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왜 그러세요. 저도 가고 싶죠. 당연히."
"근데 뭐가 문제야?"
"서로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가죠."
회식 자리에서 마흔이 다 되어 가는 한 총각 차장님에게 시선이 모두 꽂혔습니다. 타이르는 것 같기도 하고, 혼내는 것 같기도 한 묘한 어투의 부장님의 말씀 때문에 말이죠.
"어이, 김차장. 사랑, 그거 어려운 거 아니다."
한 잔 하셔서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르신 두 분을 보며 괜히 키득키득 거리며 웃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 부장님의 말씀에 냉큼 내뱉은 차장님의 씁쓸한 대답이 분위기를 더욱 묘하게 만들었습니다.
"에이, 서로 사랑해야 결혼을 하죠. 근데 그렇게 서로 사랑하기가 어디 쉽나요? 제가 호감 가지면 상대방은 퇴짜를 놓던데요 뭐. 먼저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고백하는 사람이 항상 손해 보는거에요."
좀 전까지만 해도 키득거리며 웃고 있다가 갑작스레 시무룩한 표정으로 저렇게 말씀하시니 분위기가 살짝 우울한 기운이 감돌며 가라 앉아 버렸습니다. 사랑은 결코 어려운 게 아니라고 이야기 하는 부장님과 사랑은 쉽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차장님 사이의 묘한 신경전. 과연 결론은 어떻게 날지 두둥! 잠시 정적이 흐르는 듯 하더니 부장님이 저를 향해 뜬금없이 물으셨습니다.
"남자친구요."
"처음부터 남자친구와 서로 사랑했나?"
"에이. 그건 아니죠."
"지금은 누가 더 많이 사랑하나?"
"글쎄요. 서로 자기가 더 많이 사랑한다고 우기곤 하는데… 지금은 제가 조금 더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요."
Q. 누가 먼저 사랑했나? 누가 먼저 고백했나?
그렇게 여러 사람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들으면서 한 가지 묘한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질문에서부터 이미 낚이는 기분이 들지만, 동시에 사랑한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군가가 한 사람이 먼저 사랑한다는거죠. 남자나 여자 쪽에서 먼저 호감을 가진 사람이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 베풀고 노력을 했고, 나중에서야 그 사람의 마음을 받아 들이면서 서로가 사랑하게 되는 것 말입니다.
결국, 처음부터 서로 눈이 맞아 '뿅' 하고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한 쪽에서 시작된 호감이 결국 서로의 사랑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네가 꿈꾸는 그런 사랑은, 만화에서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준비, 땅! 해서 달려가 처음부터 정 한가운데에서 딱 만나면 얼마나 좋겠냐만은 아쉽게도 현실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괜찮지 않나? 서로가 맞춰 나가면 되니까. 때로는 왼쪽으로 쏠릴 수도 있는 거고, 때론 오른쪽으로 치우칠 수도 있는 거고.
근데 넌 네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가 알아서 너에게로 와주길 바라는 거잖아. 넌 꿈쩍도 하지 않으면서.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이라도 하면 얼마나 좋아. 손짓 해서 안 오면 한 번 불러 보고, 한 번 불러도 안되면 두 세 번씩 불러 보기도 하고. 그래도 뒤돌아 있으면 네가 가서 손을 내밀어."
드라마나 만화 속 주인공처럼 딱 보자 마자 서로의 눈에서 스파클이 튀면서 사랑에 푹 빠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을 이야기를 하시면서 분명 길거리에 가는 수많은 연인들은 분명 어느 한쪽의 분명한 노력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것일 거라는 말을 하시더군요.
"어떻게 하면 서로 사랑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짝꿍을 만날 수 있지?"
한 때, 연애하는 친구들을 볼 때면 그러한 질문을 제 마음 속에 되내이곤 했었는데 이 날, 부장님의 '리얼 실시간 설문조사'로 인해 호기심이 조금 풀린 것 같습니다. 마흔을 훌쩍 넘기신 부장님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회식 분위기를 더욱 불타오르게 한 것 같습니다.
보통 20대나 30대가 주로 사랑에 대한 이런 저러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데 말이죠. 그래서일까요. 40년 이상을 살아오며 경험에서 묻어 나오는 부장님의 구수한 사랑이야기가 더욱 깊이 있게 느껴졌습니다.
모두가 서로 첫눈에 뿅! 하고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 같은 사랑도 실제 있을 수 있겠지만 그보다 어느 한쪽에서 그 사랑을 먼저 감지하고 노력하여 서로의 사랑으로 키우는 경우가 더 많다는 말씀. 뭔가 뻔한 것 같으면서도 놓치고 있었던 진실인 것 같습니다.
"버섯씨는 남자친구에게 감사해야 해. 먼저 센스있게 사랑을 감지하고 버섯씨한테 손내밀어 준 거잖아. 먼저 손 안내밀었으면 어쩔 뻔 했어. 멋지게 먼저 손내밀어준 남자친구한테 감사하라구.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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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장님 말씀에 많이 공감이 되네요...
제가 생각 할 때는 사랑을 어떠한 방식으로 생산하느냐가 중요한것 같아요.
사랑은 사람의 심장에서 만들어지는 유일한 무형체니까요..
부디 오랜사랑 이루어 가시고 현재도 많은 사랑을 생산하세요...
오랜만에 와서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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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버섯공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 사랑을 어떠한 방식으로 생산하느냐... 심장에서 만들어지는 유일한 무형체. 우와. 마치 시 한 구절 같은 느낌이!
이렇게 오랜만에 오셔서 멋진 말씀해 주고 가시네요.^^
기억할게요. 고마워요.
사랑의 시작이 뭐 중요한가요~ 결말이 아름다와야지요~
서로 마지막 사랑이길 바래요~~
국수말아 놓으면 꼭 부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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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버섯공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쵸? ^^
러브님의 국수 먼저 먹고 싶어요.
누가 먼저인 것보다 내가 지금 더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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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버섯공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맞아요. ^^
아니.. 부장님 너무 멋지신거 아닙니까..^^
저도 제 아내에게 무쟈게 손내밀고 들이밀어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ㅋㅋ
맞는 말이에요~
Reply:
사용자 버섯공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와. 오러님 멋있어요!! +_+
최정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50대50의 사랑은 없는것이겠죠..
하지만 사랑하는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한다라는 말처럼.
자기가 많이 사랑해도 그것이 손해보는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때문이겠죠... 연애란 참 복잡해요&^&
좋은글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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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버섯공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복잡합니다. +_+
세상의 풍파(!?!?!) 가 서로의 사랑을 더 돈돈히 하는게 아닐까요...
누가 그러시던데..시간이 갈수록 반드시 "의리"는 필요하다고..ㅎㅎ^^
재미나게 잘보고 가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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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버섯공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오. 시간이 갈수록 반드시 "의리" 는 필요하다.
ㅎㅎ
감사합니다. ^^
사랑하면 먼저 손을 내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행복한 사랑 하며 사시길 바랍니다.ㅎㅎ
Reply:
사용자 버섯공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맞아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
멋진 부장님이시네요.
또 '먼저 손내밀다라'는 표현도 멋지고요.
말씀대로 만들어가는 사랑이 훨씬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Reply:
사용자 버섯공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그쵸? 만들어가는 사랑이 훨씬 많을 것 같아요.
음...쉽지만 어려운 얘기.
나이가 들면서 내가 손내밀었을때 안잡으면 두번세번 내밀기가 참.어렵습니다.ㅠㅠ
Reply:
사용자 버섯공주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아, 나이가 들면서,,, 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 ^^ 맞아요. 쉬운 듯 하면서도 어려워요. ㅠ_ㅠ
콩콩e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안녕하세요 또 방문했어요 ^^
저도 처음엔 남자친구가 먼저 손 내밀어 줬었는데...
지금은 시간이 꽤 지나고 나니 제가 조금은 더 사랑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차이라는것 때문에 쉽지 않은 사랑이라고 생각하여
먼저 손 내밀어 주긴 했지만...
늘 소극적인 남자친구와 처음 시작할때의 설레임이 느껴져
괜히 눈물이 찔끔 나네요ㅠ
아직도 연락이 없는 남자친구때문에 마음 아프네요..
그리고...
그때의 그 설레임 다시 느껴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