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스토커 – 스토커와 애인은 한 끝 차이

평소 같음 굳이 모르는 번호가 찍힌 부재중 전화를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지 않았을 텐데 그 날 따라 왜 확인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남겨진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제 폰으로 전화를 거신 분…이…" 라고 이야기를 건네는 순간, 좀처럼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낮은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야. 널 찾으려고 여기저기 웹사이트 찾아보고 난리도 아니었어."
"메신저에 등록되어 있던 게 생각나서 형이 쓰지 않던 메신저를 다시 로그인 해서 찾아 보고..."

"음… 누구세요?"

상대편에서는 뭔가 들떠서 오랜만이라고 반갑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좀처럼 누구인지 감을 잡을 수 없는 터라 누구세요? 라고 묻는 것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더군요. (초등학교 동창인가? 대학교 동아리 선배인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아, 나 기억 안나? 기범이(가명) 오빠야."
"아, 기범이 오빠, 아, 기억나요. 안녕하세요."

그래- 그래- 라며 웃으며 보고 싶었다며 이야기를 건네는 이 사람은, 대학교 동아리 선배의 동생이었습니다. 동아리 선배에게 전달할 이야기가 있어 메신저로 이야기를 건넸다가 그 동생이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었던 터라 '형 자리 비웠어요' 로 시작된 우연 혹은 필연적인 만남이었죠.


(한 노트북으로 동생과 형이 함께 번갈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더군요. 마침 동아리 선배는 메신저를 끄지 않고 노트북을 동생에게 전달했었나 봅니다.)

그저 동아리 선배의 동생으로만 기억되어 있던 이 사람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를 다르게 받아 들였었나 봅니다.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놀다 집으로 향하던 길, 집 문 앞에 놓여진 까만 봉지(과일이 담겨 있었죠)를 보고 '뭐지?' 하며 봉지를 들여다 보는 순간, 느닷없이 뒤에서 '서프라이즈!' 를 외치는데 함께 있던 친구들을 비롯해서 모두 기겁했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 오던 모습도 다 보고 있었다는 말에도, 알려 주지 않은 집 주소를 어떻게 알아낸 건지도, 그 모든 것이 무섭기만 했습니다. 이런 일이 세 차례 정도 거듭되었습니다. 이미 당시 제게는 남자친구가 있음을, 그리고 그 남자친구가 누구인지도 뻔히 아는 사람이 그런 다는 것이 더 무서웠는지도 모릅니다.


메신저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던 '동아리 선배' 와의 대화는 어느 순간부터 대화명을 보고도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밥 먹었어?' 라고 인사를 건네는 이 사람이 동아리 선배일까? 혹은 동생일까? 하며 말이죠.

그리고 어느 날, 메신저로 더 이상 동아리 선배의 동생이 아닌, 연인이 되고 싶다던 그의 말에 '정말 이건 아니다' 싶어 연락을 끊고 메신저도 차단해 버렸습니다.


'넌 그 남자와 어울리지 않아' '그 사람보다 내가 더 잘 해 줄게' 와 같은 말을 듣고서 든 생각은 '멋지다'가 아닌, '이 사람, 스토커인가?' 라는 생각이었습니다.

동아리 선배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메신저를 차단했음을 알렸습니다. 대화명으로 보면 동아리 선배를 차단한 것이지만, 제가 차단하고자 했던 사람은 동아리 선배가 아닌, 그의 동생이었죠. 그렇게 잊혀진 사람이었는데 5년이 지난 시점에 다시 연락이 온 것입니다. 이전에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제대를 하고 난 직 후였던 지라,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했고 마침 네가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들어주는 상대로 자리매김한 것 같다' 라고 말이죠.

온라인상으로 맺은 인연이 이 사람에게는 제가 상상했던 그 이상으로 소중했던 모양입니다. 실제 얼굴을 마주 한 적은 기껏 해 봐야 동아리 모임에서 세 번 정도였는데 말이죠. 제겐 그저 세 번 정도 얼굴을 본 사람, 혹은 동아리 선배의 동생으로 기억되는 이 사람이 그 사람에게는 온라인 상으로 우연히 만난 운명적인 첫사랑, 제대 후 외로웠던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 준 사람으로 기억되었나 봅니다.

"지금 시간이 너무 늦어 길게 통화 못할 것 같아요." 라고 황급히 마무리를 지으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잠깐 통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제 머릿속에는 '남자친구한테 전화오기로 했는데, 빨리 끊어야지' 라는 생각이 가득했던 반면, 그 사람의 머릿속에는 '정말 오랜만이다. 반갑다. 잘 지냈어?' 라는 생각이 가득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메신저 추가 해줘" 라는 그의 말에 이전의 기억이 떠올라 더욱 몸서리쳤습니다.

온라인으로 우연히 만난 사람. 무척이나 따뜻한 사람이라는 기억과 함께 기억되어 있는 '스토커처럼' 이라는 단어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다가가는 법, 누군가에겐 스토커로 보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사랑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는 거겠죠.


제가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제게 그러한 행동을 했더라도 '스토커 같다' 라고 생각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넌 그 사람이 '스토커 같아서 싫다' 라고 말했지만, 결국 네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그 사람을 '스토커'라고 이야기 한 거야."

새삼, 친구의 말이 떠오르네요. 스토커, 그야말로 애인과 한 끝 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