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의 연애 주도권 잡는 비법 듣고 나니

남자친구가 뜬금없이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난 이미 주도권을 너에게 뺏겼는걸 뭐."
"에이. 무슨 소리야.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럼 나한테 뺏긴 주도권 오빠가 다 가져가. 난 필요 없어."
"아니. 거봐. 넌 이미 주도권을 갖고 있으니까 그렇게 쉽게 말하지."
"그런가? 뭐 연인 사이에 무슨 주도권 싸움하는 것도 아니구."

그러고 보니 이전 회사 동료와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여자친구 스타일이 한번 아니면 확실히 아니라고 말하는 스타일이거든."
"응. 호불호가 분명하구나?"
"응. 정말 정확하고 분명하지. 음, 그렇다 보니 내가 많이 맞춰 주고 있어."
"그래서 넌 그게 싫은 거야?"
"아니. 싫다기 보다는 내가 잡혀 있는 듯한 느낌? 아직 결혼전인데도 말이야. 결혼 후가 살짝 걱정이야."
"그래도 그게 편하지 않아?"
"응. 그렇지. 솔직히 그게 편해. 편한데… 음, 그래도 가끔은 내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때가 있거든? 그럴 때는 여자친구가 나한테 포옥 안긴다니까. 그럴 땐 내가 확실히 주도권을 잡고 있지."
"크크. 조심해. 그것도 다 여자친구의 책략일지도 몰라."
"뭐야. 나 그럼 여자친구 손에서 놀아나고 있는 거야?"
"농담도 참."

뭐 대충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잡혀 산다' '주도권' 이런 이야기는 솔직히 여자친구들과 있을 때는 꺼낸 적도 없을 뿐 더러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는 건데, 의외로 남자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 잡혀 있는 것 같다, 그래도 남자인데- 와 같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더군요.

내 남자친구도 이 친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마침 남자친구가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오빠가 말하는 그 주도권 이라는 게 흔히들 결혼하신 분들이 말하는 '잡혀 산다, 잡혀 살지 않는다' 뭐 이런 것과 비슷한 건가?"
"응. 뭐 그런 것 같애."
"진짜 난 주도권 그런 거 신경도 안 쓰는데.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주도권이라는 게 왜 나와."
"네가 주도권이 있으니까 그런 걸 생각 못하는 거지, 주도권이 없는 내 입장에선…"
"어이쿠, 그랬쪄요? 그럼 오빠가 주도권 가져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글쎄."

연애 주도권에 대해 한번도 염두 해 본 적이 없었던 터라 남자친구의 "주도권은 너에게 있어!" 라는 말이 한편으로는 "외외다!" (연애 하는데 무슨 주도권이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야 당연하지!"(남자는 원래 여자에게 져 주는 거야…)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참 아이러니 하게도 말이죠.

더욱 웃겼던 것은 남자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다시 주도권을 오빠가 가져갈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남자친구의 대답이었습니다.


남자친구가 생각하는 '연애 주도권 잡는 비법' BEST 3 입니다.

첫째, 먹을 것을 많이 사준다. 먹을 것으로 유인한다. 특히, 고기가 효과가 좋다. (제가 먹을 것에 약하다는 것을 노린 꼼수죠)

둘째, 비싼 금은보화를 선물해준다. 비싼 명품 가방도 좋다. 다만 금전적 압박을 감당할 자신이 없다. (솔깃하긴 하네요)


셋째, 진지하게 눈물로 호소하며 이야기 한다. "힘들어요!" 다만 남자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거야 원. 안쓰러워서)


결론은 먹을 것으로 유인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 그 효과는 순간적이다 라는 것으로 이야기가 급 마무리 지어졌습니다.

남자친구와 연애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니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내가 오빠를 너무 힘들게 한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집으로 돌아가던 길, 평상시 같으면 "오빠, 나 중간까지만 데려다 주면 안돼?" 라고 이야기를 할 텐데 (남자친구가 '데려다 주기 싫어' 라고 대답을 하면 전 단단히 삐쳐서는 다음날까지 입술이 나발처럼 나와 있겠죠) 이날은 남자친구와 연애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다 보니 괜히 찔려서는 늘 해 왔던 데려다 달라는 말도 하지 못하고 "잘가~" 라고 손을 흔들었습니다.
 

"아니. 중간 역까지 데려다 줄게."
"왜?"
"너 내가 주도권 이야기 해서 그러는 거 다 표나."
"아, 표가 나?"

그렇게 남자친구가 늘 그래왔듯이 저를 중간 지점 역까지 데려다 주고 돌아갔습니다. 4년 넘게 연애를 해 오면서 남자친구가 지금까지 저에게 해줬던 일상적이면서도 익숙한 행동들 하나하나를 되돌아 보게 되더군요. 남자친구와 연애를 하며 제가 너무 당연시 여기고 행동했던 것에 대해서도 말이죠.

집으로 돌아와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연애 주도권, 정말 제가 쥐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하.
반대로 이야기 하자면, 그만큼 제가 남자친구에 대한 배려가 덜했다는 의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가 장난으로 종종 "넌 악녀야!" 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이거 왠지 단순 장난으로만 한 말이 아닐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은 뭘까요? -_-;;

남녀 사이, 연애를 하면서도 주도권이 있다는 것을 남자친구 덕분에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래서 결혼하면 종종 "나 와이프한테 잡혀 살잖아." 라는 말이 나오나 봅니다. 그 의미가 잘 와 닿지 않았는데 말이죠. 남자친구의 주도권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 때문에 한참을 웃었네요. J

+ 덧붙임) 남자친구에게 배려 많이 해야겠습니다... 남자친구가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의 일원이 되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