 말 한마디 해주면 뽀뽀 백 번이라도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마음으로 말이죠.

"오빠, 오빠, 오늘 나 예쁘지?" (예쁘다고 말해줘!)

오랫동안 이런 예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터라, 분명, 감탄사를 연발하며 예쁘다고 해줄 것이라 기대했던 저의 기대와는 달리…

"응. 예뻐. 근데, 너, 왜 평소에 나 만날 때는 이렇게 안 꾸며?" (어라, 그러고 보니 친구들 만날 때만 꾸미네?)

헉! 뭔가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 제가 기대했던 "평소에도 예쁘지만, 오늘따라 더 예쁘다!"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기막힌 반전인 거죠.

"뭐야. 그럼 평소엔 안 꾸며서 싫구나?"

냉큼 어떻게 해서든 분위기를 제 쪽으로 유리하게 유도하려 했지만, 너무나도 억지스러우면서도 유치한 저의 말에 제 스스로도 민망하더군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니지. 안 꾸며도 예뻐."

삐친 척 하며 토라지는 제 모습을 보고(삐친 척 하는 연기는 대상감입니다) 그제서야 안 꾸며도 예쁘다고 말하는 남자친구가 그리 얄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진작 그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 연애 기간이 결코 짧지 않은 만큼 너무 편하다 보니 정말 너무 편한 모습만 보여준 게 아닌가 싶더군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남자친구의 말대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왜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는 예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기간 연애를 하다 보니 이 편안함과 익숙함이 너무 좋은 나머지 긴장감을 놓치기 쉽습니다. 새삼 남자친구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처음엔 '뭐야!'(발끈) 라고 생각했는데 긴장감을 놓고 편하게 행동한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네요. 장기간 연애의 편안함도 좋지만 첫 데이트 당시의 설레임도 무척 좋았으니 말이죠. 초심 잃지 말기! 이 문구가 연애에 있어서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듯 하네요.

+ 덧) 내심 벼르고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면 언젠간... 나도 외쳐야지... "왜 평소에 나 만날 때는 이렇게 멋있게 안하고 와?" -_-;;; 라며... ㅎㅎ

“빼빼로데이? 화이트데이? 그런 기념일은 다 뻔한 상술이야”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며 참 많이 다투기도 했고, 많이 웃기도 했습니다. 뜬금없이 길을 가다가 저에게 묻더군요.

"이제 빼빼로 데이가 얼마 안남았어. 알지?"
"응. 알지~"
"2년 전, 우리가 처음 맞이 했던 화이트데이 기억나?"
"화이트데이? 어떤 거?"
"너 내가 사탕 안 줘서 삐쳤잖아."

 

Peppero
Peppero by stuckinseoul 저작자 표시변경 금지

그제서야 스쳐 지나가는 그 날의 악몽이 떠올랐습니다. 우선 이런 저런 이야기를 잘라 맞다, 아니다만 대답하자면 네, 맞습니다- 남자친구가 사탕을 주지 않아 삐쳤었죠. 그것도 매우 단단히.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맞아' 라고 공감하는 가 하면 '왜 그런 걸로 삐치고 그래' 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참 남자친구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쿨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임에도 '사탕=사랑' 연계시켜 생각하게 된다고나 할까요?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너 예전에 사탕 안 좋아한다고 했었잖아. 기억 안나?"
"아니. 그 말이 아니지. 사탕보다는 초콜릿이 좋다고 그랬지. 그래서 화이트데이랑 발렌타인데이랑 바꿨으면 좋겠다고 그랬었잖아."
"그럼 그 말이 사탕 말고 초콜릿 달라는 말이었어?"
"사탕이든, 초콜릿이든!"
"뭐야. 사탕 안주면 사랑하지 않는 거야?"
"됐어. 말 안해. 삐쳤어."
"에이- 왜 그래-"

이미 제 가방 속엔 직장 동료로부터 받은 사탕이 들어 있었습니다. 남자친구에게 제가 토라진 이유는, 사탕이나 초콜릿이 문제가 아니라 왠지 모를 서운함 때문이었습니다.
챙겨주지 않는다고 토라질 일은 아니라고 말 할지 몰라도, 챙겨준다고 해서 큰 액수의 큰 규모의 사탕바구니를 바란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죠.

눈치 없이 둔한 남자친구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괜한 눈물까지 흘렀습니다. (왜 그랬는지 정말 지금 생각해도 창피합니다만, 당시엔 왜 그리 서운했을까요)

식당에서 식사 중이었는데 식사하다 말고 남자친구가 밖으로 나가 초콜릿을 하나 사오더군요. 연애가 처음이라 내가 많이 서툰 것 같다며 웃어 보이는 남자친구 앞에서 차마 더 이상 삐친 척 하고 있을 수가 없더군요. 활짝 웃으며 안아줬습니다.

"다음부턴 이런 날 꼭 챙겨주기. 약속! 여자는 큰 선물을 바라는 게 아니라, 내심 이런 기념일마다 남자친구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사랑 표현을 한번 더 받고 싶은 거람 말이야."

그렇게 처음 맞이 했던 화이트데이가 지나고 습관처럼 남자친구는 기념일이면 소소하게 챙겨주곤 합니다만, 이젠 또 익숙해진 제가 변덕을 부리곤 합니다.

"아, 이거 돈 아깝잖아. 왜 이렇게 큰 거 샀어? 작은 거 사지."
"뭐야. 이젠 사줘도 뭐라 그래."
"에이- 아냐. 너무 좋아서 그러는 거야. 고마워"

연애초기의 확인 받고 싶은 마음이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견고해지니 기념일이면 챙겨주는 그 돈이 아까워지기 시작하는 거죠. 이 변덕을 어찌 합니까.

"빼빼로데이에는 어떤 특별한 추억을 만들까?" 라며 이런 저런 계획을 읊어주는 남자친구가 새삼 고마워집니다. 이런 변덕쟁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있으니 말이죠. "이런 기념일은 다 하나의 상술이야. 생일이나 챙겨" 와 같은 다소 냉냉한 답변이 아닌, 상술이건 아니건 그저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드는 즐거운 기념일로 만들자고 이야기 해 주는 남자친구가 너무나도 고맙습니다.

여자는, 그러한 뻔한 상술을 노린 기념일이라는 것의 진위여부가 궁금한 것이 아니라 '사랑 받고 있는 한 여자' 라는 것을 소소하게 한 번 더 느끼고 싶어 하는 것 같습니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선배언니에게 남자친구를 소개하며


남자친구와 2년 6개월간 만나오며 단 한번도 누군가에게 소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왠지 정말 결혼할 날짜라도 잡혀진 상태가 아니라면 아는 이에게 공개해서는 안될 것만 같은. 묘한 기분에 홀로 사로 잡힌 채 말이죠.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전 어떠한 꺼림직한 기분이 어째서 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솔직히, 네-

숨기고 싶었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전 만났던 남자친구는 높은 학벌에 부유한 집안과 준수한 외모로 일찍이 여러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고 있었던데다 저도 냉큼 누군가에게 자랑이라도 하고 싶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와 사뭇 반대되는 지금의 남자친구가 부끄러워서 그러냐구요? 아니요- 단호히 아니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주위의 시선으로 인해 상처 받을 남자친구가 걱정스러웠죠.
제 눈엔 지금의 제 남자친구는 어떤 남자보다 가장 멋지고, 사랑스러운 남자친구이거든요.   

며칠 전, 절친한 선배 언니에게 연락이 와서는 도대체 너의 남자친구는 언제 보여줄꺼냐며 어떤 사람인지 한번 직접 만나서 봐주겠다는 선배 언니의 말에 쭈뼛쭈뼛해 하며 갑작스레 남자친구를 바로 불러 내어 인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갑작스레 불려 나온 남자친구는 상당히 불편해 하고 어색해 했습니다.

더불어 선배언니의 직설적인 발언은 연달아 남자친구의 어깨를 주눅들게 만들었습니다.

"결혼 준비 할 때 되지 않았나요? 취직은 아직인가요?"
"결혼 자금은 얼마 정도 생각하고 계신가요?"

선배 언니는 친동생과 같은 저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남자친구를 마치 부모님의 입장이 되어 평가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면접을 보고 있는 듯한 남자친구의 굳어져 있는 모습도, 저를 걱정하는 듯한 눈빛으로 이리저리 남자친구를 보고 있는 선배 언니의 모습도, 그 사이에 앉아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연애는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결혼은 아니라는 선배 언니의 말을 수없이 들어왔지만, 아직 전 어린가 봅니다. 스물일곱이라는 지금의 나이에도, 아직 결혼은 너무나도 먼 이야기이며 현실적으로 들려 오지 않습니다.

정말 가족 앞에서 인사를 드리게 될 때의 분위기는 어떨지 괜히 떨려 오기만 합니다.

연애, 그리고 결혼...

연애하다 자연스럽게 결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선배 언니와 함께 한 그 인사자리는 왠지 모르게 이상 속에서도 현실이 존재하는, 그렇게 결혼은 어려운 것이구나- 싶습니다.

사랑, 그 아름다운 한 단어가 연애를 거쳐 결혼으로 이어지기까지... 이상이 현실이 되기까지.
그 길은 너무나도 냉정하고 힘이 든가 봅니다.

사랑하는 남자친구의 마음에 상처가 생기지 않게, 잘 보듬어 주어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