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헤어져!” 한 때는 게임중독이었던 남자친구

지금은 더할 나위 없이 멋있고 근사한 남자친구이지만, 한 때는 심각하게 헤어짐을 되내이고 고민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2년 전 그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남자친구와 제 사이를 멀게 만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게임.

게임으로 인해 헤어짐을 결심했다는 주위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런 경우도 있구나' 라며 아주 먼 이야기처럼 여겼습니다. 하지만 연애 1년이 넘어서고, 2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야 알게 된 남자친구의 게임 중독. 정말 게임에 혼을 빼놓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게임에 푹 빠져 지내던 남자친구였습니다.

함께 만나서 시간을 보내면서도 수시로 시간을 확인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온라인 게임 상에서 만나는 게이머들과의 약속 시간으로 인해 조바심을 내며 안절부절 하는 것이더군요. 특정 한 게임에만 푹 빠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게임이 나올 때마다 그 게임을 꼭 해봐야 하고, 나중엔 데이트도 PC방에서 하기 일쑤였습니다.


처음엔 저도 게임을 좋아하는지라 함께 어울려 게임을 즐기기도 했지만 점차적으로 그 시간이 길어지고, 잦아 질수록 지쳐만 갔습니다. 게임으로 인해 헤어짐을 결심했던 친구들처럼, 저도 그러한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연애를 하면서 헤어지자는 말을 하는 건 아니라고 이야기 하던 주위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헤어지자는 말을 여러 번 하기도 했었습니다. 게임만 아니라면 정말 좋은 남자친구이지만 그 게임 때문에 남자친구를 잃어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눈물이 나기도 하더군요.

"도저히 못견디겠어. 헤어져!"

난 그가 게임을 하든, 게임을 하지 않든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적은 나이도 아니고 곧 서른을 앞둔 나이에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게임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저 또한 게임을 좋아하고 게임으로 인해 폐인생활까지 해 본 적이 있던 터라 그 중독성을 알기에 더욱 속상했습니다. 쉽게 빠져 나오기 힘들다는 것도 너무 잘 알기에.

헤어짐을 고할 때마다 그때뿐이었던 남자친구. 포탈사이트를 통해 나와 유사한 경우 어떻게 대처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심지어 지식인이며 네이트며 여기저기 검색해 보기도 했습니다만, 정말 게임에 푹 빠진 남자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헤어지세요- 라는 답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PC방을 찾을 때면 전 옆에서 별 의미 없는(마땅히 할 게 없었거든요) 웹 서핑을 하는가 하면 게임을 하는 남자친구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건네며 타이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남자친구의 시선은 여전히 모니터에 고정.

그러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블로그. 누군가의 추천도 아니고, 누군가의 강요도 아닌 그저 제 속을 털어 놓을 공간이 필요해서 '미니홈피'라는 공간 대신 택한 곳이 바로 '블로그'였습니다.

당시 미니홈피를 통해 이런 저런 사진과 일기를 쓰곤 했지만 '일촌'이라는 울타리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하나의 가식적인 공간이 되어 버린 듯한 기분이 들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동화 속 대나무 숲과 같은 공간으로 블로그를 찾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남자친구에게 화가 나면 그 억한 감정을 억누르며 블로그질을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그러면서 블로그의 재미를 알아 가다 보니 PC방에 먼저 가자고 남자친구에게 제안을 하기도 했고 남자친구가 옆에 있음에도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제가 블로깅에 빠져 있으니 뭘 하고 있기에 저리도 푹 빠져 있나 싶어 힐끗 거리며 보기도 하더군요.

솔직히 제가 이전과 달리 옆에 있는 남자친구는 보지도 않고 모니터만 응시하며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으니 뭐에 그렇게 빠져 있는지 궁금해 하며 흘깃거린다는 것 쯤은 알 수 있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옆에서 다가와 보려고 하면 냉큼 블로그 창을 닫아 버렸고, 고의로 보여주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정말 보여주면 안 되는 어떤 것이 있었기에 그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자극을 주기 위해 그렇게 행동 한 거죠.

본인이 게임을 하는 이유에 대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으로 합리화 하던 모습 조차 당시엔 너무나도 미웠습니다.

"너 나 몰래 뭐해?"
"뭐? 별 거 아니야."
"보여줘 봐."
"아니. 그냥 게임이랑 비슷한 거야."
"뭐가 비슷해? 말했잖아. 난 게임 하면서 돈 버는 거잖아."
"응~ 그래? 나도 이거 하면 게임으로 버는 돈 보다 더 벌 수 있어."
"거짓말"
"오빠도 빨리 게임 해. 캐릭 죽겠다. 그 캐릭 비싼 거잖아."

"아, 아, 어."

속에선 불이 난 것처럼 부글부글 거리고 속이 타 들어 갔지만 겉으로 전혀 내색하지 않으며 무덤덤하게 '당신이 뭘 하든 괜찮아요' 라는 자세로 일관하며 저녁을 먹으러 나가자는 남자친구의 말에도 그냥 PC방에서 컵라면 먹자며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급기야 번번히 제가 먼저 PC방에 가자고 하고선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 한번 하지 않고 블로깅에 빠져 있는 (아니, 빠져 있는 척 하는) 저를 보고선 "다음부턴 절대 PC방에 오지 말자!" 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리고. 듣고 싶었던 한마디.

"나 이제 게임 안 할거니까 너도 그거 하지마!"

바로 2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 백수이면서 게임에 푹 빠져 지내던 남자친구.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직장생활을 하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너무너무 보기 좋은데 말이죠.

요즘도 가끔 PC방에 가곤 합니다. 다만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중독 수준의 게임이 아닌 함께 할 수 있는 아케이드 게임을 1시간 정도의 시간으로 즐긴다는 점이죠.


블로그가 뭔지 몰랐던 남자친구. 처음엔 숨기기에 급급해 하고 뭔가 열심히 타이핑 하는 것 같아서 옆에서 몰래 채팅 하는 줄 알았다고 하네요. 주위에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게임 중독인 남자, 정말 최악인 남자다- 당장 헤어져라.' 하지만 번번히 헤어짐을 고하면서도 제 마음을 안타깝게 한 것은 그만큼 한번 뭔가에 몰입하면 깊게 빠지는 스타일이다 보니 그 집중력을 게임이 아닌 다른 분야로 조금만 고개를 돌리면 정말 멋진 남자가 될 것 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게임 중독. 누군가의 강요나 타이름보다는 본인 스스로가 그것을 그만 두어야겠다는 의지가 있을 때에만 그만 둘 수 있는 마약과도 같은 것. 지금은 게임이 아닌, 본인이 좋아하는 분야로 나서 일이 재미있다고 말하는 남자친구가 무척이나 든든해 보이는데 말이죠. 당시의 그러한 시기가 있었음을 주위 사람들은 알지를 못하니 '남자친구가 참 든든해 보인다. 멋있다' 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맞장구를 치면서도 '그런 시기를 잘 견뎌 냈기에 지금의 멋진 오빠가 있는 거야' 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 만약, 답이 없는 '게임 중독'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헤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남자친구는? 그리고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