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가 고마울 수 밖에 없는 이유

* 일기 형식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부터인지, 혹은 내 나이 어떤 시점을 지나면서부터인지.

다만, 분명한 것은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지어 '남자는 어떠하다…' '여자는 어떠하다…' 와 같은 말에 언제부턴가 더 이상 공감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꽤 분위기 있어 보이는 사진에 '여자는 말이야' 혹은 '남자는 다 그래' 와 같은 류의 그럴싸한 여자, 남자 운운하는 글을 보고 맞아, 맞아, 하며 끄덕이기도 하고 쫓아 다녔던 내가 말이다.  

'남자'가 문제가 아니다. '여자'가 문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문제일 뿐. 개개인의 문제일 뿐.

사랑에 대한 아름다움과 황홀함이 가득한 문구들을 쫓던 내가 20대가 되어 연애를 하게 되었을 때, 그 연애는 순탄치 않았다. 당시 연애를 하면서도 난 지금 당장 이 남자와 헤어지더라도 아쉬울 건 없다는 나름의 자만심을 가지고 연애를 했었는지도 모른다. 데이트를 하면서도 만나거나 연락을 함에 있어서도 늘 계산적이었다. 밀고 당기기랍시고, 상대가 밀면 난 더 거세게 밀며 나를 보호하기에 급급했다.

첫 연애를 실패한 후엔 친구들을 만날 때면 그 남자를 욕하기에 바빴다. "역시. 남자는 다 그래. 왜 그런지 몰라. 남자는 역시 못믿겠어!" 내가 만난 남자가 이 세상의 모든 남자를 대표하기라도 하는 듯, 남자는 다 그래… 라고.

하지만,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나서 나의 이 작고 짧은, 편협한 생각은 산산조각 나 버렸다.

분명 내가 경험하지 못한 다른 세상도 크게 존재하고 있고, 내가 만나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많이 있다.

그간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 마냥 작은 세상에서 혼자 괴로워하고 힘겨워 했는지 지금의 남자친구를 통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다. 여러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주위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남자' 이기 이전에 그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지극히 이기적이었던 나를 먼저 걱정하고 챙겨주는 남자친구를 통해 '배려'라는 것을 배우고, '사랑'이라는 것을 배웠다. 아니, 지금도 배우고 있다.

단순히 서로의 좋아하는 감정을 확인하고 채워 나가는 것이 연애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당신에게 연애가 뭡니까?'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답해 주고 싶다.
지금껏 내가 가진 하나의 눈으로 보던 세상. 이 하나의 눈으로 보지 못했던 세상까지 볼 수 있는 또 다른 하나의 더 큰 눈을 더 가지게 되는 것이 연애이고, 사랑이라고. 물론, 갖게 되는 다른 하나의 눈은 기존 내가 가지고 있던 나의 눈과 보는 시야나 높낮이가 다를 수 밖에 없다. 왜? 각자 살아오며 봐온 것이 다르고, 겪어온 것이 다르니 당연히 다를 수 밖에... 

다만, 그 눈높이와 시야를 잘 조절하고 맞춰 나가는 것이 나와 그가 할 일이다. 그럼 더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다. 희미했던 목표가 더 선명해 지고, 불투명했던 미래가 더 밝아 지는 듯 하다.
지극히 하나의 편견에 빠져 허덕이던 내가, 지극히 부정적이고 비관적이었던 내가, 한 사람이 보여준 진심어린 사랑 앞에서 변했다.

"남자는 말이야" "여자는 말이야" 운운했던 내가 이젠 더 이상 '남자 VS 여자'가 아닌, '그 남자(남자친구)와 그 여자(나)'를 말하고 있다.

내 사랑에게 감사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단순히 날 사랑해줘서? 아니.
내가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 줘서. 더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줘서 감사하다고...

고마워. 사랑해. 앞으로도 예쁘게 사랑하자.

지하철, 사람들이 날 보고 놀란 이유

전 지하철 앞에만 서면 한 때의 아찔한 기억이 제 눈 앞을 스쳐 지나갑니다. '누굴까? 누가 그랬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한 여름 무릎 길이 정도의 흰 면 바지를 입고 학교를 가던 중, 지하철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습니다. 정확히는 지하철 안이 아니라, 지하철 문에서 내리는 순간 말입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하철을 타고 학교로 가던 길, 제가 내려야 하는 정차역이 되어 문이 열리자 늘 그랬듯 휩쓸리는 사람들과 함께 우루루 내렸습니다.

"악!"

순간, 저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는 한 여자분.

그 여자분의 '악' 하는 소리에 제가 더 놀랐던 터라 '별 이상한 사람이네. 왜 날 보고 놀래는 거지?' 라며 되려 제가 그 여자분을 노려 봤습니다. 그리고 가던 길을 가려던 찰라,

"아…아가씨, 괜찮아?"
"네?"

갑자기 제 주위로 학생부터 아주머니, 아저씨까지 하나, 둘 씩 모여 들더군요.

"어머, 아가씨, 괜찮아?"
"어머, 저 사람 봐."
"악! 피… 아, 징그러."
"학생, 괜찮아요?"

뭔가 대단한 구경거리라도 발견한 것 마냥 저를 바라보는 사람들. 어느 순간, 모두가 저를 바라보며 수군거린다는 것을 알아 차렸을 때, 한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오셔서 티슈를 제게 내밀며 괜찮냐고 병원에 가야 되지 않느냐고 몇 번이나 되물으셨습니다.

제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붉은 피에 모두가 놀라 저를 바라본 것이더군요. 그제서야 '아… 아프다' 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입고 있던 바지가 면바지인데다 흰 바지이다 보니 피로 더 선명하고 붉게 물들어 멀리서 봐도 꽤나 섬뜩하게 보였을 것 같긴 합니다. 청바지나 검정 바지였다면 또 달랐겠죠?

평소 종이에 손이 베이기도 하고, 어딘가에 부딪혀 상처가 나곤 합니다만, 매번 그럴 때마다 그 순간엔 느끼지 못하다가 발견하거나 깨닫는 순간부터 늘 아픔이 느껴지는 듯 합니다. 신기하게도 말이죠.

사람들의 수군거림 속에 저도 모르게 주저 앉았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상처 때문에 출혈이 심해서 그런 건지, 그저 심리적인 영향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화장실에 가서 확인해 보니 상당히 예리한 것에 길게 베인 것 같더군요. 나중에서야 병원에 가서야 안 사실이지만 면도날과 같은 예리한 칼로 추측이 된다고 하더군요. 출혈이 심한 것에 비해 깊이가 깊지 않아 다행이라는 말씀과 함께, '누군가 고의적으로 한 것일 수도 있겠네요'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어떤 의도로 그러한 짓을 했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 그러한 짓을 했는지는 8년 정도가 지난 지금까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그 일을 당한 사람이 저 뿐만은 아니더군요.

학교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른 과에 한 학생도 저와 비슷하게 허벅지 쪽에 그런 상처를 입어 병원에 갔었다는 말을 하더군요. 제가 알고 있기론, 그 일이 있은 후, 학교 측에서 경찰에 신고를 하고 범인을 추적해 달라고 했다는데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네요.

여학생이 많이 오가는 여대 앞이다 보니 고의로 범행을 위해 그 지하철역 한 곳을 타겟 삼아 그런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당시 그 사건은 꽤나 섬뜩한 공포로 다가왔습니다.

그 상처가 없어지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는데, 다행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처가 많이 아물었고, 거의 표가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하철을 타고 내릴 때 사람들이 많으면 조금 떨어져서 내리거나 조금 떨어져서 타는 습관이 생겼네요. 우루루 내리거나 우루루 타는 상황에서 그런 일을 겪었기 때문이죠.  

세상에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무서운 사람도 많습니다. ㅠ_ㅠ

새삼스레 그 때의 기억이 떠올라 끄적여 봤습니다.

"넌 왜 그렇게 둔하냐? 아프지도 않았어?"
"그러게. 왜 몰랐을까? 사람들이 나 보고 놀라지 않았으면 나 계속 몰랐을지도 몰라."
"으이그, 이 둔팅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