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자가 내 팔을 꽉 잡은 이유

낯선 여자가 내 팔을 꽉 잡은 이유

설 연휴, 집으로 돌아가는 길. 제 두 손엔 사과 박스가 안겨지다시피 들려 있었습니다. 느낌으론 7~8kg이었는데, 실제 무게는 어느 정도였는지 모르겠네요. 사실, 전 힘이 매우 센 편입니다. 사과 박스 하나쯤이야 힘든 내색 없이 잘 듭니다.

 

 

다만, 유일하게 힘을 못 쓰는 때가 있는데, 바로 남자친구 앞에서죠.

 

평소 힘을 잘 쓰다가도 남자친구 앞에서는 힘을 못씁니다. 네. 정말 힘이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름 여우짓을 하느라 남자친구 앞에선 유일하게 연약한 척, 여자인 척(응?) 합니다.

왕자님

아하하.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오늘도 남자친구 앞에선 연약한 척 쇼를 하겠지요. (남자친구도 힘센 거 알면서 눈감아 주는 것 같기도…) 헙;

초콜릿주세요

뭐 구구절절 이야기가 길었지만. 각설하고.

 

저는 운전면허가 아직 없습니다. -_-; 여태까지 뭘 했는지… 그래서 올해 목표는 운전면허 따기! 사과 박스를 손에 들고 버스에 오르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엔 버스 바닥에 내려 놓아 힘들지 않았지만, 내릴 때가 되어 부저를 누르고 다시 힘겹게 사과 박스를 집어 들었습니다.

 

 

익숙한 부저음.

 

"삐-!"

 

버스가 제가 내려야 할 정류소에 정차하면서 버스가 '꿀렁' 였는데, 그 때 잠깐 사과 박스를 들고 있던 제 몸도 휘청거렸습니다. 그런데 그 찰라!

 

멀찌감치 서 있던 여고생이 저보다 먼저 "어머!" 라는 외마디를 지르며 제 옆으로 다가와 제 팔 한쪽을 꽉 감아 잡더군요.

 

하악

 

두 손엔 사과 박스가 안겨 있다시피 들려 있고 버스에서 내려야 되고… 너무 경황이 없어서 일단 버스에서 부랴부랴 내렸는데요.

 

내리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여고생에게 너무 고맙더라고요. 손잡이를 잡을 손이 없던 저를 보고 혹여 넘어질까 봐 걱정되어 달려와 제 팔을 잡아 주었나 봅니다.

 

길을 가다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어르신들을 보고도 모르는 척 눈 감는 경우도 많고 충분히 도와줄 수 있는 상황에서 조차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지나치곤 합니다. 자칫 도와줬다가 '감사합니다' 인사는커녕 '왜 내 몸에 손을 대는 거야?' 라며 욕 먹는 상황도 있으니 말입니다. 만약, 입장이 바뀐 상황이었다면. 전 과연 도움의 손길을 건넸을까요? 모르는 사람인데, 저 사람이 넘어지던 말던 무신경하게 넘기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아, 잘생긴 남동생 하나 있었으면 저런 여고생 하나 소개시켜 주는 건데… 하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예쁘고 멋있었던 그 여고생. 같은 여자지만 그녀의 고운 마음에 한 눈에 뿅 반했습니다. 제가 남자였다면 정말 첫 눈에 뿅 반했을지도... 저도 그런 심성이 고운 여자가 되고 싶어요. (뭐 결론이 이래…)  -.-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여자, 도와줘? 말아?

어제 늦은 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자우림의 무대가 이어지고 있어 어쩜 저렇게 김윤아씨는 한결같을까- 라며 감탄을 하고 있을 때쯤, 동생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깜짝 놀랬었다며 투덜거리더군요.  

"무슨 일이야?"
"집 바로 앞 코너 주차된 차 사이에 왠 여자가 쓰러져 있는거지"
"근데?"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쓰러져 있으니 깜짝 놀랬어. 도와주려고 보니까 술취해서 쓰러져 있는 것 같던데."
"깨웠어?"
"깨웠는데, 안일어나."
"그냥 그렇게 온거야?"
"무서워서 그냥 왔는데, 지금 같이 가서 깨울래?"
"보자 마자 그냥 바로 112에 신고라도 하지 그랬냐. 성폭행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구"


그렇게 동생과 함께 집 밖으로 나와 봤습니다. 밤 12시가 한참 지난 시각.  

정말 골목이 꺾이는 지점에서 주차된 차 사이로 여자의 다리가 보이더군요. 동생이 얼마나 놀랬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Here is the dark red verniz
Here is the dark red verniz by Princess Cy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깨워서 집으로 어떻게 안내해야 하는걸까, 고민하며 다가서는 순간.
덩치가 상당히 큰 남자 두 분이 그 여자 옆에 서 있더군요. 차에 가려져서 다가가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동생에게 여자가 혼자 쓰러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분명 그 남자 두 사람은 그 여자를 아는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이지 않고 다가갔습니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요. 그럼 그 쪽은 아는 사람이에요?"
"..."


건장한 남자 두 명, 그리고 이쪽엔 어린 여동생과 나. 좀처럼 겁을 먹지 않는데도 괜히 겁이 나더군요.

'분명 저 두 남자가 이 여자분을 알 리가 없지.'

그 때, 여자분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인상적인 첫 마디를 내뱉으셨습니다.


"싸우지 마세요. 저 때문에. 괜히."

지금 이 상황이 싸우는 것으로 보이는 건가? 술에 많이 취한건가?

그러고선 주차되어 있던 차에 몸을 살짝 기대는 것 같았으나, 이내 두 남자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남자분은 여자분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여자분은 태연스레 부축해 달라며 그렇게 기댔습니다.

분명 여자분의 판단력이 흐려져서 남자에게 기대는 것일 거란 생각에 여자분에게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자분은 저의 질문에 짧게 대답한 뒤, 남자분에게 도움을 청하더군요.


"괜찮으세요? 집에 찾아가실 수 있으세요? 집이 어디세요?"
"아...네.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

 ...

"저 좀 도와주실래요?"

"아, 저요? 네. 가시죠."


저 여자분이 술이 취해서 제 정신이 아니어서 저러는 건지, 아님 원래 저런 여자인건가. 오히려 도움을 주기 위해 온 동생과 제 입장이 어색해 지더군요.

그렇게 남자 두 사람과 함께 여자분은 비틀거리며 등을 돌렸습니다.
왠지 모를 두 남자의 약간의 건들거리는 웃음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길에서 저런 여자 보거든, 망설이지 말고 그냥 112에 신고해."

동생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 뿐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도록 찝찝한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습니다.

그 여자분은 술에 취해서 판단력이 흐려져서 남자분에게 도움을 청한건가.
낯선 여자보다는 낯선 남자가 더 믿음직스럽다는건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내가 괜히 멀쩡히 도움을 주려던 두 남자를 너무 나쁜 시각으로 바라 본 건가.
자제력을 잃을 만큼, 그렇게 길에 쓰러져 있을만큼 왜 술을 마신거지?
내가 너무 보수적인가. 등등.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무사히 집에 잘 들어갔는지 그 여자분이 궁금해 지네요.
 
남자친구에게 이 일을 이야기 하자, 가급적이면 그런 일에 나서지 말라고. 
오히려 그렇게 술에 취해 정신 못차리고 길에서 쓰러져 있는 여자가 더 잘못한 것 아니냐고 되묻네요. 

아, 좀처럼 이 찝찝한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네요.

덧붙임. 
내일 토익 시험 망치면 그건 다 그 여자 때문이야! (라는 핑계를 대고 싶습니다) 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