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사빠 경상도 여자, 서울 남자를 만나고 알게 된 사실
억양이 거세기로 소문난 경상도. 그 경상도가 고향인 저는 대학교 입학을 위해 서울에 올라와서 한동안 서울말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습니다. 서울말을 쓴다고 생각했지만, 듣는 이는 모두가 하나 같이 "경상도가 고향이세요?"라고 묻더군요. "어... 어떻게 아셨죠?"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아니. 어떻게 경상도 사투리 하나 쓰지 않고 표준어를 구사했는데 경상도가 고향인 것을 알지?' 하며 되려 제 고향을 맞추는 상대방을 신기하게 봤습니다. 네. 상대방은 오히려 표준어를 쓰며 고스란히 경상도 억양을 사용하는 저를 신기하게 봤겠지요. (하하하)
대학교 내 기숙사 생활을 하며 친구들과 한 자리에 모여 하나 같이 서울말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 그나마 충주가 고향인 친구가 서울말을 능숙하게 잘 사용해서 모두가 부러워했던 기억이 아련하게 남아 있네요. 그렇게 경상도 지방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발을 디뎠을 땐 해외에 온 것 마냥 새 세상이었습니다. 제겐 표준어가 외국어 수준이더군요. 리스닝은 잘 되지만 스피킹은 안 되는...
경상도 여자 서울말 쓰는 남자에게 금사빠
좀처럼 잘 웃지 않는 무뚝뚝한 경상도 여자, 경상도 남자만 접하다 미소와 함께 서울 말투를 쓰는 남자를 만나면 절로 눈이 반짝 거리기도 했어요. 금사빠가 바로 나인가. 싶을 정도로 서울말만 쓰면 그 남자가 너무나도 멋져 보였습니다. 서울말을 쓰면 그 남자의 머리 뒤편에선 후광이 반짝반짝. 지금의 신랑도 서울말을 너무나도 완벽하게 구사하여 당연히 서울이 고향인 줄 알았죠. 서울말을 너무 잘 쓰던 제 남자 친구는 서울이 고향이 아니었어요. 전라도가 고향인데 중학생 무렵 일찍이 서울로 올라와 생활하다 보니 표준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었어요. (이래서 언어는 일찍 배워야 한다는... 응?) 반면 저는 표준어를 쓴다고는 하지만 좀처럼 흥분할 때 드러나는 억양 때문에 숨기려야 숨길 수가 없더군요. (서울에 올라온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억양이 드러납니다.)
양가 어른이 모여 있던 상견례 자리. 괜히 뉴스나 미디어에서 자주 언급되던 '경상도 VS 전라도' 인가- 싶어서 괜히 쭈뼛쭈뼛 멋쩍었어요. 그런 상견례 자리에서 말씀하셨던 아버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일명 '경상도'와 '전라도'의 대화합의 장이라고 말이죠.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는 시부모님
야구 시즌이 되면 기아를 열렬히 응원하며 팬심을 보이는 아버님과 두산을 응원하는 신랑 사이에서 조금은 낯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 야구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다니게 되니 좋아하는 구단도 아빠를 따라갈 텐데 라는 생각에서 말이죠.
"어떻게 아버님과 좋아하는 구단이 다르지? 어렸을 때부터 야구장 같이 따라다녔다고 하더니."
식사를 하며 경제 이야기도 하고 때론 정치 이야기도 하게 되는데 그럴 때도 아버지와 아들이 상반된 정치색을 드러내면서도 조금도 불편하거나 어색하지 않습니다.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신랑은 신랑대로,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분명하게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피력하죠.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정치 이야기하는데도 어색하지가 않아. 오히려 서로 자신의 견해를 마음껏 이야기하는 분위기라 좋은 것 같아. 강압적인 분위기가 전혀 아니잖아."
오늘은 2022 대선 투표의 날입니다. 시댁과 근거리에 살고 있다 보니 잠깐 두 아이를 시댁에 맡기고 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투표 잘하고 와라." 하시는 아버님을 뵈며 '나도 두 아이들에게 나의 생각을 너무 강요하지 말고 두 아이의 뜻을 존중하며 잘 키워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아직도 미디어나 뉴스에서는 '경상도 VS 전라도', '전라도 VS 경상도'를 언급하며 편 가르기를 많이 합니다. 개인적으로 남녀 편 가르기 뉴스 또한 접하면 눈살이 찌푸려지더군요. 왜 이리도 편 가르기 뉴스가 많은 건지. 한 때의 남자 친구이자 지금의 신랑을 만나고 나서야 알았어요. 아, 내가 좋아한 사람이 그저 서울말을 잘 썼을 뿐이구나. 서울 남자라고 좋아한 게 아니구나. 하하하.
서울말만 쓰면 다 서울남자로 보였던 어리숙했던 한 때의 제 모습을 회상하며 끄적여 봤어요. ^^;