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새 내가 사회에 나와 직장생활을 한 지 20년 차가 되었다. 시간 참 빠르다. 인지하지 못하다가 동기 모임에 갔다가 인지했다. 다들 대학교를 갓 졸업한 파릇파릇한 20대였는데, 모두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 아빠가 되어 있었다. 신입사원이었던 나는 이직을 하여 한 회사의 팀장이자 부장으로 자리 잡았고, 줄곧 한 회사에 터를 잡았던 동기는 임원이 되었다.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던 동기들이 임원이라니, 무척 놀랍다.
우리집은 신랑도 나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맞벌이 가정이다. 2025년 한 해를 돌아보면 회사일로도 정신이 없었지만, 두 아이를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엄마, 아빠가 바쁘다는 이유로 잘 케어해 주지 못했음에도 두 아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감사하다.
영어학원에서 받은 연락, 보카킹 되다
1학년인 딸이 다니고 있는 영어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딸 아이가 열심히 해서 보카킹이 되었다고. 무슨 말인고 하니, 매 단어 평가 시험을 100점을 받아 보카킹이 되어 시상식을 가졌다며, 칭찬을 많이 해 달라는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면 항상 아이들에게 질문한다. 학교 숙제 했는지, 학원 숙제는 했는지 말이다. 맞벌이 가정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학원 뺑뺑이를 돌리게 되었지만, 초반엔 학원을 보내고도 집으로 돌아와 두 아이의 숙제 확인을 하는 것만으로도 무척 버거웠다. 두 아이를 위한 숙제인 건지, 누구를 위한 숙제인 건지 헷갈릴 정도로 말이다.
"학원 다니기 싫으면 말해. 어디든 말이야. 억지로 다니지 않아도 돼. 그만 다녀도 돼."
그렇게 초반엔 두 아이의 주도적 학습을 유도하기 위한 과정이 무척 힘겨웠다. 1년여 정도 지난 지금에서야 이젠 숙제를 억지로 하라고 하지 않아도 초1, 초3 두 아이 모두 집으로 돌아오면 숙제를 해야 함을 인지한다. 엄마, 아빠가 늦게 퇴근하다 보니 늘 늦은 식사와 늦은 시각 숙제로 힘들텐데 말이다.
영어학원 선생님의 칭찬을 많이 해주라는 말씀대로 자연스럽게 딸을 칭찬해 주고 싶어 딸의 방에 들어갔다가 영어 노트를 보고 깜짝 놀랬다. 선생님 말씀에 따르면 영어학원에서 보는 영어단어 시험을 모두 다 맞았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은 영어노트가 펼쳐져 있어서 말이다.
'이상하다. 영어학원 선생님이 영어단어 시험 지금까지 다 맞았다며 칭찬 해 주라고 하셨는데. 잘못 아신건가?'

영어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고 있다가 딸이 들어와서 차분하게 물어 보았다.
"리니야, 영어학원 선생님이 리니 칭찬 많이 해 주래. 영어 단어 시험 100점 많이 받았다며? 보카킹이라던데."
"네, 저 단어 지금까지 본 거 다 맞아서 보카킹 됐어요. 오늘 시상식도 했어요. 잘했죠?"
"응. 엄청 잘했어. 그런데 이 노트가 영어 단어 시험 본 노트야?"
"아, 아뇨. 이건 제가 공부하는 노트에요. 제가 영어단어 공부하면서 채점한거에요."
다시 보니, 빨간 색연필로 한 채점이 어설프다. 틀린 부분에 대해 정정한 것이라던지, 뜻을 다시 쓴 부분이라던지. 그제서야 노트 앞면을 보니 큼지막하게 <리니의 영어 단어 공부>라고 쓰여진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트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아이가 공부한 흔적을 확인했다. 엄마로서 부끄러웠다. 아이가 이렇게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는데 지금껏 몰랐다는 사실에 말이다. 영어 단어 시험을 앞두고 영어 단어도 제대로 읽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아이는 이렇게 자기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아이를 꼬옥 안아주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엄마도 매 순간 최선을 다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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