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선껌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동생의 미소

요즘 가족이나 사랑을 주제로 한 광고가 많이 보이는 듯 합니다. 가족을 주제로 한 AIA 광고를 보고선 아련한 한 때의 추억이 떠올라 저도 끄적여 봅니다.

늘 남자친구와의 사랑을 다루다 동생을 향한 제 마음을 드러내려니 어색하기도, 민망하기도 합니다. 하핫. ^^; 

제겐 저보다 여섯 살이 어린 여동생이 있습니다. 이제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취직 준비를 하느라 고민이 많은 동생의 모습을 보면 한 때의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답니다.

여섯 살이 되던 해, 귀여운 동생이 태어나다

제가 여섯 살이 되던 해, 어머니가 한동안 집에 오시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는 어디갔어요? 엄마는 왜 안와요?"  라는 질문을 아버지께 정말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 데리고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라는 아버지의 말에 그저 "빨리 다녀오세요" 라는 말을 건네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동생에 대한 개념이 정확하게 없던 때라 그저 동생 데리고 올 테니까- 라는 말이 생소하기만 했습니다. 집 문이 열리고 제 눈에 들어온 것은 어머니 품에 안겨 있는 동생이기보다는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의 모습이 반가워 자꾸 파고들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레 동생이라는 존재를 인지했던 것 같습니다.
툭하면 엉엉 울어대는 모습이 너무나도 미울 때가 많았지만 왠지 모르게 응얼 거리며 이야기 하는 동생과 전 제법 대화가 잘 통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동생이 너무 너무 귀여워서 손을 꽉! 잡곤 했는데, 정말 으스러 질 정도로 말이죠. 전 그게 나름의 애정표현이었는데 동생은 그럴 때마다 손이 아프다고 징징 거렸는데 전 또 왜 그렇게 꼭 안아주고 손을 꽉 잡으며 그것이 제 나름의 애정표현이라 생각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요즘에도 그 습관은 없어지지 않은 것 같아요. ^^; 
여섯살이라는 적지 않은 차이가 나다 보니, 전 이미 훌쩍 커 있고, 아직 동생은 아장 아장 걸음을 떼고 있으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동생과 함께 자려고 하는 저를 말리기에 바빴습니다. 전 꼭 동생과 함께 자고 싶다고 투정 부렸죠. 늘 방에서 혼자 뒤척이며 잠들곤 했는데 동생이 생기고 나서는 늘 동생을 먼저 챙겼고 동생과 함께 잠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익숙하게 동생이 옆에 없으면 잠들지 못했답니다. 그만큼 제게 귀여운 동생이 생겼다는 것이 너무나도 큰 기쁨이었습니다.

동생에게 한없이 미안하고 고마운 이유

동생이 유치원을 졸업하던 날, 아버지가 사업으로 운영하고 계시던 공장에서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어머니의 약지가 절단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던터라 아버지도 어머니를 부축하여 병원으로 향했고 바로 접합 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급박한 상황이었던터라 안타깝게도 동생의 유치원 졸업식엔 가족 어느 누구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전 당시, 초등학생이었으니 그런 상황도 전혀 모른 채, 학교에 가 있었겠죠.
 
그리고 동생의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식 어느 사진에도 화기애애한 가족의 모습은 없습니다. 동생이 일곱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헤어지셨으니 말이죠.  

"언니야 주려고 가져왔다"

일곱살 밖에 되지 않은 어린 동생에게 부모님의 헤어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는 제게 친구에게 받은 껌인데 하나 밖에 없다며 언니에게 주려고 가져왔다며 작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미는 동생이 그렇게나 안타깝고 미안하고, 고마울 수가 없더군요.

"언니야, 이거 먹고 힘내라"

요즘에도 이 풍선껌이 판매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전 풍선껌을 좋아하지 않는데 동생은 제가 풍선껌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제가 대학생활로 자취를 하면서 떨어져 있을 때에도 중학생이 된 동생은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저를 걱정하며 종종 편지에 풍선껌을 넣어 보내곤 하더군요. 

동생이 보내온 편지에 쓰여진 "나도 언니처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라는 편지의 글귀는 조금씩 나태해지던 저를 꽉 붙잡아 주더군요. 동생에게 창피하지 않게 열심히 해야 겠다- 라는 생각에서 말이죠. 그렇게 제게 동생은 가족이자 친구였고, 친구이자 든든한 응원자였습니다. 

그렇게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이 때론 언니처럼 저를 먼저 챙겨주고 걱정해 주는 모습에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었답니다. 아직까지도 제 다이어리엔 그 흔적이 고스란히 그 때의 기억과 함께 잘 남겨져 있답니다.  
 

결혼하면 아들 딸 구별 말고 꼭 둘 이상은 낳자고 우기는 남자친구

남자친구가 건넨 풍선껌을 받아 들고선, 풍선껌을 보고 생각난 동생의 에피소드를 남자친구에게 이야기 해 줬더니 동생이 있는 제가 부럽다고 이야기 하더군요.

2003년 4월의 어느 날, 받은 풍선껌


"그래. 그러니까 우리, 결혼하면 아들 딸 구별 말고 꼭 둘 이상은 낳자!"
"엥?"
"얼마나 외로운지 알아? 넌 동생이 있으니 그 외로움을 모를거야!"

동생 이야기를 듣던 남자친구의 "둘 이상은 꼭 낳자"는 말에 한참을 웃었습니다.

보통 가족이라고 하면 부모님을 먼저 떠올리게 되고 어버이날이 따로 정해져 있을 정도로 부모님에 대한 마음은 각별하지만 의외로 가장 가까운 형제, 자매 사이에 그러한 마음을 나눌 기회는 없는 것 같아요. (특히, 남매는 더 힘든 것 같아요;)

동생은 알까요? 언니가 얼마나 동생을 아끼고 사랑하는지 말이죠. :)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이런 저런 소식을 듣게 됩니다. "정말? 진짜? 헉! 설마!" 하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되는 상황부터 시작하여 "대단하다! 멋져!" 라고 절로 박수 치게 되는 상황까지 말이죠.

저처럼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친구들, 그리고 병원에서 연구직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친구들, 교사, 공무원인 친구들, 국회의원 비서로 있는 친구에 이르기까지… 친구들은 각자 선택한 길에 서서 접하게 되는 '사랑'과 '결혼' 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곤 합니다.

한번에 다 소개하긴 힘들 것 같고, 대기업 관리직에 속해 있는 한 친구를 통해 들은 이야기를 소개하자면,


"우리 회사 영업부장님이 영업사원들 이끌고 오렌지 오픈했다고 다녀오셨어."
"그게 무슨 말이야? 오렌지?"
"새로 오픈한 안마시술소래."
"헐! 거길 왜 가?"
"고객 접대용. 미리 괜찮은지 아닌지 파악해야 된다고 영업사원들 이끌고 나간 거지. 솔직히 부장님이 먼저 가자고 하는데 어느 누가 가기 싫다고 내빼겠어?"
"고객 접대? 접대를 그런 곳에서 해?"
"뭘 새삼스레 놀래고 그래? 알면서."
"룸은 알지만, 안마시술소까지? 후덜덜인걸?"
"나도 처음엔 몰랐어. 나도 오렌지가 뭔지 너무 궁금해서 따로 동기한테 물어봤지."

부장이 선도하여 영업사원들을 이끌고 안마방으로?! 이런 이야기를 접하게 될 때면 온몸이 쭈뼛거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무섭지 않아? 결혼한 내 남편도 예외가 아니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친구 말대로 결혼해서 내 남편이 그런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과 함께 아찔해 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또 반대로 남자 입장에서는 내 아내가 그런다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야기도 접하다 보니 '결혼'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지만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습니다.

"어? 이게 뭐예요?"
"수정이가 붙여 준거"
"어머나! 너무 귀여운데요?"

회사에서 지급해준 1주일도 되지 않은 새 스마트폰에 요술공주 샐리, 리본, 반짝이 스티커가 잔뜩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궁금해서 차장님께 여쭤보니 딸 아이가 붙여 줬다며 예쁘지 않냐고 보여주는 마흔이 훌쩍 넘은 차장님의 모습에 절로 미소를 머금게 되더군요.
컴퓨터 바탕화면이며 화면보호기 마저 예쁜 딸아이의 사진과 아내의 사진으로 설정해 두고 말이죠.

이전엔 연말 회식으로 홍대에 위치한 한 바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곳에서도 차장님의 멋진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섹시한 차림의 바 여종업원이 다가와 "초콜릿 드세요"라며 살랑거리는 눈빛과 함께 건네는 초콜릿을 그 자리에 있던 다른 남자 직원들이 여종업원이 멋쩍을거라며 덥썩 덥썩 받아 먹는데 그 와중에 딱 잘라 "초콜릿 싫어합니다." 라고 거절하고선, 여종업원이 앉을 자리가 없어 그 좁은 소파 사이로 슬금슬금 옆자리에 앉으려 하자 '벌떡' 일어나 창가에 걸터 앉으시는 모습에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정말 멋진 분이다!' 를 외쳤습니다.

"와이프와 애기가 친정에 가 있다네요. 아, 난 오늘부터 진정한 휴가다! 금요일이니까 오늘 한 잔 해야죠?"
"아, 난 오늘 집에 일찍 가려구요. 내일부터 애기가 방학인데 같이 놀러 가기로 했거든요. 짐도 같이 싸야 되고."

와이프와 애기가 친정에 가 있다고 진정한 휴가라며 '올레!'를 외치는 분이 있는가 하면, 애기가 방학이라 모처럼 가족끼리 여행가기로 했다며 싱글벙글 웃으시는 분도 있습니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여전히 신혼처럼 아내를 사랑하고, 딸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볼 때면 '결혼하고 싶다' 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500원짜리만 1년 동안 매일매일 빨간 돼지저금통에 넣어 와이프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며 자식에게 매일 매일 500원을 저축하면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진 선물을 해 줄 수 있단다- 라며 저축의 중요성을 몸소 보여주시던 멋진 아빠도 있구요. 그야말로 멋진 남편이자, 멋진 아빠죠!  

어째서인지 요즘 드라마만 보더라도 결혼 후, 10년만 지나도 아니, 5년만 지나도 사랑이 식고, 가족애가 시들해 지는 것처럼 표현되고 주위 이야기를 들어도 좋은 이야기 보다 나쁜 이야기를 자주 접하다 보니 '결혼'에 대한 나쁜 생각을 더 많이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좋을 때는 굳이 이야기 할 필요가 없죠. 사람은 좋았던 기억보다 지금 당장 나쁜 상황을 먼저 떠올리고 이야기 하게 되니 말입니다)

결혼에 대한 좋은 이야기보다 나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다 보니 결혼 하기도 전에 '결혼'은 하면 후회하는 건가봐- 라는 생각마저 갖게 되는 듯 합니다. 막상 주위를 둘러 보면 너무나 알콩달콩 예쁘게 사랑하고 있고 10년이 넘어도 20년이 넘어도 여전히 감히 침범할 수 없는 단단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분들도 많은데 말이죠.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해' 가 아닌. '너, 결혼 하지 않으면 후회할걸~?' 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해주시는 분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덧) 자자, 결혼하셔서 알콩달콩 예쁘게 사랑하시는 분들, 댓글 많이 많이 달아 주세요. '결혼하니 너무 좋아요!' 라고 말이죠. (이랬는데 또 후회한다는 댓글이 많으면 어떡해 ㅠ_ㅠ 으허헝...)

"깨갱" 이른 아침, 살견미수 사건 발생

그야말로 "개고생"이군요-_-


매일 아침 5시 50분 무렵에 눈을 뜨는 저와 같은 방에서 자는 동생은 저와 달리 8시쯤 되어서야 눈을 뜨기 때문에 (대학생인 여동생의 여유라고 해 두죠) 아침이면 동생이 깰까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이른 아침이다 보니 어둡지만 늘 그렇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욕실로 향하죠.

익숙한 일상이기에 그 날도 어김없이 자리에서 살포시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일어나는 순간, 발에 밟히는 묵직한 뭔가와 함께 들리는 소리 "깨갱" 앗, 이 소리는?!

실수로 캔디(집에서 키우는 사랑스러운 애견 시츄입니다)의 꼬리를 밟았나 싶어 냉큼 불을 켰습니다. 헌데 좀처럼 눈을 뜨지 못하는 이 녀석. 다리 쪽에서 자고 있던 캔디를 제가 밟은 것 같았습니다. 그것도 꼬리나 다리가 아닌...

다름 아닌, 머리 쪽을 밟았...

"어머, 어떡해... 캔디야... 캔디야..."

출근 준비로 분주한 시간인데도 머릿속이 하얘지고 멍해지더군요. 이런 저와 달리 막상 아픈 캔디는 그래도 좋다고 애써 꼬리를 흔들며 못뜨는 눈을 애써 힘주며 부릅뜨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출근은 해야 하기에 동생에게 부탁을 하고 부랴부랴 준비하고 출근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사람이었으면 살인미수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강아지니 살견미수- 가 되는건가요?

평소 항상 머리맡에 와서 자거나 팔을 배게 삼아 자던 녀석이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랍기도 하고 상당히 당황스럽더군요. 제가 출근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까운 동물병원으로 캔디를 데리고 다녀왔다고 하더군요. 

오른쪽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이 보이시죠?


문제는 외부 충격으로 인한 각막 손상. 경과를 지켜 보다 심하면 수술해야 할 것 같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하니. 그 순간(2초)의 실수로 인해 캔디의 목숨을 좌지우지했군요. 좀 더 충격이 심했으면 홍채까지 영향을 미쳐 실명의 위험도 있었다고 합니다.

퇴근 후, 집으로 와서 보니 깔대기 처럼 얼굴 부위를 막아뒀더군요. 가끔 TV를 통해 고양이가 이처럼 하고 있는 것을 보곤 했는데 막상 캔디가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상당히 안쓰러웠습니다. 
네- 다 저의 불찰입니다- 흑-
 

"이게 다 너 때문이다"


캔디를 무척이나 예뻐하는 동생과 어머니에게 크게 혼났습니다.

"너의 큰 덩치로 이 조그만 아이를 밟으면 어쩌자는 거냐?"
"정말 죽을 뻔 했네. 어휴"
"캔디는 조용히 잘 자고 있다가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가 했겠구나"

다음 날(토요일), 동물병원이 오픈하는 10시에 맞춰 캔디를 데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2주간 부지런히 동물병원을 오가게 될 듯 하군요.

동물유기 조장하는 애완동물 진료 부가세 반대!라는 문구가 인상적입니다


"여기는 어제 왔던 곳이 아닌가?!"


캔디가 좀처럼 응시하고 눈을 떼지 못하길래 봤더니 역시나, 간식이 잔뜩-

병원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2주간은 지속적으로 나와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다행히 경과가 좋아 수술까진 하지 않아도 될 듯 합니다.

주사를 맞고 안약과 먹는 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캔디야 화장실 가자"

화장실 가자는 말에 쪼르르 화장실로 가서 볼일을 보는 캔디.
 
"캔디야 약 먹자"

약먹자는 말에 쪼르르 도망가기 바쁜 캔디.
자신의 덩치보다 훨씬 큰 보호대를 하고서 걷는 뒷모습을 보니 그리 안쓰러울 수가 없습니다. 저의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2주 가까이 보호대를 하고서 힘들게 지내야 하는데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마냥 저를 보고 좋다고 꼬리를 흔들고 반갑게 맞아 주니 미안하고 또 미안하더군요.

5년 가까이 함께 해 온 가족과도 같은 존재. 오래오래 우리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머물러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너무 미안하고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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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공개]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본인의 가장 힘든 때를 기억 하고 있습니까?

그저 주저 앉아 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런 때 말이죠. 저 또한 !’ 하고 놀랄만한, 그러한 일을 여러 번 겪었습니다. 이 한 면에 소개 하기엔 그 양이 너무 많으니 짧게 토막 내어 소개 할게요.

열 세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이혼은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들었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힘들다, 죽고 싶다를 연발했던 때이기도 합니다. 지금의 저를 아는 사람이라면, 너가 정말 그랬냐고 되물을지도 모르지요.

judge me now,   #2 in explore
judge me now, #2 in explore by ashley rose,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양육권 판결에 따라 여섯 살이나 어린 동생과 저는 당시 생활 여력이 더 높았던 아버지를 따라 나서야 했습니다.
새 집, 새 책상, 새 침대모든 것이 낯선 와중에 만난 첫 날부터 엄마라고 부르라고 강요하는 새 엄마까지. 드라마 속, 만화 속 계모를 제대로 체감하였습니다.

너무나도 큰 아파트, 좋은 컴퓨터, 새 책상, 새 침대, 처음엔 꿈만 같았던 그 상황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질 없는 것이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그 어린 나이에 다시 고민에 빠졌던 때이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다 꺼내려면 너무 길어지니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죠.

End of summer / Fin del verano
End of summer / Fin del verano by Claudio.A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그러한 새로운 환경과 새 엄마의 구박 속에 견디다 못해 2년 여 정도 버티다 곧바로 홀로 힘들게 생활하고 계셨던 어머니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양육권이니 그러한 법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어떻게 해야 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아버지와 새 엄마에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으로 도망친 것 같습니다.

당시 고3.

my desk corner 2
my desk corner 2 by Laurie :: Liquid Paper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한창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에 심적인 불안감과 부담감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단칸방에서 힘겹게 공부하며, 화장실을 가려고 해도 밖으로 나가야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제 자신을 믿고 응원해 준 동생과 어머니가 계셨기에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어머니께서 공장을 다니며 힘겹게 돈을 모아 생계비며, 집 월세며, 동생과 저의 학비 부담까지. 3이었던 터라 교재비도 상당했죠. 단순히 큰 딸, 장녀로서가 아닌 생계를 책임지고 한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이 더욱 커갔습니다.

그러던 중, 어머니께서 공장일을 하시다가 몸이 많이 나빠지셔서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게 되자, 학업에도 신경 써야 했지만 생활비와 학비에 대한 부담감에 심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때이기도 합니다.  어머니가 보시기에 착하고 예쁜 딸이기 보다는 강하고 든든한 아들로 보이기를 바랬는지도 모릅니다.

9년이 거의 다 되어 가는 한 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때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 당시의 힘들었던 상황을 떠올리며, 채찍질 하기 위해 제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 있죠.

바로 2002학년도 당시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험표와 수능 전 날, 저에게 건네주었던 동생의 편지입니다.



지금도 이 껌이 나오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당시 열 세 살이었던 어린 동생은 본인이 먹고 싶었을 텐데 꾹 참고 아껴서 저에게 건네준 풍선껌인 듯 합니다.



제 지금 나이 스물일곱.

제 자신에게 이야기 하곤 합니다. “참 잘 컸다- 수고했어-“라고 말이죠.

비록 화목한 가정 속에서 때론 부모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가족 여행을 가고 싶은, 그런 마음도 컸었고 난 왜 그런 평범한 가정 속에서 자라나지 못했을까, 라는 현 상황을 낙담해 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 악물고 버텼었죠.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공부라는 것과 수능을 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어른이 되면 어머니께도, 동생에게도 보다 떳떳한 딸이, 언니가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 믿음의 결과는 어떠했느냐고 묻는다면, 특히 나와 같이 힘든 상황 속에서 자칫 잘못된 길을 선택하려는 후배나 어린 동생들이 있다면 붙잡아 주고 싶어요. 자신을 믿고 노력하면 절대 그 노력은 너를 배반하지 않는다고.

서울에 위치한 4년제 대학교에 합격하여 지방에서 서울로 홀로 올라와 기숙사 생활을 하며, 지방에 있는 동생과 어머니를 위해 틈틈이 아르바이트, 과외, 교수님을 도와 프로젝트를 하는 등 여러 사회생활을 겸하며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졸업 하기 전에 운 좋게 바로 취직하여 지금은 동생과 어머니도 서울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 보물입니다.


가장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 이를 악물고 버티게 해 준 동생의 편지와 당시 수험표를 작성하며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고 바라는 마음이 컸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납니다. 그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 저의 보물로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습니다. 가끔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꺼내서 보곤 합니다.

일찍 어른이 된 만큼, 분명 보다 큰 기회가, 큰 행복이 찾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