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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사수 실패한 남자, 그의 반전 드라마

· 댓글개 · 버섯공주

실로 많은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사람을 평가하기도 하고, 겉치레 정도를 보고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기도 합니다. 어제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 반전의 드라마를 직접 경험하고 왔습니다. 뭔가 아직까지도 그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합니다. 저도 사람이니까요. 하하.

"예전에 나 좋다고 쫓아 다녔던 사수생 기억나?"
"아, 수능 재수 준비하던 그 분?"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꼭 보고 싶다고 하는데 혼자 보기 그래서 여기로 불렀어"
"야, 불편하게 여기로 부르면 어떡해"

그 사람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그 자리로 그 사람을 서슴없이 부른 이유 또한 모두 그 사람을 한 자리에서 같이 만난 적이 있는데다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죠.

"요즘 소식은 들었어?"
"에휴. 사수도 실패했다고 하더라구"
"어떡해. 그래서 지금은 뭐한데?"
"휴. 취직했냐고 물으니까 그냥 웃더니 취미로 음악 들으면서 바느질 한대."
"헐. 아직 취직 못한 거 아닐까?"


제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사수를 준비하던 남자분은 늘 청바지 차림에 면티를 입고 두툼한 책가방을 항상 메고 있었던 모습입니다. 어쩌면 5년이나 지나고 나서 만나는 자리임에도 제 머릿속엔 그때의 그 이미지를 떠올리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순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슬로우 모션으로 세련된 패션의 근사한 한 남자가 이쪽을 향해 걸어왔습니다. 처음엔 그냥 얼핏 보고 넘겼는데 가만 보니 이 남자, 그때 그 남자입니다. 저도 모르게 속으로 '헉!'을 외쳤는데요. 사수에 실패하고 음악 들으면서 바느질 한다던 이 사람.
설마 겉멋만 잔뜩 들어서 저렇게 다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던 찰라.

"오랜만이죠?"

라는 인사와 함께 건네는 명함.
사수 실패 후, 베트남으로 떠나 베트남에서 옷 가게를 열어 현재 1년 여 정도 된 시점이라고 소개를 하더군요. 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친구들 모두 멍- 해 짐을 느꼈을 듯 합니다. 너무나도 세련된 패션 감각을 자랑하더니 그런 비밀이 있던 것이더군요. 이제 더 이상 사수생이 아닌, Director 라고 쓰여진 명함을 가지고 다니는 한 회사의 어엿한 주인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꽤나 큰 규모의 옷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다 베트남 외에도 여러 국가에 연락이 와서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다른 사업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는 말을 건넸습니다. 왜 하필 저희가 있던 자리도 베트남쌀국수 전문점이었던걸까요.


메뉴판을 보던 이 남자.

"호아빈이 무슨 뜻인 줄 알아요?"
"아…아뇨…"
"'화'라는 뜻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꽃이라는 의미로도 쓰여서 꽃병이라는 의미가…(중략)"

사수 준비를 하면서 영어도 못해서 고생하던 그 남자. 이제 더 이상 그때의 그 남자가 아닙니다. 베트남어는 물론, 영어까지 능수능란하게 하는 멋진 남자가 되어 돌아왔으니 말입니다.


사수 실패 후, 모진 고생을 하며 1년 여간 악착같이 공사판에서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오로지 베트남을 가겠다는 목표 하나만으로 말입니다. 그리곤 베트남으로 가 우연히라도 만나게 되는 한국인이 있다면 가까워 질 법도 한데, 말을 삼가고 최대한 현지인과 가까워 지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한국 식당도 한번쯤 찾을 법 한데 뚜렷한 목표의식으로 한국 식당도 멀리했다고 합니다. 최대한 현지인의 식생활이나 문화에 더 깊게 젖어 들기 위해서였다고 하네요. 그런 외로운 생활을 한 지 6개월 만에 베트남어로 현지인과 대화하는데 무리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후, 본인이 좋아하던 분야로 사업을 펼치고 싶었던 터라 적은 자본금으로 시작한 것이 베트남에 건물을 마련하여 오픈하게 된 한국 옷 가게.

사수실패생. 혹은 취직 못하고 음악 들으며 바느질 하는 남자.

네. 직접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우리 모두는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헌데, 이상하게 그 남자분을 마주하며 지금까지 지내온 생활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뭔가 속이 후련하더군요.

인생에 있어 학력이 전부가 아니다. 취직 못하는 게 삶의 실패는 아니다. 삶의 목표가 뚜렷한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당시 남자가 사수 준비를 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뻥 차버렸던 제 친구도 그렇게 멋진 모습으로 돌아온 그 남자분을 보니 뭔가 마음이 흔들렸나 봅니다.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실연을 당해 그렇게도 아파하더니 말입니다. 그 남자분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입니다.

"공사판에서 일을 하면서도 종종 너 생각이 많이 났어. 많이 보고 싶었어. 그런데 이런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면 떳떳하지 못하잖아. 난 좀 더 떳떳한 모습으로 너 앞에 나타나고 싶었거든. 정말 악착같이 일했어. 그래도 지금 이렇게 조금이나마 떳떳한 모습으로 너 앞에 나타날 수 있어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하면 할수록 한편의 반전 미니 드라마가 생각나는 듯 합니다.

드라마 보다 더 드라마 같은 그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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