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여자, 도와줘? 말아?

어제 늦은 밤,
유희열의 스케치북을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자우림의 무대가 이어지고 있어 어쩜 저렇게 김윤아씨는 한결같을까- 라며 감탄을 하고 있을 때쯤, 동생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깜짝 놀랬었다며 투덜거리더군요.  

"무슨 일이야?"
"집 바로 앞 코너 주차된 차 사이에 왠 여자가 쓰러져 있는거지"
"근데?"
"시간도 늦었는데 여자가 쓰러져 있으니 깜짝 놀랬어. 도와주려고 보니까 술취해서 쓰러져 있는 것 같던데."
"깨웠어?"
"깨웠는데, 안일어나."
"그냥 그렇게 온거야?"
"무서워서 그냥 왔는데, 지금 같이 가서 깨울래?"
"보자 마자 그냥 바로 112에 신고라도 하지 그랬냐. 성폭행이라도 당하면 어쩌려구"


그렇게 동생과 함께 집 밖으로 나와 봤습니다. 밤 12시가 한참 지난 시각.  

정말 골목이 꺾이는 지점에서 주차된 차 사이로 여자의 다리가 보이더군요. 동생이 얼마나 놀랬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Here is the dark red verniz
Here is the dark red verniz by Princess Cy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깨워서 집으로 어떻게 안내해야 하는걸까, 고민하며 다가서는 순간.
덩치가 상당히 큰 남자 두 분이 그 여자 옆에 서 있더군요. 차에 가려져서 다가가서야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동생에게 여자가 혼자 쓰러져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분명 그 남자 두 사람은 그 여자를 아는 사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망설이지 않고 다가갔습니다.

"아는 사람이에요?"
"아니요. 그럼 그 쪽은 아는 사람이에요?"
"..."


건장한 남자 두 명, 그리고 이쪽엔 어린 여동생과 나. 좀처럼 겁을 먹지 않는데도 괜히 겁이 나더군요.

'분명 저 두 남자가 이 여자분을 알 리가 없지.'

그 때, 여자분이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인상적인 첫 마디를 내뱉으셨습니다.


"싸우지 마세요. 저 때문에. 괜히."

지금 이 상황이 싸우는 것으로 보이는 건가? 술에 많이 취한건가?

그러고선 주차되어 있던 차에 몸을 살짝 기대는 것 같았으나, 이내 두 남자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남자분은 여자분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여자분은 태연스레 부축해 달라며 그렇게 기댔습니다.

분명 여자분의 판단력이 흐려져서 남자에게 기대는 것일 거란 생각에 여자분에게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하지만 여자분은 저의 질문에 짧게 대답한 뒤, 남자분에게 도움을 청하더군요.


"괜찮으세요? 집에 찾아가실 수 있으세요? 집이 어디세요?"
"아...네.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

 ...

"저 좀 도와주실래요?"

"아, 저요? 네. 가시죠."


저 여자분이 술이 취해서 제 정신이 아니어서 저러는 건지, 아님 원래 저런 여자인건가. 오히려 도움을 주기 위해 온 동생과 제 입장이 어색해 지더군요.

그렇게 남자 두 사람과 함께 여자분은 비틀거리며 등을 돌렸습니다.
왠지 모를 두 남자의 약간의 건들거리는 웃음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앞으로 길에서 저런 여자 보거든, 망설이지 말고 그냥 112에 신고해."

동생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 뿐이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내도록 찝찝한 기분을 떨쳐 낼 수 없었습니다.

그 여자분은 술에 취해서 판단력이 흐려져서 남자분에게 도움을 청한건가.
낯선 여자보다는 낯선 남자가 더 믿음직스럽다는건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내가 괜히 멀쩡히 도움을 주려던 두 남자를 너무 나쁜 시각으로 바라 본 건가.
자제력을 잃을 만큼, 그렇게 길에 쓰러져 있을만큼 왜 술을 마신거지?
내가 너무 보수적인가. 등등.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무사히 집에 잘 들어갔는지 그 여자분이 궁금해 지네요.
 
남자친구에게 이 일을 이야기 하자, 가급적이면 그런 일에 나서지 말라고. 
오히려 그렇게 술에 취해 정신 못차리고 길에서 쓰러져 있는 여자가 더 잘못한 것 아니냐고 되묻네요. 

아, 좀처럼 이 찝찝한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네요.

덧붙임. 
내일 토익 시험 망치면 그건 다 그 여자 때문이야! (라는 핑계를 대고 싶습니다) 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