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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만 따지던 내가 사랑을 마주하기까지

· 댓글개 · 버섯공주

제가 '연애'라는 것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와 눈을 마주보고 오랜 시간 이야기 한다는 것에 대해 무척이나 닭살스럽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 뿐인가요.
드라마나 이런 저런 소설 속 등장하는 근사한 인물을 이상형이라 말하고, 연봉은 얼마 이상이면 좋겠다를 서슴없이 이야기하기도 했었습니다.

그 와중에 알콩달콩 연애 하고 있던 친구들이 남자친구의 눈빛에 녹아내릴 것 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당시 솔로였던 저는 책에서 접한 이런 저런 이론을 들먹거리며 트집잡는 멘트를 날리곤 했었습니다.

"민망해! 어떻게 눈을 계속 뚫어져라 봐? 책 안봤어? 상대방과 대화를 할 때, 눈을 계속 마주하기 보다는 눈 뿐만 아니라 코와 입술 사이에 위치한 인중도 번갈아 가며 보는 게 가장 이상적이래. 눈만 보지 말라구!"
"으이그! 말이라도 못하면! 너 연애하게 되면 두고보자!"
"아! 그래! 솔직히 나도 좀 눈빛에 녹아 내리고 싶다고! 도대체 언제쯤 내게도 그런 사랑이 오는 걸까?"

당시엔 정말 언제쯤 오려나 싶었던 그 순간(눈빛에 녹아 내리는 순간. 캬!)이 제게 오긴 오더군요.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그리고 사랑한다는 것, 연애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 그 모든 것들이 낯설고 신기하기만 했는데 말이죠.

내겐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사랑' 이라는 감정

솔로일 때까지만 해도 지하철에서 연인끼리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거나 어깨에 기대고 있는 모습을 볼 때면, 괜히 심술이 나서 노려보곤 했습니다. 특히, 무척이나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기댈 곳이 없어 잠결에 혼자 헤드뱅잉을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을 발견했을 땐 정말 속상하더군요. '아! 정말 추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죠. 혹 모릅니다. 헤드뱅잉을 하다 좌측과 우측에 앉으신 분들에게 마구 머리박기를 했을지도;;

그런 제가 지금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타더라도 이제 더 이상 헤드뱅잉하지 않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퇴근 후, 남자친구와 잠깐 데이트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밀려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남자친구의 어깨에 기대선 잠들어 버렸나 봅니다. 

"이제 일어나야지. 다음 역이야. 졸립지?"
"어? 어. 응!"

남자친구의 목소리에 게슴츠레 눈을 뜨니 헉!

세상 모르고 너무 푹 잠들어 버렸었나 봅니다. 입가가 촉촉해져 버린. 킁. 본능적으로 제가 기댄 남자친구의 어깨에도 그 흔적이 남은 게 아닌지 확인하고선(흔건하게 젖어 있지 않아 다행입니다) 남자친구의 시선을 피해 냉큼 고개를 돌렸습니다.

아직 남자친구는 모르는 듯 합니다. 이럴 땐, 최대한 태연한 표정과 자연스러운 포즈가 필요합니다. 그 와중에 조심스럽게 입가를 닦아 내는데... 이미 남자친구 눈엔 포착되어 버렸나 봅니다.

"왜 그래? 왜?"
"아니. 아무 것도 아니야."
"아, 너 침 흘렸구나? 이리와봐! 어디 보자!"

하악!

 -_-

"많이 피곤했었구나? 내가 닦아 줄게!"
"아냐. 없어. 이미 다 닦았어. 없어. 짠!"
"으이그! 완전 애야! 애! 귀여워!"

민망. 뻘쭘. 어색. 할 수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쿨한 척 웃으며 애써 웃어 보려하지만 자꾸만 붉어지는 얼굴. 그런 저의 마음을 아는지 오히려 귀엽다며 자연스럽게 웃어 주고 감싸 주는 남자친구를 보며 '선배 언니가 말하던 그 사랑을, 지금 내가 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이나 행복하더군요.

선배 언니가 말하던 사랑, 그리고 결혼

한 남자를 만나 이렇게 사랑을 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서로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큰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이 감정 이대로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답니다.

예전엔 막연히 서로에게 예쁘고 멋진 모습만을 보여 주는 것이 연애이고, 데이트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서로의 실수나 민망한 모습을 보더라도 서로 다독여 주고 감싸 주는 것에서 '아, 이게 정말 사랑이라는 거구나.' 라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는 듯 합니다.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고 있는 선배에게 '사랑이 뭘까요?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나요?'라는 다소 황당한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엔 이해할 수 없었던 선배 언니의 말이 이제는 너무나도 와닿습니다. 

"남자친구 입가에 묻은 고추가루를 보고 '아, 정말 더럽다! 못봐주겠다! 쪽팔린다!' 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야.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고 먼저 티슈를 꺼내 닦아 주는게 사랑이지! 너가 상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너에게도 그렇게 해 줄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해."

'사랑이 도대체 뭐에요?' 를 묻던 제가 사랑을 하고 있네요. 이상형을 이렇게 저렇게 늘어 놓던 제가 이젠 지금의 남자친구가 이상형이라 말하고, 이런 저런 현실적 조건을 따지고 들며 '사랑'보다 '조건'이라 말하던 제가 사랑을 하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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