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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의 어느날, 할아버지를 떠나 보내며

· 댓글개 · 버섯공주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갑작스런 연락에 경황이 없어 어떻게 창원으로 향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새벽녘, 비가 억수같이 쏟아 지던 날. 그렇게 할아버지를 몇 개월만 에 만나 뵈었네요.
 


이미 할아버지 병세가 좋지 않으니 바쁘더라도 한 번 내려와서 얼굴을 보라는 말씀을 들었으나 직장생활로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루하루 미루고 미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너무 한없이 죄송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좀 더 일찍 살아 계실 때 한번 더 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저의 뒤늦은 인사가 한없이 부끄러웠습니다. 뒤늦게 장례식장에서 뵙다니…

명절에도 만나기 힘들었던 먼 친척분들도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다음날, 발인을 시작해 2시간 가량의 화장을 거쳐 할아버지의 화장유골을 마주했네요. 실제로 화장한 후, 화장한 유골을 분골기로 갈아 분골하고 분골용기에 담는 습골에 이르는 전 과정까지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한 줌의 재가 된다는 표현이 정말 와 닿더군요.

분골기의 '윙' 소리 한 번에 한 줌의 하얀 가루가 되다니…

할아버지의 분골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서울 동작구 동작동에 위치한 국립현충원의 안장 능력이 한계에 이름에 따라, 국립묘지관리소 대전분소로 출범한 곳이더군요.


대전에 이렇게 큰 현충원이 있다는 것도 이 날 처음 알았어요. 그만큼 저와는 무관한 곳이라 생각하고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할아버지께서 6. 25 참전군인이자 무공훈장 수훈자이시더군요. 지금껏 단순 국립유공자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무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게 되었네요. 이런;;

합동 안장의식이 1시간 가량 진행되는 동안에도 슬픔이 가시지 않아 곳곳에선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던 날. 호우경보가 내려 때 아닌 물폭탄이 있었던 날.

할아버지를 그렇게 보냈습니다. 흙을 삽으로 떠 뿌리면서도 혹여 빗물에 흙이 쓸리진 않을지 걱정이 되더군요.

살아 계실 때 더 많이 인사 드릴걸. 더 잘 해 드릴걸.

늘 이별은 슬프고 아쉽습니다.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셨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평소에 잘 하지 않던 집안일을 말끔히 끝내고 시키는 심부름도 한 마디 투정 없이 곧잘 했네요. ㅡ.ㅡ 

"왠일이냐? 그렇게 부지런 떨고?"
"뭐, 그냥..."


이제 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직장과 집을 오가는 생활을 계속 하다 보면 '피곤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으며 게으름을 부리겠죠. 작심삼일이라고 했던가요;; (매일 매일 3일씩 작심삼일의 마음가짐을 업데이트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날, 속으로 '살아 계실 때 잘해야지. 잘해야지.' 라고 몇 번을 되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매번 장례식장을 다녀올 때면 삶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단 하나의 삶. 단 한번의 주어진 인생.
예쁜 마음으로 사랑하며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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