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말하다/워킹맘 육아일기

폭풍오열, 가족 동반자살 표현 쓰지 말자 - 꼬꼬무 19회 2인조 카빈 강도 사건 리뷰

사용자 버섯공주 2021. 7. 21. 07:00
반응형
SMALL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멈칫 하며 보게 된 '꼬꼬무2' -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SBS에서 본방을 하는 듯 하고, 제가 본 건 재방송이었는데요. 세 명의 이야기꾼이 스스로 공부하며 느낀 바를 각자 자신의 지인에게 전달하는 형식의 방송프로그램 입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기 전까지는 '아이'라는 존재에 대해 그리 깊이 생각을 가지지도 않았고, 감정 이입을 그리 할 일이 없었습니다만. 역시 부모가 되고 나니 내 아이가 아님에도 다른 아이들을 보고도 절로 미소를 짓게 되고 '아이는 참 귀한 존재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더군요. 그럼과 동시에, 내 아이의 일이 아님에도 아이와 관련된 어떤 사건이나 사고 뉴스를 접할 때면 크게 감정이입을 하여 열을 내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그렇게 바뀐 것 같아요.

느즈막히 점심밥을 먹으면서 보게 된 꼬꼬무2. 19회 2인조 카빈 강도 사건. 의도치 않게 밥을 먹으면서 봤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이 밥인지, 눈물인지지 알 수 없었던 상황. 후반부에선 밥 먹기를 포기하고 대성통곡 했습니다.

잠깐 봤을 땐, 2인조 카빈 강도 사건에 대해 나오길래, 단순 강도 사건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거라 생각했었는데요. 두 강도는 모두 비슷한 시기에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한 가정의 아빠이더군요.

경찰의 추격끝에 극박한 상황에 도달하자 강도 1인은 자신이 있는 곳으로 가족을 끌어들여 자신의 아들을 총으로 살해하고 자살을 선택하고 또 다른 강도 1인은 가족이 있는 집으로 직접 찾아가 자신의 두 아이와 아내를 인질로 삼아 17시간 이상 경찰과 대치하다가 끝내 두 아이를 살해하고 자살을 택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더군요.

동반자살? 아이들도 과연 동의한 자살인가?

문제는 뉴스나 각종 미디어에서 이 상황을 두고 '동반자살'로 표현한다는 점이었는데요. 뉴스를 통해 각종 생활고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견뎌내지 못해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또는 '동반자살'을 시도했으나, 아이는 죽고 엄마만 살아 남았다, 또는 산후우울증으로 인해 어린 아기를 안고 뛰어내리며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등의 뉴스를 쉽게 접합니다.

그러고 보면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은 보통 같은 마음, 같은 의지로 행동을 할 때 '동반'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것 같은데 말이죠. '동반자살'이 아닌, 일방적인 '살해' 후 '자살'이 아닌가 싶은데요. 실제로 '동반자살'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단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는 '살해 후 자살' 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하네요. 

우리나라 형법에는 살해한 자에 대해 최소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으며 자신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해서는 최소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패륜 범죄로 가중 처벌을 받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를 살해했을 경우에 대해서는 가중 처벌은 없습니다.  

제250조(살인, 존속살해) ①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개정 1995.12.29>

오히려 부모가 자녀를 살해했을 경우 정상참작으로 감형까지 된다는 사실! 실제로 동반자살에 대한 처벌은 불우한 어린 시절, 육아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죗값을 제대로 치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최근 20년 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동반자살은 총 247건. 1년에 15건 정도가 일어나는 꼴이었다고 하는데요. 대부분 피해자는 9살 이하의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방송에서 모델 이현이씨가 그런 표현을 하더군요.

"아이들이 사회에서 가장 약한 존재인데 의지대로 살지도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도 못하고 부모라는 사람에게 당하는 거다. 그 어떤 사건 사고 보다도 부모에게 당하는 아이가 이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

이현이씨 표현에 너무 공감했고, 너무 눈물이 났어요. 

앞부분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후반부 밖에 보지 못했지만, 각종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게 되는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 힘든 세상, 부모 없이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걱정되어 내 손으로 직접 아이들을 죽이고 나도 뒤따라간다.' 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서부터 이미 '자식'을 하나의 '소유물'로 생각하기에 그런 것 아닌가 싶습니다.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직도 자신이 낳은 아이라는 이유로 하나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아 벌어지는 사건, 사고가 너무 많네요.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일까?

방송을 보며 부모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난 아이에게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까? 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떤 일에서건 자녀를 하나의 온전한 인격체로 보고 아이의 의사를 많이 존중해줘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꼬꼬무 방송에서 동반자살 사건을 재판했던 한 판사의 판결문을 공개했습니다. 너무 와닿는 판결문이라 소개합니다.

우리는 살해된 아이들의 진술을 들을 수 없다. 동반자살은 가해 부모의 언어다. 아이의 언어로 말한다면 이는 피살이다. 법의 언어로 말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살인이다. 동반자살이 아니다. 동반자살이라는 단어에 숨겨진 우리 사회의 자롯된 인식을 걷어낼 필요가 있다. 참담한 심정으로 애통하게 숨져간 아이의 이름을 다시 부른다. 이 이름이 동반자살이라는 명목으로 숨져간 마지막 이름이기를 희망한다.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야만 그런 세상에 도달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많은 아이들이 살해되어야 하는가. 아직도 숫자가 부족한가. 세상을 일깨우기 위한 희생은 최초의 한 아이로도 이미 충분했다. 부족한 건 언제나 행동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