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17년 차, 워킹맘 부장 승진 후 느낀 점
새벽 5시면 망설임 없이 일어나던 어머니의 모습을 기억한다. 단칸방에서 세 모녀가 함께 자는 것이다 보니 알람 소리에 나도 눈을 잠시 뜨긴 하지만, 혹여 그 알람 소리에 딸들이 깰 새라 부랴부랴 알람을 끄고 벌떡 일어나 쌀을 씻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듯하다. 중학생이던 나와 당시 초등학교 저학년인 동생을 위해 그렇게 아침마다 쌀을 씻어 갓 지은 밥을 밥상 위에 내어 놓으셨다. 아침밥을 굶고 학교를 간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부지런하고 배려심 많은 어머니 덕분에 두 딸은 아쉬울 것 없이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인 나는 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며 '부지런해지자'를 되뇐다. 어머니의 반의 반만 닮아도 좋겠다며 말이다. 보통 딸은 엄마를 닮는다는데, 나의 이 게으름은 좀처럼 어머니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는 것도 겨우 일어나다시피 한다. 정작 결혼 전에는 5시 30분이면 일어나 새벽 수영을 다니곤 했었는데 결혼 후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게을러진 건지, 내 몸 하나 가누기도 버거워진 건지 알 수가 없다.
직장생활 15년이 넘어가니 이제 내가 16년 차인지, 17년 차인지, 18년 차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부장 승진이 발표 나자마자 어머니께 제일 먼저 소식을 전했다. 내가 여기까지 이렇게 온 건 어머니표 따뜻한 밥 덕분이라는 생각이 커서 말이다.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했던가. 나의 유년기부터 학창 시절, 결혼하기 전까지 단 하루도 끼니를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챙겨주신 어머니 덕분에 밥심으로 이렇게 내가 사회생활을 오래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말이다.
나는 운이 참 좋다. 비록 힘든 환경에 놓일 지언정, 강인하고 부지런한 어머니 덕분에 감사하며 어머니를 본받고 쫓아가고자 애쓰느라 삐딱선 타지 않고 잘 살아온 듯하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지금까지 좋은 상사들을 만나 큰 어려움 없이 직장생활을 잘해 온 듯하다. 무엇보다 연차만 차곡차곡 쌓은 게 아니라, 연차에 맞춰 나의 커리어도 차곡차곡 쌓아 왔다는 점에서 특히나 상사에게 감사하다. 정확하게는 첫 회사이자 전 직장에서, 그리고 이제는 이직한 후 자리매김하고 부장으로 승진한 현 회사의 직장 상사에게도 무척이나 감사하다.
부장으로 승진하며 느낀 감개무량함
신입사원에서 대리로 승진할 때 느꼈던 그 감개무량함을 차장에서 부장으로 승진할 때 또 한 번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아마도 사원에서 대리로의 승진이 첫 승진이라 크게 와닿았던 것처럼 부장 승진은 직원으로서의 마지막 승진이라 느껴서 첫 승진 때처럼 기분이 남달랐던 것 같다. 직원의 끝단에 서서 임원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이제 나의 목표는 너무 늦지 않게 임원 승진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기 전까지만 해도 하루 왕복 5시간 장거리 출퇴근이다 보니 신랑에게 과연 내가 언제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불안감이 가득했는데, 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이후로는 '나 임원 꼭 될 거야!'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한 때는 '임원? 과연 내가?'라는 의구심이 가득했으나, 이제는 시기의 문제이지, '내가 과연 임원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없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엄마, 승진했어! 축하해줘야지!" 라는 아빠의 말에 아이들 반응은 영 시큰둥하다.
"승진이 뭐예요?"
"음... 레벨 업! 아, 축복이 태권도 띠 바뀌는 것처럼, 한 단계 레벨 업 하는 거야!"
"아...! 엄마 띠가 바뀌었구나! 다음 단계로 갔구나. 레벨 업! 축하해요!"
아이들이 손뼉 치며 축하해 주는 모습에 다시금 마음을 굳게 먹게 된다. 새벽 5시면 어김없이 두 딸을 키워내기 위해 홀로 조용히 일어나 고군분투하셨던 어머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워킹맘의 1년 사이 두 번의 이직
16년 가까이 한 회사를 다니다가 이직을 결심한 후, 1년 사이 난 두 번의 이직을 했다. 편도 2시간 30분, 왕복 5시간을 길에 허비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하고 있었으나 애써 모르는 척하며 직장생활을 했다. 집과 회사가 10분 거리였다가 갑자기 너무나도 멀어져 버려 애를 먹었다. 그래도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업무에 전혀 어려움이 없어 버티고 버티며 다녔다. 그러나 두 아이가 커감에 따라 엄마로서의 역할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들어 이직을 결심했다. 문제는 첫 이직을 한 후, 전 직장과 너무나도 다른 분위기에 좀처럼 적응할 수가 없었다. 회사와 집과의 거리는 가까워졌고 급여 수준도 상당 수준 올라 만족스러웠으나 자꾸만 마음은 전 직장으로 향해 있었다.
그 무렵, 난 전 직장에 다니던 친구들에게 '이직 절대 하지 마!'라는 말을 해 주었다.
그리고 5개월 남짓 버티다시피 하다가 다시 이직을 했다. 다행히 첫 직장과 비슷한 분위기에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더 멋진 분들이 많았다.
다시 난 그 무렵, '이직하니까 너무 좋아!'라는 말을 해 주었다. 결국, 자신에게 맞는 직장을 얼마나 잘 찾느냐가 관건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상사 복이 많아 첫 직장에 이어 이번 직장의 상사분도 너무나도 스마트하고 멋진 분이다. 입사할 때 회사에서 주는 선물 외 상사분이 직접 사비를 털어 선물을 건네주셔서 인상적이었는데 이번엔 진급했다고 선물을 건네주셨다.
첫 아이가 입학하니 축하한다고 또 사비로 선물을 건네주시고 생일이면 또 선물을 사비로 준비해 주신다는 이야기를 팀원에게 전해 들었다.
이런 상사가 얼마나 될까. 참 감사한 일이다.
첫 이직을 했을 땐 첫 직장이 좋았다며, 이직 괜히 했다며 하소연을 하더니 두 번째 이직을 하고 나니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였다며, 이 회사 너무 좋다며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운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신랑은 역시,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족도가 높은 이 회사에 오기까지, 결국 한 번이건 두 번이건 이직이라는 관문을 통과하였기에 도달할 수 있는 것. 만약 끝까지 첫 회사의 익숙함과 편안함을 고집하며 왕복 5시간을 버려가며 그 회사에 계속 다니고 있었다면 결코 지금의 이 회사, 이 자리에 오지는 못했을 것이다.
요즘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회사일이 지금 한창 바쁜 때라, 겨우 겨우 조금의 시간을 할애하는 정도이지만 회사 업무 관련 서적을 읽기도 하고 초등 교육에 관한 서적과 독서 교육 방법에 대한 책을 읽고 있다. 직장인으로서의 역할과 엄마로서의 역할을 모두 놓치지 않기 위한 가장 쉬운 발버둥을 하고 있는 셈이다.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나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