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의 “어디야?” 간섭에서 관심이 되기까지

연애를 하기 전, 연애에 한참 물올라 있는 친구들을 볼 때면 '연애에 대한 부러움' 보다는 '연애의 불편함'에 대해 생각하곤 했습니다.

"아, 어떡해. 미안. 나 지금 가 봐야 될 것 같아."
"엥? 왜? 이제 시작인데"
"남자친구가 시간이 너무 늦었다고 걱정해."
"뭐야? 우리랑 같이 있는 거 몰라?"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남자친구가 안절부절이야."
"뭐야. 이건 너무 지나친 간섭이야! 연애 하면 그런 점이 안 좋구나? 너 불편하겠다."
"응. 뭐… ."

친구들끼리 모여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깔깔거리며 웃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연애 하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점점 그런 시간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내 연애를 하면 나의 사적인 시간이 그만큼 줄어 드는 데다 이런 저런 상황마저도 연애 하는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에 어찌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구속이나 간섭이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연애, 꼭 부러워할 건 아니네' 라고 생각했었죠.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남자친구면 어차피 가족도 아니고 왜 저렇게 간섭 하는거지?"
"음. 글쎄. 그리고 지윤이도 그냥 편하게 '집'이라고 거짓말해도 될텐데, 아님 전화를 받지 말던지."


당시엔 혈연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이 누군가를 '남'이라는 한 단어로 축약시켜 머릿속에 간직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걱정하고 챙겨준다는 것에 대해 쉽게 받아 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으로 걱정해 주고 사랑해 준다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라는 생각마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연애 초기, 남자친구의 "어디야?" 라는 말에도 하나의 '간섭'이라 여기고 시큰둥하게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나 너 좋아해" 하지만 "넌 너고, 난 나야" 라는 생각이 컸다고나 할까요? 그러니 행동을 함에 있어서 거듭 생각하고 계산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습니다.
연애 초기, 그 사람의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겠죠.

"어디야?"
"집으로 가는 길이야"
(지금 만날 것도 아닌데 어디냐고 왜 묻는 거지?)
"친구들은 잘 만났어?"
"응"

하지만 연애 기간이 길어지고 함께 해 온 시간이 많아 지면서, 자연스레 상대방이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고 걱정해 준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상황은 역전이 된 듯 합니다.

늦은 시각, 밖에 나와 있다는 것을 아는 남자친구가 전화를 해 주지 않으면 되려 제가 토라집니다. 한 때는 지나친 '간섭' 혹은 '구속'이라고 여겼는데 말입니다.

'나 밖에 있는 거 알면서, 왜 전화를 안 하지?'

한참 뒤, 남자친구에게 전화가 오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습니다.

"어디야?"
"응. 나 아직 회식 자리야." (왜 이제야 전화했어. 얼마나 전화 기다렸는데…)
"시간 늦었는데, 걱정이네. 언제 들어가?"
"응. 회식이 길어져서, 아, 이제 다들 일어서는 분위기야." (역시, 우리 오빠, 날 걱정했구나)
"집으로 갈 때 전화해."
"응." (아, 믿음직스러워)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심심하거나 혹은 무서울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전화기 넘어 들려오는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습니다. 


가족이 아닌 한 남자(한 때는 남이었던)에게 듣는 "어디야?" 라는 이 한마디가 하나의 '간섭'이 아닌 '관심'으로 받아 들여진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남자친구의 "어디야? 시간 늦었는데 조심해서 집에 들어가."라는 말의 느낌은 가족에게 평소 듣던 "어디야? 시간 늦었는데 빨리 집에 들어와라."라는 말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문득 친구들과 새벽녘까지 함께 어울려 있던 그 때 했던 그 친구의 말이 떠오릅니다. "불편하겠다" 라는 말에 "응… 뭐…"라고 대답했던 그 마지막 한마디 속엔 "그래도 날 향한 남자친구의 애틋한 관심인걸. 괜찮아." 라는 의미가 숨겨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받으니 어떻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지 배우게 되는 듯 합니다. :)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