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때문에 이혼을 참는다는 말, 자식에겐 피눈물

종종 비밀댓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려 주는 분들이 있는데요. 한번쯤 '이와 관련한 포스팅을 해야지' 하다가 오늘에야 끄적여 봅니다. 20대 후반. 이제 철부지 사춘기를 지나 어엿한 성인이 되었고 그간 짧게나마 살아오며 겪었던 이런 저런 시간들이 제겐 너무나도 큰 교훈을 주고 있어 그에 대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자식에게 부모의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마냥 친구들과 어울려 뛰놀던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부모님이라는 존재가 서로 등을 돌리고 남이 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갖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야 부모님 사이에 이혼 이야기가 오가자 그 때 비로소 '남과 남이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는 구나' 그리고 '결혼한 부부는 뒤돌아서면 다시 언제건 남과 남이 될 수 있는 사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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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세 살, 아버지가 저를 불러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성격 차로 이혼하게 되었다" 라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아마 당시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르셨을 겁니다. 두 사람이 이혼하는 이유, 성격 차라고 포장하셨지만 당시 여섯 살이었던 동생과 저는 그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는 걸요.

자식이 잠들었다고 생각했을 새벽 시각, 거기다 문이 굳게 잠겨 있으니 들리지 않을 거라 생각하셨는지 모르지만 두 분의 이런 저런 말다툼에 어린 동생과 저는 서로를 꼭 껴안고 귀 기울여 듣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방과 저희들의 방은 꽤 거리가 멀었고 푹 잠 들었을 시각임에도 어떻게 그 시각에 깨어 두 분이 다투는 것을 듣고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매번 두 분이 다투실 때마다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혼을 결정한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세상에 영원한 사랑 같은 것은 없다' '남자는 믿을 수 없다' 라는 단정적인 편견을 갖게 되었습니다. 뒤이어 자연스레 '결혼은 절대 하지 않겠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이전에도 포스팅 한 적 있지만 지금 남자친구를 만나기 전까지는 남자를 만남에 있어서 오로지 '돈' '조건'만 따졌습니다.

왜? 당장 부모님을 보더라도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며, 한 순간 쉽게 변하는 것이 사랑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말이죠. 그만큼 어린 시기에 부모님의 이혼은 큰 충격이었고 그 영향력은 무척이나 컸던 것 같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그 생각이 깨지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얼마나 편협한 생각인지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쉽게 지울 수 없었습니다.

자식 때문에 이혼을 참는다?

모두가 사랑을 할 땐 예쁜 사랑을 꿈꾸고 기대합니다. 모두가 결혼을 할 땐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며 합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마음 먹은 대로, 기대한 만큼 원만하게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냐 만은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막막한 현실 앞에 주저 앉곤 합니다.

저의 포스팅에 비밀댓글로 꽤 길게 쓰여진 한 사연이 너무나도 와 닿았습니다. 중학생인 한 여학생의 사연이었는데요. 밤마다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와서는 종종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고 욕을 하는데 그런 아버지가 정말 견디기 힘들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보다 이 학생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어머니의 모습이라고 하더군요.

아버지가 술에 취한 채, 밤 늦게 집으로 와서는 폭력을 행사하고 욕을 하는데도 그 마저 '너(자식)를 위해서 참는다'는 말로 포장을 하고, '딸이 커서 시집 잘 가는 걸 볼 때까지 이혼하지 않겠다'는 말로 자식을 핑계 삼아 이혼을 참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다 너희들 생각해서 참는 거야. 너희가 어려서 뭘 알겠니. 너희들 다 크고 나면 그 때 난 네 아버지랑 이혼 할 거다."

정말 자식을 생각해서 이혼하지 않을 생각이라면 그 말 자체를 사춘기인 어린 여학생에게 아예 내뱉지 말았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이혼을 생각 중인데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솔직하게 자식의 의견을 물어도 좋은데 말이죠.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제 스무 살이 된 아이도, 열 세 살의 아이도 마냥 어린 아이로만 보이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다 해 주기엔 철 없는 아이로만 보는지 모르겠지만 막상 그 나이의 아이들도 자기 나름의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상황 이해나 판단은 할 수 있습니다.

자식의 입장을 한번쯤 헤아려 주세요

자식의 입장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절대 부모가 자식 앞에서 '너의 아버지는 이런 이런 점이 못났다' 혹은 '너의 어머니는 왜 저러느냐' 와 같은 말은 하지 못할 겁니다. 당장 결혼한 부부야 뒤돌아서면 언제건 남이 될 수 있는 사이일지 모르나, 자식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등을 돌린다고 하여 등을 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평생 모셔야 할 세상에 단 한 분 뿐인 어머니, 아버지이니 말입니다.

부모가 사랑해야 할 자식이기 이전에 자식들 또한 하나의 인격을 가지고 있는 인격체이며 존중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운다면 한번쯤 자식의 입장을 헤아려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종종 비밀 댓글로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들다는 사연도 보고, 부모님의 다툼으로 학업에 전념하기 힘들다는 사연을 봅니다.  전 자식의 입장에서 아버지의 인생과 어머니의 인생을 각기 다르게 지켜 보았습니다. 어찌 보면 사춘기에 부모님의 이혼을 핑계 삼아 충분히 엇나가 살 수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엇나갈 수 있었음에도 엇나가지 않은 것은 두 분이 각기 선택한 인생의 길이 있듯이 저 또한 제 인생의 길은 선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혹, 가정사로 인해 힘들다고 이야기 하거나, 부모님의 이혼으로 힘들다고 이야기 하는 분들에게 제가 이야기 하고픈 것은 부모님도 한 사람의 인격체이니 그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그 길을 새롭게 개척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진심으로...
 
부모가 자식의 입장을 헤아리고, 자식이 부모의 입장을 헤아리려 노력한다면 절대 "내가 자식 때문에..." 혹은 "내가 부모님 때문에..." 라는 이유로 자신의 인생을 탓하는 일은 없을 듯 한데 말이죠.

남자친구의 부모님에게 너무나도 감사한 이유

이전 포스팅(사랑 없어도 돈 많은 남자라면 OK?/부모님의 이혼이 내게 남긴 과제)을 통해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부모님은 제가 어린 나이에 이혼하셨습니다.

처음엔 어린 나이었던 터라 적지 않은 충격이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저의 부모님이기 이전에 어머니건, 아버지건 각자의 소중한 삶이 있는 한 인격체로 바라보고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 하려 노력합니다.

물론, 부모님을 한 집에 함께 모시고 효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면 종종 너무나도 목이 메이지만 말이죠. ㅠ_ㅠ (엉엉-)

남자친구와 연애 한지 2년이 조금 넘어 가면서 '이 남자, 정말 괜찮은 남자다!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 꿈꾸고 싶은 남자다!' 라는 확신이 들면서 조금씩 자라온 집안 환경이나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야기를 꺼내면 자칫 우울해 질 수 있을 것 같아 꺼내길 꺼리기도 했지만 언젠간 함께 나눠야 할 이야기일 것 같아서 그리고 사랑 하나만으로 꿈꿀 수 없는 것이 결혼이기도 했기에 현실적인 서로의 사정은 알아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서 말이죠.

하지만, 남자친구가 제 이야기를 남자친구의 부모님에게도 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물론, 종종 전화를 걸면 "지금 설거지 중이니까 설거지 끝나고 나서 바로 전화할게." 혹은 "전화 못 받아서 미안해. 아버지 다리 주물러 드리고 있었어." 와 같은 말을 듣곤 했기에 평소 부모님과 이런 저런 대화도 많이 하고 교류가 많구나- 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여자친구가 자라온 집안 사정까지 부모님께 먼저 이야기 할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거든요.

"음, 싫어하시지 않아?"
"아니. 왜 싫어해? 엄청 기특해 하셔."
"응? 뭐가 기특해?"
"어떻게 보면 삐뚤어 질 수도 있는 시기이기도 했던 거잖아. 그런데도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스스로 장학금 받으며 지방에서 서울에 혼자 올라와 대학생활 한 것도 그렇고 아르바이트 하면서 생활비 마련도 스스로 하고. 지금은 집안에서 맏이로 직장생활도 잘하고 있으니까. 엄마가 나한테 항상 그래. 넌 뭐냐고. 여자친구 보기 창피하지 않냐고. 열심히 하라고."
"정말? 너무 감사하다. 좋게 봐주시니까."
"너 이야기 하다 보면 항상 난 욕먹어. 뭐, 그래도 나도 열심히 해야지!"

나날이 이혼율은 높아가는 현실에 비해 여전히 한국에서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에 대한 시각은 매섭습니다. 실제 그런 안정적이지 못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이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에 비해 바르게 자라지 않거나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다는 기사 또한 접하곤 합니다. 그런 기사를 접할 때면 저도 어찌 보면 그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 중의 한 사람이라 볼 수 있는데도 그런 기사를 보면 일부 동조하게 됩니다.
ㅠ_ㅠ 

이혼가정의 청소년들은 심한 불안, 낮은 자존감, 부적절한 친구관계 등으로 범죄에 노출될 확률이 크고 행동장애를 불러일으킬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제게 있어 너무나도 멋지고 자랑스러운 남자친구이기도 하지만 남자친구는 제 남자친구이기 이전에 평범한 집에서 어느 자식 부럽지 않게 잘 키운 하나 밖에 없는 자랑스러운 아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아들을 장가 보내야 되는데 결혼할 여자가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인데다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장녀라는 사실을 알면 멈칫거리게 되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혼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니 그에 따른 시각 또한 평이하다면 평이하고 부정적이라면 부정적이지, 절대 긍정적인 시각으로 봐 주진 않을 것 같은데 말이죠. 실제 이혼을 염두 하고 있던 다수의 어른들도 자식 생각해서 이혼하지 않고 있다가 아이들이 다 커서 장가 보내고, 시집 보내고 나면 그 때 도장 찍을 거라는 말도 나오곤 하니 말입니다.

그런데도 남자친구와 결혼하면 곧 제 시부모님이 되실 분이 저를 두고 '정말 대견하다, 기특하다'고 하시니 절로 감사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게 되더군요. 전 '시부모님이 날 싫어하시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크게 자리잡고 있었는데 말이죠.

연애한 지 3년 전쯤부터 남자친구가 먼저 '집안에 이런 이런 일이 있었어-' 혹은 '고모네 딸이 이번 주에 결혼하거든-' 과 같은 소식을 종종 전해 오곤 합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데이트를 하고 있었던 재미난 에피소드나 '여자친구가 이번에 진급했대-' 와 같은 이야기도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먼저 전합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져주는 게 이기는 거다.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 남자가 있는 거다. 많이 아껴줘라. 평생 반려자라고 생각했으면 절대 울리지 마라." 와 같은 좋은(?) 말씀을 평소 남자친구에게 자주 해 주는 남자친구의 아버지.

"넌 남자가 되가지고 여자친구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여자친구도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잘하는데 여자친구 좀 본받아서 열심히 해라!" 현실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말씀을 직설적으로 내뱉으시는 남자친구의 어머니.

남자친구 부모님이 하는 말씀 속에 있는 제 모습은 '하루하루 부지런하게 열심히 사는 멋진 아이' 라는 느낌이 팍팍 듭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정말 대단한 여자친구를 둔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말이죠.

남자친구가 평소 배려심이 많고 너그러운데 아마도 이런 멋진 부모님 아래에서 자라 그런가 봅니다. ^^ 결혼하고 후회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시어머니 때문에 마음 고생 심하다는 말을 워낙 많이 들어서인지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남자친구와 결혼을 생각하며 이미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겁을 잔뜩 먹고 있었던 제 모습이 새삼 부끄러워졌습니다.

이런 멋진 남자친구를 낳아주신 남자친구 부모님에게 감사하고 또 너그러운 마음으로 좋게 봐주셔서 감사한 마음만 한 가득 생기더군요.

정말 멋진 부모님 아래 너무 멋지게 큰 남자친구가 너무 좋습니다. 흐뭇-

+덧) 드라마나 인터넷을 통해 접했던 이미지를 토대로 제 멋대로 상상하며 그린 시어머니, 시아버니의 이미지.

알고 보니 그 이미지와 너무 상반된 너무나도 너그러운 모습이었던 남자친구의 부모님.

어느 순간 제 마음속에는 '시부모님도 친부모님처럼 대하고 정말 잘 해 드려야지!' 라는 마음이 크게 자리잡았습니다. 후에 혹, 제가 아들을 낳아 예비 시어머니가 된다면 저 또한 남자친구의 부모님처럼 제 자식보다 며느리가 될 여자아이에게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이 내게 남긴 과제

"제발 이혼하지 마세요. 제발."

한 온라인 포탈사이트에 펑펑 울면서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이제 막 중학생이 되었던 시점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혼하면 안될 것 같지만, 이런 아내와 더 이상 살 수 없을 듯 합니다. 각자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대충 이러한 내용이었는데요. 꽤나 긴 내용이었는데 그런 류의 글을 검색해서 읽고는 일일이 이혼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댓글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런 류의 글을 검색하게 된 계기는 제 나이 열 세 살이라는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고 헤어질 당시, 저를 앉혀 놓고 말씀하셨던 "아직 네가 어려서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어떻게 받아 들일지 걱정이지만 엄마와 아빠는 성격이 맞지 않아 헤어지려 한다" 라는 이유가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아서이기도 했습니다. 어린 마음에, 좀처럼 납득되지 않는 그 이유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했던 것 같습니다.

어린 마음에 그 상처가 너무 커서 한참 동안을 끙끙거리며 아파했습니다.

'왜 당신들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자식의 입장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나요? 당장 당신들의 아픔을 벗어나고자 평생 지울 수 없는 아픔을 자식에게 떠넘기려는 건가요?' 마음 속으로 여러 번 외치고 외치며 그저 끔찍한 악몽이길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어서 이 악몽에서 벗어나길 기도했습니다.

후에 아버지의 바람이 부모님의 헤어짐에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명절을 맞아 일가 친척들이 모두 모여 있는 자리에서 "남자친구 생기지 않았어? 남자 많이 만나보고 결혼해야지." 라고 묻는 어른의 질문에 큰 소리로 비아냥 거리며 이야기 했습니다. 정말 무례하게 말입니다.

"남자친구는 무슨. 내가 결혼하는지 두고 보세요. 어차피 이혼할거 죽어도 결혼 따위 안 할 테니까!"

지금은 성인이 되어 몸이 커진 만큼 머리도 커졌습니다. 하지만 열 네살 당시엔 이성적인 판단보다 감정이 앞서 있었고 헤어지는 부모님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왜 자식을 두고 이혼하냐며 악을 썼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을 그저 각자의 삶을 살아가길 희망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로 받아 들인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세상엔 거짓사랑만 존재한다던 저의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천일을 얼마 앞둔 시점, 다시 한번 더 선전포고('이래도 나 만날래?')라도 하듯 제가 자라온 과정을 모두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바람으로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과 아버지가 재혼한 사실, 그리고 그 재혼한 가정에 새 어머니와 함께 살다 뜻밖의 사고로 새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까지. 그리고 지금은 친 어머니를 모시고 내가 가장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까지. 이런 구구절절한 사연을 모두 읊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예상했던 반응과 달리 천일이 되던 날, 꽃바구니와 함께 '민감한 부분의 이야기일지라도 어렵고 힘든 이야기일지라도 함께 나누고 그 문제를 함께 풀어나가자며 고맙다'고 보내온 남자친구의 카드를 보고선 펑펑 울었습니다. 가족 마저도 서로를 배신하는데 피 하나 섞이지 않은 남이 어떻게 사랑을 운운할 수 있냐던 저의 생각을 남자친구는 완전히 뒤엎어 버렸습니다. 정확히 그때부터 사랑에 대한 '악한' 편견이 깨진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블로그를 개설하게 된 계기가 바로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나서 이전과는 다른 이 행복한 감정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였습니다. 부정적이기만 했던 시선을 긍정적으로 바꿔 주었고, 그로 인해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듯 합니다.

한 때는 자식을 두고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미워했던 아버지, 같은 여자로서 안타깝기만 했던 어머니, 이제 더 이상 한 자리에 모셔두고 부모님이라 부를 수 없다는 점이 여전히 속상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 이 멋진 사랑을 할 수 있게 해주셨으니 말이죠.

부모님의 이혼이 제게 남긴 과제는 '이래도 사랑을 믿겠느냐?' 입니다.
그 과제의 대답으로 세상엔 진실한 사랑은 없다고 외쳤던 제가 지금은 진실한 사랑이 있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사랑에 아파서 울기도 하고, 주저 앉기도 하고 하겠지만 분명 진실한 사랑은 있다고 말입니다.

+ 덧) 오늘은 오랜만에 굉장히 가라앉는 포스팅을 한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솔직한 이야기도 해 보고 싶었던터라 끄적여 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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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감사합니다.

 

드라마가 현실이 되었던, 절대 잊을 수 없는 그 날

제 자신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감성적이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있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달려라 하니' 만화를 보며 함께 울었던 기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아무래도 저의 이런 풍부한 감성은 아버지를 닮은 걸까요? 드라마나 영화를 보게 되면 슬픈 멜로물을 극히 꺼려 합니다. 이유가 그런 것이 우느라 바쁘기 때문이죠. =.=


모두가 무섭게 본 영화 '장화홍련' 또한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나오면서 '엉엉' 우는 제게 그렇게 무서웠냐며 묻는 친구를 보며 뭐라 대답해야 할 지 모르겠더군요.

장화, 홍련
감독 김지운 (2003 / 한국)
출연 염정아, 김갑수, 임수정, 문근영
상세보기

자매 사이의 뭔가 미묘한 아픔이 제게 전이되었다고나 할까요? 지나치게 감수성이 짙은 듯 하여 조금이라도 '울 것 같은데-' 싶으면 눈을 가려 버립니다. 잠시 장화홍련의 이야기를 빗대어 저의 이야기를 하자면, 당시 새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던 터라 영화가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 분이시지만, 당시엔 제가 무척이나 증오(증오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그토록 싫어했습니다)했던 분이시기도 하죠. 제 생애 최저의 몸무게를 기록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감사한 분이기도 하구요. 중학생 시절, 도시락을 가져가야 하는데 항상 멸치와 김치만을 싸주시고 어린 동생과 제가 학교에서 마치고 돌아와 집으로 가려고 하면 항상 밤 늦은 시각까지 공장일을 시키시곤 했죠. 그리곤 시험기간이라 학교를 마치고 공장일을 하지 않고 집으로 가려 하면 "운동도 할 겸 걸어서 집으로 가라" 라고 하시던 그 분이 그야말로 신데렐라 동화 속 등장하는 계모가 아닌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친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것부터가 저와 동생에겐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Walt Disney Studios D23 Expo - Day 1

저주라는 표현이 맞을 만큼, 그 분을 미워하고 또 미워했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를 통해 들은 "돌아가셨다" 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죠. 정말 드라마나 영화 줄거리처럼 갑작스레 돌아가셨습니다. 그것도 한낮에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로 말이죠.

Mother of Alex Dimitriades Buried In Sydney

새어머니는 이미 아버지와 재혼하기 전, 전 남편과 사별하였는데 그 사이에 아들이 있었죠. 저보다 4살 위인. 할머니 손에 커 온 그 아들을 장례식장에서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혀 예상 밖의 어머니의 죽음이었으니 황당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을지도 모릅니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와 제 동생 그리고 저를 향해 쏘아보는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그는 '너희들 때문이야' 라고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는 듯 했습니다.

정작 동생과 저는 '저 분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많이 희생 했는데…' 라고 외치고 있었는데 말이죠. 마지막 순간까지 그 아들과 전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절대 이해할 수 없던 입장 차이. 그리고 이젠 돌아가신 새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도 한 때 그토록 미워했던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묻어 나오지 않습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요?

South Africa, Johannesburg: Float with you
South Africa, Johannesburg: Float with you by kool_skatkat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먼저 이 세상을 떠난 그 분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그 분이 떠나고 나니 알겠습니다. 미워하고 증오하는 게 얼마나 아무 의미 없는 것인지. 막상 그토록 증오하던 사람이 이 세상에 없고 나니, 왜 그토록 미워했을까? 어차피 한번 살다 갈 인생. 이라는 생각마저 들더군요. 마지막 일거라 생각지 못하고 떠난 그 분 또한 저 못지 않은 후회를 하진 않을까- 새삼 궁금해 집니다.

왕성한 사춘기 시절이었던10대, 그리고 20대 초반까지 일어났던 이 드라마 같은 일은 제 자신을 더 강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고 (웬만큼 힘든 일이 있어도 이 당시의 일만큼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충분히 견뎌냅니다) 제 자신과 가족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듯 합니다.

서로의 성격 차로 인해 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누구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이 세상을 떠나신 새 어머니. 어린 나이에 인생을 다 안다고 감히 말 할 순 없지만, 적어도 인생은 미워하는 마음 보다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안고 살아가기에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듭니다.

더불어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참고 견뎌내면 또 다른 역전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것이라는 것을 압니다. 드라마처럼 펼쳐졌던 한 때의 그 일들은 지금은 하나의 추억으로 담아두며 소소한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너무 힘들어요' '학교 생활하기 너무 힘들어요' '취직이 안되니 걱정이야' '세상에 나만 홀로 버려진 것 같아'

지금은 당장 힘들지라도 괜찮아요. 또 다른 역전의 시나리오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죠. ^ㅡ^

 

+덧붙임)

지금은 웃으며 이야기 할 수 있는 한 때의 이야기. 조금이나마 지금 힘들어 하는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보물공개]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그저 주저 앉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런 때 말이죠. 저 또한 !’ 하고 놀랄만한, 그러한 일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이 한 면에 소개 하기엔 그 양이 너무 많으니 짧게 토막 내어 소개 할게요.

열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은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들었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힘들다, 죽고 싶다를 연발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너가 정말 그랬냐고 되물을지도 모르지요.

judge me now,   #2 in explore
judge me now, #2 in explore by ashley ros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양육권 판결에 따라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과 저는 당시 생활 여력이 더 높았던 아버지를 따라 나서야 했습니다.
새 집, 새 책상, 새 침대모든 것이 낯선 와중에 만난 첫 날부터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는 새 엄마까지. 드라마 속, 만화 속 계모를 제대로 체감하였습니다.

너무나도 큰 아파트, 좋은 컴퓨터, 새 책상, 새 침대, 처음엔 꿈만 같았던 그 상황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질 없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 어린 나이에 다시 고민에 빠졌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다 꺼내려면 너무 길어지니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죠.

End of summer / Fin del verano
End of summer / Fin del verano by Claudio.A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그러한 새로운 환경과 새 엄마의 구박 속에 견디다 못해 2년 여 정도 버티다 곧바로 홀로 힘들게 생활하고 계셨던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양육권이니 그러한 법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아버지와 새 엄마에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당시 고3.

my desk corner 2
my desk corner 2 by Laurie :: Liquid Pap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에 심적인 불안감과 부담감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단칸방에서 힘겹게 공부하며,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밖으로 나가야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제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동생과 어머니가 계셨기에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공장을 다니며 힘겹게 돈을 모아 생계비며, 집 월세며, 동생과 저의 학비 부담까지. 3이었던 터라 교재비도 상당했죠. 단순히 큰 딸, 장녀로서가 아닌 생계를 책임지고 한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더욱 커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공장일을 하시다가 몸이 많이 나빠지셔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학업에도 신경 써야 했지만 생활비와 학비에 대한 부담감에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착하고 예쁜 딸이기 보다는 강하고 든든한 아들로 보이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9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한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 당시의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채찍질 하기 위해 제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있죠.

바로 2002학년도 당시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표와 수능 전 날, 저에게 건네주었던 동생의 편지입니다.



지금도 이 껌이 나오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당시 열 세 살이었던 어린 동생은 본인이 먹고 싶었을 텐데 꾹 참고 아껴서 저에게 건네준 풍선껌인 듯 합니다.



제 지금 나이 스물일곱.

제 자신에게 이야기 하곤 합니다. “참 잘 컸다- 수고했어-“라고 말이죠.

비록 화목한 가정 속에서 때론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가족 여행을 가고 싶은, 그런 마음도 컸었고 난 왜 그런 평범한 가정 속에서 자라나지 못했을까, 라는 현 상황을 낙담해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악물고 버텼었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공부라는 것과 수능을 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어른이 되면 어머니께도, 동생에게도 보다 떳떳한 딸이, 언니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의 결과는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특히 나와 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 자칫 잘못된 길을 선택하려는 후배나 어린 동생들이 있다면 붙잡아 주고 싶어요. 자신을 믿고 노력하면 절대 그 노력은 너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서울에 위치한 4년제 대학교에 합격하여 지방에서 서울로 홀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지방에 있는 동생과 어머니를 위해 틈틈이 아르바이트, 과외, 교수님을 도와 프로젝트를 하는 등 여러 사회생활을 겸하며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졸업 하기 전에 운 좋게 바로 취직하여 지금은 동생과 어머니도 서울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 보물입니다.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이를 악물고 버티게 해 준 동생의 편지와 당시 수험표를 작성하며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는 마음이 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그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저의 보물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꺼내서 보곤 합니다.

일찍 어른이 된 만큼, 분명 보다 큰 기회가, 큰 행복이 찾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