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경제관념 키우기, 아이들이 본 엄마는 '황금알 낳는 거위' 수집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수유동 내 허름한 빌라에서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정작 직장은 당시 경기 남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수유동 내 빌라 전세가가 상당히 저렴해 새벽같이 일어나고 밤늦게 퇴근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나는 장거리 출퇴근을 했다.
고향은 서울이 아니었으나, 대학생활을 위해 내가 먼저 서울에 자리를 잡았고 뒤따라 동생도 수능을 치르고 대학생활을 위해 서울에 올라오면서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집안 내 가장이라는 생각에 어깨는 늘 무겁기는 했으나, 특히 여동생이 나와 여섯 살 차이가 나다 보니 함께 커 가는 동생이라는 느낌이라기보다 내가 보살펴 줘야 하는 딸 같은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수유동 빌라는 상당히 오래된 낡은 빌라이다 보니 방음이 잘 되지 않았고, 층간 소음도 상당히 심했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니 헉 소리 나오는 집 값에 깜짝 놀라 집을 살 생각은 차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감당 가능한 만큼의 전세자금대출 이자를 부담하며 나름 만족하며 빌라 생활을 이어나갔다. 아마, 그 사건만 없었어도 평생 내 집 마련은 남의 이야기라며 밀어내고만 있었을 것이다.
어느 날, 출근을 하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집을 나오는데 현관에 붙어져 있는 험악한 메모를 보고 경악을 했다.
'나는 밤낮이 바뀐 사람이라 낮시간에 잠을 자야 하고 밤에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낮시간에 왜 그리 쿵쿵거리나. 칼 들고 올라가서 죽이기 전에 조용히 해라. 한 번만 더 쿵쿵거리면 가만있지 않겠다.'
대략 이러한 내용이었는데, 동생과 엄마가 혹여나 그 쪽지를 볼 세라 냉큼 그 메모를 꼬깃꼬깃 접어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어머니께 "다녀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세상이 흉흉하니 문단속을 당부하고 낯선 사람에게 문을 열어주지 말라는 말만 하고 말이다. 그날을 기점으로 나는 매일매일 직장 근처 집을 알아보며 은행과 부동산을 오가며 내 집 마련을 좀 더 구체화시키고 현실화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때 처음 알았다. 집 값이 5억이면 내게 5억 현금이 모두 있어야만 집을 살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대출이라는 개념에 대해 그때 처음 눈을 뜬 것이다. 회사에서 주택 마련을 계획하는 직원에게 저리로 주택매매자금대출을 지원해주고 있어 회사의 대출과 나의 신용대출, 그리고 구매하려던 아파트 담보대출까지 모두 실행시켜 내 집 마련을 했다.
가지고 있던 현금 일부에 나머지는 가용 가능한 모든 대출을 실행시켜 경기도에 24평의 아파트를 2억 원 남짓 주고 구매했다. 회사와의 도보 거리 10분에 위치한 아파트로. 생애 첫 주택자금대출이라는 좋은 제도가 있어 상당히 저렴한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취득세도 면제대상이었기에 추가로 들어가는 돈 또한 없었다. 평소 저축은 상당히 어려워하는 나였는데, 대출을 실행시키니 대출이 주는 묘한 부담감이 있어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대출을 갚을 수 있을지 더 긴장하고 소득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을 더 강구하게 되었다. 성실하지 못한 내겐 저축보다는 대출이 더 잘 맞는 재테크였다. 대출원금을 갚고, 대출이자를 줄여 나갈 때마다 힘이 났으니 말이다.
수유동 그 오래된 낡은 빌라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윗집 아저씨, 살벌했던 쪽지 내용 등. 수유동에 살았던 그때 당시 모든 상황이 난 참 공포스러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 돌이켜 보니, 내겐 더할 나위 없이 큰 복이었던 때다.
무서웠던 그 아저씨 덕분에 나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내 집 마련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왔으니 말이다. 난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리 공포스럽고 무서워 보이던 일도 다른 이면엔 다른 기회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내가 차근차근 벌어들인 근로소득보다 힘겹게 대출을 일으켜 취득한 자산이 상승하는 속도는 더 빨랐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 깨달은 바를 기반으로 '근로소득'을 '자산'으로 치환하기 위해 노력했다. 소비성 지출을 자제하고 자산 취득에 열을 내며 말이다. 다행히 그렇게 모은 자산은 단순히 별생각 없이 지출을 할 때보다 훨씬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다. 종종 장난감 가게 앞에서 아이들이 애교를 부리며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다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아이들에게 경제관념을 알려 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엄마는 세뱃돈으로 뭐 살거에요?"
"엄마는 당연히 황금알 낳는 거위를 사겠지."
"아, 맞다. 그러네. 엄마는 황금알 낳는 거위 수집한다고 했었지."
이제 곧 초등학생이 되는 첫째와 두 살 터울인 둘째와의 대화를 들으면 엄마는 돈만 있으면 황금알 낳는 거위를 수집 중인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아이들에게 황금알 낳는 거위에 비유하며 엄마는 돈을 벌면 그 번 돈으로 꾸준히 자산을 늘려 나가고 있음을 설명한 바 있다. '황금알 낳는 거위'라고 표현하지만 아이들은 안다. 비유를 황금알 낳는 거위라고 한 것일 뿐, 엄마는 자산을 늘려가고 있고, 그 자산은 또 다른 자산을 늘릴 수 있는 황금알 낳는 거위임을.
단순히 '아껴야 잘 산다'는 어른들의 가르침에 따라 아끼는 것만 잘했던 나는 30대가 되고 나서야 '무서운 아저씨'를 만나고 뒤늦게 레버리지 개념을 익혀 현금 외의 자산 가치를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계속해서 노동으로 버는 소득 외의 다른 소득이 있음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단순히 절약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소득을 늘려 사는 방법도 있음을 계속 설명하고 있다. 언제쯤 아이들이 내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이해가 가능할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적어도 나보다는 좀 더 일찍 경제관념을 깨우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