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말하다/워킹맘 육아일기

결혼 배우자 선택 기준, 나보다 배운 사람이어야 했던 이유

버섯공주 2023. 2. 15. 07:00

연애를 할 때도, 결혼을 할 때도 이성을 볼 때 한 가지 기준이 분명히 있었다.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일 것. 나는 성격이 그리 좋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에, 분명 나보다 못난 사람이라고 인지하는 순간 그 사람을 깔보거나 그 사람을 제대로 존중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그런 상대방과 결혼을 하면, 결혼생활은 얼마 못갈 것이 뻔한. 지금은 멋진 한 사람과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지금까지의 인연을 되짚어 보면 모두 하나 같이 내가 존중할 수 있는 멋진 사람들이었다.
나의 모난 부분, 부족한 부분을 메워 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 끝판왕이 지금의 내 남편이자, 내 마지막 남자친구이다.

얼마 전, 아이들을 데리고 근교의 쇼핑몰로 나가 식사를 했다. 식당 내 좌석에 손님이 꽉 차 있었는데 쇼핑몰 내 위치한 식당이다 보니 개방된 좌석이라 자칫 너무 가까이 붙어서 기다리면 오히려 식사하고 있는 분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 조금 떨어져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 활동성 많은 미취학의 남매를 데리고 대기하는 것이다 보니 어서 자리가 나길 바라며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영어 원서 책을 들고 있는 어느 한 남성분이 우리 앞을 새치기 하듯 서는 모습을 목격했다. 우리가 대기하고 있는 게 뻔히 보였을 텐데 우리가 너무 멀찌감치 서 있었던건지, 자연스레 새치기 하듯 앞서 서는 모습에 무척 당황했다.

'배울 만큼 배운 분 같은데 저러면 안되지!'

한창 활동성이 넘치는 두 아이는 언제 식당에 들어가냐며 이제 들어가면 되냐며 발을 동동 굴렸다. 정신이 없는 와중, 식당 내 테이블 빈 좌석이 났고 아니나 다를까 뒤늦게 온 남성분이 자리를 차지하려고 성큼 성큼 걸어가는 듯 했다. 아이들과 서서 기다린 시간이 억울해 쏜살같이 달려가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뒤늦게 온 손님에게 어이없게 자리를 뺏길 뻔 했다며 다행이라고 신랑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식당 입구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4명이 기다리고 있는 걸 뻔히 봤으면서 어떻게 새치기를 하려 하냐며, 속으로 그 손님을 험담하면서 말이다.
조금 뒤, 메뉴를 선택하고 주문을 하기 위해 신랑이 카운터에 갔다가 돌아오며 내게 이야기 했다.

결혼 배우자 선택 기준, 나보다 배운 사람이어야 했던 이유
자리를 먼저 차지 하는 사람이 임자?



"아무래도 우리 실수한 것 같아. 저 분 우리보다 먼저 와서 기다리셨던 것 같아. 손에 진동벨이 있어. 그리고 지금 저 분 음식도 나온 것 같아."
"응? 무슨 말이야?"

이럴수가! 영어 원서 책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손에 들려 있던 작은 진동벨이 이제야 보였다. 저 손님이 새치기하려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뿔싸, 우리가 새치기를 한 셈이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테이블에도 자리가 나서 그 분이 자리를 앉았다. 뒤이어 어디론가 통화를 하는 듯 하더니 우리 아이들 또래로 보이는 세 명의 아이와 그의 아내가 테이블에 앉았다. 어쩌나. 아이 셋이 있는 아버지였다. 혼자 밥 먹으러 와서 새치기를 한 손님이 아니라, 애초 우리보다 먼저 왔었고 딸린 가족이 많다 보니 따로 먼저 와서 주문하고 빈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 올랐다. 죄송하다고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되었다. 그 와중에 신랑은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 같더니, 카운터로 가서 음료를 주문하는 듯 했다.

얼핏 뒷모습을 보니 콜라와 사이다 등 우리 가족이 먹기엔 좀 많은 양을 주문하는 듯 했다.

'난 저쪽 테이블 때문에 너무 민망하고 창피해서 음식도 제대로 안넘어갈 것 같은데, 음료는 왜저리 많이 시키는거야.'

아니나 다를까, 신랑은 주문한 음료와 컵을 가지고 직접 아까 그 손님의 테이블로 갔다.

"너무나도 죄송합니다. 저희가 좀 오해를 한 것 같아요.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는 건 줄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음료를 건네며 고개 숙여 정중하게 사과 인사를 하는 신랑의 모습에 이미 결혼한 내 남편이지만, 뿅 반했다. 정중하게 사과를 하고 신랑이 돌아 오니 두 아이는 의아해 하며 질문을 퍼부었다.

"엄마, 아빠가 저기 계신 손님들에게 잘못 한 게 있어서 사과드렸어. 자세한 건 나중에 저기 계신 손님들 가시고 나면 설명해 줄게. 지금은 밥 먹자."

결혼 배우자 선택 기준, 나보다 배운 사람이어야 했던 이유


"새코마, 나도 사과는 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사과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어. 식사중인데 대뜸 가서 사과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고, 식사 다 드시고 나서 나가실 때 죄송하다고 하기도 그렇다는 생각에 말이야."
"음식 주문하신 걸 보니까 음료는 주문안하신 것 같더라구. 우리 음료수 주문하면서 저 테이블 음료수도 같이 주문해서 가져다 드리면 되겠다 싶어서 가져다 드리면서 사과했지. 너무 죄송해서."
"난 영문 원서도 읽으실 정도로 배우신 분이 왜 새치기를 하실까?라고 생각했어. 그게 아니었네."
"'배우신 분' 맞지, 다만 우리보다 훨씬 더 배우신 분이었던 거지. 어찌보면 우리가 먼저 테이블에 앉았을 때, 바로 ‘내가 먼저 온거다. 비켜달라.' 라고 할 수 있는건데 아무 말 없이 그냥 묵묵히 기다리신 거니까."

신랑의 사과 방법이나 이후 그 분을 향해 우리보다 더 배우신 분이라고 표현하는 모습을 보며 내 눈은 신랑을 향해 더욱 찐 하트를 그렸다.

그리고 실제 신랑의 말처럼, 그 분은 정말 많이 배우신 분이었다. 식사를 하고 나가시면서 다시 한번 우리를 향해 ”사실 제가 이야기 하지 않으면 제가 먼저 왔는지 어떤 지 알 수 없는 거였잖아요. 덕분에 음료수 잘 먹었습니다.“라며 기분 좋게 인사를 하고 나가셨다. 대인배다. 덜덜.

결혼 배우자 선택 기준, 나보다 배운 사람이어야 했던 이유
문제를 직면하면 두려워하기보다 해결방법을 빨리 모색해야 한다

그 분을 향해 "죄송합니다"를 연신 내뱉던 나와 신랑이 낯설었던지, 두 아이가 다시 물었다. 엄마, 아빠가 뭘 잘못했냐고, 왜 죄송하다고 하냐고 말이다. 저 분에게 큰 실례를 하였기 때문에 죄송하다고 사과 한 거라고 설명해 주었다. 누군가에게 잘못했으면 엄마, 아빠도 이렇게 사과를 한다는 것을 알려주며 애초에 잘못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혹여 잘못을 했으면 바로 사과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생각에 잠겼다. 배운 사람과 배운 사람이 만나니 자칫 감정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일도 이렇게 젠틀하게 해결할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난 그 상황에서 신랑처럼 즉각적으로 사과할 수 있었을까.

속으로 어머, 어떡해… 내가 실수했네… 민망하다… 창피하다… 어떻게 사과하지? 고민만 하다가 어영부영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하지 않았을까. 나에게 없는 신랑의 그러한 용기에 다시금 무한한 존경심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또 한 번, 나의 배우자 선택 기준에 나 스스로 감탄을 하며... 역시 난 나보다 나은 사람, 나보다 배운 사람,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는 게 맞았던 거다. 내가 그만큼 부족한 사람이니 말이다. 세상에는 멋진 사람이 참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