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덕분에 알게 된 예쁜 우리말, 얼뚱아기

"어이구. 우리 얼뚱애기!"
"어? 얼뚱애기? 그게 뭐야?  

남자친구를 만나 데이트를 하던 중, 갑작스레 남자친구가 제게 내뱉은 '얼뚱애기' 라는 말에, '얼뚱' 이라는 말이 '엉뚱'과 비슷하게 들려 나쁜 의미의 말인 줄 알고 씩씩 거렸습니다.

"얼뚱애기 몰라? 크크. 좋은 말이야."
"어? 그런데 왜 웃어? 치. 집에 가면 바로 찾아볼거야."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 얼뚱아기는 '둥둥 얼러 주고 싶은 재롱스러운 아기'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더군요. 검색하자 마자 이렇게 예쁜 우리말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습니다.
'히히. 스물 여덟살인 나보고 얼뚱애기래!' (아, 이렇게 사랑스러우면서도 예쁜 말이 있다니!)

멋부리다가 얼어죽어!

"이리와 봐. 너 정말 그러다가 감기 걸린다니까! 완전 애야 애!"

나름 남자친구에게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에 추운 건 둘째 치고 머플러를 멋스럽게 두르고 있는데 제가 애써 멋스럽게 연출한 머플러가 무색해 질 만큼 제 목을 꽁꽁 동여 매는 남자친구.

추운 건 둘째치고 멋스럽게!

재킷도 일부러 윗 단추 두 개 정도는 채우지 않고 멋을 부렸는데 그러다 정말 얼어죽는다며 냉큼 단추를 마저 채우는 남자친구.

연애 초기엔 그래도 멋스러워 보이는게 중요하다며 그런 남자친구의 손길을 거부하기 바빴는데, 어느 순간 부터 '아! 이 남자가 날 지켜주고 있구나-' '날 걱정하고 있구나-' 라는 포근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이 무척이나 좋아 가만히 있었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보이고 싶어 지는 순간이라고나 할까요. 연애 초기에는 '애(아이) 같애!'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엄연히 20대의 성인이건만 왜 자꾸 애라고 하는거야!' 라는 생각에서 말이죠. 나중에서야 남자친구가 단순히 사전적 의미의 '아이' 를 일컫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 오히려 그 말을 즐기게 된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BEST 1 고기!

남자친구가 약속 시간에 한참을 늦어 쭈뼛쭈뼛 토라져 있으니 회사일로 늦게 출발했다며 늘 그래왔듯 능숙하게 한 마디 내뱉습니다.

"고기 사줄게!"
"고기?"


"응. 고기!"

꺅-

고기 한 마디에 이렇게 무너져 내리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연스레 고기라는 한마디에 입이 웃지 않아도 눈이 웃고 있으니 먹는 것 하나에 이렇게 쉽게 넘어와서야 되겠냐며 어린 아이 같다며 감싸 주니 오히려 그렇게 이야기 해 주는 남자친구가 사랑스럽더군요.

연애를 하며 느낀 어린 아이의 순수한 감정

언제부터였을까요. 언제부턴가 '해서 되는 일'보다는 '해선 안 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어린 아이처럼 굴지 말라'는 말을 듣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다 큰 애가!' '어린 애도 아니고!'

어른이 되기도 전에 어른이길 강요 받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늘 어른이길 강요 받던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제가 어른이면서도 어린 아이 마냥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는 장녀로 집안을 책임지고 있다 보니 어린 아이처럼 행동 할 수 없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늘 똑 부러지고 당당한 모습을 요구 받다 보니 편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기 쉽지 않은데 연애를 하며 남자친구 앞에서 '어른' 으로 보이기 보다는 '아이' 로 보여지고픈 마음이 커진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도 저와 함께 있을 땐 이런 저런 격식 다 벗어던지고 그저 있는 그대로 편하게 있을 수 있어 좋다는 말을 자주 하더군요.  

어쩌면 그만큼 순수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줘도 서로를 믿고 그만큼 사랑하기에 예쁜 사랑을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완전 애야! 애!"
"어이구. 우리 얼뚱아기!"

다른 이에게 들으면 듣기 싫은 말. 하지만 사랑하는 남자친구에게 들을 땐 한없이 듣기 좋은 말. 나이가 들수록 활활 타오르는 불 같은 사랑 보다 편안하면서도 따뜻한 사랑이 좋아지는 건 비단 저뿐만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