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연애, 남자친구에게 문득 미안해진 이유

남자친구와 연애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런 저런 소소한 에피소드가 많이 생겨나는 듯 합니다. 더불어 연애 기간이 길어 지다 보니 연애 초기의 마냥 여성스러운 모습에서 벗어나 이런 저런 다양한(때로는 피폐한) 모습을 남자친구에게 보여주는 듯 합니다.


연애 초기, 데이트를 시작하고 그 데이트가 끝날 때까지 초지일관 예쁜 화장에, 예쁜 옷에, 최대한 여성스러움을 간직한 채 그야말로 좋은 모습, 예쁜 모습만 보여 주려 했던 때와 달리 이제는 피곤하면 피곤한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그대로 떡 하니 남자친구 앞에 나타나니 말입니다. 남자친구와 연애를 처음 할 당시만 해도 장기간 연애해도 "난 절대 안그래야지!" 라고 생각했었는데 말이죠.

얼마 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자리이다 보니 평소 하지 않던 화장을 곱게 하고 역시 최대한 제 몸의 약점을 가려주는 옷을 고르고 골라 차려 입고 나갔습니다. (가린다고 가려질 리는 없겠지만 말이죠. 끄응-)

"너네 언제 결혼해?"
"남자친구랑 사귄 지 얼마나 됐지?"
"오늘도 우리랑 헤어지고 나면 남자친구 만나러 가겠네?"

그렇게 친구들과 한참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보니 문득, 남자친구에게 오랜만에 지금의 이 예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럴 만도 한 것이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남자친구 앞에서 이렇게 화장을 정성스럽게 하고, 옷을 갖춰 입고 데이트 해 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하더군요. 회사 일이 끝난 후, 질끈 묶은 머리와 화장이 거의 다 지워진 모습 혹은 과감한 쌩얼로 데이트 하는 시간이 많았으니 말이죠. 연애 초기엔 이런 모습을 남자친구에게 보여 주게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 오랜만에 이렇게 예쁘게 꾸몄는데 남자친구를 만나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 남자친구에게 싱글거리며 전화를 걸었습니다.

"나 이제 친구들이랑 헤어졌어. 중간에서 만나자!"

그렇게 만나기로 약속을 잡은 후, 남자친구보다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한 후, 화장실로 냉큼 들어가 화장이 예쁘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더 확인하고 옷 매무새를 확인했습니다. 남자친구를 만나면 남자친구가 "평소에도 예쁘지만, 오늘따라 더 예쁘다!" 라는 말을 해 줄 것이라는 묘한 기대감에 들 떠서는 남자친구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제가 기대한 그 말 한마디 해주면 뽀뽀 백 번이라도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마음으로 말이죠.

"오빠, 오빠, 오늘 나 예쁘지?" (예쁘다고 말해줘!)

오랫동안 이런 예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터라, 분명, 감탄사를 연발하며 예쁘다고 해줄 것이라 기대했던 저의 기대와는 달리…

"응. 예뻐. 근데, 너, 왜 평소에 나 만날 때는 이렇게 안 꾸며?" (어라, 그러고 보니 친구들 만날 때만 꾸미네?)

헉! 뭔가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 제가 기대했던 "평소에도 예쁘지만, 오늘따라 더 예쁘다!"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기막힌 반전인 거죠.

"뭐야. 그럼 평소엔 안 꾸며서 싫구나?"

냉큼 어떻게 해서든 분위기를 제 쪽으로 유리하게 유도하려 했지만, 너무나도 억지스러우면서도 유치한 저의 말에 제 스스로도 민망하더군요.

"아니야. 아니야. 그건 아니지. 안 꾸며도 예뻐."

삐친 척 하며 토라지는 제 모습을 보고(삐친 척 하는 연기는 대상감입니다) 그제서야 안 꾸며도 예쁘다고 말하는 남자친구가 그리 얄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진작 그렇게 말해주면 얼마나 좋아?'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문득, 연애 기간이 결코 짧지 않은 만큼 너무 편하다 보니 정말 너무 편한 모습만 보여준 게 아닌가 싶더군요.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남자친구의 말대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거나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왜 내가 가장 아끼고 좋아하는 남자친구에게는 예쁜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지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기간 연애를 하다 보니 이 편안함과 익숙함이 너무 좋은 나머지 긴장감을 놓치기 쉽습니다. 새삼 남자친구에게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처음엔 '뭐야!'(발끈) 라고 생각했는데 긴장감을 놓고 편하게 행동한 제 모습을 돌아보게 되네요. 장기간 연애의 편안함도 좋지만 첫 데이트 당시의 설레임도 무척 좋았으니 말이죠. 초심 잃지 말기! 이 문구가 연애에 있어서도 예외없이 적용되는 듯 하네요.

+ 덧) 내심 벼르고 있습니다.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면 언젠간... 나도 외쳐야지... "왜 평소에 나 만날 때는 이렇게 멋있게 안하고 와?" -_-;;; 라며...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